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미디어 박효영 기자] 가수 휘성이 세상을 떠났다. 비보를 접하고 가슴이 무너져내렸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휘성 폴더를 만들어서 그의 음악을 정주행했을 만큼 찐팬이었기 때문이다. 꽤 많은 가수들의 콘서트에 갔었는데 유독 휘성의 공연을 가보지 못 한 것이 한으로 남을 것 같다. 안 그래도 곧 전남 광주에서 콘서트를 한다길래 예매하려고 기다리던 중이었다.

휘성은 학창시절 나의 우상이자 지금까지도 소중한 추억상자 그 자체다. 그가 발매한 거의 모든 곡들을 좋아했고 따라 불렀다. AR과 함께 거친 가성과 폭풍 애드리브를 구사하던 한국형 R&B도 좋았고, 진한 발라드도 좋았고, 랩도 좋았다. 그는 2002년 데뷔해서 6장의 정규 앨범, 5장의 미니 앨범을 비롯 수없이 많은 곡들을 냈다. 좋아하는 곡 리스트만 뽑아봐도 무지 많은데 △1집(안되나요/전할 수 없는 이야기/하늘에서/Incomplete) △2집(다시 만난 날/I Am Missing You/With Me/사랑하지 않을 거라면/Player/미인) △3집(누구와 사랑을 하다가/불치병/7Days/일생을/Dear My Friend) △4집(일년이면/울보/하늘을 걸어서/Good-Bye Luv/내가 너를 잊는다) △5집(사랑은 맛있다/다쳐도 좋아/만져주기) △6집(주르륵/사랑 그 몹쓸병) 등이 있다. 그 이후로 발매한 미니 앨범과 싱글곡 및 OST 곡들도 챙겨 들었다.
휘성은 스스로 “노래하는 사람”으로 자기 정체성을 정했다. R&B와 흑인 음악에 대한 열정도 데뷔 초기를 지나면서 점점 더 노래를 잘하는 음악인이라는 본질적인 자기 정체성으로 확장됐다. 그저 노래를 조금이라도 더 잘해보기 위해 전국 팔도를 누비며 노래 잘하는 고수들을 찾아다녔던 그였다. 데뷔 전만 해도 댄서였던 그는 노래에 소질이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뼈를 깎는 노력으로 대한민국에서 손꼽히는 보컬리스트가 됐다.
노래가 아니면 난 사회에 발 디딜 틈이 없다. 내가 갖고 있는 노래에 손을 놓아버리면 난 전혀 인정받지 못할 것이다.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거라는 걸 나 스스로 잘 안다. 노래하고 음악 만드는 것 말고 내가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나. 그래서 태풍이 오든 우박이 내리든 그냥 맞는 거다. (가장 영광스러웠던 때는) 대한민국의 R&B 가수 하면 휘성을 꼽았을 때. 내 첫 번째 목표를 20대에 이뤘으니까. 그 다음부터는 R&B를 놓았던 것 같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나니 내가 굳이 R&B에 목 맬 필요가 있을까 싶더라. 나는 음악을 하는 사람이지 R&B를 하는 사람이 아니니까. R&B는 음악에 속하지만 음악이 R&B는 아니니까. 나를 살게 하는 건 노래다. 딱 노래. 매일 생각한다. 데뷔 때부터 그랬다. 진짜 24시간 계속.
휘성의 삶과 철학이 잘 담긴 2016년 에스콰이어 인터뷰를 추천하고 싶다. 그 당시만 해도 그는 전성기에서 내려오는 과정이었다. 화려한 시절을 지나 가수 인생 2막을 맞이하는 그는 “실패”를 통해 성장하고 있었다.
