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025년 9월27일 14시반 광주 남구에 있는 청춘빛포차광장 야외 무대에서 열린 강윤성 감독의 청년 토크쇼를 정리하는 현장 기사를 기획 시리즈로 출고합니다. 강 감독의 도전과 기회, 열정과 고난, 위기와 극복을 담은 인생 스토리를 비롯 청년들에 대한 진심어린 조언까지 생생하게 전달해드리겠습니다. 이번 기사는 1편입니다.
[평범한미디어 박효영 기자] 사실 강윤성 감독은 <범죄도시1>을 만나기 이전까지는 오랫동안 무명 연출자였다. 1990년대 후반부터 연출부에 있으면서 자기 영화를 준비하고 있었지만 기회를 부여받지 못했다. 소위 암흑기 동안 단편 영화, 광고, 뮤직비디오 등등을 연출하며 제대로 된 장편 영화 입봉을 위해 포기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2017년 46세의 나이에 드디어 빛을 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 그 작품이 바로 <범죄도시1>인데 17년의 암흑기를 거치면서 주저 앉지 않았던 강 감독의 스토리를 조명해보려고 한다. 강 감독은 미국 유학(샌프란시스코 소재 ‘아카데미 오브 아트’ 영화연출과)을 가는 등 영화 전문성을 키우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하기도 했다. 강 감독은 유학 중이었던 1990년대 중반 “30살에 감독 데뷔 기회를 갖게 되었다”고 회고했다.
한국 어떤 제작사에서 내가 쓴 시나리오를 연출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해가지고 사실 대학원 한 학기를 남겨놓고 한국에 들어왔다.
그러나 첫 시작부터 만만치 않은 역경이 찾아왔다. 입봉만 하면 고생이 끝날줄 알았는데 완전한 착각이었다. 투자가 집행되어 개봉까지 진행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그때가 내 나이 30살이었는데 이제 투자가 어느정도 다 되고 배우도 다 캐스팅을 하고 1년을 준비했는데 투자 일부분이 빠지면서 결국 1년 동안 준비만 하고 영화는 엎어지게 되었다. 어린 마음에 드디어 내가 고생이 끝나고 감독으로서 화려한 생활을 시작하겠구나라고 생각했는데 그때가 나의 고생 시작점이라는 걸 그때는 미처 몰랐다.
그렇게 강 감독은 30살 때 한국으로 돌아왔고 본격적인 “프리랜서로서의 삶”을 살기 시작했다. 아무런 제약이 없는 만큼 나태해지고 루즈해질 수 있다. 그래서 루틴을 만들고 지키는 것이 중요했다.
어차피 회사에 들어가지 않았으니까 나한테 중요한 거는 규칙적인 삶이었다. 누군가 날 통제하지 않으니까 스스로가 절제하고 판단을 하지 않으면 굉장히 망가지게 된다. 그래서 그때부터 지금까지도 아침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고 정해진 시간에 자고. 일을 하는 것도 27살부터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는데 아침 10시부터 12시까지 글을 쓰고 점심을 먹고 잠깐 운동을 하고 그 다음에 6시까지 글을 쓰고 저녁을 먹고 잠깐 산책을 하고. 밤 12시까지 또 글을 쓰는 삶을 지금까지도 계속 살고 있다. 어느 누구도 나를 컨트롤하지 않으니까 누구도 나한테 제약을 주지 않으니까 스스로 규칙을 만들고 그 범주 안에서 열심히 살아야 되겠구나라는 생각이 지금의 나를 만들어줬다.
한 번 습관이 된 사이클은 성공 이후에도 바뀌지 않았다.
나는 주말에도 쓰고 여행 가서도 쓰고 항상 내 노트북에 있는 글을 쓰는 그 시간들이, 내가 데뷔를 못 했으니까 데뷔를 하기 위한 발전의 시간이었다. 그렇게 생채기를 하는 시간이었는데 지금은 일이 잘되고 돈도 벌고 생활의 여유가 생겼는데도 그 삶의 습관이 바뀌지가 않더라. 계속 똑같은 방향으로 똑같은 속도로 가고 있다.
빛을 보기 전의 암흑기는 강 감독이 만들어낸 글감을 외부에 알리고 설득하는 과정의 연속이기도 했다.
