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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여(如如)한 삶’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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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미디어 윤동욱 기자] 여여(如如)한 삶이란 과연 무엇일까? 나도 잘 모르는 ‘여여하다’라는 단어가 사용된 사진 전시회를 다녀왔다. 여(如)는 ‘같을 여’다. 그래서 여여하다는 변하지 않고 초심을 유지하는 삶, 한결 같이 꼿꼿한 삶을 의미한다. 어찌 보면 수행자들의 목표라고 할 수 있겠다. 여기 이러한 목표를 가지고, 아니 이렇게 강제 수행을 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직접 주인공이 되어 사진전을 기획했다. 이들은 바로 장애인과 노인 그리고 그들의 가족들과 요양보호사들이다.

 

앞서 말했다시피 전시 타이틀은 <여여한 삶>이다. 지난 4월2일부터 20일까지 전시회가 열렸다. 장소는 광주 동구에 있는 전일빌딩이며 부산, 광주, 서울 세 도시를 중심으로 순차적으로 개최됐다. 광주에서의 전시는 9일부터 13일까지 열렸는데 본지 기자는 9일 14시에 이곳을 방문해 전시를 관람했다.

 

 

본격 관람에 앞서 개회식이 먼저 열렸다. 이번 전시를 기획하고 주관한 공동 주체들 중 한 곳이  동국대 인구와사회협동연구소인데, 연구소장을 맡고 있는 김정석 교수의 메시지를 통해 전시의 취지를 알 수 있었다. 아쉽게도 다른 스케줄이 있어서 행사에 불참했는데 대독을 통해 그의 이야기를 전해들을 수 있었다.

 

이번 전시는 조금 특별하다. 노화와 장애의 일상 속 기쁨과 슬픔이 참여자들이 직접 찍은 사진과 이야기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들이 보고 말하는 세상의 풍경과 느낌이 우리 사회의 따뜻한 울림으로 전해지기를 바란다. 또한 오늘 우리가 함께 나아갈 길을 조용히 묻고 싶다. 더 나아가 지역사회 통합 돌봄에 대해 성장의 목소리와 정책 지원에 대한 이야기를 함께 나누고자 한다. 이 대화가 마음에서 시작되는 변화의 불씨가 되기를 기대한다.

 

마이크를 잡은 사회자는 “일반 사진 전시회와는 감상 기조가 다르다“며 이번 전시를 상징하는 숫자 4개를 나열했다.

 

이 전시회를 설명할 수 있는 숫자가 4가지 있다. 4, 22, 80, 318이다. 우리는 4개의 그룹으로 연구를 진행했다. 첫 번째 섹션에서는 전동 휠체어를 사용하는 중년의 지체장애인 남녀들을 인터뷰했다. 두 번째로 발달 장애인 자녀를 둔 어머니 여섯 명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세 번째 섹션으로는 70대 이상의 어르신들의 일상과 현재, 그리고 죽음에 대한 성찰을 정리해 보았다. 마지막으로 노인 장기요양보험에서 제공하는 요양보호사 선생님들의 돌봄 기록을 우리가 담았다. 이분들을 다 합하면 22명이 된다. 이분들의 인터뷰 횟수를 기록해보니 80회 정도를 진행했었다. 그리고 기획부터 전시까지 총 318일 정도가 걸렸다.

 

 

4개의 인터뷰 대상자 그룹과 22명의 인터뷰 대상자, 80회의 인터뷰 횟수, 318일의 기간. <여여한 삶>을 요약할 수 있는 숫자들이다. 

 

이 사진들은 그냥 나오는 것이 아니다. 처음에 1대 1로 인터뷰를 진행하며 이 사람들이 어떤 삶을 살아오셨는지에 대해 알아보았다. 그리고 다 같이 모여서 우리 사회에서 장애와 돌봄에 관한 중요한 이슈와 경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토론도 나누었다. 그리고 그걸 기반으로 우리가 주제를 준다. 가령 예를 들어 ‘나에게 죽음이란?’, ‘나에게 장애인 자녀란?’과 같은 질문들이다. 그러면 각자 핸드폰으로 그에 맞는 피사체를 찍어서 우리 연구자들에게 전송해준다. 그러면 우리는 그것을 정리한다. 각자의 방식대로 폰으로 촬영했기 때문에 프레임이 약간씩 다르다. 그리고 우리는 전시와 함께 책도 발간했으니 많이 읽어주시면 감사하겠다.

