김남훈이 10년째 밀고 있는 ‘효도르 처세술’

  • 등록 2023.01.10 01:5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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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미디어 박효영 기자] 2개월 반 전에 좋은 강연을 들었던 게 떠올랐다. 깜빡 잊고 기사로 전달하지 못 했는데 꼭 쓰고 싶었다. 프로레슬러이자 격투기 해설위원으로 활동한 바 있는 김남훈씨가 전설의 격투기 선수였던 에밀리아넨코 효도르의 싸움 전략을 통해 인사이트를 뽑아냈는데 고개가 끄덕여졌다. 평범한미디어 지면으로 소개하고 싶은데 너무 오래 지나서 망설여졌고 검색을 해보니 김씨는 10년 전부터 효도르 철학을 전파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냥 접을까 고민을 했으나 이내 쓰기로 했다.

 

 

김씨는 지난 10월20일 19시 광주 북구에 위치한 광주청년드림은행 공간에서 강연을 열고 “미국에 내리는 비가 뭘까? USB....ㅋ 가장 가난한 왕은? 최저임금...ㅋ”라고 아재 개그를 시전했다. 효도르에 대한 메시지를 모두 이야기하고 2부로 넘어가기 전 분위기 전환용으로 던진 농담이었는데 다들 능숙한 그의 강연 진행에 웃음을 보였다.

 

효도르는 2000년부터 2010년까지 10년간 한 번도 패배한 적이 없는 그야말로 ‘60억분의 1’의 사나이였다. 2010년 이후 조금씩 쇠락기를 맞이하긴 했으나 전적 40승 6패를 거뒀던 전무후무한 파이터였고 여전히 격투기업계에서는 현역이다.

 

김씨는 “효도르가 대단한 게 뭐냐면 10년 동안 한 번도 안 졌다. 진짜 대단하다. 전교 1등을 3년 내내 하거나 중고등학교 내내 했다는 얘기는 들어봤어도 격투기에서 10년간 무패는 정말 대단하다”며 “효도르가 더 대단했던 게 뭐냐면 무제한급 경기를 했다. 원래 격투기는 체중 제한이 있는데 그래서 상대 선수들이 다 키 2미터에 몸무게 140kg의 근육질 파이터들이 많았다. 근데 효도르는 키가 181cm에 몸무게가 105kg으로 (격투기 선수 치고) 그렇게 큰 사이즈가 아니”라고 설명했다.

 

그런 아담한 사이즈인데도 항상 자기보다 큰 선수와 싸워서 경기에서 이겼다. 한 번 직접 보셔야 되는데 미국으로 가서 상대한 선수 중에 팀 실비아라는 선수가 있다.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UFC 헤비급 챔피언도 지냈었는데 키도 훨씬 크고 리치가 길기 때문에 효도르가 타격전에서 불리할 거란 전망이 있었다.

 

팀 실비아는 2미터가 넘는 키에 123kg이다. 키가 큰 만큼 당연히 팔이 길다. 격투기에선 기본적으로 리치가 중요하기 때문에 효도르보다 실비아가 많이 유리하다.

 

팀 실비아는 리치가 되니까 왼손을 툭 뻗어도 효도르의 얼굴까지 닿는다. 근데 반전이 일어난다. (효도르의) 초크가 들어가면서 시작한지 35초만에 경기가 끝났고 위로까지 해준다.

 

 

효도르는 어떻게 실비아를 35초만에 패배시킬 수 있었을까? 그 전략을 말하기 전에 김씨는 줄루징요와의 시합에서 효도르가 “체중은 40kg 차이가 난다. 초등학생 1명 정도의 차이가 날 정도로 엄청난데 이 경기에서 효도르는 어떻게 했을까?”라며 “체급 차이를 완전 뛰어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고 운을 뗐다.

 

팀 실비아와 경기할 때는 본인보다 리치가 길기 때문에 그 상태에선 스탠딩에서 격투기 타격을 하는 게 아니라 펀치가 좀 들어오니까 바로 그라운드로 눕혀서 위에 올라타서 초크로 경기를 끝냈다. 누워있는 상태에서는 긴 리치가 무력화되니까. 줄루와 경기할 때는 줄루보다 빠른 반응 속도로 들어가면서 왼손 훅을 넣었고 그 한방에 다운됐다. 아까 실비아 때처럼 위에 올라타면 어떻게 되겠는가? 체중 차이가 40kg이 나면 스윙이라고 해서 뒤집어진다. 아빠들이 위에 청소년 아들과 장난치다가 그냥 넘어가는 것처럼 40kg 차이가 나면 그냥 넘길 수 있다.

