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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호 PD “길, 노홍철, 정형돈 하차 이후 무한도전의 집단지성 무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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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미디어 박효영 기자] 김태호 피디(테오)의 생각이 궁금했다. 정말 <무한도전>은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걸까. 우선 <무한도전>이 종영할 수박에 없는 이유부터 살펴봐야 한다.

 

김 피디는 “(2014년) 선거 특집으로 우리의 방향성을 잡았고 명확한 결과를 잡았다. 이 특집으로 향후 10년에 대한 방향성을 잡아가고 있었는데 큰 위기가 찾아왔다”고 말했다. 고정 멤버였던 길씨, 노홍철씨, 정형돈씨가 연이어 하차하고 말았다.

 

 

김 피디는 21일 14시 광주광역시청 대회의실에서 열린 특강의 연사로 초청됐다.

 

김 피디는 2014년 당시 중앙선거관리위원회로부터 지방선거 ‘사전투표제’에 대한 홍보 요청을 받고 ‘선택 2014’를 기획하게 됐다. <무한도전> 향후 10년을 책임질 리더를 뽑는 진지한 선거 컨셉이다. 해왔던 걸 더 잘 해보자는 안정적인 후보 유재석씨와, 가족까지 공개해보자는 급진적인 노홍철씨의 투톱 대결 구도가 형성됐다. 김 피디는 그 과정에서 매너리즘에 빠질 수 있었던 현실을 극복하고 실제로 <무한도전>의 장기 비전을 구상했을 만큼 고무적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악재가 터졌다.

 

선거 특집 오프닝까지 다 찍었는데 길씨가 음주운전을 해서 CG로 다 도려냈던 상황이 왔다. 나머지 멤버들 전체와 맞먹는 의견을 가진 노홍철씨도 음주운전을 해서 하차했고, 개그맨 출신이지만 나와 함께 버라이어티를 이끌어가며 조율 능력이 있는 정형돈씨까지 (2015년 11월 공황장애 등으로) 하차해버리니까 무한도전이 바닥에서 일어날 수 있었던 멤버들의 다양한 의견을 하나로 모아가는 집단지성 체제가 무너져버렸다.

 

그때 김 피디는 내부적으로 “어떻게든 버텨보자”는 마음으로 위기를 돌파하려고 했지만 너무 힘겨웠다. 김 피디는 “새로운 멤버들을 뽑아서 채우려고 해도 시청자들에게 익숙하지 않으니까 계속 거부되고 멤버들은 멤버들대로 고생했다”고 말했다.

 

녹화장 자체가 즐겁지 않은 상황이 계속 반복돼서 우리가 즐겁지 않은데 편집으로 가리는 것은 한계가 있지 않을까. 그래서 저희는 회사에다 일단 멈추자는 제안을 했다. 프로그램을 멈출 때 나는 종영이란 표현을 쓰고 싶었지만 멤버들과 회사에서는 다시 돌아온다 즉 시즌 종료로 쓰고 싶었고 정리가 안 된 상황이었다.

 

그래서 김 피디는 “다시 돌아올거면 기존에 하차했던 멤버들도 포함해서 시청자가 가장 좋아했던 모습으로 돌아와야지 끝났을 때의 모습으로 돌아올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노홍철씨와 정형돈씨의 컴백은 어려워졌고 그렇게 <무한도전>은 2018년 3월 종영했다.

 

 

김 피디가 말하는 집단지성 체제라는 것이 무엇인지 더 깊게 들어가보자. 김 피디가 <무한도전>에 합류하게 됐던 2006년만 해도 비인기 프로그램의 설움이 가득했었다.

 

무한도전의 시작은 그렇게 사랑받지 못 했었다. 2005년 4월23일 첫 방송됐을 때 4%가 가장 높은 시청률이었다. 지금 4%는 tvn에서도 꽤 높은 시청률이지만 당시의 4%는 새벽에 애국가 수준이었다. 어느 누구도 이 프로그램을 하는 것에 관심이 없었다. 가끔 길에서 보면 소랑 줄다리기 할 때부터 재밌게 봤다고 하시는데 아마 나중에 무한도전이 잘 돼서 재방송을 많이 한 걸 본 것 같다. 그때는 내가 담당 피디가 아니었다. 어차피 없어질 프로그램에 들어가서 노리는 게 있었다.

