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미디어=천양원 기자] 어린 아이들은 노는 것을 좋아한다. 일상을 노는 일처럼 재밌게 여긴다. 매순간 자신의 삶을 즐거움과 재미로 채워놓고 그렇게 살아간다. 어른들의 보호를 받는 와중에도 다양한 삶의 형식을 체험한다. 다채로운 재미를 통해 다양한 삶의 형식을 체득한다. 언어체계를 구축하기 이전에 온몸으로 온갖 재밋거리들을 경험한다. 이런 삶의 방식은 아이들이 놀이터에서 신나게 놀다가 귀가하기 전까지 반복된다. 물론 집에서도 끝나지 않는다. 아이들은 쉬지 않고 소리와 행동의 놀이를 지속한다. 아이들은 놀이터나 놀이공원에 갔더라도 스스로 구축한 ‘재미의 질서’대로 놀지 못 하게 된다면 큰 감흥을 못 느낄 것이다. 그런 아이들은 지금 여기서 생동하는 아이(I)로서 존재하지 못 하고 우리(fence) 속에 갖힌 아이(child)일 것이다. 누군가 나에게 “빨리 와”라고 했다면 이 말은 명령하는 말일까? 부탁하는 말일까? 오스트리아 출생의 영국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은 본인의 저서 <철학적 탐구>에서 말을 할 때 화자가 함의하고 있는 맥락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비트겐슈타인은 그것을 ‘언어 게임’ 이론으로 정리했다. “빨리 와”라는 말은 두 사람의 관계성
[평범한미디어=문명훈 칼럼니스트] ‘내 인생은 내 의지대로 산다’는 말이 있습니다. 일반적인 격언이죠.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사람은 상황의 영향을 꽤 많이 받습니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생긴 ‘코로나 블루(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한 우울과 무기력)’만 봐도 삶이 의지대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관계가 단절되고 일상이 무너지면서 개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쉽게 우울과 좌절에 빠지게 됩니다. 인간은 상황의 영향을 받는다 프리랜서 인문학 강사로 활동하고 있는 저 역시 코로나 팬데믹으로 수업이 줄고, 일의 형태가 달라지면서 간헐적으로 우울감과 무기력을 느끼고 있습니다. 일 속에서 자아 실현을 찾는 제게 코로나 팬데믹은 꽤 힘든 상황입니다. 인간은 관계에서 정서적 안정감을 찾기에 친구들과 자주 만나지 못 하는 상황도 우울과 무기력에 한몫하는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도 언제 끝날지 모른다는 불확실성이 가장 고통스럽습니다. 3~4개월만 있으면 풀리겠거니 생각했던 코로나 시국이 1년이 지난 시점에서도 여전합니다. 관계 형성과 직업적 성취는 자아실현과 존중감을 느끼는 데 중요한 요소입니다. 그래서 관계가 단절되고 직업적 성취가 무너지면 개인은 심
[평범한미디어=문명훈 칼럼니스트] 19세기 중반에 활동했던 독일의 사회학자 막스 베버(1864년~1920년)는 국가라는 조직 자체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었습니다. 국가란 뭘까요? 정치는 또 뭘까요? 베버는 본인의 강의록을 책으로 엮어낸 <직업으로서의 정치>에서 정치적 정당성, 정치인의 유형, 정치인의 자질, 관료제와 민주주의 등에 대해 논했습니다. 베버는 근대 국가의 가장 큰 특징에 대해 “정당한 물리적 강제력의 독점을 (성공적으로) 관철시킨 유일한 인간 공동체”라고 정의합니다. 국가의 본질을 폭력의 독점으로 본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국가는 사적 폭력을 금지하고 법률에 입각한 강제적 폭력을 행사합니다. 내전이 벌어지고 있는 국가, 여러 군벌이 지배하는 사회, 무장집단의 테러가 빈번한 곳은 정상적인 국가라고 할 수 없습니다. 중세 유럽은 제대로 된 근대 국가의 특성을 갖고 있지 못 했습니다. 국가가 폭력을 독점하지 못 했고 여러 세력 집단들이 폭력을 사용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국가가 폭력을 독점하지 못 하면 공동체 내부에서 무질서가 판을 칩니다. 국민들은 무능한 국가를 신뢰할 수 없는 상태가 됩니다. 폭력 집단이 자기들 마음대로 협박하고 상납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