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미디어 박효영 기자] 수원 영아 살해 사건을 계기로 경찰청이 전국적으로 영아 살해 사건을 조사하고 있다. 당초 감사원은 보건복지부 정기 감사를 진행하다 병원 출산 기록만 있고 출생신고가 이뤄지지 않은 영아들이 7년간(2015~2022년) 무려 2236명이나 된다는 사실을 인지했다. 출생신고가 되지 않았다는 것은 사실상 영아 살해라는 중범죄가 2000건 가량 발생했음에도 법적 처벌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의미다. 그래서 감사원과 보건복지부는 전국의 지자체들에게 관련 리스트를 할당해서 자체 조사를 요청했고, 지자체는 신원이 특정된 부모들을 대상으로 경찰에 수사 의뢰를 하고 있다. 경찰청은 9일 기준 1000건 가량 수사를 해야 할 수도 있다는 걸 염두에 두고 구체적으로 20건 정도 입건해서 수사 중에 있다.
관련해서 광주경찰청은 8일 18시 즈음 아동학대치사 및 사체유기 혐의로 30대 초반 여성 A씨를 구속시켰다.
A씨는 20대 중반 미혼모였던 2018년 4월 당시 광주 광산구 자택에 생후 6일된 딸을 방치하고 외출했다. 3시간 뒤에 집으로 돌아왔을 때는 아기가 이미 사망한 상태였다. A씨는 아기 시체를 다음날 새벽 쓰레기봉투에 담아 수거함에 버렸다. A씨는 경찰 조사에서 “딸이 겉싸개 모자에 덮혀 숨져있었다”고 진술했다. 갓난 아기를 홀로 두고 외출했다는 것 자체가 사실상 영아살해의 고의성이 인정될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애초부터 A씨가 아기를 병원으로 데려가 사망 판정을 받고 정상적으로 동사무소에 사망 신고를 할 가능성은 제로다. 그렇게 했다면 바로 아동학대치사 혐의로 법적 처벌을 받을 것이 자명하기 때문이다.
앞선 6일 A씨는 전국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합동 ‘유령 영아’ 전수조사에 따른 연락을 받고 자수했는데, 광주경찰청은 다음날(7일) A씨의 혐의가 중대한 만큼 긴급체포했고, 8일에 정식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A씨는 자수하고 이틀만에 감옥에 갇히게 됐다. A씨는 5년 전 정상적으로 산부인과에서 분만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영장실질심사 당일, 모자와 하얀색 후드티를 입고 등장한 A씨는 광주지방법원으로 출석하는 과정에서 기자들의 질문을 받았는데 무응답으로 일관했다. 애석하게도 5년이 흐른 만큼 현실적으로 아기의 시신을 찾을 수 없는 상황이다. 경찰은 아기 친부의 공범 여부에 대해서도 조사를 이어가고 있으나 A씨와 연락이 끊긴지 오래되어 혐의를 입증하기 쉽지 않다고 전했다.
최근 들어 영아 살해 문제가 수면 위로 올라오자, 국회는 그동안 의료계의 반발을 핑계삼아 손놓고 있던 출생통보제 법안(가족관계 등록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6월30일 통과시켰다.출생통보제는 병원에서 직접 진행한 분만에 대해 2주 이내로 심평원(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통보하도록 의무화하는 것이다. 곧 윤석열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해당 법안을 최종적으로 통과시키면 정확하게 1년 이후 정식으로 시행된다. 복지부는 1년간 출생정보 전송시스템 구축에 힘을 쏟는 등 제도 안착을 위해 준비하고 있다. 무엇보다 의료계의 업무 과중이 최소화되도록 병원에서 실제로 사용하고 있는 차트를 표준화하고 있다. 동시에 복지부는 관계 부처들과 전문가들로 꾸려질 ‘출생 미등록 아동 보호체계 개선추진단’(추진단)으로 미혼 부모들이 아기를 포기하는 범죄의 영역으로 나아가지 않도록 근본적인 시스템 개선을 모색할 계획이다.
