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025년 11월1일 15시 전남 장흥군 탐진강변에서 개최된 이동진 평론가의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 <북토크쇼>를 정리하는 현장 기사를 기획 시리즈로 출고합니다. 이동진 평론가가 말하는 독서의 가치와 영화 이야기 등을 생생하게 전해드리겠습니다. 이번 기사는 1편입니다.
[평범한미디어 박효영 기자] 영화 못지 않게 책을 사랑하는 이동진 평론가는 서울에서 머나먼 전남 장흥까지 북토크 행사에 참여하기 위해 내려왔다. 장흥은 ‘문학의 고을’이나 다름 없는 곳인데 이동진 평론가는 아래와 같이 풀어냈다.
이렇게 지방에 종종 다니는 것을 삶의 낙으로 알고 있다. 내가 장흥에 진짜 꼭 한번 와보고 싶었다. 왜냐하면 문학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우리나라의 모든 지역 중에서 가장 문학과 관련되어 있는 성지 같은 데가 어디냐고 하면 제일 먼저 장흥이 떠오른다. 노벨 문학상을 탄 한강 작가하고도 연관이 있는 곳이다. 나한테 사실은 더 큰 의미를 가지는 것은 가장 좋아하는 한국 문학 작가가 이승우 작가다. 내가 고등학교 때부터 이승우 작가의 책을 봐서 여태까지 내 평생에 단일 작가 책으로 가장 많이 본 사람이 이승우 작가다. 한 30권 넘게 봤다. 이승호 작가께서 한 번 내 작업실에 오신 적이 있는데 자기 집보다 이승호 책이 더 많다고 그랬다. 그 정도로 내가 숭배하는 것 같은 작가였는데 그분이 고향의 장흥이다. 그 다음에 여러분들이 너무 잘 아는 한국 문학의 위대한 작가인 이청준 작가도 장흥 출신이다. 송기숙 작가와 한승원 작가도 있다. 사실 이렇게 크지 않은 지역에 어떻게 위대한 작가들이 많이 태어났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북토크쇼의 주제가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다. 이 평론가는 직업적으로 영화를 탐구하는 인물이다. 영화와 책은 지식과 정보를 전달하는 수단으로서 공통점이 있고 이 평론가는 그 누구보다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이다. 이 평론가는 “많은 분들이 예전에는 책을 읽어야지라는 압박감 같은 것들에 관심을 가져서 책을 못 읽는다는 것에 죄책감까지 느끼는 그런 세대가 있었다”면서 “이제 시대가 많이 변해서 그런 압박감 같은 걸 별로 안 받는 것 같다”고 말했다.
다시 말하면 책을 왜 읽어! 얼마든지 세상에 좋은 게 많은데! 이렇게 생각하는 분들도 많다. 그래서 더더욱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를 말을 해야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솔직히 말하면 주최측에서 그런 주제로 강의를 해달라고 그랬다.
책을 읽는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일까? 책을 읽는 사람과 안읽는 사람의 차이는 무엇일까? 이 평론가는 뇌의 가소성 개념으로 설명했다.
뇌의 무게는 전체 몸무게의 2% 밖에 안된다. 근데 인체 전체에서 사용하는 에너지의 20% 정도를 사용한다. 그만큼 뇌가 엄청나게 중요하고 바쁘다라는 얘기일텐데 우리가 누구일까? 나는 누구일까? 나는 어떤 삶을 살아야 될까? 뇌의 수많은 정신적인 작용의 핵심은 사실은 가소성이라는 걸로 말할 수 있다. 가소성은 소가 구부러진다는 뜻이다. 구부리면 구부러지는 대로 가는 성질 이게 가소성이다. 예를 들면 철사를 구부리면 튕겨져 나가지 않고 그대로 모양이 남아 있다. 뇌가 정신 작용을 할 때 가장 중요한 게 가소성이다. 좀 더 쉬운 말로 하면 뇌는 길을 내는 대로 길이 나게 되어 있다라는 뜻이다. 그러니까 어떤 분이 책을 안읽는다면 책을 안읽는 쪽으로 길이 나기 때문에 그분은 평생 책을 읽을 필요를 못느낀다. 근데 어떤 분이 책을 굉장히 열심히 읽으면 책을 읽는 쪽으로 길이 계속 나고 계속 가지를 치기 때문에 더더욱 책에 대해서 많이 원하게 되어 있다. 그러니까 책을 더 읽고 싶다고 느끼는 사람 자체가 사실은 책을 좋아하는 사람인 것인데, 책을 안읽어본 사람일수록 책에 대해서 별로 감흥을 느끼지 않는다. 책이라는 것은 가장 적극적으로 정신 작용을 할 수 있게 만들어준 활자 매체다. 활자 매체 중에서 가장 체계적으로 갖춰져 있는 그런 대상이다. 그런 측면에서 책은 사실 우리 정신 작용의 가장 핵심적인 총화와도 같다고 말할 수 있다.
