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철민의 산전수전'검색결과 - 전체기사 중 24건의 기사가 검색되었습니다.
상세검색#2023년 12월부터 평범한미디어에 연재되고 있는 [김철민의 산전수전 山戰水戰] 4번째 글입니다. 김철민씨는 법학과 관광을 전공으로 대학원을 다니면서, 회사 생활을 병행하고 있는 30대 청년입니다. 무엇 하나 쉽지 않은 인생이지만 누구보다 열심히 고군분투하고 있는 본인의 삶을 주제로 글을 써볼 계획입니다. [평범한미디어 김철민 칼럼니스트] 내 인생의 회고록 산전수전(山戰水戰) 4번째는 투병에 대한 이야기다. 2022년 상반기였는데 소장암이 발병해서 위와 소장의 일부를 잘라내는 절제술을 받았다. 수술 후유증으로 불명의 크론병 의심 진단을 받았고 분기별로 병원에 가서 추적 관찰과 약물치료를 받고 있다. 건강보험공단에서도 중증암 산정 특례대상자로 등록이 됐다. 심지어 올해 새해벽두부터 심장에 이상이 생겼다. 승모판막과 삼첨판막에 역류증이 발생했다. 이 무슨 날벼락이란 말인가? 의사의 소견을 듣는데 절망감이 올라왔다. 세상이 원망스러웠다. 원망한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은 없다. 건강을 위해 평소 즐겨 마시던 와인, 칵테일, 커피를 일절 끊었다. 사실 전조 증상들이 있었다. 하지만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어쩌면 뭔가 직감이 들었음에도 직면하기 싫어서 병원에 가는 걸 두려워했을지도 모르겠다. 너무 어리석었다. 복통과 설사, 메스꺼움, 식욕 부진, 체중 감소 등의 증상이 있었음에도 약속 잡힌 술자리들에 다 참석했다. 친구들과 대작을 하면 기본 소주 10병 이상이었다. 섣부른 믿음이 있었다. 2020년에 대학병원에 갔는데 그때 “20대 젊은 청춘이고 활동량도 많아서 비교적 건강해 보이는 만큼 암은 아닐 것”이라는 의사의 말을 철석같이 믿었다. 혈변 때문에 병원까지 간 것이었는데 “항문질환이나 급성장염도 혈변 증세가 있다”고 했다. 그래서 별도의 내시경 검사도 받지 않은 채 병원을 나왔다. 그러나 이내 대변을 보지 못 하고 변기 한 가득 시커먼 혈변을 봤으며 장내 출혈량이 많은 탓에 기절을 했다. 그렇게 뒤늦은 종합 검사를 받은 끝에 소장암 판정을 받았다. 참으로 후회스럽다. 내 몸은 내가 챙겼어야 했다. 심장판막 역류증도 마찬가지다. 3년 전쯤 보험 영업과 대학 생활을 병행하던 때였다. 지방 출장을 갔다가 돌아오던 중 가슴을 쥐어짜는 듯한 통증과 바위가 짓누르는 묵직한 통증이 느껴졌다. 단순히 업무 스트레스와 불면으로 인한 통증인줄 알았는데 숨이 차고 현기증이 났다. 병원에서는 별다른 이상이 없다고 했다. 가슴 통증도 간헐적으로만 느껴졌다. 그래서 안심했다. 그러나 작년 세밑 출근 도중 흉통과 두통, 현기증, 메스꺼움, 왼쪽 어깨와 팔, 날개뼈 등이 아프고 숨이 차서 조퇴하고 병원에 가봤더니 심장판막 역류증 진단을 받았다. 이번에 봤던 의사도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말해줬다. 심장 관련 질환이 아니라는 섣부른 판단에 나는 아래와 같이 말했다. 다른 의사도 그렇게 안일하게 진단했다가 2022년에 소장암 수술까지 받았다. 그리고 고등학교 동창 소중한 친구도 심장마비로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다행히도 심장판막 역류증은 초기에 발견해서 수술 없이 주사와 약물 및 운동치료를 통해 관리해도 되는 수준이었다. 