 

김 피디는 MBC 소속이었지만 2005년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X맨>을 즐겨 보고 위안을 받았다면서 “사실 어떻게 하면 유재석씨와 같이 일을 한 번 해볼 수 있을까? 그런 생각으로 들어갔던 게 무한도전인데 나도 그냥 들어가서 막상 해봤는데 재밌었다”고 운을 뗐다.

 

<무한도전> 합류 초창기 터닝포인트가 됐던 소위 ‘만두 사건’이 일어났다. 대기실에서 쉬고 있는 정준하씨가 배고파서 먹고 있던 만두를 누가 몰래 먹었다고 버럭을 했다. 김 피디는 그런 상황 자체가 황당하면서도 뭔가를 깨닫게 됐다.

 

(합류 초창기에는 인기가 시원치 않았는데) 어떻게 하면 시청자들의 관심을 좀 받을 수 있을까를 고민하던 찰나에 하나의 해프닝이 있었다. 소위 만두사건이 생겼다. 멤버들이 녹화를 힘들어해서 쉬는 시간을 줬더니 정준하씨가 냉동 만두를 편의점에서 사와서 좀 먹다가 갑자기 버럭 화를 냈다. 어떤 놈이 내 만두 다 먹었어? 다같이 둘러 앉아있었는데 다들 놀랐다. 아무리 봐도 자기가 다 먹은 것 같은데 갑자기 왜 화를 내지? 근데 박명수씨가 2개 정도 먹었나보다. 정준하씨가 그게 너무 기분 나빴는지 박명수씨의 입을 벌려서 입안의 찌꺼기를 빼려고 했는지 그러면서 손이 입에 닿아서 싸움이 났다.

 

김 피디는 방송계에 입문하면서 유명 연예인들과 우아하게 일하는 로망을 꿈꿨는데 “막상 만두 하나로 입 벌리면서 싸우는 모습을 보니까. 놀랬다”면서 “급하게 카메라를 대기실로 갖고 오라고 했다. 문을 열고 ENG 카메라가 들어왔는데 갑자기 멤버들이 하하하 웃으면서 일렬로 서더라. 그것도 너무 놀라웠다”고 풀어냈다.

 

아 이분들은 카메라 앞에서 항상 사람 좋은 척, 누군가 이렇게 해야 돼! 그런 것에 따라가고 있구나. 그때 내가 지난 두 달 동안 촬영했던 것보다 지금 대기실에서의 모습이 더 재밌다는 느낌이 들어서 이걸 살려가봐야지 그런 생각을 했다. 그 다음주부터 멤버들이 쉬는 시간에 뭘 하는지 몰래 다 찍고, 밥도 밖에서 먹지 않고 도시락을 시켜서 앉아서 먹으면서 나오는 대화를 몰래 찍어서 내보내다 보니 반응이 점차 왔다.

 

 

그렇게 김 피디는 ‘일찍 와주길 바래’와 같은 특집을 기획하게 됐고 “그런 리얼한 상황들을 방송으로 보여줬더니 더욱 폭발적인 반응이 나왔다”고 강조했다. 이제는 멤버들의 인위적인 방송 이미지가 아니라 “라이프가 더 중요해진 상황이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방송과 일상의 경계가 모호해져버려서 안 좋은 측면도 있을 거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멤버들의 철학과 고민이 프로그램 제작에 반영되는 구조가 구축되기도 했다.

 

멤버들이 일주일 동안 뭐 했는지, 이 사람들이 생각하는 프로그램의 방향성은 무엇인지 등등. 이런 것들에 대해 멤버들과 계속해서 대화를 하게 됐다. 멤버들 각각의 캐릭터를 살리기 위해서 전담 카메라가 있어야겠다고 생각해서 카메라를 여덟 대로 늘렸다. 여덟 대로 늘리면서 편집 기술로 시도해볼 수 있는 것들이 많아졌고 이 모든 것들을 변화시킨 게 만두 사건에서 시작됐다.

 

김 피디는 “현장에서 너무 외롭다”고 했다. 고독한 선장의 감정을 느끼게 되는 게 피디라는 자리다.

 

(매번 새로운 기획 특집이) 잘 될지 안 될지. 그냥 잘 될 것이라는 확신이 있는 척만 하지 안 되면 정말 숨고 싶다. 예전에 좀비 특집을 찍을 때 기자들에게 대한민국에 없는 예능을 보여주겠다고 했는데 망하고나니까 일주일 동안 엘레베이터를 못 탔다. 너무 부끄러워서.

