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미디어 문명훈 칼럼니스트] 가끔 강의에서 적절한 용어가 떠오르지 않아 한참 헤매는 경우가 있습니다. 상황에 맞는 단어를 내뱉지 못하고 입 안에서만 맴도는 경험을 누구나 해봤을 겁니다. 특정 낱말이 떠오를 듯 말 듯 머릿속이 하얘져 하려던 말을 제대로 끝맺지 못하는 거죠. 불완전한 기억 때문에 나타나는 이런 현상을 심리학에서는 설단 현상(Tip-of-the-tongue Phenomenon)이라고 부릅니다. 자신이 잘 모르는 주제에 대해 이야기하는 경우 이런 일이 자주 발생합니다. 토론식 수업을 진행하다 보면 자신의 생각을 대변하는 적합한 단어를 찾지 못해 어려움을 겪는 학생들을 보게 됩니다. 어렴풋이 아는 내용을 말하려다 보니 말이 꼬이고 분명 알고 있는 것 같은 단어임에도 떠오르지 않습니다. 기억의 저장과 인출 기억 저장이나 기억 인출 과정에서 문제가 생긴 경우 이런 상황이 자주 발생하는데요. 기억에는 크게 세 가지 과정이 포함됩니다. 경험하고 생각한 내용을 기억으로 바꾸는 부호화(enconding), 부호화된 정보를 유지하는 저장(storage), 부호화된 정보를 떠올리는 인출(retrieval)입니다. 인간의 기본 감정을 다룬 애니메이션 영화 〈인
[평범한미디어 문명훈 칼럼니스트] 저는 평소 편의점 간편식을 자주 먹습니다. 삼각김밥, 샌드위치, 도시락 등은 가성비 좋은 한끼 식사인데다 식당에 가는 것이 꺼려지는 코시국이라 간편식이 좋습니다. 편의점에 들어가면 음식 종류가 많아 뭘 먹을지 고르는 데 한참 시간이 걸리는데요. 날이 갈수록 편의점 음식 종류가 다양해지고 있습니다. 컵밥, 초밥, 홍어, 치즈케익 같은 제품들이 진열된 것을 보면서 이제 더 이상 과거의 편의점이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최근 편의점에서 눈에 띄는 제품은 비건 도시락입니다. 비건 간편식이 출시되었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막상 제가 가는 매장에서 판매되는 것을 보니 신기했습니다. 이제는 채식이 일상에 스며든 트렌드라는 걸 부정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편의점 뿐 아니라 마트에서도 비건 제품이 많습니다. 만두, 떡볶이, 라면, 파스타, 햄버거, 빵, 과자 등 많은 메뉴가 채식 재료로 만들어집니다. 과거에는 맛이 없어도 신념 때문에 채식을 한다는 느낌이 강했는데요. 지금은 전체적으로 채식 제품들의 맛이 좋아졌습니다. 채식주의자가 아닌 저도 방송에 나온 채식 레스토랑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합니다. '피터 싱어' 채식주의자의 논리를 이야기하
[평범한미디어 문명훈 칼럼니스트] 저는 토론식 수업을 자주 하기 때문에 강의에서 여러 사회 이슈를 다룹니다. 그러다 보면 '정치'가 무엇인지에 대한 이야기도 하게 되는데요. 정치를 여러 가지 방식으로 정의할 수 있지만 저는 평소 정치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한정된 재화를 어떤 방식으로 누구에게 분배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과정." 정치는 분배의 과정 이 정의는 국가 예산안을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매년 정부는 한정된 국가 예산을 어디에 쓸지 결정합니다. 국회는 행정부가 제출한 예산안을 심사하고 사업 타당성을 따져 세금이 적절하게 사용되는지, 낭비는 없는지 감독하죠. 2021년 국가 예산은 555조 8000억원으로 전년 대비 8.5% 늘어난 액수입니다. 기획재정부의 자료를 보면 이번 예산안은 일자리 확충, 복지 증대, 디지털 역량 강화, 환경 문제 해결, 방역, 국방 문제 등에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예산안을 보면 정부가 어떤 문제의식을 갖고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예산의 분배는 정치에서 매우 중요합니다. 예산이 정치에서 유일하게 중요한 문제는 아닙니다. 누가 서울시장이 될 것인지, 누가 국회의원이 되고, 대통령이 될지를 결정하는 일도 정치입니다. 선거