3개월 주기로 병원 진료를 받기로 했는데 일련의 건강 문제를 겪은 사람으로서 독자들에게 조언을 해주고 싶다. 특히 젊은 청년일수록 지나친 음주와 흡연에 주의해야 하며 최소한의 건강 관리를 해야 한다. 젊음과 건강은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보물이라는 점, 한 번 잃어버린 건강은 돌이킬 수 없다는 점을 명심하길 바란다. 무엇보다 대충 진료해서 소장암을 조기 발견하지 못 하게 만들었던 대학 병원 전문의에게도 경각심을 좀 가지라고 말해주고 싶다. 질병이라는 게 꼭 젊다고 안 걸리는 것도 아니고, 늙었다고 잘 걸리는 것도 아니다. 다음 산전수전(山戰水戰) 5번째 글에서는 얼마전 관광학 박사과정에 지원했던 면접 후기와 그 결과를 담아보려고 한다. 아직 붙었는지 떨어졌는지 결과가 나오지 않았는데 독자들에게 좋은 소식으로 인사드릴 수 있었으면 참 좋겠다.
#2023년 12월부터 평범한미디어에 연재되고 있는 [김철민의 산전수전 山戰水戰] 3번째 글입니다. 김철민씨는 법학과 관광을 전공으로 대학원을 다니면서, 회사 생활을 병행하고 있는 30대 청년입니다. 무엇 하나 쉽지 않은 인생이지만 누구보다 열심히 고군분투하고 있는 본인의 삶을 주제로 글을 써볼 계획입니다. [평범한미디어 김철민 칼럼니스트] 예고했듯이 이번에는 신용불량 상태에서 어떻게 다시 신용회복으로 도약할 수 있었는지 그 파란만장한 일련의 사건들을 짧게 회고해보고자 한다. 때는 바야흐로 2016년 3월이었다. 해병대 중사로 갓 전역했던 시점이었다. 거의 전역과 동시에 매끄럽게 군인 특별채용으로 롯데그룹에 지원해서 합격했다. 그런데 그때 도무지 왜 그랬는지 모르겠는데 롯데 입사를 포기하고 스쿠버다이빙 강사를 하겠다고 갑자기 태국 푸켓으로 향했다. 지난 글에서도 언급했지만 만악의 근원은 푸켓이었다. 여기서부터 내 인생이 꼬이기 시작했다. 4년 3개월의 군복무를 버텨내며 악착같이 7000만원을 모았는데 그 돈을 푸켓에서 날렸다. 푸켓 호텔에 취업됐지만 너무 일찍 해고됐고 쉽사리 귀국할 수 없어서 체류비로 너무 많은 돈을 썼다. 월세와 보증금이 뼈아팠다. 그렇게 무일푼으로 한국으로 돌아왔다. 여기서 그만둬야 했다. 멈췄어야 했다. 그러나 그땐 스쿠버다이빙 강사가 되고 싶다는 열망에 사로잡혔다. 필리핀 세부를 오가면서 다이빙 기술들을 습득했고 마침내 정식 스쿠버다이빙 강사가 되었다. 욕망은 끝이 없다. 스쿠버다이빙 강사가 된 만큼 이젠 일해서 돈을 벌었으면 좋았을텐데 나는 스쿠버다이빙 전문 리조트 사업을 해보고 싶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허황된 욕심이었다. 역시 동업이 문제다. 공동 투자자들 중 1명이 투자금을 먹고 튀었다. 사기꾼이 맞다. 사업에 무지했던 만큼 누군가의 감언이설에 휘둘리기 쉬웠다. 나는 어떻게든 잡기 위해 경찰과 검찰에 정식으로 고소장을 냈지만 아직까지도 범인을 잡지 못 했다. 어쨌든 사기꾼한테 당해서 20대 중반의 어린 나이에 1억 3000만원의 빚더미에 빠지고 말았다. 직업 군인이었던 만큼 신용등급이 1~2등급이었는데 한 순간에 9~10등급으로 곤두박질쳤다. 영락없는 신용불량자가 되었다. 모든 금융활동이 마비됐다. 내 명의로 된 스마트폰, 통장, 카드 등등 모든 걸 맘편히 사용할 수 없었다. 잠시 통장에 돈이 들어오면 곧바로 채권 은행들이 돈을 빼 가기 일쑤였다. 하루가 멀다하고 채무 상환 독촉 전화와 경고장이 내 목을 옥죄었다. 영화에서나 볼 법한 빨간딱지까지 붙었다. 죽고 싶었다. 실제로 자살하려고 했다. 