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미디어 박효영 기자] 어김없이 예상됐던 질문이 나왔다. 미디어오늘 장슬기 기자가 <그런 말은 전혀 괜찮지 않습니다>란 책을 냈고 처음으로 관련 강연을 했는데 개인의 언어 습관을 규제하는 것이 자칫 검열로 이어질 수 있다는 비판적인 질문을 받았다. 특히 차별을 양산하는 사회구조적인 문제가 있는데 개인들의 언어만 규제하는 것이 적절한지에 대한 문제제기도 있었다. 장 기자는 이렇게 답했다.
그렇게 생각하실 수 있다. 내 책에 대해 비판적으로 의견을 주신 것 같은데 좋은 사회를 만들자고 할 때 사회구조가 바뀌어야 하느냐 개인이 먼저 뭔가를 해야 하느냐 이런 논쟁이 있지 않은가? 이론적인 답은 두 개가 다 바뀌어야 한다. 차별하는 구조가 분명히 있는데 언어 가지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느냐. 해결이란 목적으로 책을 쓰고 싶지 않았고 사실 나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차별 표현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고 가시화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7월27일 19시 충북 옥천 전통문화체험관 세미나실에서 <옥천으로 떠나는 강연 여행> 행사가 개최됐다.
강연자로 참석한 장 기자는 “사실은 (언론 비평매체) 미디어오늘 기자로서 언어에 대해 고민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언론 자체가 얼마든지 사실을 왜곡해서 나쁜 보도를 할 수 있기 때문에 언론 비평매체의 존재가 필요한 것처럼, 평범한 사람들도 차별적인 언어 표현을 자기도 모르게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책을 써서 고민해볼 수 있도록 하고 싶었다는 취지다.
장 기자는 “언어 자체가 어떻게 사용되느냐에 따라서 차별의 구조를 더 확대할 수도 있고 축소할 수도 있다”면서 “차별 표현을 지적해서 세상을 바꿀 수 있느냐고 물어보면 차별 표현에 대한 부분은 사회가 발전할수록 더 예민하게 고민해봐야 하는 문제임이 틀림없다”고 강조했다.
사실 강연이 끝나고 뒤풀이 자리에서 장 기자와 비슷한 주제로 대화를 나눴는데 “구조를 바꾸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만 하는 사람들은 그냥 아무 것도 안 할 가능성이 높고, 차별적 언어 표현이라도 지적하고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등 뭐라도 하는 사람이 구조를 바꾸는 데 더 큰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취지로 말을 건넸고 장 기자는 이에 공감을 표했다.
누구나 불필요한 표현이나 차별적인 말을 들었을 때 곤란했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행사 기획자이자 이날 진행을 맡은 가정혜 교수(경기대 관광경영학과)는 “내가 맨 처음 직장에 들어갔을 때 남자들만 있던 곳에서 남편은 뭐 하세요? 이런 질문을 들었다. 내가 남편이 없는데 그러면 부인은 뭐 하세요? 똑같이 되물었다. (분위기가 싸늘해졌는데) 왜 똑같이 물어봐도 그렇게 대응하는지 굉장히 궁금했다”면서 본인이 겪었던 사례를 제시했다.
이러한 상황에 처한다면 장 기자는 책 머리말에서도 썼듯이 “괜찮지 않은 말”을 들었을 때 “내 책을 선물하면 된다”고 했다. 왜냐면 “사실 부당한 표현을 들었을 때 의외로 바로 반박하는 건 쉽지 않기 때문”이다.
강연 말미 스스로 장애가 있음을 고백한 청중 A씨는 손을 들고 질문을 했는데 “오히려 장애가 있어서 나를 피하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장애인을 좀 어려워 하는 거다. 그런데 장애인에 대한 표현을 바꿔서 해야 한다고 하면 사실은 인권 엘리트들을 대상으로 하는 얘기인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책이) 인권 감수성을 갖고 있는 사람을 타겟팅하고 있는 것 같다”며 “물론 물이 아래로 흐르듯 감수성을 가진 분들이 더 노력하면 좋을 것이다. 하지만 전방위적인 노력이 필요할 것 같다. 이런 이슈들에 대해 좀 더 어렵지 않게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인권 엘리트들에게만 소구력이 있고 보통 사람들에게는 검열로 다가올 수 있다는 뼈아픈 지적이었는데 장 기자는 그런 지적에 대해 수용한다면서 “장애인에 대해 말을 편하게 해야 하는데 나처럼 이런 책을 쓰면 검열이 될 수 있다. 그런 지점이 가장 우려스러운 부분이고 그렇게 안 다가갔으면 하는 장치를 책에 많이 심어놨다”고 입을 뗐다.