 

개회식이 끝나고 <지역사회 속 통합돌봄의 현재와 미래>라는 주제로 포럼이 이어졌는데 각각의 복지관 관장들과 교수들이 의견을 나누는 시간이었다. 긴 포럼 시간을 견딘 이후 본격적으로 사진들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사진과 함께 쓰여진 글들을 보니 만감이 교차했다. 인상 깊었던 사진들이 많았다. 우선 우리 평범한미디어 정식 크루로 활동하고 있으며, 은인과도 같은 정신적 지주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박성준 센터장(다소니자립생활센터)이 찍은 사진이다. 어떤 행사장을 담은 사진이었다. 설명을 읽어보니 행사장에 펜스가 둘러져 있는 것에 의미를 부여했는데 이 펜스는 장애인들을 보호하는 동시에 시야와 활동을 제한하기도 한다. 나는 그동안 단순한 발상을 갖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당연히 안전 펜스는 장애인들을 보호한다고만 생각했지 이렇게 제약을 줄 수 있다는 지점을 미처 알지 못 했다.

 

뇌성마비 휠체어 장애인으로 50여년을 살아온 박 센터장의 삶과 철학이 녹아 있는 사진 작품인데, 이처럼 <여여한 삶>은 비장애인의 편견을 깨부숴줬다. 이를테면 휠체어 장애인이 짐을 바리바리 싸들고 있는 사진이 있었는데 제목이 <짐꾼일 때 나는 좋구나>다. 전동 휠체어에 앉아 있으니 표면적이 넓어져 비장애인보다 짐을 더 많이 나를 수 있는 것이다. 게다가 전동이기 때문에 훨씬 힘도 덜 들이고 옮길 수 있다. 통상적인 편견에 입각한 시선으로 봤을 때 오히려 비장애인이 짐을 들어줘야 할 것 같은데 휠체어 장애인은 비장애인보다 더 많은 짐을 옮길 수 있는 장점도 갖고 있다. 그야말로 발상의 전환이었다.

 

 

 

이밖에도 <반려견처럼 집에만 있어야 안전한 사람>이라는 사진도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주었다. 설명을 읽어보니 이웃이 바라볼 때 자신은 그저 “집에 있어야 안전하고 안심되는 사람”으로 비춰진다는 것이다. 이른 아침이나 늦은 저녁에 돌아다니는 것도 우려스럽게 여기고 걱정을 빙자한 간섭을 하는 비장애인들이 있다. 마트에 가도 직원이 “혼자 오셨나요?”라고 물어본다. 그럴 때마다 해당 사진 작품의 주인은 “활동 지원사도 쉬는 날이 있다”고 씁쓸하게 답하곤 한다.

 

그저 장애인일 뿐 엄연히 똑같은 대한민국 헌법적 권리를 보장 받아 독립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인격체인데, 주인의 보호를 받아야 하는 반려견 취급을 하고 있다. 물론 그런 시선으로 불필요한 말을 건네는 사람들도 악의를 갖고 그렇게 한다기 보다는 걱정스러워서 하는 말일 수 있다. 그러나 비장애인이라면 안 들어도 되는 소리가 아닌가? 장애인도 그냥 목적 없이 밖에 나와 바람을 쐬고 싶을 때가 당연히 있다. 아직 우리 사회는 장애인 혼자 마음대로 외출하며 돌아다니기에는 사회적 인식이나 물리적 장치와 제도적 지원이 많이 부실한 것 같다는 생각을 다시금 하게 되었다. 

 

모든 전시 작품들에는 작가의 주제의식이 담겨 있기 마련인데 작품을 보고 메시지를 탐색해보는 것만으로도 예술 감성을 높여준다. <여여한 삶>은 장애인들이 마주하는 일상의 장벽과 편견에 대하여 비장애인들이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도록 유도하는 좋은 전시회라고 할 수 있다. 특히 메시지를 떠먹여주는 불편함이 비교적 적다. 사회적 메시지를 부담 없이 접하며 좋은 생각의 기회를 제공하는 ‘넛지’와도 같은 공간이다. 그래서 앞으로 유사한 전시회가 열리게 되면 꼭 직접 가서 현장 기사를 써보려고 한다. 평범한미디어 독자들에게 작가들의 진심이 닿을 수 있는 가교 역할을 할 수 있다면 참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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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욱

안녕하세요. 평범한미디어 윤동욱 기자입니다. 권력을 바라보는 냉철함과 사회적 약자들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을 유지하겠습니다. 더불어 일상 속 불편함을 탐구하는 자세도 놓지치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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