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으로 의사’를 내려보낸다? ‘행위별 수가제’부터 손봐야

  • 등록 2025.08.24 14:2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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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웅의 정책 스토어] 13번째 칼럼입니다.

 

 

[평범한미디어 김진웅 성동구의회 정책지원관] 대한민국의 보건의료 정책에 크나큰 흠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지역간 의료 서비스 격차다. 수도권 보건의료 인프라는 비교적 잘 갖추어져 있고, 기타 광역단체들 또한 어느정도 보건의료 환경이 조성되어 있지만 상대적으로 낙후됐다. 아픈 것도 서러운데 지방에 산다는 이유만으로 헌법적 권리인 보건의료 혜택을 충분히 보장받지 못한다? 오랫동안 무거운 숙제로 남아 있는 대한민국의 아픈 현실이다.

 

그래서 여야 정치권을 막론하고 지금까지 수많은 정치인들이 지역 의료격차 해소를 공약으로 제시해왔다. 그러나 공약만 남발될 뿐 의료격차가 해소됐는가? 전혀 아니다. 왜일까? 이유가 있다. 윤석열 정부의 몰락 이후 들어선 이재명 정부는 과연 어떨까? 일단 이재명 대통령은 ‘지역의사제’ 카드를 꺼냈다.

 

이재명 정부는 8월13일 국민보고대회를 열고 의료개혁 청사진을 발표했는데 국정기획위원회 사회1분과 김남희 기획위원은 아래와 같이 강조했다.

 

필수의료 확충과 공공의료 강화로 국민의 건강권을 어디서나 보장받을 수 있고 간호간병 통합서비스 확대, 간병비 건강보험 적용, 난치질환 부담 경감으로 간병비와 의료비 부담을 완화할 수 있도록 하겠다.

 

이밖에도 지역 거점 공공의료원 확충, 필수적인 소아과와 산부인과 의료 서비스 강화, 어린이 치료 특화 울산의료원 설립 등을 공언했다. 아울러 지역의사제를 본격적으로 도입하겠다고 덧붙였다. 이를 위해 2028년부터 의대 신입생을 ‘지역의사’ 전형으로 뽑겠다는 계획도 발표했다. 이와 관련 정은경 보건복지부장관은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 출석해서 “필수 공공의료 인력 양성을 위해 충분한 투자와 보상을 아끼지 않겠다”고 밝혔는데 공공의료사관학교를 만들어서 안정적인 공공의료 인력 양성 기반을 마련하겠다고 설명했다. 공공의료사관학교는 국립중앙의료원 부설 교육기관으로 설치될 계획이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응당 보장받아야 하는 보건의료 서비스를 실질적으로 만들기 위한 이재명 정부의 플랜을 진심으로 응원한다. 다만 필자는 지역의사제에 대한 걱정과 의문이 있다.

 

이를테면 한국 의료 현실에 비춰봤을 때 실효성이 있을지 물음표다. 대한민국 의사의 의료 행위는 책정된 수가 즉 ‘행위별 수가제’로 이뤄진다. 행위별 수가제는 의료기관에서 제공되는 각각의 의료 서비스(진찰/검사/투약/시술 등)에 대해 개별적으로 비용을 산정하여 진료비를 지불하는 방식이다. 즉 서비스의 종류와 양에 따라 진료비가 결정되는 시스템이다. 문진부터 시술, 수술, 드레싱, 소독, 주사, 각종 검사 등 행위마다 ‘수가’가 정해져 있다. 그러므로 환자를 많이 보면 많이 볼수록, 의료 행위를 많이 하면 할수록 돈을 많이 버는 구조다. 기능적인 측면에서만 볼 때 의료기관은 ‘자영업’과 다름 없다. 돈벌이에만 매몰됐다는 부정적인 규정을 하고 싶은 게 아니라 실제 상황이 그렇다는 것이다. 그래서 더 나은 의료기술이 있고, 약이 잘드는 처방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의료기관이 어디에 위치해 있는지가 중요하다. 인구가 밀집되어 있으면 의료기관은 더 많은 환자에게 서비스를 제공하고 많은 수익을 창출할 수 있다. 그러므로 자연스럽게 굳이 의사들이 지방으로 내려가서 같은 일을 하면서 상대적으로 소득을 적게 가져가는 선택을 하지 않을 것 같다.

 

의사들과 정부의 관계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정부는 매년 의사들과 수가 책정을 한다. 그런데 정부가 갑이다. 건강보험제도를 운영하고 있으면서도 주도권은 정부가 쥐고 있다. 또한 의사들의 의료 행위와 처방을 들여다보고 이를 심사하는 심사평가원도 보건복지부 산하에 있다.한국은 1997년 의료보험제도를 도입하면서 의료 수가를 원가 이하로 책정했다. 그 당시 서울 시내 병원을 관료들이 돌아다니면서 관행적으로 수가가 얼마인지를 파악해서 그보다 낮게 책정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1977년 신현확 보건사회부 장관이 국회에서 관행 수가의 75% 수준으로 보험 수가를 책정했다고 답변을 하기도 했다. 이러한 불합리한 관행에서 시작된 수가 논쟁은 자연스럽게 약제에서 의사들이 손해를 보전하는 방식으로 치닫았다. 이를 바로잡는 노력이 2000년대 들어 김대중 정부에서 의약분업을 통해 이뤄졌다.