(언론인으로서 기사를 쓰고 있지만 일반 대중에게 폭넓게 읽혀지기 보단 사회문제에 관심이 많은 소수에게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사실이라는 걸 전제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검열로 느끼지 않게 잘 소개하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이 아닌가 싶다. 이런 모임이 있을 때는 금기를 강조하기 보단 고민을 넓혀가는 방향으로 소통하려고 노력한다. 근본적으로 내 책이 갖고 있는 부인할 수 없는 한계라고 생각한다.
이런 지점에 대해 이야기를 건네고 싶었다는 장 기자의 진의는 이런 거다. 장 기자는 강연을 마치기 전 에필로그 차원에서 일본인을 비하하는 의미로 사용되는 멸칭 “쪽발이”란 표현이 왜 문제인지에 대한 이야기를 소개했다.
내가 무슨 이런 표현 쓰지 말고 저런 표현 써도 되고 그런 말 하려고 책을 쓴 게 아니다. 사실 나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1944~45년 즈음에 2차 세계대전이 막바지에 이르고 우리가 식민지에서 독립을 하기 이전에 일본의 상황을 얘기해보려고 한다.
그 당시 일본에 강제로 끌려온 조선 남성들은 일본 여성들과 결혼하는 경우가 왕왕 있었다. 그들 중 상당수는 해방 이후 남편과 함께 한국으로 넘어왔는데 6.25 전쟁이 끝난 뒤에도 일본으로 돌아가지 않고 한국에 정착했다. 그들은 이유있는 한국인들의 반일 감정에 억눌리며 살았고 “진짜로 가족들이 몰매를 맞아 죽을 수도 있다”는 신변의 위협을 감내해왔다.
사실 대부분 일본 여성들은 조선인 남편을 따라서 한반도로 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한반도에 가니 너무나 적대적인 거다. (해방 이후 한국인들은 일본인들을) 때려 죽여도 어색하지 않았던 분위기였는데 그걸 몰랐을 것이다. 시댁에서 쫓겨나기도 한다. 아니면 한국전쟁이 몇 년 있다 일어나기 때문에 결국 남편도 죽는다. 1960년대까지 첩 제도가 있었는데 이 사람들은 첩보다 못 한 처지로 사는 거다. 한국말을 배워가는 상황에서 자식들이 1960년대에 학교를 들어가고 따돌림을 당한다. 자식들이 들었던 말이 반쪽발이였다. 반만 쪽발이라는 거다. 엄마는 당연히 쪽발이란 말을 들으면서 살았을 거고. 8.15나 3.1절이 되면 가족이 구타당하거나 죽지 않을까 진짜 위협을 느꼈다고 한다. 그래서 자기네들끼리 수소문해서 모이자고 했고 그 모임의 이름이 부용회라고 한다.
장 기자는 “쪽발이라는 단어가 아베라든지 전범 그런 악랄한 일본인을 보면서 그렇게 얘기할 수 있다. 나도 많이 했다”며 “그걸 하지 말자는 차원도 있지만 한국에서 그 말을 듣고 있는 또 다른 사람들도 있다. 어떤 대상을 하나의 정체성으로 규정해서 폄하하는 단어를 쓸 때 의도와 달리 상상치도 못 하는 사람들이 신변의 위협을 받고 살겠구나. 그래서 쪽발이란 단어에 대해 고민을 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고 정리했다.
중간에 쫓겨나서 일본으로 가신 분들도 있는데 몇 분이 경주 양로원 같은 데에 생존해 계신다. 그분들은 평생 괴롭게 사셨을 것이다. 그분들 자료가 조금 남아 있는데 오늘 간단히 이거 하나만 말씀을 드려보고 싶었다. 이런 표현을 다시 생각해보는 것 자체가 이건 문제니까 쓰지 말고 짜장면을 자장면이라고 표현하지 말자는 단순한 차원의 얘기를 하려고 했던 건 아니고 이런 문제 지점을 드러내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