실패를 견디는 건 체력과 비슷하다고 본다. 나이에 따라 피로가 풀리는 기간이 현저하게 다르다. 사건을 일으켰을 때 수습할 수 있는 기간도 마찬가지다. 젊으면 좀 더 잘 용인된다. 20대 때까지는 내가 말썽꾸러기인 양 행동해도 스스로 수습할 수 있는 여력이 있다고 생각했다. 30대 때는 20대의 경험을 발판 삼아 조심해서 걸어가야겠다고 생각했고. 큰 틀에서 보면 그런데 옆에서 보는 친구들은 “넌 참 무식하게 사는 것 같다”고 말한다. (실패했던 적이) 어마어마하게 많지. ‘사랑은 맛있다’ 했을 때. 랩 하고, 춤추고, 노래하고, 이 셋을 다 잡았냐? 그렇지는 못 했다. 1위를 몇 번 했지만 그건 휘성이라는 이름으로 살아남은 거다. ‘사랑은 맛있다’를 지금 들으면 좋다는 사람이 많지만 그때는 무리수였다. 평단의 폭격을 맞고 내 팬의 반 이상이 떨어져나갔다. 그래도 어떻게든 살아남았지만 다음의 ‘별이 지다’를 했을 때 처음으로 1위를 못 했다. 완전히 깨졌다. 그걸 겨우 ‘인섬니아’로 만회했는데 그다음에 정말 심혈을 기울인 <보콜릿> 앨범이 타이틀 미스로 묻혀버렸다. 내가 들어도 그 앨범은 수작이고 좋은 평도 너무 많았는데. 그다음 ‘결혼까지 생각했어’로 다시 기어올라서 ‘가슴 시린 이야기’로 어느 정도 안정적으로 가다가 제대하고 <히든싱어>로 터졌다. 그리고 ‘나이트 앤드 데이’라는 곡으로 또 망가졌다. 다음 상황이 지금 현실이다. 이게 내 삶이다. 됐다가 안 됐다가, 됐다가 안 됐다가.
매번 실패와 도전을 반복하던 게 휘성의 삶이지만 말처럼 그리 쉽지 않았을 것이다.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 실제로 43년 인생 내내 그를 괴롭혔던 3가지가 있는데 △극심한 우울증 △비염으로 인한 불면증 △다이어트 압박 등이다.
휘성은 열등감을 극복하기 위해 죽기살기로 노력하며 결국 훌륭한 가수가 됐지만 그만큼 심각한 우울증으로 고통 받았다. 유명 연예인의 삶을 살면서도 카메라 울렁증을 쉽게 떨쳐버리지 못 했고, 실제로 20여년 전 일찌감치 정신과에서 우울증 진단을 받았다. 당시 병원에서는 휘성의 우울증 수위가 너무나 위험해서 놀랐을 정도였다고 한다. 휘성은 2023년 인스타그램을 통해 “우울장애가 가짜라던가 꾀병이라던가 망상이나 착각이라고 주장을 하는 인간이 있다면 현 시대 최악의 살인마는 그자”라며 “덕분에 더 죽고 싶어졌다”고 고통을 호소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만성 비염으로 인해 잠을 자지 못 했던 그는 배로 스트레스를 받았다. 뜬눈으로 밤을 보낼 때가 많아서 더욱더 우울해졌을 것이다.
휘성의 연예인 인생에 가장 큰 위기를 가져다준 것도 결국 우울증과 불면증으로 인한 약물 의존 때문이었다. 휘성은 지난 2011년 군복무 시절 다른 연예인들의 프로포폴 불법 투약 혐의와 맞물려 처음으로 같이 거론됐었다. 그때는 원형탈모와 허리디스크 등 의료 목적이란 점이 명백하게 입증되어 법적 책임을 질 일이 없었다. 하지만 그에 대한 프로포폴 투약 의혹은 끊임없이 제기됐으며 2019년 방송인 에이미의 폭로로 인해 또 다시 구설수에 올랐다. 휘성은 통화 녹취까지 공개하며 적극 해명했지만 이내 2020년과 2021년 프로포폴 관련 수사와 재판을 받았으며 최종적으로 유죄 판결(징역 1년형 집행유예 2년)을 받았다. 그 이후로 긴 터널과도 같은 암흑기를 보냈는데 오직 콘서트로만 활동하는 물의 일으킨 가수 신세가 됐다.