돌아보니 내 주변에는 사실 배우, 영화 스태프, 작가, 감독 등 이런 영화인들이 1명도 없었던 것 같다. 그러다 보니까 내가 여기에 있다는 걸 알리기 위한 작업들이 필요했다. 내가 여기 있다라는 거를 주변에 알리지 않으면 어느 누구도 알려고 하지도 않고 알아주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끊임없이 사람들한테 내가 쓴 시나리오를 보내고 또 사람들을 만나면 나에 대한 설명을 하고 어떤 사람이고 어떤 식의 이야기를 좋아하고 어떤 걸 잘할 수 있다는 걸 설득을 했다. 영화감독이 하는 일은 사실 처음부터 끝까지 설득의 연속이다.
실제 영화감독은 제작사나 투자사로부터 투자를 받고, 시나리오 작업을 수정하고 협의하고, 배우들을 캐스팅하는 등 매번 설득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처음에는 글을 쓰면서 나 자신부터 자기객관화를 하면서 설득을 해야 되고, 두 번째는 내가 쓴 글을 가지고 만나는 제작자들과 투자자들, 배우들을 설득해야 된다. 촬영에 들어가면 스태프들을 설득해야 된다. 후반 작업을 할 땐 또 다시 영화 스태프들을 설득해야 되고 만약에 영화가 만들어지면 관객들을 설득해야 된다. 처음부터 끝까지 끊임없는 설득의 일이다. 근데 그 설득을 위해서는 사실상 많은 성격의 변화와 노력이 필요하다. 그래서 어쨌든 난 이제 내 자신이 여기 있다는 걸 알리기 위해서 그런 식의 이야기에 대한 설득도 하고 또 내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서 누군가를 만나면 이해도 시키고 하는 그런 작업들을 끊임없이 했었다.
강 감독은 어느 순간 역량 있는 영화인들이 주변에 없어서 본인 스스로 성장하지 못하고 정체되어 있다는 성찰을 하게 됐다. 한 마디로 “주변에 A급이 없다”는 것이다.
내가 감독 데뷔 기회를 가졌던 30살 때 그때 영화가 엎어지고 32살이 되었을 때 내 주변에 A급이 없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 이게 살면서 되게 중요한 깨달음이었다. 누구와 만나고 누구와 서로 영향을 주고 받고 같이 가느냐가 되게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판에서는 특히나 등급으로 나눠서 죄송하지만 이해하기 편하게끔 말씀드리는 거니까 오해는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어쨌든 내 주변에 역량 있는 사람들이 있도록 만들어야 되겠다는 것은 되게 중요하다. A급이 없기 때문에 A급들과 합을 맞춰볼 수 있는 곳으로 빨리 가야겠다라는 생각이 간절했었다. 사실 32살 때도 내 타이틀은 감독이었다. 데뷔는 못했지만.
엎어진 영화의 연출을 맡았다는 이유로 감독 신분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허울 좋은 명분이었다. 강 감독은 어떻게든 메인스트림으로 들어가서 경험을 쌓고 싶었다.
어느날 아는 프로듀서로부터 연락이 왔다. 모 감독님이 영화를 들어가는데 그 영화 현장에 영어를 할줄 아는 연출부가 필요하다. 그래서 내가 누가 스텝으로 있냐라고 물어보니까 누구누구도 있고 촬영 감독은 누가 있고 그러는데 나는 아 이건 어떻게든 인연을 맺어야 되겠다라고 생각하고. 그 연출은 내가 맡겠습니다! 답을 하고 그때 내가 압구정 커피숍에 있었는데 바로 차를 몰고 남양주에 있는 세트장으로 그냥 달려갔다. 마침 갔더니 촬영 중이었던 감독님이 외국 배우와 잠깐 얘기를 해보라고 했고 영어가 괜찮은 것 같다는 말을 듣고 바로 고용이 됐다. 그날 바로 현장에 투입됐다. 그리고 2박 3일 동안 집에 못가고 계속 촬영을 하다가 재정비하려고 겨우 귀가를 할 수 있었다. 이게 정말로 내 인생에 또 다른 가지가 갈라지는 시점이었던 것 같다. 만약 내가 닭의 머리로 그 나이에 감독 데뷔 기회를 가졌다고 주변에서 감독이라고 불러준다고 계속 그렇게만 머물렀다면 고만고만한 사람들과 정체돼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연출부 기회를 잡아 충무로에서 가장 잘한다는 A급 인재들과 만나기 시작하면서 메인스트림을 탈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됐다.
