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미디어 박효영 기자] 5월말(29일) 초여름의 땡볕이었는데 사전투표를 하기 위해 지하철역에서 내려 10분간 걸었다. 광주광역시 북구로 전입신고가 되어있지만 서울시 관악구에서 투표를 하는 것이기 때문에 관외로 분류됐고 15분 정도 더 기다렸다. 사람들의 열기가 모여 더 더웠는데 투표를 하기 위해 묵묵히 줄서서 기다리는 시민들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사전에 두 차례 정도 누구를 찍을지 나름대로 공부를 했다. 1명만 뽑으면 되는 대통령 선거와 달리 지방선거는 무려 7명(교육감/광역단체장/광역의원 비례와 지역구/기초단체장/기초의원 비례와 지역구)이나 뽑아야 하기 때문에 반드시 공부를 해야 한다. 지나가다 마주치는 선거운동의 이미지로는 부족하다.
신분증을 내고 투표지 7장과 견고한 봉투가 인쇄되기까지 좀 기다렸더니 그새 내 손에 쥐어졌다. 투표소 안에 들어가서 미리 점찍어둔 후보와 정당에 빠르게 도장을 찍고 밖으로 나왔다. 봉투에 투표지 7장을 넣고 하얀색 스티커를 떼서 밀봉한 뒤 투표함에 넣었다. 내 투표지는 6월1일 본투표 이전에 광주 북구 관내로 도착할 것이다.
지난 대선 당시에도 그랬지만 최근 들어 투표장에 갈 때마다 “정말 돈이 많이 들긴 들겠다”는 생각이 머릿 속을 지배했다. 투표장, 투표함, 신분 확인 장치, 프린트기, 선거사무원 인건비, 투표용지 등등. 모든 게 비용이기 때문이다. 총선에 들어가는 비용이 5000억원 가량이니까 지방선거는 더 많이 들어갈 것이다. 통상 2년에 한 번 꼴로 총선, 지방선거, 대선, 보궐선거 등이 이어지곤 하는데 우리는 왜 이렇게 많은 돈과 시간을 들여 선거를 치르는가?
얼마전 주변 지인으로부터 “도무지 누가 누군지 모르겠어서 투표를 안 하겠다”는 말을 들었다. 공감이 됐다. 뽑을 사람이 너무 많고 후보자도 많기 때문이다. 소위 정치 고관여층을 제외하고 정치에 관심을 두고 있는 시민들은 그리 많지 않다. 체감상 전국민 10명 중 6명 정도는 정치에 무관심한 것 같다.
그런데 만약 우리가 투표권이 없는 중국이나 북한, 사실상의 독재국가에 가까운 러시아에서 태어났다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대다수 국민의 동의를 받지 않는 독재자가 자기 맘대로 공적 자원을 쥐고 흔드는 상황은 그 자체로 끔찍하다. 이미 우리도 35년 전에 목숨을 걸고 민주화운동을 해서 투표권을 쟁취했는데 그만큼 “우리 손으로 우리의 대표자를 뽑는 것”은 매우 중대한 헌법적 권리라고 할 수 있다.
왜 투표를 해야 할까? 민주주의 국가에서 대다수 시민들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공적 의사결정을 대신해서 수행하는 공직자를 선택하는 것이 선거이기 때문이라고 말하면 뭔가 와닿지가 않는다. 그렇다면 내 지갑에 돈이 얼마 나가고 들어오는지를 결정하는 사람들을 뽑는 이벤트라고 생각해본다면 어떨까. 실제로 지방 정치인들의 권한이 중앙 정치인에 비해 미약하더라도 직간접적으로 얼마든지 교육비, 집값, 물가, 교통비 등등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생업이 너무 바쁘더라도 1시간만 시간을 내어 공보물을 살펴보고 투표장에 가야만 하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몰라서? 바빠서? 모르면 알아봐야 하고 바쁘면 미리 스케줄을 조정해야 한다. 돈을 많이 들여서 유권자들의 선거권을 보장해주고 있는데 갈수록 좀 더 편리하게 투표할 수 있는 환경이 갖춰지고 있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투표권을 갖고 있는 만 18세 이상 유권자는 4430만3449명이다. 이들이 모두 투표를 했으면 좋겠다. 최소한 잘 모르기 때문에 투표를 하지 않겠다는 말이 나오지 않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