그가 2008년 발매했던 곡 ‘별이 지다’는 사랑했던 연인이 스타가 되어 자신에게 소홀해지게 된 심정을 하소연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구체적으로 상실감을 표현하는 가사가 있는데 “왜 이리 왜 이리 왜 이리 왜 이리 내 맘은 텅! 비어버린 쓸모 없는 상자 같은지”라는 대목이다. 데뷔 이후 10년간 그 어떤 작은 구설수도 없던 휘성이었기에 한 순간에 밑바닥으로 떨어진 자신의 처지를 받아들이기엔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게 견뎌내기 어려운 일생일대의 위기를 맞아 5년을 버텨냈다.
그는 세상을 떠나기 직전 인스타그램에 올린 마지막 게시물에서 “다이어트 끝. 3월15일에 봐요”라고 알렸다. 대구 공연을 앞두고 다이어트에 여념이 없었는데 실제로 그는 다이어트로 인한 압박감에 시달려왔다. 암흑기에 올라온 콘서트 직캠 영상을 보면 우리가 알고 있던 휘성의 모습과는 달리 살이 찐 상태를 알 수 있다. 휘성은 태생부터 살이 잘 찌는 체질이라 댄서로 활동하던 청소년 때부터 90kg에 육박한 몸무게였다고 한다. 하루종일 연습실에서 춤 연습을 하고 집으로 돌아가면 녹초의 몸으로 극한의 운동 프로그램을 수행해서 칼로리를 태웠다. 고구마, 우유, 계란, 닭가슴살, 양상추 샐러드 등 저열량 식단으로 자기 학대를 해가며 죽을 힘을 다해 살을 뺐다. 그렇게 대중들 앞에 선보일 수 있는 멋진 몸매를 만드는 데 성공했지만 긴 활동 기간 내내 다이어트와 요요로 점철된 힘겨운 쳇바퀴를 끊임 없이 돌렸다. 그는 아래와 같이 다이어트 스트레스를 고백했다.
정말 어떻게 해야 살이 빠질까. 어제 평생 살이 안 빠지는 꿈을 꿨다. 지방은 나에게 감옥과 같다. 2년 전만해도 10kg을 감량하는데는 3주컷이였으나 요즘은 좀 더 더디게 빠지는 듯 하다.
휘성은 20년 전 <놀러와>에 출연해서 무차별적인 외모 지적으로 힘들었던 적이 있다고 토로한 바 있다. 다이어트와 외모 강박이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 간접적으로나마 느낄 수 있다.
서러웠던 기억은 되게 많다. 그중에 제일 많이 서러웠던 부분이 외모로 사람 기분 죽일 때다. 지금은 굉장히 열심히 노력해서 많이 용됐는데 지금은 그 작곡가가 활동을 하는지 안 하는지 모르겠다. (해당 작곡가로부터 곡을 받고 녹음을 하고 있는데) 너 얼굴은 왜 그러냐. 얼굴! 그것까지는 열 안 받는다. 그때 당시에 너무 많이 들었던 말이었다. 근데 하긴 그게 니 잘못이냐. 니네 부모를 원망해야지. 거기서 정말 무슨 생각이 들었냐면 이거 다 그만두고 그냥 사고를 칠까.
그래도 휘성은 긍정의 마인드로 계속 나아갔다. 끝까지 분투했으며 살아냈다. 그러나 지금 그는 없다. 그의 부재가 여전히 비현실적이다. 사인은 자살 또는 약물 요인 둘 중 하나라고 하는데 무엇이 됐든 휘성이라는 사람에 대해 감사와 존경, 애도의 마음을 보내고 싶다. 그의 노래 ‘나락’에는 이런 대목이 있다.
안 울게요. 편하게 가세요. 안 볼게요. 떠나는 뒷모습. 안 빌게요. 막지 않을테니. 잘가세요. 행복하세요.
사실 나의 최애곡은 ‘다시 만난 날’이다. 꿈에서라도 그가 노래하는 모습을 다시 보고 싶다.
떠나지 말라고 거기 서 달라고 가는 니 등 뒤에 말 못 하고 혼자 울고 있었는데. 이대로 니가 다시 돌아선다면 널 다시 말 못 하고 보내고 나면 또 니가 없던 날처럼 나 멍하니 너의 생각에 니가 다시 와주기만 애태우며 지낼텐데.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 예방 상담 전화 ☎109 또는 자살 예방 SNS 상담 “마들랜”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