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9월27일 13시 광주 동구에 위치한 ‘전일빌딩 245’ 4층 시민마루에서 개최된 박상영 작가의 북토크 행사에 다녀왔습니다. 대표작 <대도시의 사랑법>에 대한 이야기, 성소수자 서사, 소설가로서의 삶 등 박상영 작가의 다양한 토크 내용을 정리해서 총 4개의 시리즈 기사로 전달해드리겠습니다. 이번 기사는 2편입니다.
[평범한미디어 박효영 기자] 소설 <대도시의 사랑법>으로 유명해진 박상영 작가의 데뷔작은 2018년에 출간한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의 눈물과 자이툰 파스타>다. 박 작가는 “나 뿐만 아니라 많은 작가들이 약간 습작처럼, 프로 작가로서의 과도기 같은 느낌이 조금은 있었다”고 회고했다.
사실은 그때 작품들 중 일부는 지금 막 빼고 싶고 부끄럽다. 그리고 어떤 작가들은 첫 번째 작품집을 절판하는 경우도 있다. 나 역시도 그런 느낌을 아는데 첫 작품집을 통해서 진짜 작가로서 내 스타일을 찾는 트레이닝을 마친 것 같다. 20대 때 나를 괴롭혔던 모든 감정들을 담아서 그것을 한 번 해석해봐야겠다. 그런 마음으로 썼다.
지난 9월27일 13시 광주 동구 ‘전일빌딩 245’ 4층 시민마루에서 박 작가의 북토크가 열렸다.
사실 박 작가의 존재를 영화 <대도시의 사랑법>을 통해 알게 됐다. 소설 자체가 대박이 났지만 영화와 드라마로 재창조되어 더 많은 사람들이 박 작가의 퀴어 스토리를 접할 수 있었다. 박 작가는 영화를 보고 만족감을 드러냈다.
나도 김고은씨가 어떤, 내가 직접 쓴 대본은 아니지만 내 작품의 캐릭터를 연기한 건데 어떤 느낌을 받았냐면 일단 이언희 감독과 김나들 작가께서 내가 이 작품에 녹여내려고 했던 핵심 메시지를 굉장히 잘 이해하고 있구나. 이런 생각을 했고 그 다음에는 김고은씨가 어떤 내가 의도했던 것들을 내 속에 들어갔다가 나온 것처럼 완벽하게 해석을 했다. 내가 느끼고 내가 생각했던 나의 숨결과 모습을 그대로 재현해냈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오히려 훨씬 더 좋아진 부분들이 있다. 단순히 시나리오를 봤을 때보다 영상으로 구현된 것이 훨씬 더 잘 살렸던 부분들이 있었고 진짜 이거는 내 인생에 영상 작업을 계속한다면 궁극기 하나를 쓴 거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됐다.
소설을 집필하는 것과 영화를 위한 시나리오를 쓰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일이다. 영화 대본을 박 작가가 쓴 것은 아니지만 영화화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박 작가 스스로 깨달은 것이 있다.
영화 대본 같은 경우는 사실 초고는 좀 많이 이상한 부분들이 많았는데 내가 피드백을 드리고 여러 번 고쳐서 완성되니까 너무 상업적으로 재미있는 시나리오가 나온 것이다. 김나들 작가와 이언희 감독한테 많이 배웠다. 이전까지 내가 어떤 순수 예술을 하면서 내 자신을 표출하는 차원에서의 재미를 추구했다면 상업 예술은 좀 다른 공식이 적용되는 부분이 있구나. 그리고 그런 공식에 맞춘 글쓰기의 미덕도 분명히 있구나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특히 영화에는 그런 대사가 등장을 한다. 남자들이 일찍 일찍 다니면 여자들이 조심할 일이 없지 않겠냐고 하는데 그런 대사는 내가 쓸 수 없는 대사다. 그리고 (흥수가 게이라는 사실을 알고 재희가 뱉는 멘트 중에) 네가 너인 게 왜 문제야? 이런 대사는 나는 느끼해서 못 쓴다. 근데 영화에서는 그런 게 필요하더라. 뭔지 알지 않은가? 또 넌 내 사랑이고 내 인생의 외장하드! 이런 건 내가 쓴 대사지만 그런 느끼한 부분들도 필요할 때가 있구나. 그런 것들도 많이 배웠다.
물론 영화에서 아쉬운 점이 없지 않다.
근데 영화 시나리오에서 노상현씨가 연기한 흥수의 캐릭터에 있어서 좀 아쉬운 게 있다. 그러니까 재희는 너무 풍성했는데 흥수가 약간 EBS에 나올 것처럼 너무 귀여운 것이다. 인권단체에 있는 사람이랑 사귀고 이런 게 너무 막 지금 2020년대인데 아직 이래야 되나? 막 그런 생각도 들고. 이언희 감독 앞에서도 얘기를 했다. 근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업 영화에서 되게 의미 있는 시도였다고 생각을 하고 있다.
박 작가는 단순히 원작자로서의 역할을 넘어 실제 영화 홍보 과정에도 동참했다.