그렇다면 책을 읽는 삶을 살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할까? 온갖 화려한 영상 컨텐츠들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스마트폰 중독의 시대에서 책을 읽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이 평론가는 “독서 근육”으로 빗대 묘사했다.
덤벨 운동을 꾸준히 해오다가 2주 정도 쉬고 다시 했을 때 이제 6kg에서 12kg짜리 드는 걸 한 번에 40개 하기가 힘들다. 근데 한 이틀 전에 하고 오늘 하면 몸이 뻐근한데도 불구하고 한 번 하면 60회 정도 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우리 몸의 모든 것이 근육이라는 게 있다고 했을 때 사실 독서 근육 같은 것도 있는 것 같다. 그래서 독서 근육을 평상시에 단련하지 않으면 사실은 책장이 안넘어간다. 왜냐면 세상에 재미있는 것들이 너무 많다. 그래서 독서 근력이 필요한데 덤벨을 들 때 손 근육을 늘리는 것처럼 읽을수록 가소성이 느는데 고기는 먹어본 놈이 잘 먹는다고 그러지 않은가. 책도 읽어본 분들이 잘 읽는다.
역시 왕도는 없다. 그냥 책과 익숙해지기 위해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자꾸 읽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사실 책은 수단이자 매체에 불과하다. 책의 내용을 습득하고 사고해보는 것이 목적이다. 이 평론가는 “책을 읽는 것과 책에 담겨져 있는 내용을 학습하는 것”을 구분했다.
나도 <파이아키아>라는 유튜브 채널이 있는데 주로 영화를 다루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기서도 정기적으로 한 달에 한두 번 정도씩은 책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근데 조회수가 굉장히 높다. 예를 들면 <정의란 무엇인가>를 1시간 정도의 분량으로 이야기를 한다고 하면 보는 구독자들이 <정의란 무엇인가>를 읽지 않았는데 이동진이 설명하는 거 다 들으니까 이제 알 것 같아라는 느낌이 들 수 있다. 근데 요약해서 1시간 분량을 올려본 사람으로 말씀드리면 내가 말한 내용이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의 한 2%쯤 된다. 즉 우리는 책에 담겨 있는 정보를 책이라고 오해를 하는 경향이 있는데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은 사실 정의라는 것에 대한 탐구이기도 하지만 쉽게 얘기하면 도덕 철학의 역사를 다룬다. 어떤 사람이 그걸 열심히 공부해서 그 내용을 다 안다고 쳤을 때 그 내용을 안다고 해도 <정의란 무엇인가>를 읽은 것하고는 다르다. 다시 말해 책을 읽는다는 것은 활자로서 체계화되어 있는 이렇게 물화되어 있는 어떤 대상의 것들을 내가 문자를 체득해서 인지한다라는 뜻이다. 근데 이것과 내가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은 도덕 철학의 역사라고 알려주는 걸 듣는 것과는 서로 다른 정신 작용이다. 같은 내용이라고 할지라도 전자가 훨씬 더 적극적인 정신 작용이 필요하다. 훨씬 더 뇌를 많이 쓸 수 있다. 그래서 유튜브를 하는 사람으로서 <파이아키아> 많관부를 하고 싶지만 가장 좋은 방식은 당연히 그 책을 직접 읽는 것이다.