특히 복지부는 출생통보제의 보완재로 작용할 보호출산제가 국회에서 신속히 논의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는 입장이다. 보호출산제는 어려움에 처한 미혼모의 익명 분만을 보장하는 제도인데 출생통보제만 시행되면 병원 밖 위험천만한 분만이 횡행할 수 있다는 우려에 따라 주목을 받은 대안책이다. 독일(신뢰출산제)과 프랑스(익명출산제) 등 일부 유럽 국가들에서 시행되고 있다. 다만 보수적인 한국 정치권에서 보호출산제 자체에 대해서 미혼모의 양육 포기를 부추긴다는 논리가 통용되고 있어 논의 과정이 만만치 않다. 당장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의원들이 과연 보호출산제를 통과시켜줄지 의문이다.
국민의힘 김미애 의원은 보호출산제의 필요성에 대해 아래와 같이 설파했다.
보호출산제를 두고 일각에서는 손쉬운 아동 포기와 유기를 조장한다고 주장하지만 어불성설이다. 법안 어디에도 그런 내용은 없다. 덮어 두고 비판하며 왜곡할 게 아니라 문제가 있다면 수정하고 고쳐나가면 된다. 일도양단식의 접근은 건강한 논의를 방해할 뿐이다. 법안은 임신, 출산, 양육을 종합적으로 상담·지원할 수 있는 기관을 통해 원가정 양육을 최우선 고려 대상으로 한다. 그런데도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놓였을 때, 보호출산 및 입양절차 등을 상담하고 법률적 지원 등을 제공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복지부 이기일 1차관도 추진단 1차 회의 자리에서 “보호출산제가 조속히 입법될 수 있도록 정부에서 최대한 노력을 다하겠다”며 “1년 후 보호출산제와 출생통보제가 함께 시행될 수 있도록 예산을 미리 확보하고 관련 부처와도 긴밀히 협력해 나가겠다”고 공언했다.
영아 살해 이슈에서 꼭 짚고 넘어가고 싶은 지점이 있다. 이를테면 김 의원은 “임신과 출산 과정에서 말 못 할 여러 사정으로 어려움을 겪는 위기 임산부들이 있다. 이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은 출산 후 아이를 직접 양육한다”면서도 “그렇지 않은 경우도 엄연히 존재한다. 경찰청에 따르면 최근 10년(2013~2022년) 동안 영아 살해는 85건, 영아 유기는 1185건 발생했다. 매년 8명이 넘는 아기들이 살해되고, 100명이 넘는 아기들이 유기되는 것”이라고 전제했다. 그러면서 아래와 같이 묘사했다.
사건을 대하는 태도에는 일관된 패턴이 있다. 가해자를 파렴치한이라고 욕하고, 천륜을 저버렸다고 분노와 저주를 쏟아내면 금세 잊히고 일단락된다. 그리고 또 반복된다. 일반 국민은 그럴 수 있다. 하지만 국회와 정부의 대응은 달라야 한다. 좋든 싫든 반복해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진단하고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악마화하는 건 문제를 잠시 봉인하는 가장 손쉽고 간편한 방법이지만 비겁한 접근법이다. 죽은 아이들이 다시 살아나지 않을 뿐더러 앞으로 발생할 불행한 사건의 어떤 해결책도 될 수 없다.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주장이다. 다만 영아 살해 가해자에 대한 비난가능성과 그에 따른 엄격한 처벌을 집행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꼭 근본적인 재발방지책을 수립해야 한다는 당위와 배치되는 걸까? 전혀 그렇지 않다. 영아 살해범을 범죄 혐의에 맞게 철저히 처벌하는 것과, 관련 대책을 설계하고 마련하는 것은 분리되어 별도로 이뤄져야 한다. 전자가 후자를 방해한다는 관점을 가질 필요가 없다. 일부 페미니스트들이나 진보적인 시민들 사이에서 “미혼모만 비난해서 될 일이 아니”라는 취지의 메시지가 나오고 있는데 무거운 범죄행위를 온정주의적으로 감싸는 듯한 제스처를 취할 필요가 없다고 본다. 실질적인 피임 교육이 전무하다 싶은 환경, 어린 미혼 남녀의 임신과 출산에 대해 여전히 죄악시하는 분위기, 안전하게 중절 수술을 받기 어려운 현실, 이들의 양육과정을 확실히 지원해주는 시스템 부재 등등 이러한 사회구조적인 문제들이 있다고 해서 신생아를 방치해서 죽음에 이르는 범죄행위가 결코 정당화될 수 없기 때문이다. 정당화하는 사람들이 누가 있을까 싶겠지만 실제로 검경의 수사가 일반 사건들에 비해 매우 어렵다는 이유로 영아 살해범들의 자수를 유도하기 위한 면책론이 제기되고 있다. 이수정 교수(경기대 범죄심리학과)는 “자진 신고를 해서 처벌 안 한다는 면죄부를 준다는 조건으로 실태를 파악하는 게 지금 필요해 보인다”고 강변했다.
