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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지 빼돌린 엄마 “딸 인생 평생 대신 살아줄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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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준의 오목렌즈] 74번째 기사입니다.

 

 

[평범한미디어 박효영 기자] 입시위주교육 체제와 학벌사회의 민낯은 시험지 유출 사태로 이어졌다. 2018년에 벌어진 ‘숙명여고 쌍둥이 시험지 유출 사건’이 상징적이지만, 최근 들어 유명 사교육 강사의 문항거래 이슈도 그렇고 학부모들의 시험지 유출 사건들이 연이어 터지고 있다. 경북 안동에서 한 여고생(고3 A양)의 내신 성적을 올리기 위해 시험지를 절도했는데 학부모(B씨), 교사(C씨), 행정실장(D씨)이 관여했고 셋 다 감옥에 갇혔고 해당 학생은 퇴학 처분을 받았다. 박성준 센터장(다소니자립생활센터)은 아래와 같이 말했다. 

 

학교 내부의 누군가가 적극적으로 협력하지 않았으면 즉 퇴직한 기간제 교사가 도와주지 않았다면 이런 일은 애초에 불가능하다. 보안 시스템도 있고, CCTV도 있고, 시험지 보관을 봉인해놓기도 하는 만큼 내부자가 학부모의 검은 부탁을 들어주지 않았다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그런데 보니까 해당 여고에서는 기간제 교사의 개인 소행으로 몰려고 하는 것 같다.

 

1일 저녁 광주 남구에 위치한 스터디카페 스터디룸에서 평범한미디어 멤버들과 박 센터장이 만나 오목렌즈 현장 대담을 진행했다.

 

 

윤동욱 기자는 “이런 사건에 꼬리자르기가 빠지면 섭하다”고 조소했다. 이번 사건은 비단 직접 책임자들에 대한 형사처벌로 끝날 일이 아니다. 교육부와 교육청 등 교욱당국이 대한민국 교육 시스템과 문화적 기반 전체를 재점검하고 따져봐야 하는 중대한 모멘텀으로 작용해야 한다.

 

박효영 기자: 입시위주교육의 말로가 이제는 시험지까지 빼돌리거가 유출시키는 지경에 이르렀다. 시험 점수를 높이기 위한 목표 외에는 한국 교육에서 배울 수 있는 다른 가치들은 전부 부차적이다. 그렇다면 시험지를 미리 빼돌리는 것만큼 효과적인 방법이 없다고 판단을 하는 것이다. 어떻게든 시험만 잘보면 땡이다. 법을 어겨서라도 치트키를 쓴다. 사교육 종사자는 아무리 잘 가르쳐봤자 시험 점수를 올려주지 못하면 무용지물이므로 결국 시험지를 빼돌리는 악마의 유혹에 빠지고 만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것이다. 사실 시험지를 빼돌리는 행위는 매우 중대한 범죄인데 형법의 죄목이 없어서 인터넷 여론 조작 범행과 마찬가지로 업무방해로 처리되는 현실이다. 그래서 채용비리, 여론조작, 시험지 유출은 업무방해의 한 유형으로 처리되지 않고 별도의 구성요건을 규정한 죄명이 만들어졌으면 좋겠다. 정말 시험지 유출은 단순 업무방해가 아니다. 한국 사회의 공정성과 신뢰의 문제다.
박성준 센터장: 지금 말씀하셨던 것처럼 입시 지상주의에 대한 문제인데 참 안타까운 게 A양이다. 지금까지 어머니가 습관적으로 한 두 번 그런 것이 아닐텐데 처음에는 이건 너무 심한 거 아니야? 이렇게 반항을 해봤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학생이 적극 동조를 했다기보단 모친의 의지가 훨씬 컸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래서 모친을 퇴학시킬 순 없으니까 학생의 퇴학으로 결론이 난 건데 매우 씁쓸한 일이다. 결국 부모가 학생을 망쳤고 학생도 본인 인생을 스스로 망쳤다. 그러니까 A양을 옹호하려는 게 아니고 이 학생이 스스로 공부할 수 있는 기회조차 막아버렸다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뭔가 직접 노력해서 성취할 수 있는 기회를 청소년기에 박탈시켜버린 것이다.
박효영 기자: 다 해줬을 것이다.
박성준 센터장: 이 친구가 만약에 양심의 가책을 느껴서 ‘이건 아니잖아요. 내 힘으로 해볼게요’라고 했을 때도 우리 어머니께서는 그래 ‘네 힘으로 해봐라’가 아니라 ‘무슨 소리야 의대가야지 시키는대로 해’가 됐을 확률이 굉장히 크다. 물론 A양이 훔쳐온 시험지인지 몰랐다고 하던데 그건 일말의 가치가 없는 핑계가 맞다.
박효영 기자: 보통 이제 상위권 학생들의 부모들이 상류층일 가능성이 높고 그래서 자식들을 좌지우지하려고 하거나 자식들의 선택을 전혀 존중해 주지 않고 이런 경우가 많다. 근데 이제는 비싼 사교육으로 시험을 잘보게 하는 것을 넘어 시험지 자체를 빼돌리는 지경에 이르렀다.

