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미디어 윤동욱 기자] 물류센터에서 동료 직원이 그저 코를 곤다는 이유만으로 살인을 저지른 엽기적인 사건이 일어났다.
이 끔찍한 살인 범죄는 지난 13일 새벽 4시쯤 광주 광산구 평동산업단지 내 쿠팡물류센터 4층 휴게실에서 벌어졌다. 야간 근무로 피곤했던 40대 남성 B씨는 휴게실에서 잠시 쪽잠을 자고 있었다. 그런데 26세 남성 A씨가 다가오더니 B씨에게 “코를 너무 곤다”며 시비를 걸기 시작했다. 결국 이 둘은 서로 다투는 상황까지 가기에 이르렀다. 거기서 멈췄으면 좋았겠지만 A씨는 갑자기 이성을 잃기 시작했다. 급기야 A씨는 선별대에 있는 판매 상품이던 흉기를 들고 와서 B씨의 목과 복부를 수 차례 찔렀다.
심한 상처를 입고 피를 흘린 채 쓰러져 있는 B씨를 목격한 동료 직원들이 급하게 달려와 응급조치를 취하고 곧바로 119에 신고해서 병원으로 이송되었으나 안타깝게도 B씨는 끝내 깨어나지 못 했다.
동료를 살해한 현행범 A씨는 사건을 목격한 다른 직원의 신고로 경찰(광산경찰서)에 긴급체포되었다. 경찰은 A씨에 대해 살인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고 정확한 사건의 경위를 파악하고 있다.
이 사건을 보며 의문점이 드는 게 한 두 가지가 아닐 것이다. 아무리 코를 고는 소리가 거슬렸어도 살인까지 이어진다는 것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홧김에 사람을 죽인다? 정상인의 범주에 속해 있지 않은 사람으로 볼 수 밖에 없다. A씨는 사이코패스였던 걸까? 혹시 피해자와 가해자 사이에 원한관계라도 있었던 걸까? 현재까지 조사한 바에 따르면 딱히 원한관계는 없었고 A씨와 B씨는 물류센터에서 계약직으로 일하는 직원들이었다. 둘 다 1년 가량 함께 근무했으며 정말 딱 ‘알고 지내는 사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약간 데면데면한 사이였던 것 같다.
사건 당시 1시간 반 정도 휴식시간이 주어져서 쉬고 있던 상황이었다.
이번 사건은 누가 봐도 계획 살인이 아닌 명백한 우발적 살인이다. A씨가 순간의 화를 주체하지 못 하고 돌이킬 수 없는 일을 저질렀다. 아마 A씨는 평소에도 스트레스를 받으면 잘 다스리지 못 하고 폭발시키는 성격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과로가 많은 쿠팡물류센터 업무 특성상 야간 근무를 하고 있던 A씨의 스트레스 지수를 높이는 데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물류센터 일을 해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밤샘 근무를 하고 있을 때는 굉장히 피로하다. 누구나 피곤하면 예민해지기 마련이다. 물론 그렇다고 물류센터의 근무 환경이 A씨의 살인 충동을 불러왔다고 단정지을 수는 없다. 그렇게 따지면 물류센터에서는 하루가 멀다하고 살인 사건이 일어났을 것이다.
수면 중 코 고는 소리, 이 가는 소리 등은 그냥 투덜대고 짜증을 내는 정도로 족하지 사람을 죽일 이유는 절대 아니다. A씨의 범행은 말할 것도 없이 너무나 비상식적이다. 감옥에서 정신과적인 조사가 들어가겠지만 A씨의 분조조절장애가 의심된다. 이처럼 ‘홧김에 살해’하는 범죄는 정말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어 주의가 요구된다. 유튜브에 ‘홧김에 살해’라는 키워드를 검색해보니 관련 사건들이 셀 수 없이 나왔다.
두 달 전에도 20대 여성 공무원의 살인 사건이 있었다. 강서구청(서울) 소속 여성 공무원 C씨는 작년 11월6일 새벽 3시 즈음 경기 김포시에 있는 모 오피스텔에서 남자친구를 칼로 찔러 목숨을 잃게 만들었다. 당시 남자친구와 지인 포함 총 3명과 함께 술을 마시고 있던 중이었는데 만취 상태였던 C씨는 남친과 말다툼을 하더니 주방에서 칼을 가져와 흉기를 휘둘렀다. C씨는 남친의 손등을 물어뜯었고 화가 난 남친이 뺨을 때리고 욕을 했는데 갑자기 C씨가 칼을 들고 왔다. 지인들의 신고로 현장에 도착한 경찰 수사관들은 한 눈에 봐도 C씨가 만취해 있었다고 증언했다. 그로 인해 C씨는 심신미약으로 인정을 받았고 우발적인 사건이었기 때문에 살인의 고의성이 적다고 판단되어 징역 4년을 받아 논란이 일었다.
2018년 10월14일에는 그 유명한 ‘강서구 PC방 살인사건’이 있었다. 가해자 김성수는 PC방 알바생이 자신을 무시한다고 생각해 흉기를 휘둘러 살해하는 끔찍한 짓을 저질렀다. 전문가들은 김씨에 대해 ‘수동적 공격 성향’이라고 평가했다. 이 또한 분노조절장애의 일종으로 평상시에는 분노를 표출하지 않고 참고 있다가 본인을 자극하는 특정 상황이 발생하면 폭발적으로 분노하는 것이다.
A씨도 이러한 성향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 어떤 사소한 것이라도 트리거가 될 수 있다. 경찰청이 2017년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살인 사건 914건 가운데 화를 참지 못 하고 우발적으로 저지른 유형이 무려 40%에 이르렀다. 또한 분노조절장애 증상을 보이는 충동장애로 병원을 찾는 사람도 증가하는 추세다.
누가 봐도 충동적으로 벌어진 A씨의 살인 행위이긴 하지만 분노조절장애에 따른 것으로 단정하면 안 되는 부분도 있다. 임상심리사이자 정의당 정신건강위원회를 운영하고 있는 정채연 위원장은 29일 저녁 평범한미디어와의 통화에서 “분노라는 특정 정서보다는 전반적인 정서 조절의 어려움으로 상담을 받으려고 하는 분들이 많지는 않지만 종종 있다”면서 가해자를 분노조절장애로 단정하는 것은 위험한 접근일 수 있다고 조언했다. 왜냐면 정서를 조절하고 통제하는 것은 많은 요인들이 작용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분노를 느끼는 원인에 대해서도 여러 이론이 있다. 과로가 가해자의 분노를 촉발시켰다고 보기도 사실 애매하다. 정서 조절에 문제가 있는 게 다른 요인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다. 우리가 누군가의 언행을 통해 정신적 문제를 추론하긴 하지만 의료 장면이 아닌 상황에서 누군가에게 장애가 있을 거라고 추측하는 건 상당히 조심스럽다.
정 위원장의 조언에 따라 섣불리 예단하진 않겠지만 평범한미디어는 향후 A씨에 대한 사법 처리 과정을 지켜보고 후속 보도를 이어갈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