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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낙연의 마지막 승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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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미디어 박효영 기자]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국회에서 교섭단체 연설의 형식으로 대선 출사표를 발표한 날, 마찬가지로 이낙연 전 국무총리(새미래민주당)도 다가올 조기 대선에 임하는 출사표를 공개했다. 정치인 이재명과 이낙연은 4년 전(2021년 6월부터 10월까지)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치열하게 경쟁했다. 이 전 총리는 이 대표에게 완전히 패했고 그 이후 정치적으로 겉돌았으며 탈당해서 신당을 만들었다. 신당 깃발을 들고 2024년 총선에서 제3지대를 공략했지만 무참히 실패했다. 이낙연당 새미래민주당은 유일한 현역 김종민 의원마저 떠나보냈고 그렇게 원외정당으로 전락했다.

 

 

이 전 총리는 정치적 비상을 꿈꾸고 있다. 12.3 계엄 사태는 8년 전 국정농단 정국과 다른 양상으로 흐르고 있다. 이 전 총리는 “박근혜 대통령 탄핵 때는 파면 요구 여론이 시종 압도했지만 이번에는 시간이 흐를수록 찬반의 격차가 좁혀지고 있다”면서 양극단이 진영을 총동원하는 “내전”에 다다랐다고 진단했다. 정치 평론가들은 계엄 직후의 상황과는 달리 조기 대선이 현실화된 국면에서 “이재명은 절대 안 된다”는 반이재명 보수 결집이 이뤄지고 있다는 점을 입을 모아 말하고 있다. 국민의힘 지지율이 민주당과 다를 바 없고, 탄핵 찬반 여론이 비등비등해졌다. 이 시점에서 이 전 총리에게 놓인 선택지는 2가지다. 하나는 민주당으로 복귀해서 이재명의 대항마 포지션을 차지해 2라운드를 치르는 것이고, 또 하나는 야권 내에 있는 비이재명계 세력을 규합해서 반전을 도모하는 길이다. 이 전 총리의 구상은 후자다. 목표로 삼고 있는 모델은 1995년 故 김대중 전 대통령의 ‘새정치국민회의’ 창당과 이를 통한 대권 쟁취다.

 

극단 정치를 청산하기 위해서 나는 양쪽의 극단 체력을 배제한 합리적 책임 정당의 출현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믿는다. 김대중 대통령이 1995년 국민회의를 창당할 때 이런 말씀을 했던 것을 생각한다. 좌우 극단 세력을 배제하고 온건 개혁 노선을 추구하겠다. 그렇게 해서 국민회의를 만드셨고 바로 그 국민회의가 최초의 평화적 정권 교체를 이루는 모태가 됐다. 독일처럼 극단 세력이 소수 변방화되고 합리적 좌우 세력이 협력적으로 경쟁하며 국정을 책임 있게 이끌어가길 바란다. 만약 지금처럼 양극단 세력이 정치를 주도하면서 그들끼리 정권을 주고받는다면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국가 중요 정책이 시계추처럼 오락가락 하면서 국정을 표류시키고 국내외적 신뢰를 잃을 것이다. 피비린내 나는 정치 보복의 악순환도 계속될 것이다. 이제는 국가의 중심을 잡는 책임 정당이 출현해 대화와 타협을 주도하며 국민 생활과 국가 생존을 최우선으로 중시하는 정치를 실현해야 한다. 대한민국을 위기에서 구하기 위해 정치인과 뜻있는 국민 여러분이 결단해 주시기를 바란다. 그렇게 되도록 나는 작은 밀알이 되겠다.

 

이 전 총리는 10일 14시 광주 동구 ‘전일빌딩 245’ 9층 다목적강당에서 개최된 <국민과 함께 여는 제7공화국 시국토론회>에서 기조 연설자로 참석했다. 이 전 총리는 이 자리에서 개헌을 통한 제7공화국 시대를 열어젖히자며 여러 공식 제안들을 내놨다.