이에 대해 학교폭력 전문 박상수 변호사는 페이스북에서 “인간의 존엄과 가치는 인간의 생명권에 그 근거를 가진다. 아기라 하여 그 권리가 무시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며 “법이 정하고 있는 자수 감경이면 충분하다. 면죄부를 줘야 한다는 것에 대해 기사와 달리 법률 전문가의 입장에서 분명히 반대한다”고 밝혔다. jtbc 최연수 기자는 이 교수의 메시지를 담은 관련 리포트에서 “전문가들은 처벌에 집중하기 보단 정확한 실태를 확인하고 살릴 수 있는 아기를 단 1명이라도 더 찾는데 우선순위를 둬야한다고 강조했다”고 표현했다. 그러나 박 변호사는 처벌과 실태 파악이 모자람없이 병행되어야 하며 충분히 그렇게 될 수 있다는 입장인 것 같다.
물론 미혼모 혼자 곤궁함에 몰리도록 무책임한 태도로 일관한 미혼부에 대해서 상대적으로 사회적 비난이 덜 가해지는 것은 문제가 있으며, 그에 비해 미혼모만 사회적 몰매를 맞는 상황은 부당하지 않을 수 없다. 하경희 교수(아주대학교 공공정책대학원)는 “영유아에 대한 책임과 비난이 온전히 미혼모에게만 부여되고 미혼부나 그의 가족에 대한 책임은 도외시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래서 수사기관이 적극적으로 법을 적용하여 미혼모의 영아 살해에 미혼부의 공범 행위가 있지는 않은지 철저히 따져서 처벌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
2022년 3월부터 지금까지 시즌3에 걸쳐 방영되고 있는 MBN <고딩엄빠>를 보면, 매회 역대급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여의치 않은 환경에서 육아를 감내하고 있는 어린 부모들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준비되지 않은 임신 자체가 얼마나 큰 후폭풍을 불러올 수 있는지 충분히 이해하게 된다. 무엇보다 갑작스러운 임신이 방지되도록 실질적인 피임 교육과 피임기구 제공이 이뤄져야겠지만, 한편으로는 자신이 낳은 아기를 버리지 않고 끝까지 책임지려는 어린 부모들의 애달픔이 느껴져서 짠해지는 대목이 있다. 전국에는 <고딩엄빠>에 출연하지 못 한 청소년 엄빠들이 눈물을 머금고 베이비박스에 아기를 맡기는 경우도 꽤 있을 것이다. 그들의 사면초가를 이해하지 못 하는 바는 아니지만 베이비박스라는 마지노선도 고려하지 않고 최소한의 책임을 방기해서 영아를 살해하는 순간 그들에 대한 동정심은 거둬들이는 게 맞다. 자신들의 곤궁함을 이유로, 세상 밖에 나온 아기들의 생명권을 무참히 짓밟는 것은 그 무엇보다 파렴치한 범죄행위로 규정해야 한다. 그들의 사회적 약자성은 아기들의 사회적 약자성에 비할 바가 아니다. 김 의원은 아기들의 생명권에 대해 아래와 같이 역설했다.
생명권은 누구나 보장받아 마땅한 기본권 중의 기본권이다. 그러나 아기들은 울음으로 밖에 의사를 표현할 수 없고, 집단화하여 목소리를 낼 수 없다는 이유로 사회적 무관심 속에서 방치되고 심지어 죽음으로 내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