죽음의 문턱에서 나의 손을 잡아준 구원자는 아버지였다. 아버지는 바보처럼 왜 사기를 당했냐고 나무라지 않았다. 괜찮다. 너 아직 젊다. 기회는 많다. 얼마든지 다시 일어설 수 있다. 네가 결혼해서 자식 있는 처지라면 지금보다 더 절망적이고 힘들었겠지만 이제 겨우 20대다. 충분히 다시 도약할 수 있다. 아버지께서 3000만원을 대신 갚아줬다. 남은 1억원은 온전히 내 몫이었다. 파산 신청을 해볼까? 아니다. 아버지의 격려와 지원에 힘을 내야 했다. 히키코모리처럼 은둔 생활만 할 수 없었다. 생각을 고쳐 먹었다. 그래 허드렛일과 막노동 뭐든지 해서 내 손으로 갚자. 택배상하차, 편의점, 대리기사, 공장 용접 등등 잠을 줄여가며 쓰리잡, 포잡을 마다하지 않았다. 심지어 원양어선까지 탔다. 너무 혹사했던 탓일까? 몸이 망가졌다. 소장암이 발병해서 수술을 받았고 온몸이 종합병원이었다. 밭을 갈기 위해 앞만 보고 걸어가는 소처럼 밑바닥에서 굴렀던 기간이 2년이다. 그렇게 7000만원을 상환했다. 남은 빚은 대학에 복학해서 알바하며 조금씩 갚아나갔고 마침내 2022년 연초에 채무자 신분에서 벗어났다. 최근 신용점수를 확인했더니 평균 점수가 990점이었다. 원래 잘 울지 않는데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서글프게 울었다. 아버지께 전화해서 고맙다고 말씀드렸다. 믿고, 격려해주고, 지원해주셔서 다시 일어설 수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나는 다시 태어났고 다시 시작한다는 마음을 갖고 있다. 과거의 아픔과 실패를 딛고 일어서서 열심히 살아갈 것이다.
#2023년 12월부터 평범한미디어에 연재되고 있는 [김철민의 산전수전 山戰水戰] 2번째 글입니다. 김철민씨는 법학과 관광을 전공으로 대학원을 다니면서, 회사 생활을 병행하고 있는 30대 청년입니다. 무엇 하나 쉽지 않은 인생이지만 누구보다 열심히 고군분투하고 있는 본인의 삶을 주제로 글을 써볼 계획입니다. [평범한미디어 김철민 칼럼니스트] 벌써 2주가 흘렀다. 산전수전 2번째 글에서는 왜 법학과 호텔경영학 2개의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하려고 하는지 그 이유를 설명해보려고 한다. 원래 나의 꿈은 해경이었다. 고등학교 때까지만 해도 그랬다. 그래서 법대에 진학했다. 군복무도 가산점을 받기 위한 목적으로 4년3개월간 해병대 부사관으로 근무했다. 그러나 해병대에서 왼쪽 무릎을 크게 다쳤다. 해경의 꿈은 그렇게 좌절됐다. 지금 나는 서울에서 대학원에 다니며 법학 석박사통합과정을 밟고 있다. 근데 또 막상 하는 일은 법학 직무가 아닌 호텔경영학과 관련 있는 웨딩업체에서 식음료 서비스직이다. 그렇다 보니 주변에서 “왜 전공을 바꿨냐? 전공과 다른 직무에서 일하고 있는 이유는 뭐냐?”는 질문을 숱하게 받고 있다. 이미 호텔경영 즉 관광 분야로 석사까지 취득했지만 학사 전공인 법학으로 석박사를 취득하려고 하는 이유가 있다. 내가 호텔경영학 박사과정으로 직행하지 않은 이유는 석사과정 당시 지도교수와의 관계 문제에서 비롯되었다. 부당한 처사를 많이 당했다. 학부 4학년 2학기 때부터 한 학기 먼저 들어가서 교수의 연구와 프로젝트 과제를 보조했지만 인건비를 받지 못 했다. 또한 다른 대학원생의 박사학위 논문을 대필하도록 강요 및 협박을 받았다. 처음에는 완강히 거부했다. 그러나 수직적인 관계에서 어쩔 수 없이 힘에 눌려 논문을 대필해줬다. 남의 논문을 떠밀려 쓰고 있을 때 중고등학교 동창이자 죽마고우인 소중한 친구가 갑자기 숨을 거뒀다. 