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진웅의 정책 스토어] 14번째 칼럼입니다.
[평범한미디어 김진웅 성동구의회 정책지원관] 대한민국은 명실상부 복지국가다. 최소한 복지국가를 지향하고 있다.
어떤 복지국가인지 정의하고 파악하기 위해서는 GDP 대비 복지 지출 수준을 고려하는 게 일반적이지만 여러 맹점들이 있다. 첫째 국가마다 인구 구성이 상이하다. 노령 인구와 학령 인구, 출생률 그리고 노동 가능 인구 등을 고려하지 않은 채 단순히 복지 지출액을 기준으로 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둘째 국가별 산업 인프라, 혁신 잠재성에 따른 미래 가치를 고려하지 않은 단순 비교는 곤란하다. 복지국가는 경제 현황에 따른 재정이 뒷받침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셋째 복지 정책의 성질을 따져봐야 한다. 사회보장제도가 탄탄하게 운용되고 있는지, 공공부조 중심인지, 특수 직역 연금제도에 복지재정이 많이 투입되는지 등을 살펴봐야 한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은 어떤가? 필자의 기준으로 봤을 때는 복지국가의 3가지 축인 사회보험, 공공부조, 사회서비스의 틀이 갖춰져 있고 지출 수준 또한 나쁘지 않다고 본다. 2026년도 대한민국 총 예산은 728조원으로 확정됐다. 이중 보건복지 비중은 137조 6480억원으로 작년 대비 9.7%(125조4909억원) 상승했다. 보건·복지·고용 즉 복지성 예산은 총 269조 1000억원으로 전체 예산의 37%에 달한다. 2021년 기준 GDP 대비 복지 지출 수준은 15.2%에 달한다.
한국의 인구 구조는 고령화와 저출생의 직격탄을 맞고 있다. 65세 인구는 이미 20%를 돌파해 초고령화 사회에 진입했다. 합계 출산율은 0.82명에 그친다. 이에 따라 내년부터 아동수당 연령은 만 8세에서 9세로 상향되어 49만여명이 혜택을 받게 된다. 노인 일자리 또한 115만여개로 올해 대비 5만 4000개 가량 늘어난다. 공공부조 정책도 강화돼 생계 및 의료급여 등을 두텁게 한다. 특히 의료급여 대상자 선정시 부양비를 폐지하여 재정이 더욱 많이 투입된다. 노후 소득 보장제도 역시 튼튼해지는데 국민연금 보험료 지원 대상을 저소득 지역 가입자로 확대된다.
굳이 평가하자면 현재 우리나라의 복지체제는 당면한 사회적 위험들에 적절히 대응하기 위한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이런 복지 재정 지출과 대상자 확대를 새롭다고 할 수 있는가? 이런 질문을 던져본다면 그렇지 않다고 할 수 있다. 분명 복지국가롤 발돋움하고 있지만 2014년 송파 세모녀 사건, 2022년 수원 세모녀 사건, 2025년 강서구 가족 참변 등을 비롯 ‘간병 살인’ 문제를 목도하고 있다. 기존 복지제도가 돌아가고 있음에도 그들을 보호해주지 못했다. 필자는 오랫동안 빈곤 문제에 따른 참혹한 사건들이 우리 복지제도 안에서 해결되지 못하는 배경을 고민해왔다. 그 결과 현행 낡은 복지체제로는 구성원들의 다양한 니즈에 부합하는 복지 서비스를 제공하기 어렵다는 결론에 다다랐다. 어느정도 확신을 하게 됐는데 신 복지체제로의 전환이 시급하다.
구체적으로 무엇이 문제일까? 첫째 지역 주민의 복지 욕구를 평가하고 진단하는 주체로서 지방자치단체 사회직(복지) 공무원 조직의 한계가 뚜렷하다. 둘째 공공부조 정책과 긴급복지 정책은 일시적이고 충분하지 못하며 다양한 욕구를 포착해서 대안을 내놓을 수 없는 상황이다. 셋째 지역 주민의 복지 욕구를 해소하기 위한 자원의 적절한 배분 전략이 없다. 넷째 어설픈 사회투자 이론에 근거한 불충분한 투자 수준 그 자체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중앙정부의 복지정책과 지방정부의 복지사업. 이 둘의 이원화가 반드시 필요하다. 또한 관과 민의 경쟁을 통해 조직 운영의 긴장관계 조성도 필요하다. 지방자치단체가 중심이 되어 신 복지체제 전환이 필요하다. 지난 2021년 20대 대선 정국에서 민주당 경선 후보로 뛰었던 이낙연 전 총리가 이와 비슷한 담론을 제시한 바 있는데, 필자가 고민하는 개념과는 조금 거리가 있다. 이를테면 필자가 피력하고 싶은 신 복지체제는 기존의 구 복지체제를 존치시키면서 지자체를 중심으로 민간 자원을 통한 충분한 사회투자가 바탕이 된다. 이를 통해 빈곤 위험에서 벗어나 시민들이 충분한 소득을 얻게 되면 일정 정도 사회에 환원하는 패턴이 정착될 수 있다고 본다. 다만 이런 신 복지체제는 1980년대 미국의 레이건 정부와 2000년대 부시 정부가 펼쳤던 방식과도 다르다. 두 미국 보수 정권은 기존의 사회보장제도를 허물고 대출 등을 통한 빈곤 해소 정책을 추진했다.