 

상대에 따라 치밀한 전략으로 승부하는 효도르의 능력을 일일이 풀어냈는데 무엇보다 김씨는 상대가 다운됐음에도 달려들지 않는 그의 자제력을 부각했다.

 

그러니까 나 같으면 (상대가) 자빠졌을 때 막 올라타려고 했을 것 같은데 그렇게 안 하려고 철저하게 거리를 두고 그 상태에서 (줄루에게) 잔펀치 파운딩을 계속 넣으면서 포인트도 넣고 데미지를 쌓았던 거다.

 

 

이런 식으로 효도르는 굉장히 이성적인 경기를 했던 것이다. 효도르는 자신보다 스펙이 뛰어난 선수와 경기를 할 때도 결코 분노나 패닉에 빠지지 않고 이성적인 선택을 하는 모습을 보여줬기 때문에 이길 수 있었다.

 

효도르의 진가를 알 수 있는 또 다른 사례가 있다. 효도르의 동생 알렉산더 역시 격투기 선수인데 미르코 크로캅과의 시합에서 비열한 공격을 당한 적이 있다.

 

알렉산더는 형보다 더 크고 힘도 굉장히 좋았다. 알렉산더는 어깨 힘을 딱 빼고 탁탁탁 치는 헐랭이 타법으로 유명했다. 근데 알렉산더가 주먹으로서 링을 평정하면서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낼 때 저기 반대편에서 타도 효도르를 외치면서 하이킥으로 상대를 다운시키는 선수가 있었다. 그 선수가 바로 미르코 크로캅이다. 크로캅의 왼발 하이킥 한 발에 수많은 파이터들이 박살이 났다. 크로캅은 알렉산더와의 경기에서 주먹 가드가 떨어졌을 때 바로 왼발 하이킥을 날렸고 KO로 경기가 끝났다. 그런데 그 상태에서 크로캅이 너무 흥분해서 레프리를 뿌리치고 들어가서 이미 정신을 잃은 알렉산더를 주먹으로 세 번 또 공격을 했다.

 

웬만하면 평정심을 잃지 않는 효도르는 크로캅의 만행에 대해 “너무 화가 나서 러시아어로 아주 심한 욕을 했다”고 한다. 일본 격투기업계는 이런 스토리에 주목해서 흥행을 위해 2005년 8월 효도르와 크로캅의 빅매치를 성사시켰는데 결과는 효도르의 승리였다.

 

효도르는 주최측이 원하는대로 이성을 던져버린채 분노의 씩씩거림으로 돌진했을까? 이 경기에서도 효도르는 똑같았다. 크로캅이 갖고 있는 장점을 봉쇄하고 자기 장점을 드러내고, 크로캅의 단점을 끄집어내고 자기 단점을 감추는 철저히 이성적으로 경기를 했다. 그런데 연장까지 가서 판정승으로 효도르가 이겼는데 누워 있는 크로캅의 손을 딱 붙잡고 일으켜 세워줬다. 그때 너무 멋있었다.

 

 

결론적으로 김씨는 효도르를 통해서 어려울수록 더 침착하게 더 냉정하게 이성적으로 문제를 해결해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씨는 “나보다 강한 사람, 나보다 힘센 사람, 나보다 뭔가 더 있는 사람과 싸울 때 분노에 빠지거나 패닉에 빠지는 것이 당연하다. 그게 바로 인간이 갖고 있는 본능”이라면서 “근데 그 상태에서 철저하게 이성적으로 선택을 한다면 이길 수 있는 가능성이 훨씬 높아진다. 분노로 반응하지 말고 이성으로 선택하자”고 제언했다.

 

만약 효도르가 12년 동안 분노로서 반응했다면 그냥 본능으로만 경기를 했다면 이길 수 있었을까? 자신보다 팔이 긴 선수와 싸울 때는 그라운드로 들어갈 준비를 하고 그리고 자신보다 무거운 선수와 경기를 할 때는 내 펀치가 딱 들어가서 쓰러지긴 했지만 철저하게 거리를 두고. 그거 진짜 힘들다. 왜냐면 저런 KO 펀치가 딱 나오면 누구보다 스스로 주먹 끝의 타격감으로 딱 걸린 느낌 즉 끝났다고 싶은 느낌이 온다. 이때 뛰어들지 않고 거리를 두고 유지하고 공격하는 게 되게 어렵다. 여러분들도 어려운 문제에 맞닥뜨렸을 때 이성으로 선택한다면 이길 확률이 늘어나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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