친구의 장례식장에서 깊은 슬픔에 빠져 있었는데 교수는 “그게 중요하고 급한 것이 아니다. 그건 너의 사적인 일이고 빨리 해당 학생의 박사 논문을 마무리 짓는 것이 너의 공적인 임무”라는 말까지 들었다. 온갖 정나미가 다 떨어지는 일들이 많았다. 너무 힘들었다. 스트레스가 극심했으며 건강이 악화됐다. 몸무게가 12kg이나 줄었고 검은 혈변을 보기까지 했다. 대학병원에 가보니 ‘소장암’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위장과 소장 절제술까지 받고 병실에 누워 회복하고 있는 와중에도 교수의 갑질은 멈추질 않았다. 손은 움직일 수 있는 거 아니냐? 병실 침대에 가만히 누워만 있지 말고 손은 움직일 수 있으니 스마트폰이나 노트북을 이용해서라도 내 연구와 프로젝트 과제를 해야지 뭐 하는 거니? 악마가 따로 없었다. 이미 해놓은 것이 있으니 석사만 빨리 마치고 악덕 교수의 밑에서 빨리 벗어나야겠다고 독하게 마음 먹고 투병하며 석사 논문을 써냈다. 그 과정에서 메타버스를 깊게 연구했는데 해당 기술이 갖고 있는 저작권법 관련 문제들이 많다는 점을 알게 됐다. 메타버스에 대한 제도적 미비점이 많았다. 메타버스에 적용될 수 있는 법률 문제를 연구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법학 석박사통합과정 지원했던 것이다. 다만 아직 석사 졸업을 확정받지 못 한 상황이었다. 그런데 교수로부터 공식적으로 대학원 교학과에 제출하는 논문 심사비 외에 불법적인 거마비를 요구받았다. 논문 심사에 참여하는 다른 교수들에게 지급되는 불법적인 거마비였다.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당시 고등학교 동창인 평범한미디어 윤동욱 기자에게 조언을 구했고, 결론적으로 다른 인터넷 언론사와 대학 연구윤리위원회에 제보를 했다. 석사 논문 심사를 목전에 둔 상황에서 결단을 내린 나만의 배팅이었다. 역시 교수는 언론 보도가 나간 뒤로 제보자 찾기에 혈안이 됐고 그 화살은 내게 날아왔다. 그 교수는 “제보할 사람은 너 밖에 없다”며 추궁했고 끝까지 나의 석사 논문을 불합리하게 평가하는 방식으로 보복을 일삼았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내가 이겼다. 윤리위에서 내 사건을 주시하고 있었던 만큼 더 이상의 거마비도 요구 받지 않았고 석사 논문이 심사에서 무사히 통과된 것이다. 일련의 부침을 겪고 법학 석박사통합과정에 진학했다. 그렇다면 법원이나 검찰 아니면 법무사나 변호사 사무실 등 법학 전공자로서 전공을 살릴 수 있는 곳으로 취업하지 않은 이유가 무엇인가? 이렇게 묻는다면 내 생각은 이런 거다. 1편에서 설명했듯이 우연히 접하게 된 호텔경영학에 대한 미련과 아쉬움이 컸고 석사까지 취득했으니 그 끈을 놓지 않고 싶었다. 법학과 호텔경영학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고 싶었고 밸런스를 맞추고 싶었다. 공부는 법학, 일은 호텔경영학으로 밸런스를 맞춘 것이고, 실무에 대한 경험을 쌓고 싶었다. 그래서 웨딩업체에 취업하게 됐다. 궁극적으로 나의 목표는 대학 교수가 되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석사급 대학 시간강사를 해보고 싶은데 부수적으로 실무 경력이 필요할 것 같았다. 웨딩업체 근무 경력과 석사 연구 경력을 살려 학생들에게 좋은 가르침을 주고 싶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많다. 