정말 좋은 배우들이 출연한 것도 영광인데 내가 무대 인사에 같이 다녔다. 그때 무대 인사를 돌 때는 하루에 몇개씩 돈다. 그러면 버스를 대절을 한다. 헐리우드 스타들이 타고 다니는 그 뒤에 소파 있는 버스들이 있다. 거기에 앉아서 이언희 감독과 김고은씨랑 노상현씨랑 장혜진씨와 앉아서 이제 며칠 같이 다니고 그랬었다. 뭐 그런 게 되게 인생의 진기한 경험이었다. 내가 그런 배우들이랑 같이 겸상하는 일이 좀처럼 없지 않겠는가. 그런 경험을 하게 해줬던 프로젝트였고 그래서 삶에 있어서 뭔가 다른 뭔가 전기를 열어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퀴어 소재를 바라보는 대중문화업계의 편견을 어느정도 개선했다는 보람도 있다.
영화인들이나 배우들도 그 작품으로 말미암아서 퀴어 소재의 작품에 대한 인식이 많이 바뀌었다는 걸 내가 느낀다. 영화 프로젝트를 진행할 당시에도 남자 배우를 구하는데 김고은이라는 걸출한 여배우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3년이라는 시간이 걸렸었고. 드라마 <대도시의 사랑법>의 남자 배우를 구할 때도 너무 많은 매니지먼트들로부터 거절을 당했었다. 굉장히 문전박대를 당했었고 근데 이제는 지금 내 소설 <믿음에 대하여>를 기반으로 대본을 써놓은 상태인데 이걸 돌릴 때는 아 그럼 작가님 뭐 <대도시의 사랑법> 같은 느낌인가요? 이렇게 레퍼런스가 약간 되어 준 것이다. 그래서 상업 영화판에서 그런 작품 그러니까 전면적으로 퀴어의 일상을 다룬 작품을 소화하고 그거를 릴리즈 해내고 넷플릭스에서 유통해낸 그 일련의 과정들이 아까 말씀드렸던 그런 반대 운동도 있었고 매우 고통스러웠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영상 업계의 편견을 약화시키는 것에 뭔가 그래도 기여한 부분이 있는 것 같다.
사실 드라마든 영화든 <대도시의 사랑법>이 상업적으로 큰 성공을 거둔 것이 아니다. 그래서 박 작가가 큰 돈을 벌거나 그런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의미가 깊다.
퀴어의 일상을 재현함에 있어서 노력했다는 의미가 있지 사실 나 자신의 영달은 그렇게 많이 이루지 못했다. 돈이 그렇게 많이 되지 않았다. 그러니까 간신히? 뭔지 알지 않겠는가? 손익분기점 간신히 채울 정도로. 영화 산업이 요즘 어려운데 그렇게 돈을 회수하기가 힘들다. 아무튼 입신 영달을 크게 채우진 못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제 어떤 드라마와 영화를 사랑하는 한 관객이자 시청자로서 나 자신에게 좋은 일 하나를 했다. 그런 생각이 들어서 만족하고 있는 프로젝트다.
원작으로 돌아가서 작품의 배경과 소재를 어떻게 떠올려냈는지도 궁금하다.
재희라는 인물이 이 소설을 구상할 때 가장 먼저 떠올렸던 인물이었다. 20대 초반 지방에 살다가 서울로 대학을 가면서 학교 앞 자취촌 원룸에 살면서 그렇게 어떤 성인의 생활을 시작했다. 그때 말 그대로 일종의 마을처럼 대학교 근처에 사는 아이들끼리 약간 품앗이처럼 반찬도 나눠 먹고 방에 돌아가면서 이제 술 마시고 놀고 막 그러지 않은가. 자취방에서. 근데 그런 친구들 중에서 이제 여성인 친구들이 몇명 있었다. 그래서 그 친구들이랑 재미있게 가족처럼 지내고 놀면서 또 대학 사회에 여러 가지 또 빻은 부분들이 있는데 그런 것들을 또 직간접적으로 체험하면서 내 안에 그런 캐릭터가 조금씩 자라났던 것 같다. 그래서 예전부터 그런 캐릭터들을 조금씩 쓰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고 그러다가 작가가 되고 이제 책을 냈을 때 <대도시의 사랑법>이라는 프로젝트를 구상하면서 처음으로 그런 인물들이 나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게이 남성 캐릭터와 소위 약간 성적으로 해프다고 지탄받는 여성 캐릭터가 존재 자체로 연대하는 내용을 한 번 그려보고 싶었다.
영화와 소설에서 접했던 재희가 산부인과를 방문해서 ‘자궁 모형’을 들고 나오는 장면이 있다. 박 작가는 “산부인과 씬은 진짜 약간 천재적인 것 같다”면서 “지금 와서 보면 그걸 어떻게 생각해냈지 싶은데 대학교 때 친했던 친구 중 하나가 실제로 자궁 모형이 있는 오래된 산부인과가 있다는 얘길 들어서 고증도 받고 그러면서 그걸 썼던 기억이 난다”고 풀어냈다.
근데 지금은 머리가 둔해져서 그 정도로 비상한 장면을 구상하지 못하는 것 같은데 그때 당시에는 막 그랬다. 아직 뭐 20대일 때여서 그런지 몰라도 그 장면 썼을 땐 진짜 기분이 좋았다. 내가 뭔가 소설을 통해서 보여줄 수 있는 백미를 보여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굉장히 기뻤다. 재희라는 캐릭터는 지금도 많은 분들이 내가 만든 캐릭터 중 최애 캐릭터로 꼽고 있다. 그 뒤에 있는 소설들에서의 어떤 다른 여성 캐릭터들도 조금씩 재희에서 변주되고 있는데 재희가 그런 캐릭터이기도 하다.
→3편에서 계속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