지자체 중심 신 복지체제는 이런 거다. 첫째 사회적 위기에 당면한 구성원의 욕구를 사회복지 전문가 등이 진단한다. 현행 시스템은 복지직 공무원이 자산조사 동의서를 받아 검증 후 복지서비스 연계를 하는 것에 그친다. 하지만 지자체 출자기관인 복지재단 등을 통한 욕구 파악과 자원 연계는 당면한 상황과 심리적 상태, 정확한 욕구 파악(공공부조/재취업/창업/교육)을 통해 중장기적 지원체계로 연계시킬 수 있다. 어차피 관은 자산조사를 할 뿐, 진단을 하지 않는다. 따라서 프로세스를 관에서 민으로 옮기는 과정이 필요하고 이를 통해 욕구조사와 진단 및 처방은 더욱 선명해지는 것이다. 둘째 충분하고 지속적인 자립 지원 체계를 통해 구성원을 보호한다. 방점은 충분함이다. 당장 기초생활 수급자들 중 다시 창업이나 재취업 욕구가 강해서 소득을 얻게 되는 경우가 되면 기존 복지체제의 틀에서 벗어나버린다. 기초생활 수급에 대한 욕구가 있는 구성원이 있고, 창업이나 재취업 욕구가 강한 하위계층 시민들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 현행 시스템으로는 기초생활 지원이나 긴급복지 지원 이외에 형식적인 노동 교육과 취업 연계에 머무른다. 하지만 신 복지체제는 공공부조 지원과 함께 지자체 복지재단의 기부금 등을 작게는 몇백에서 몇천만원, 많게는 억 단위의 투자를 통해 자립을 도모하는 것이다.
또한 반드시 물질적 지원이 필요하지 않는 대상자들도 있다. 심리적 안정을 우선 도모하고, 구성원이 지닌 잠재력과 기회, 가능성을 종합적으로 진단하여 다양한 자원으로 연계하는 구심점이 필요한데 현재의 사회복지관, 민간재단, 관공서는 이런 기능을 발휘하는 데 한계가 있다. 따라서 복지재단을 구심점 삼아 구성원 개개인을 최대한 회복시킨다는 목표로 임해야만 극단적 선택으로 가는 상황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2024년 기준 서울 구로복지재단은 18억 5천만원을 모금했다. 천안복지재단은 24억원, 김천복지재단은 6억 6천만원, 서울 양천복지재단은 8억, 김포복지재단은 4억을 모금했다. 현재도 적지 않은 돈을 모금하는 복지재단들이 많다. 만일 신 복지체제로의 전환을 꾀하면서 본격적으로 복지재단을 포함한 민간 전문기관을 모금 전문가와 경영 전문가, 복지전문가로 구성한다면 기부금 모금 규모는 훨씬 더 커질 것이다. 오로지 세금으로만 신 복지체제의 사회 투자를 단행할 경우, 열등처우의 원칙 등을 이유로 사회적 갈등이 유발될 수 있으나 민간 재원인 기부금을 활용할 경우 이런 갈등으로부터 보다 자유로울 수 있다. 어떤 이는 금융기관에서의 대출이 더욱 효과적일 수 있고 도덕적 해이를 예방할 수 있다고 반문할 수 있겠다. 그렇지만 대출은 복지가 아니다. 그리고 이미 무너진 심신을 지니고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 국가와 사회에 손을 내미는 사회적 약자들에게 대출을 권하는 방식은 복지국가의 방향과 거리가 멀다. 그들이 온전히 자립을 하는 것을 전제로 현재보다 더 많은 세금을 납부하도록 해서 사회에 환원하게 하는 것이 훨씬 낫다.
사회보험, 공공부조, 사회서비스 3가지 축으로만 복지 시스템을 짜야 한다는 스테레오 타입에서 벗어나 이제는 적극적으로 민간 자원을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새로운 길을 모색해야 한다. 사는 것보다 죽는 게 낫다고 여기는 벼랑끝 시민들을 구해야 한다. 그 계기를 마련해야 한다. 거듭해서 말한다. 충분하고 지속적이며 접근성이 높은 지자체 중심의 신 복지체제를 고민해봐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