[평범한미디어 문명훈 칼럼니스트] ‘정신 승리’라는 말이 있습니다. 저도 가끔 그런 말을 듣습니다. 얼마 전 2년째 사용하던 무선 청소기가 고장 나서 수리를 맡겼는데 구입가의 3분의 2 정도 비용이 청구됐습니다. 배터리와 필터를 교체했으니 거의 새 것이라고 위안을 삼는데 주변에서 정신 승리를 한다며 놀리더라구요. 제게는 안 좋은 일이 있어도 긍정적으로 해석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미 벌어진 일들 때문에 짜증과 화를 안고 살아갈 필요가 없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그래서 정신 승리자라는 말을 자주 듣게 되는 것 같습니다. 아큐의 정신승리법 지금은 정신 승리가 일상적인 용어가 됐지만 원래는 문학 비평에서 사용하던 개념입니다. 정신승리는 루쉰의 <아큐정전>에 처음 등장합니다. 소설에서 주인공 아큐가 치욕스러운 상황을 왜곡하고 유리하게 해석하는 모습이 나오는데 이 모습을 보며 루쉰 작가가 붙인 용어가 정신 승리법입니다. 아큐는 동네 불량배들에게 구타를 당했지만 속수무책입니다. 아큐는 "아들뻘 되는 놈들과 싸우는 것은 어른스럽지 않은 일이다. 나는 어른이다. 그러므로 내가 대항하지 않더라도 패배하지 않은 것"이라는 식으로 정신 승리의 사고를 합니다. 도스토예
[평범한미디어=문명훈 칼럼니스트] ‘내 인생은 내 의지대로 산다’는 말이 있습니다. 일반적인 격언이죠.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사람은 상황의 영향을 꽤 많이 받습니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생긴 ‘코로나 블루(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한 우울과 무기력)’만 봐도 삶이 의지대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관계가 단절되고 일상이 무너지면서 개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쉽게 우울과 좌절에 빠지게 됩니다. 인간은 상황의 영향을 받는다 프리랜서 인문학 강사로 활동하고 있는 저 역시 코로나 팬데믹으로 수업이 줄고, 일의 형태가 달라지면서 간헐적으로 우울감과 무기력을 느끼고 있습니다. 일 속에서 자아 실현을 찾는 제게 코로나 팬데믹은 꽤 힘든 상황입니다. 인간은 관계에서 정서적 안정감을 찾기에 친구들과 자주 만나지 못 하는 상황도 우울과 무기력에 한몫하는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도 언제 끝날지 모른다는 불확실성이 가장 고통스럽습니다. 3~4개월만 있으면 풀리겠거니 생각했던 코로나 시국이 1년이 지난 시점에서도 여전합니다. 관계 형성과 직업적 성취는 자아실현과 존중감을 느끼는 데 중요한 요소입니다. 그래서 관계가 단절되고 직업적 성취가 무너지면 개인은 심
[평범한미디어=문명훈 칼럼니스트] 19세기 중반에 활동했던 독일의 사회학자 막스 베버(1864년~1920년)는 국가라는 조직 자체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었습니다. 국가란 뭘까요? 정치는 또 뭘까요? 베버는 본인의 강의록을 책으로 엮어낸 <직업으로서의 정치>에서 정치적 정당성, 정치인의 유형, 정치인의 자질, 관료제와 민주주의 등에 대해 논했습니다. 베버는 근대 국가의 가장 큰 특징에 대해 “정당한 물리적 강제력의 독점을 (성공적으로) 관철시킨 유일한 인간 공동체”라고 정의합니다. 국가의 본질을 폭력의 독점으로 본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국가는 사적 폭력을 금지하고 법률에 입각한 강제적 폭력을 행사합니다. 내전이 벌어지고 있는 국가, 여러 군벌이 지배하는 사회, 무장집단의 테러가 빈번한 곳은 정상적인 국가라고 할 수 없습니다. 중세 유럽은 제대로 된 근대 국가의 특성을 갖고 있지 못 했습니다. 국가가 폭력을 독점하지 못 했고 여러 세력 집단들이 폭력을 사용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국가가 폭력을 독점하지 못 하면 공동체 내부에서 무질서가 판을 칩니다. 국민들은 무능한 국가를 신뢰할 수 없는 상태가 됩니다. 폭력 집단이 자기들 마음대로 협박하고 상납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