 

①‘분권형 대통령제’ 개헌을 위한 조기 대선과 국민투표 동시 실시

②정치적 합의를 통해 차기 집권세력이 ‘과도 정부’ 역할을 맡아 2028년 총선에서 개헌 국민투표가 이뤄질 수 있도록 준비하기

 

이 전 총리는 모든 정치학자들이 클리셰처럼 반복하고 있는 현행 적대적 양당체제의 부작용에 대해 긴 시간을 할애해서 논했는데 한 마디로 “이미 윤석열, 이재명 정치의 동반 청산이 시대정신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로 집약할 수 있다.

 

각기 국민에 의해 선출된 대통령과 국회 다수 세력 즉 행정 권력과 입법 권력이 충돌했다. 타협을 모르는 두 권력이 마주 달리는 두 기차처럼 충돌해 오늘에 이르렀다. 거대 야당은 탄핵과 입법과 예산 삭감 등으로 윤 대통령을 끊임없이 압박했고, 윤 대통령은 25차례나 거부권으로 방탄했다. 비상계엄 선포 이유를 윤 대통령은 거대 야당의 잇따른 탄핵과 입법 및 예산의 폭주로 국정 수행이 어려워졌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분명히 계엄은 윤 대통령의 망상과 오판에서 비롯된 중대 실책이다. 그럼에도 거대 야당의 집요한 압박이 윤 대통령의 비상식적 심리 상태를 더욱 악화시켰을 가능성은 있다.

 

윤석열의 악화에 이재명의 존재가 악영향을 줬다는 것인데 한 마디로 양당 세력 모두 엉망이다.

 

 

그래서 개헌을 하자는 것이다. 개헌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양당 진영이 세력 균형을 형성하고 있는 지금 시점에서 캐스팅보트를 쥐게 될 새로운 ‘정치 세력’의 출현이라고 보는 것이 이 전 총리의 생각이다. 나아가 개헌으로 체제 전환을 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더불어민주당과 이재명’으로는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1992년 대선에서 패배한 김 전 대통령은 정치 은퇴 선언과 함께 영국으로 떠났다. 그러나 이내 복귀했는데 1995년 당시 100석 가까이 갖고 있던 제1야당 민주당이 아닌 새정치국민회의를 창당해서 야권의 주도권을 잡았다. 진보와 보수를 가리지 않고 사람을 영입했으며, 영국과 미국의 정권교체 전략을 차용한 ‘뉴 DJ플랜’을 내세웠다. IMF 외환위기의 조짐이 있었던 만큼 경제 비전을 가다듬었고 궁극적으로 DJP연합을 성공시켜 정권을 거머쥐었다.

 

이 전 총리가 김대중 모델에 자신을 투영하는 데에는 공통점이 많다고 판단했던 것 같다. 1971년 대선 때부터 본격적으로 대권 주자가 된 김 전 대통령은 거듭되는 좌절에도 불구하고 대권 도전을 포기하지 않았는데, 이 전 총리도 문재인 정부 국무총리 재임 시절 대권 주자 반열에 오르며 ‘어대낙’ 전성기를 구가한 뒤로 등락을 반복했지만 꾸준히 잠룡으로 분류되고 있다. 이 전 총리는 2020년 1월, 2년 7개월간의 총리직을 내려놓고 바로 당권 행보를 밟았고 당대표가 됐다. 2019년 중순부터 대권 주자 지지율 1위(30% 중후반)가 됐던 탓에 일종의 대세 흐름을 타고 당권을 넘어 대권을 차지하려는 의도였다. 하지만 2020년 코로나 시국 초기부터 이재명 당시 경기도지사의 행정력이 돋보여 대세 자리를 내줬고 동시에 당내 패권에서 밀리며 한없이 추락하다 완전히 비주류 주자로 전락했다. 김 전 대통령은 이 전 총리 만큼 정치적 위상이 추락하진 않았으나 1992년 대선 패배 이후 1995년에 이르러 민주당 내부에서 이기택계와 동교동계의 갈등으로 당을 완전히 장악하지 못 한 상황이 펼쳐졌던 만큼 신당 창당의 동기가 생겼던 부분이 있다. 김 전 대통령의 액션은 적중했고 새정치민주회의는 1997년 대선 이후 집권 여당이 되었다.