웨딩업체 소속 직장인이자, 법학 석박사통합과정을 밟고 있는 대학원생, 나아가 개인적으로 호텔경영학에 대해서 연구를 지속하고 있다. 올 8월에는 관련 논문도 별도로 썼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그러나 법학과 호텔경영학을 융합 연구하고픈 나의 진심을 증명해보고 싶다. 그래서 내년 3월에는 호텔경영 분야 박사과정을 취득하기 위해 대학원에 입학 원서를 내보기로 결심했다. 역시 주변의 반응은 회의적이다. 너무 과한 욕심이 아닌가? 두 전공에 대한 박사학위를 다 받으려고 너무 무리하는 것 아닌지? 부정적인 이야기들을 많이 들었는데 나는 새로운 길에 대한 도전과 배움의 열정으로 꼭 목표한 바를 성취하고 싶다. 어찌됐든 이중 학적자로서 직장 병행까지 해야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될 수도 있는데 체계적인 계획을 수립하고 있으며 철저히 대비하고 있다. 2주 뒤 3번째 산전수전에서는 신용등급이 하락했다가 다시 회복했던 그 파란만장한 과정을 풀어내보고자 한다. 기대해주길 바란다.
#2023년 12월부터 평범한미디어에 연재되고 있는 [김철민의 산전수전 山戰水戰] 1번째 글입니다. 김철민씨는 법학과 관광을 전공으로 대학원을 다니면서, 회사 생활을 병행하고 있는 30대 청년입니다. 무엇 하나 쉽지 않은 인생이지만 누구보다 열심히 고군분투하고 있는 본인의 삶을 주제로 글을 써볼 계획입니다. [평범한미디어 김철민 칼럼니스트] 나는 1992년생 30대 청년이다. 요즘 너무 바쁘다. 낮에는 웨딩업체에서 치열하게 일하고 있고, 저녁에는 대학에서 관광학과 법학을 공부하고 있다. 석박사 통합과정 대학원생인데 그야말로 주경야독이다. 사실 몸이 많이 안 좋아서 하나만 제대로 하기에도 쉽지 않다. 그럼에도 일과 학업을 병행하게 된 배경이 있다. 생존하기 위해 나의 스펙을 가다듬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다는 맘을 먹게 된 경험들이 많았다. 평범한미디어 지면에 글을 쓰게 되는 첫 시간이니 만큼 나의 인생 스토리를 좀 길게 풀어보려고 한다. 나는 해병대에서 군생활을 했다. 부사관으로 복무했는데 전투병과다 보니 부상이 잦았다. 꽤 심각한 수술도 받았다. 왼쪽 무릎 전후방 십자인대와 내측 반월상연골판이 파열됐다. 누구보다 해병대 부사관으로 군복무를 마친 것에 대해 자부심이 있으나 전역해서 사회로 나오니 너무 막막했다. 딱히 내세울 수 있는 기술이나 자격증이 없었고, 대학 타이틀도 지방 사립대에 불과했다. 앞으로 뭘 하며 살아야 할지 앞이 캄캄했다. 어차피 다니고 있던 대학에서 졸업장을 받아봤자 그다지 장점이 없다고 생각해서 바로 일을 시작했다. 다행히 고등학교 때 취득해놓은 스쿠버다이빙 자격증이 있어서 태국 푸켓의 다이빙 리조트에서 보조 강사이자 관광 가이드로 일할 수 있었는데 이때부터 인생의 쓴맛을 봤다. 영어와 태국어 실력이 부족했기에 현지에서 근무하는 매순간이 위기였다. 고객들에게 “다이빙만 잘 하면 뭐 하냐? 가이드란 사람이 영어도 못 하고 태국어도 못 하는 게 말이 되냐”는 컴플레인을 숱하게 들었다. 인격 모독이 심했고 자존심이 구겨지는 일은 상수였다. 결국 다이빙 리조트에서 잘렸다. 어쩔 수 없이 귀국했고 많이 방황하면서 다짐을 했다. 무시 받지 않으려면 결국 내 능력을 키워야겠다! 어떤 분야든 업계든 더 많이 노력해서 일 잘 하는 사람으로 유명해져야겠다! 