결국 독서를 하는 것도 다른 사람들과의 ‘소통’과 직결돼 있다. 다른 사람이 발굴해놓은 사상을 접하고 내 생각과 접목시켜보는 것이다. 소통은 인간의 본질적인 특성이다. 독서 자체가 가장 인간적인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이 평론가는 “인간을 한자로 쓰면 가장 간단하다고 생각하는데 사람 人자에다가 사이 間자를 쓴다”며 “사람 人자만 써도 되는데 사람이 왜 사람이냐고 하면 사람과 사람 사이가 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언어와 용어를 만들어 쓰게 된 사람들이 있고 그 뜻을 따라서 계속 쓰고 있는 언중이라고 말하는 우리 모두가 공유하고 있는 말이 있는데 그럴 때 인간이라는 말은 결국 사회성을 뜻하는 말이다. 다시 말하면 동굴의 토굴 같은 데 틀어박혀서 평생 혼자 사는 사람이 있다면 이 명명법에 따르면 인간이 아닌 것이다. 그렇게 보았을 때 인간이 진짜 인간이게 만드는 것을 만약에 사회성이라는 것으로 본다면, 다른 사람들과 교류하고 소통하는 것의 핵심은 책을 통해 가장 효과적으로 달성할 수 있다.
그러면 가장 궁금했던 부분을 들어볼 차례다. 영화와 책의 차이점이다. 공통점도 있겠지만 차이점이 더 크게 다가온다. 이 평론가는 “영화와 책은 굉장히 차이가 크다”면서 “영화는 술과 같고 책은 물과 같다”고 표현했다. 어떤 행간이 있는 걸까?
근데 그게 사실은 <동사서독>이라는 영화가 있다. 거기에 나오는 양조위가 급조해서 했던 말을 빌려온 건데 거기서는 이제 그냥 물은 우리를 차갑게 하고 술은 우리를 따뜻하게 하지라는 대사다. 나는 그걸 비틀어서 책이 물과 같고 그 다음에 영화가 술과 같다고 말했는데 왜냐하면 사실은 책하고 영화를 비교하기 어렵다. 영화에 담겨 있는 건 보통 이야기지 않은가? 모든 영화들은 기본적으로 이야기를 갖고 있는 서사 매체다. 우리는 영화를 어떤 이야기로 받아들이는데 이야기라는 것은 어떤 사람의 생로병사가 있고 우리가 이입을 하기 때문에 사실은 뜨거워질 수밖에 없다. 영상 매체 속 이미지라는 것의 속성이 훨씬 더 전인적이고 강하다. 압박감 같은 것도 심하고. 그래서 영화를 보면 뜨거워진다. 책은 문자이지 않은가? 문자와 이미지의 차이가 굉장히 크다. 문자라는 것은 우리 인간이 만든 것이다. 이미지는 인간이 만든 게 아니고 원래 있던 것이다. 산 그러면 산이 있다. 원래 자연이 있는데 우리가 산으로 인식한다. 문자는 우리가 산이라는 것을 ㅅ과 ㅏ와 ㄴ으로 써서 표기한 건 세종대왕님이시다.
그래서 이 평론가는 이미지를 직감적으로 받아들이는 것과 문자를 해석해서 이해하는 것의 차이로 치환했을 때 “영화보다 책이 훨씬 더 우월한 매체”라고 결론냈다.
이미지를 우리가 받아들이는 건 훨씬 더 즉각적이고 전인적인데 문자를 받아들이는 건 훨씬 더 2차적인 과정을 겪는다. 문명의 추상화된 형태를 체득하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문자로 우리가 어떤 똑같은 것을 이야기로 받아들인다고 하더라도 영상으로 받아들이는 것하고 달리 단계가 많고 굉장히 차이가 크다. 생각이라는 과정이 더 깊게 들어갈 수밖에 없다. 그런 측면에서 책을 읽으면 훨씬 더 몸이 차갑게 가라앉으면서 이성적으로 된다. 그러니까 생각이라는 것 지식이라는 걸 생각한다면 영화와 책은 비교가 안된다. 책이 훨씬 더 우월한 매체다. 다만 체험과 감정의 강렬함으로 보면 또 다른 얘기가 된다. 내 얘기는 책이 영화보다 우월하다는 뜻은 아니고 지금 말씀드린 것처럼 사고와 정신 작용으로 생각한다면 책이 훨씬 더 복합적이고 우리를 적극적으로 성장시키는 매체라고 말할 수 있다는 뜻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