 

이 전 총리와 김 전 대통령의 경로는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그때는 김 전 대통령 외에 다른 유력 주자가 없었지만 현재 ‘이재명과 이낙연’의 정치적 무게감은 게임이 안 된다. 그래서 속이 탔는지 이 전 총리는 연설을 마치고 진행된 광주전남 기자들과의 간담회 자리에서 “광주는 정치적으로 선구자적인 역할을 해왔다. 민주당 후보를 바꿔야 한다고 요구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 대표를 대놓고 직격하며 ‘이재명 교체론’을 띄운 것인데 “헌정회 원로 정치인들의 말을 들어보면 민주당 후보를 교체해야 마음 편하게 투표할 수 있겠다는 국민들이 많다고 한다”고 환기했다.

 

이재명 대표 선거법 재판 2심 선고가 분수령이 될 것이다.

 

중도와 보수진영을 중심으로 이재명 공포 심리가 만연한 만큼 민주당 후보 교체론에 불이 붙으면 실제로 교체되진 않더라도 이 전 총리의 입지가 확장될 여지는 있다. 적어도 이 대표 말고 민주당 내에 있는 김부겸 전 총리, 김경수 전 경남지사, 김영록 전남지사 등은 이 전 총리에 비해 중량감이 낮다. 결론적으로 이 전 총리는 민주당을 넘어 야권 전체에서 ‘이재명 일극체제’가 굳어지고 있는 형국에 균열을 내기 위해 ‘개헌론’과 ‘김대중 모델’을 들고 나온 것이다.

 

 

전남일보는 사설을 통해 이 전 대표에 대해 아래와 같이 묘사했다.

 

이 전 총리의 광주 토론회는 단순한 지역 방문을 넘어 다층적 목적이 담긴 정치적 행보다. 이 전 총리의 광주행이 혼돈의 대한민국 정치를 정상화 시키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 지난 대선과 총선 과정에서 보여준 이 전 총리의 정치는 많은 이들을 실망하게 만들었다. 다양한 의견과 토론이 사라진 민주당, 원칙과 가치를 저버린 민주당의 오늘엔 분명 이 전 총리가 져야할 책임이 있다. 탈당과 창당 등의 과정도 아쉽다. 책임있는 정치인이 당내에서의 역할을 포기하고 탈당을 택한 것도 그렇지만 ‘제3지대 빅텐트를 치겠다’며 자신의 정체성을 버린 행보는 새로운 미래를 지향하겠다는 가치와 맞지 않는다. 민주당에서 혁신을 위해 함께하고 대선 경선 과정에서 줄곧 이 전 총리를 도왔던 인사들이 이 전 총리를 외면한 것도 서글픈 일이다. 그렇더라도 이 전 총리는 풍부한 정치 경험과 리더십을 가진 대한민국 정치의 자산임은 분명하다. 중도적 이미지와 포용적 정치 성향도 양극화된 작금의 정치 구도를 깨뜨릴 대안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정치와 의식의 변화가 절실한 지금, 이 전 총리가 분열과 증오로 점철된 정치, 어디에도 마음 두지 못 하는 국민들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주길 기대한다.

 

전남일보가 꼬집었듯이 지난 총선에서 이준석계의 개혁신당과 무턱대고 손을 잡았다가 파기하는 등 여러 실책들을 반추해봐야 한다. 덩치만 키운다고 될 일이 아니었다. 이 전 총리가 노려야 할 타겟은 민주당 비이재명계와 중도와 무당층이다. 보수진영이 아니다. 이번에는 새로운미래(현 새미래민주당) 몰락 패턴과는 다르게 정확한 타겟을 잡아 제대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을지 지켜봐야 할 일이다.