강 감독에게 17년의 시간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돌아보면 30살에 감독 데뷔의 기회를 가졌지만 엎어지고 그 이후 긴 시간을 거쳐 <범죄도시>로 데뷔하기까지 그때가 47살이었다. 기회만 갖고 개봉을 못했다. 17년 동안을 데뷔를 못했던 것이다. 그 기간 동안 놀았던 것도 아니고 매일 같이 열심히 더 열심히 더더 열심히 더더더 열심히 영화 시나리오를 쓰고 영화 작업을 했다. 그런데도 쉽게 안 되더라. 정말 삶이 드라마틱하지 않다는 걸 아주 몸소 뼈저리게 느꼈다. 17년 동안 데뷔를 못한 그 시간이 정말 고통스러웠다. 그땐 안 좋은 생각도 많이 했다. 주변에서 같이 하던 감독들은 다 데뷔를 하고 주변에 같이 있던 배우들도 다 유명해지고 하다 못해 나와 같이 어린시절을 보냈던 영화랑 전혀 상관이 없는 친구들도 대기업에서 과장이 되고 높은 자리로 올라갔다. 그렇게 40대가 넘어가면서부터 허탈해지고 소외감이 오고 자괴감이 밀려왔다. 미국에서 영화 공부를 하고 온 사람이 1년에 버는 돈은 이거 밖에 안된다고 생각하니 너무 비참했다.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살아오던 삶의 방식과 패턴이 있으니까 바꾸기가 쉽지 않았다.
아침에 일어나서 카페나 도서관 가서 시나리오를 쓰고 어디를 가든 글을 쓰는 그 삶을 내던지고 다른 일을 시도하는 것이 쉽지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듭된 실패와 좌절은 끝이 보이지 않았다. 2014년 즈음 운명처럼 <범죄도시1>의 시나리오를 쓰게 됐고 제작사와 함께 투자를 받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마동석이 당시에는 인기 있는 사람도 아니었고 막 치고 올라오는 조연 정도급이었다. 그리고 강윤성이라는 감독은 완전히 초짜 신인이었다. 경찰이 조폭 잡는 이야기는 너무 뻔한 거 아니야? 그런 말도 많았다. 근데 그 조폭이 조선족이야! 야 그거 너무 마이너하지 않아? 뭐 이런 식의 평가를 받으면서 3년 동안 투자를 받으러 돌아다녔는데 모두 다 거절을 당했다. 그때 내 나이가 46살이었는데 그때는 정말 할 만큼 다 했다. 내가 하려고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해가지고 할 만큼 이제 다 했다. 이젠 그만하자! 이런 마음을 먹게 됐다. 그러고 마지막으로 저희와 같이 하던 제작자가 한 번만 더 고쳐보자고 해가지고 저희 집으로 와서 이틀 동안 수정을 했는데 그 수정한 내용이 그간 넣었던 이야기들을 다 뺐다. 그래서 거의 초고로 돌아갔다. 내가 시나리오를 한 서른번 정도 고쳤는데 그동안 투자자들이 이게 부족하다 저게 부족하다 하면 그걸 보완하고 또 넣고 그러다 보니까. 이야기가 너무 뚱뚱해졌는데 그걸 다 들어냈다. 그런데 웃긴 게 투자자들의 의견을 반영해서 마석도의 가족 이야기도 넣었었고, 장첸은 연변 흑룡강에서 살았던 이야기도 넣었고, 가리봉동 패거리들이 서울로 올라오기 전에 창원 이야기도 넣고 별별 이야기를 다 집어넣었었는데 그 이야기를 다 빼버리고 심플하게 가자로 결론이 났다.