 

30대 여성 C씨는 해당 여자고등학교에서 기간제 교사 신분으로 2024년 2월까지 근무했는데 A양의 개인 과외를 했었다고 한다. 현행법 위반임에도 그렇게 했다. 주변 학부모들에 따르면 B씨는 의사 남편을 둔 만큼 딸을 어떻게든 의대에 보내기 위해 극성이었고, C씨에게 과외비와 시험지 사본을 제공받는 대가로 총 2000만원을 줬다. 범행이 발각된 날짜는 2025년 7월4일 새벽 1시20분쯤인데 C씨와 B씨가 동행했으며 학교 3층 교무실로 침입한 순간 오작동에 의한 경비 시스템이 울렸다. C씨는 퇴직 처리된 상태였지만 여전히 경비 시스템의 지문 정보가 업데이트되지 않아 침입할 수 있었는데 발각되기 한참 전부터 B씨와 시험지를 빼돌리기 위해 새벽 시간대에 총 7차례나 교무실로 들어갔다. C씨는 치밀했다. 박스에 담겨 봉인된 시험지를 무리하게 가져가서 복제하는 대신 여분으로 뽑아놓은 시험지를 찾아서 들키지 않으려고 했다.

 

B씨의 돈줄에 한패가 된 것인지 행정실장 D씨의 비호도 작용했다. D씨는 그동안 이들의 범행을 알고 있었지만 CCTV 기록을 삭제하는 방식으로 공범 역할을 수행했으며 발각 당시 당직 근무자가 C씨를 붙잡았을 때도 어떻게든 사건을 무마시키려고 안간힘을 썼다. 시설관리 직원 E씨도 D씨의 지시를 따라 교내 보안 카메라 영상을 삭제하는 등 공범관계를 형성했다. 하늘도 노했는지 지문을 찍고 들어온 상황에서 경비 시스템이 오작동을 일으켰는데 만약 오작동이 없었다면 이 사건은 영원히 드러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법원(대구지방법원 안동지원)은 B씨, C씨, D씨, E씨까지 4명 전부 구속시켰는데 사안이 그만큼 중대하고 엄중하다. A양의 내신 성적을 올리기 위한 유일한 목적으로 자행된 범죄행위는 특수절도, 야간주거침입절도와 방조, 뇌물공여, 공동주거침입 방조, 위계에 의한 업무방해 등의 무시무시한 혐의들로 정리된다. A양은 퇴학 조치됐으며 그동안 전교 1등을 거둔 성적들도 모두 0점 처리됐다. 시험지를 사전에 받아본 A양은 전교 1등을 놓친 적이 없는데 실제 실력은 ‘수학 40점’ 수준이었다.

 

박성준 센터장: 정말 드라마에서나 보는 일이라고 생각을 했는데 너무 빈번해지고 있다. 2018년도에 쌍둥이 자매 성적 조작 사건도 떠오른다. <스카이 캐슬>에서도 그런 풍경과 맥락을 우리가 목도했고 모두가 혀를 끌끌 찼지만 현실 밖의 드라마가 아니라 그야말로 한국의 현실로 받아들여졌다.
윤동욱 기자: 근데 다들 시스템의 문제가 있더라도 어쩔 수 없이 현실로 받아들이고 시험 점수를 잘 맞기 위해서 정말 노력을 많이 한다. 정당하게 노력을 하는데 진짜로 쌔빠지게 공부를 한다. 근데 이게 뭔가? 너무 허탈할 것 같고 해당 학교의 학생들과 학부모들은 노력의 동기를 잃어버릴 것 같다.
박성준 센터장: 내가 그래서 말씀드리는 것이 그거다. A양도 노력을 했을 건데 우수하진 않지만 본인의 노력을 해보지 않은 건 아니었을텐데 어머니가 시험지를 가져다주는 순간 그 아이의 노력은 아무 의미가 없어진다. 그것은 곧 그 아이의 삶이 의미가 없어지는 것이라고 본다. 성인이 되고 나서도 평생 어머니가 삶을 대신 살아줄 것인가? 회사 들어가서 팀 프로젝트를 대신 해줄 건가? 출장을 대신 가줄 건가? 연애와 결혼도 대신 아바타 소개팅처럼 대신 해줄 건가? 거듭해서 말하지만 그냥 성적만 한 순간 좋아지는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아이 인생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망쳐놓는 것이다.

 

 

교육 구조를 바꿔야 하고 학벌사회의 야만을 손봐야 하고 모두가 성찰해야 한다. 하지만 너무 거대한 담론 얘기로만 접근하면 공허해진다. 박 센터장은 “아무리 대학이 중요하고 성적이 중요하더라도 개인이 선을 넘지 않으려고 노력해야 한다”며 “아무리 그래도 불법이나 비행에 대한 윤리적 감지 센서가 다 있어야 된다고 생각을 하는데 그게 너무 무뎌졌다”고 환기했다.

 

전국의 선생님들이나 학생들이 이 사건을 통해서 자괴감을 느낀다거나 무기력해질 수 있다. ‘조국 사태’에서 청년들이 상실감을 느낀 것과 일맥상통한다. 우리 부모는 빽과 돈이 없어서 시험지를 못 빼돌리나? 이런 생각이 들 수도 있다. 그래서 일벌백계가 필요하다. 교육부 장관과 법무부 장관이 이번 단일 이슈를 주제로 만나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시험지 유출에 가담한 교육 공무원이나 교사 등등은 교육 관련 영역에 평생 종사하지 못 하도록 형사처벌과 별개의 강력 징계가 필요하다. 아주 단호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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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효영

평범한미디어를 설립한 박효영 기자입니다. 유명한 사람들과 권력자들만 뉴스에 나오는 기성 언론의 질서를 거부하고 평범한 사람들의 눈높이에서 사안을 바라보고 취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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