그래서 다시 대학으로 돌아갔다. 군 휴학을 하고 6년만에 학부 2학년으로 복학했는데 정말 악착같이 공부에만 전념했다. 노력이 통했는지 학부를 졸업할 때까지 전액 장학금을 받으며 다닐 수 있었다. 무조건 성공해야 한다. 잘 돼야 한다. 정말 인생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열심히 살다 보니 다른 길이 열리고 새로운 기회가 찾아왔다. 원래 법학 전공이었는데, 복학하자마자 듣게 된 관광호텔경영학 수업이 계기가 되어 조주기능사(바텐더 자격증) 자격을 취득했다. 바텐더 대회에도 나갔다. 아예 칵테일바를 창업할까 고민했지만 하필 코로나가 터지면서 창업의 꿈은 잠시 접었다. 언젠간 꼭 도전해보고 싶다. 칵테일바 창업을 시도하지 못 했지만, 관광호텔경영학을 더 공부하고 싶어졌다. 지도 교수님의 권유도 있었기에 용기를 내서 대학원에 진학했고 순탄하게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관광학도가 된 것 같았는데 학부 주전공이었던 법학에 대한 미련이 가시지 않았다. 어떻게 해야 할까? 그래 관광과 법학 둘 다 해보자! 하고 싶다면 둘 다 하면 된다. 법학 전공 대학원에 다니기 위해 대전에서 서울로 올라갔다. 학비를 벌기 위해 일을 병행할 수밖에 없었다. 요즘 직장 다니면서 대학원에 다니는 사람들이 많은데 나와 같은 고충이 있을 것이다. 관광 기업 부설 연구소 연구원으로 취업이 되긴 했는데 헬게이트가 열리고 말았다. 파벌 나누기와 정치 싸움이 횡행했기 때문이다. 나도 나름 석사까지 마친 연구원인데 학사 출신 보조연구원에도 미치지 못 하는 대우와 직장 내 괴롭힘까지 감내해야 했다. 그래서 내 발로 나왔다. 어쩔 수 없이 퇴사했다는 것이 정확하다. 또 다시 방황의 늪에 빠졌다. 인생 그래프가 널뛰는 것처럼 이런 슬럼프의 굴레는 주기적으로 찾아온다. 뭐 별 수 없다. 다시 취업시장을 두드렸다. 돈을 벌지 않으면 학업을 이어갈 수 없다. 학업을 포기하면 부당한 대우가 계속될 것만 같다. 그렇게 지금 근무하고 있는 웨딩업체로 입사하게 됐다. 내가 피해의식이 있는 건지? 일을 잘 못 하는 건지? 모르겠는데 왜 이렇게 어딜 가든 부당한 인격모독을 당하는 일이 빠지지 않고 발생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웨딩업체에서 초반에는 곧 잘 지냈는데 이내 냉대와 무시가 이어졌다. 동기 사원들과 알바생, 하객들이 있는 곳에서 상사로부터 막말을 들었다. 나이 서른 넘게 처먹고. 사회 경력도 부사관으로 복무한 거 제외하면 크게 내세울 것 하나도 없고. 일머리도 알바 애들보다도 떨어지고. 너 뭐냐? 학력만 석사이면 뭐 하냐? 혹시 돈 주고 석사된 거 아니냐? 너무 치욕적이고 굴욕적이었다. 정말이지 나는 실무적으로나 학업적으로나 둘 다 잘 하고 싶고, 인정받고 싶다. 그러나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기가 너무나 어렵고 버겁다. 저런 하대의 말을 들을 때면 의욕이 사라지고 오만 정이 다 떨어진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다가오는 2024년 가을학기부터 호텔경영학 박사과정을 밟아야 하는데 정말 나 잘 하고 있는 게 맞을까? 깊은 사색에 잠기게 된다. 계속 일과 공부를 병행해야 할지, 하나를 관둬야 할지 고민스럽다. 앞으로 매주 화요일 나의 좌충우돌 분투기를 하나씩 풀어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