 

톡 까놓고 말해서 이 전 총리 스스로도 현실적으로 대권을 차지할 수 있다고 판단하진 않을 것 같다. 다만 작년 총선 실패 이후 완전히 사라진 존재감을 되찾는 정도로만 역할을 해볼 수 있다고 가늠했을 것이다. 대통령 빼고 모든 높은 자리를 다 맡아본 이 전 총리가 현실감각을 망각한 채 대권 욕심을 부리는 것이라고 단정하고 싶지 않다. 아마도 이 전 총리의 동기에는 ‘위기의식’과 ‘부채의식’이 있을 것이다. 아래와 같은 맥락이다.

 

나는 작년 4월 국회의원 선거에서 광주시민들의 매서운 질책을 받았다. 그 후로 이제까지 성찰의 시간을 가졌다. 그 선거에서 정치가 혁신되지 않으면 대한민국이 위기에 빠질 것이라고 말씀드렸다. 불행하게도 나의 우려는 현실이 됐다. 정치는 험악해졌고 위기는 심각해졌다. 나는 대한민국의 위기를 외면할 수 없었다. 그래서 나의 충정을 국민 여러분께 말씀드리기로 했다. 지금 대한민국이 위험하다. 행정, 입법, 사법 모두 허물어지고 있다. 국민은 예전보다 극심하게 분열했다. 한해 자영업자 100만명이 폐업할 만큼 민생이 도탄에 빠졌다. 북한의 동향과 미국 트럼프 정권의 관세 전쟁 등 외부환경이 심상치 않다. 한류로 쌓은 국가 이미지가 계엄으로 무너졌다. 그렇게 총체적 위기가 몰려왔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 위기에 대처하기는커녕 정치로 내전을 치르고 있다.

 

 

사실 이 전 총리는 매번 정치적 대의명분으로 ‘위기론’을 내세웠다. 국무총리일 때도, 당대표가 됐을 때도, 코로나 국난극복위원장이 됐을 때도, 2020년 총선 선거대책위원장일 때도 사이클처럼 위기 상황 극복을 자신의 정치적 사명으로 여기면서 투지를 다졌다. 현 시점에서 대한민국이 위기가 아니라고 할 사람은 아무도 없겠지만 이 전 총리에게 위기 극복 문법은 자주 사용하는 것이며 그만큼 익숙하다. 나름 통한 적도 꽤 있다. 이번에는 위기론 외에 다른 정치 전략들을 꽤 준비해서 등판한 모양새이긴 한데 어떤 성과를 낼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솔직히 비관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전 총리의 사자후에는 틀린 내용이 없는 것 같다.

 

지금의 위기 사태가 이번에 갑자기 생긴 것은 아니다. 그동안 감춰졌던 대한민국의 취약 또는 추악한 실상과 오랜 숙제가 이번 위기를 맞아 한꺼번에 표출됐다. 우리 민주주의의 잠재돼 있던 약점과 위험 요인도 동시에 드러났다. 그런 약점과 위험 요인을 최소화하고 오랜 숙제를 해결하며 제7공화국을 여는 국민적 결단이 필요하다. 그런 결단 없이 이대로 간다면 우리는 예정된 비극을 겪으며 침몰의 길로 들어설 수도 있다. 지금 국민의힘은 윤석열 대통령의 계엄 선포마저 두둔하고, 민주당은 이재명 대표의 사법 리스크를 호도하고 있다. 그것은 대한민국을 예정된 비극으로 끌고 가는 위험한 일이다. 만약 국민의힘이 계엄 선포를, 민주당이 사법 리스크를 정리하지 않은 채로 대선에 임한다면 대선 후에도 지금 같은 혼란이 계속되거나 진영만 바꾸어 혼란이 이어질 것이다. 그것이 예정된 비극의 서막이다. 그런데도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 심판과 이재명 대표의 여러 재판을 온갖 방법을 동원해 지연시키는 법꾸라지 행태에 국민은 진저리를 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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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효영

평범한미디어를 설립한 박효영 기자입니다. 유명한 사람들과 권력자들만 뉴스에 나오는 기성 언론의 질서를 거부하고 평범한 사람들의 눈높이에서 사안을 바라보고 취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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