마지막 시나리오를 넘겼지만 될 리가 없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장원석 대표한테 이젠 마지막 시나리오라고 얘기를 하고 이게 안되면 영화는 그만해야겠다고 속으로 맘먹었다. 나이도 먹을 만큼 먹었고 더 이상 희망의 빛이 없는 이 길을 가는 거는 무의미하고 여겼다. 이젠 새로운 일을 시작하지 않으면 낙오자가 될 것 같다는 두려움이 들었다. <범죄도시> 시나리오 수정 작업은 그렇게 끝냈다. 46살까지 한 20여년간 영화계 활동에 몰빵해가지고 살았는데 새로운 일을 시작하기 쉽지 않다는 생각을 당연히 했다. 원래 사실은 한 5년 전부터 영화를 그만둘까 하면서 새로운 일을 하는 거에 대해서 머릿속에서 계속 시뮬레이션을 하고 있었다. 근데 그게 실행하기 진짜 쉽지가 않았다. 내가 요리를 해보려고 이태리 요리학원도 한 6개월 다녀봤다. 한 식당을 인수받으려고 사장님과 계약서 놔두고 사인할까 말까도 해봤다. 근데 정말 미련이 남았는지 결단을 내리기 쉽지가 않더라. 한 평생을 그렇게 영화의 꿈을 바라보면서 살았는데 그 꿈을 이제 놔야 된다라고 생각하는 그 순간에 밀려오는 회환이 컸다.
너무 많이 지쳤다. 이제는 진짜 포기하고 다른 일을 해볼지 말지 고민해보기 위해 그동안 벌었던 돈을 써서 스페인 여행을 가기로 했다.
이제 집사람이랑 그간 열심히 살았으니 우리 삶을 되돌아보기 위해 한 천만원 정도 마련해서 스페인 여행을 가보자. 그래서 앞으로의 삶을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대책을 세워보자. (범죄도시1) 시나리오를 수정해서 넘긴 것은 제작사 대표한테 맡겨놓고 나와 집사람은 스페인 여행을 갔다. 거기서 돌아다니다가 어느 올리브 가게를 갔는데 올리브를 가지고 다양한 음식들을 만들어 팔고 있었다. 올리브를 꼬치식으로 해서 올리브 문어, 올리브 치즈 등이 있었는데 한 번 먹어보니까 한국에서 먹었던 올리브 꼬치는 다 짜고 약간 좀 그랬는데 하나도 안 짜고 너무 담백하고 너무 부드럽고 좋았다. 그래서 이 아이템을 가지고 한국에서 장사를 해봐야겠다고 생각하고 막 진지하게 논의하고 있었는데 그때 제작사 대표로부터 “감독님 <범죄도시> 투자가 됐어요”라고 카톡이 왔다. 정말 아직까지도 그 카톡 기록을 갖고 있는데 (너무 고민스러워서) 한 5분 동안 답장을 못했다.
복잡 미묘한 심정이었다. 투자가 되는 것 자체로만 보면 정말 기쁘지만 언제든지 투자가 완료되지 못하고 중간에 엎어진 적이 꽤 있었기 때문이다. 영화가 어그러질 수 있는 요소들이 너무 많다. 이런 일들에 지쳐서 아예 영화계를 떠나 좋은 요식업 아이템으로 인생의 대전환을 모색하고 있기도 했다.
투자가 됐더라도 가다 보면 배우가 빵꾸 나고 투자 일부가 빵구 나고 이렇게 엎어지는 게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완전히 새로운 일을 하려고 마음을 먹었는데 또 <범죄도시>가 투자됐다는 연락이 온 것이다. 그때는 진짜 인생을 새롭게 살려고 마음을 먹고 스페인까지 간 거였는데 정말 여러 생각들이 많이 들더라. 이제는 더 이상 이루어지지 않을 꿈을 꾸지 말고 현실적으로 다른 일을 하는 게 맞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하던 찰나에 이런 소식이 들었으니 이걸 좋아해야 되나 말아야 되나. 답장은 뭐라고 해야 되나. 장 대표(범죄도시 시리즈를 제작한 비에이 엔터테인먼트 장원석 대표) “나 할 만큼 한 것 같아. 이제 그만할래”라고 답해야 되나 아니면 “너무 잘됐네. 어디에서 투자한데?” 이렇게 반응해야 되나. 한 5분 가량 고민이 되더라. 결과적으로 “너무 잘 됐네. 누가 한대?”라고 답을 보내고 대답을 들었는데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투자사였다.
고민 끝에 긍정적으로 답장을 했지만 속마음으론 “거의 100% 빠그라지게 될 것 같다”고 여겼다. 그럼에도 “잘 됐네. 한국 가서 봅시다”라면서 결정을 내리고 귀국길에 올랐다.
정말로 촬영 들어가기 전에 고사를 지냈는데 고사 지낼 때가 되니까 진짜 하게 되는구나라고 체감이 됐다. 그때가 정말 기쁘기도 하고 되게 감동적이었던 순간이었다.
→2편에서 계속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