 

핵심은 지금까지 정부가 의사들을 수가 책정으로 통제해왔다는 점이다. 때로는 의사들을 국가 의료 서비스의 제공자이자 봉사자로 추켜세우면서 정부가 불편할 때는 적폐로 몰았다. 정부와 의사의 관계는 명백한 갑을 관계다. 이 구조를 정확히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이재명 정부가 언론을 통해 내놓는 메시지를 들여다보면 마치 정부가 의사들에게 끌려다니는 것처럼 보여질 때가 많다. 이건 오해다. 갑은 정부이지, 의사들이 아니다.

 

의사를 단순히 자영업자로 보는 걸 잘못된 시각이라고 비판할 수 있다. 보건의료 서비스는 국민의 생명과 직결되는 공공재적 측면이 있기 때문에 의사는 사명감과 소명의식을 갖고 환자를 돌보아야 하는 것이지, 단순히 돈만 쫓아서는 안 된다는 논리가 맞다. 당연하다. 그런데 이렇게 생각해보자. 내가 서울에서 일을 하면 연봉 5천만원을 받을 수 있는데, 지방으로 내려가면 3천만원을 받게 된다. 똑같이 공부했고, 똑같은 자격을 가졌고, 실력도 비등비등하다. 납득할 수 있겠는가? 이처럼 자기 일 아니면 쉽게 이야기할 수 있다. 하지만 결코 쉬운 문제가 아니다. 서울의 대학병원에 있으면 학회 등 연구 활동도 활발히 할 수 있고 개인의 명성을 키우고, 의료 커리어를 쌓을 수 있는 기회를 압도적으로 많이 부여받을 수 있다. 자녀 교육 문제도 마찬가지다. 단순히 소명의식만 갖고 지방으로 내려가라고 하면 가야만 하는 그런 쌍팔년도의 시대는 진작 지나갔다. 그래서 행위별 수가제가 아니라 연봉제 내지는 어디에서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더라도 같은 처우를 보장받는다면, 지역에서 의료 활동을 하기로 결정할 때 거부감이 덜해질 것이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구조에서는 요원한 일이다.

 

이재명 정부의 지역의사제가 본격 도입됐을 때 현행 행위별 수가제를 그대로 적용한다면 몇 년이나 버틸까? 아마 정해진 기간 내에 지역을 벗어나려고 한다면 의료 면허를 박탈한다든지 중지한다든지 패널티가 있겠지만 평생 그렇게 살라고 법으로 정할 수 있을까? 위헌 소지가 있어서 그렇게 법을 만들어 강행할 가능성은 낮을 것이라 생각한다. 직업 선택의 자유, 거주 이전의 자유는 기본권 중의 기본권인데 헌법을 거스르면서 제도를 운영할 수 없는 노릇이다. 결국 언젠가 때가 되면 자신의 이해관계 또는 신념에 따라 지역에 남든 수도권으로 가든 할 것이다. 의사도 숙련도가 중요하다. 숙련도가 높아질 때면 이미 지역 의사를 더 이상 하지 않아도 될 타이밍일 것이다. 서울로 가면 훨씬 많은 환자를 보면서 돈도 많이 벌 수 있고, 최신 의술과 정보에 접근할 수 있어서 마음이 동할 수 밖에 없다고 본다.

 

강제로 의사들을 의료 취약 지역에 배치시켜서 진료를 보게 하는 것은 현실적이지 않다. 과연 의사 출신 정은경 장관과, 이재명 대통령이 이런 현실을 몰랐을까? 모를 수 없다. 그냥 갑의 위치에서 지역의사제를 만들어놓고 의사들이 돈을 쫓는다면서 적폐로 몰아가는 손쉬운 방법을 선택하지 않길 바랄 뿐이다. 의료 정책을 제대로 펼치려면 솔직해져야 한다. 갑의 위치에 숨어서 그럴싸한 정책을 선보이고, 우리는 책임을 다했으나 서비스 제공 주체인 의사들이 돈 밖에 몰라서 국민 생명을 담보로 적폐행위를 하고 있다는 식의 행태는 너무나 비겁하다.

 

솔직히 지역의사제가 성공적으로 정착하지 않길 않는다. 모든 국민이 동일한 의료서비스를 누리는 그런 국가를 바란다. 지역의사제가 정답이 될 수 없다. 행위별 수가제를 고쳐서 지방에서 의사로 살더라도 소외감을 느끼지 않게 해야 한다. 같은 면허로 같은 일을 하는 의사들간에 말도 안되는 정도의 소득 격차가 발생하는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다시 말하지만 솔직하고 당당한 태도와 신념으로 의료개혁을 이루어내야 한다. 필자는 의사편이 아니다. 아직까지 현실을 호도하면서 국민 알기를 바보로 아는 관료주의적 마인드를 비판하는 것이다.

김진웅 pyeongbummedia@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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