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미디어 박효영 기자] 그야말로 직무유기의 영역에서 이렇게까지 무능했던 사례를 찾기가 힘들 것이다. 물론 세월호 참사에서 해경이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고 멀뚱멀뚱 보고만 있는 경우가 있었다. 그러나 칼을 든 범죄자와 피해자가 맞딱뜨렸는데 경찰관이 아무 조치도 없이 도망나오고 그저 문 밖에서 시간을 허비했다. 소방관이 화재 현장에 출동해서 무섭고 뜨겁다고 옆에 앉아서 가만히 보고 있는 것과 같다. 전직 경찰관이었던 49세 남성 A씨(경위)와 25세 여성 B씨(순경)는 도구와 무기가 있었음에도 손가락만 빨고 있었다.
B씨는 피해자가 칼에 찔리는 상황을 목격하고 무서워서 계단으로 내려왔고, 내려가다 만난 A씨에게 대피해야 한다고 설명하고 같이 내려왔다. 두 경찰관은 건물 밖으로 나가버렸다. 현관문이 닫혀서 안 열리는 상황이 반가웠을 것이다. 안에 들어가서 범죄자를 제압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B씨는 범죄자가 칼을 휘두르는 장면을 A씨 앞에서 재현하면서 너무 무서워서 도망가길 잘 했다는 분위기였다. 이런 자들이 대한민국 경찰관이었다.
두 경찰관 때문에 피해자는 칼에 찔려서 중상해를 입고 혼수상태에 빠졌다. 더구나 경찰 조직(인천논현경찰서)은 두 경찰관을 감싸려고 했고 피해자들에게 공론화하지 말라고 협박까지 했다. 해임된 두 경찰관은 뭐가 억울했는지 해임 불복 소청에 해임 처분 취소 소송까지 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2021년 11월15일 13시 즈음 인천 남동구 서창동의 한 LH 임대주택 빌라 건물에서 벌어진 ‘층간소음 흉기난동 사건’ 당시 A씨와 B씨는 일반 시민만도 못 했다. 재판을 받게 된 두 사람에게 검찰은 직무유기 혐의로는 이례적으로 징역 1년 실형을 구형했다. 법에서 정한 최고형이다.
지난 7월13일 인천지법(형사17단독 이주영 판사)에서 두 사람에 대한 결심공판이 열렸다. 이 자리에서 공소 검사는 “피고인들이 건물 밖에 있던 3분17초간 피해 가족들은 안에서 가해자와 격투를 벌였다”며 “프로 복싱 한 라운드가 3분인데 그 시간 동안 너무나도 많은 일이 있었음이 자명하다”고 강조했다.
피고인들은 당시 권총과 삼단봉을 소지했고 유리를 깰 장비까지 있었는데 왜 현관문을 깨고 들어가지 않았는지 의문이다. 피해자들이 일반 사회인으로서 받았을 정신적 충격이 큰 점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이 사건으로 2명이 중한 상해를 입고 트라우마까지 겪고 있다. 국가기관이 눈앞에서 범행 현장을 외면한 이 사건만큼은 엄중히 처벌할 필요가 있다. 피고인들에게 직무유기죄의 법정 최고형인 징역 1년을 각각 선고해달라.
A씨가 선임한 변호사는 최후 변론으로 아래와 같이 변명했다.
순간적으로 1~2초 사이에 동료 경찰관에게 상황을 물어보며 따라 내려간 것이다. 피해자들이 큰 피해를 입었지만 피고인의 의도적인 직무유기로 인한 것이 아니니 무죄를 선고해달라.
전국민이 분노했던 만큼 검찰의 실형 구형에 맞춰서 벌금형이나 집행유예를 주장하지 않고, 되려 무죄를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A씨 역시 최후 진술을 통해 “결코 직무를 포기하거나 피하지는 않았다”며 끝까지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뻔뻔한 태도를 유지했다.
B씨의 변호사는 그나마 동정심에 호소했다.
어릴 때부터 바라던 경찰관이 됐으나 수습도 못 뗀 채 해직됐고 정신적 타격과 함께 피해 가족으로부터 수십억대 소송을 당했다. 이제 사회에 발을 들인 피고인이 평생 사죄하는 마음으로 사회의 보탬이 될 기회를 달라.
B씨도 “당시 피해자를 보호하지 않고 내려간 나의 행동에 대한 비난을 받아들이고 반성한다. 사건 당일부터 현재까지 매일 그날을 생각하며 후회하고 있다. 재판장님께서 제 사정을 헤아려 용서하고 선처해주시면 제 행동에 더 책임감을 갖고 살겠다”고 말했다. 문제는 B씨의 사족이다. B씨는 무장 범죄자와 피해자가 1대 1로 대면하도록 그대로 두고 1층으로 내려온 뒤로는 “피해자를 구조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고 어이없는 발언을 했다. A씨와 B씨는 누가 봐도 사건 과정 내내 단 한 번도 경찰관으로서 최소한의 의무와 책임을 1도 수행하지 않았다. 경찰복만 입고 있는 이상한 사람들이었다. 변호사와 직접 변론 전략을 짰을텐데 이런 사건에서는 판사에게 납작 엎드리고 무조건 사죄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판사들은 물증이 있어서 유무죄 다툼을 할 계제가 아닌 사안에 대해 피고인이 자기 변명을 일삼고 혐의를 인정하지 않으면 아주 무겁게 선고하기 마련이다. 두 사람은 일반 시민도 그렇게 하지 않을 책임 방기 사태에 대해서 변명과 억울함을 피력하고 있다.
김성훈 변호사(법무법인 미션)는 두 사람의 직무유기 범죄에 대해 아래와 같이 묘사했다.
(CCTV 영상을 보면) 같이 올라가다 같이 올라가지 않고 내려와서 밖에서 머무는 장면이 나온다. 저 와중에도 계속 피해자들은 가해자와 대치하면서 겨우겨우 남편이 가해자를 제압할 때까지 계속 칼에 찔리고 상해를 입고 있었다. 또 중요한 응급조치도 늦어졌다. 상식에도 완전히 반하는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일단 당시 두 경찰 중에서 현장에서 피습이 일어났음에도 불구하고 가해자를 제압하지 않고 도망쳐 나온 B씨도 문제지만, A씨는 B씨가 내려올 때 마주쳐서 상황을 파악했음에도 불구하고 올라가지 않고 또 다시 같이 내려가서 피해자들이 계속 피해 상태로 머물도록 방치한 것 또한 굉장히 큰 직무유기라고 할 수 있다.
한편, 두 사람에 대한 선고공판은 오는 9월21일에 개최될 예정이다. 무죄와 선처를 탄원하는 두 사람에게 이주형 판사가 과연 실형을 선고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