 

혼자 고민을 다 짊어지고 있다면 너무 외롭다. 그러나 김 피디는 “멤버들과 프로그램에 대한 방향성과 정체성으로 얘기를 나누게 되다보니까 전혀 외롭지 않게 됐고 현장의 피디들이 나 말고도 5~7명이 있어서 든든했다”고 역설했다.

 

그래서 프로그램은 정말 피디 혼자 하는 게 아니고 다같이 만드는 것이란 생각이 너무 커져서 그때부터 웬만하면 언론 인터뷰가 오면 나 혼자 개인 인터뷰는 안 하려고 했다. (나 혼자 만드는 것처럼 비춰지는) 오해를 피하고 싶었다. 나보다 더 일찍 출근해서 늦게 퇴근하는 막내 작가도 있고, 막내 피디도 있기 때문이다.

 

 

집단지성 체제가 힘을 발휘했던 하나의 사례가 있다. 2014년부터 대한민국 방송계에 ‘관찰 예능’의 붐이 불기 시작했는데 그때 <무한도전>에선 크게 두 부류의 의견그룹이 있었다고 한다. 관찰 예능이 한철 인기에 불과하다고 보는 개그맨 출신 ‘형들 그룹’, 시청자들이 연예인들의 일상을 관찰하고 싶어하는 니즈를 그 자체로 인정해야 한다는 비개그맨 ‘동생 그룹’이 있었는데 양자를 통해 정반합을 모색해야 했다.

 

녹화 들어가기 전 멤버들끼리 토론을 하게 됐다. (관찰 예능 붐에 대한 두 그룹의 견해 차이가 있었지만) 둘 다 맞았다고 봤다. 물론 그걸 조율하는 게 쉽지 않았지만 선거 특집을 하게 되면서 방향성을 찾게 됐다.

 

<무한도전>은 계속해서 질문을 던지는 프로그램이었다. 김 피디는 “결과적으로 무한도전이 큰 인기를 누렸던 13년은 계속해서 화두를 던지려고 했던 시도였다”고 정의했다. 그런데 화두를 던지는 것이 어려워지는 슬럼프가 찾아왔다. 종영의 타이밍이 온 것이다.

 

꼭 이것은 이렇게만 해야 할까? 이것은 이것일까? 이건 이렇게 하면 안 될까? 저희는 궁금증을 던지고 싶었던 시간이었고 반대로 무한도전이 끝나가는 마지막 몇 년 동안은 그 질문을 드릴만한 상황이 아니었다. 이름이 무한도전이니까 끊임없이 새로운 걸 찾아가는 게 맞다고 보는데. 마지막으로 가서는 회사도 멤버들도 편안하게 안주하면서 갈려고 하는 것 같아서 이게 과연 계속 가는 게 맞느냐에 대한 고민을 했다.

 

 

<무한도전> 종영 이후 2018년 여름, 김 피디는 양승동 전 KBS 사장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양 전 사장은 김 피디에게 놀라운 이야기를 했다.

 

순간 날 스카웃하려고 하는 건가? 그런 생각이 들었는데 뜻밖의 이야기를 하더라. 무한도전 다시 시작해주면 안 되는가라고 말씀하셨다. 무한도전이 끝나면서 지상파가 다같이 무너졌다는 여론이 너무 많아서 무한도전이 다시 돌아와서 지상파가 부흥했으면 좋겠다고 하더라. 그래서 지상파에도 뭔가 새로운 예능이 필요하겠다 싶었다. 그래서 회사에도 얘기를 했던 것은 내가 만약 지금 상황에서 무한도전을 다시 해서 만약 안 되면? 나도 죽고 MBC도 다 죽게 되는 거다.

 

양 전 사장의 전화를 받은 뒤로 사색에 잠긴 김 피디는 <무한도전>을 다시 기획하지 않았고 <놀면 뭐하니?>라는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김 피디는 <놀면 뭐하니?>에서 유재석씨의 도전기를 기본 베이스로 두고 거기에 ‘부캐’라는 요소를 본격 도입했다. 2019년 7월부터 2021년 말까지 김 피디는 <놀면 뭐하니?>로 2년 반 동안 <무한도전> 못지 않은 관심과 인기를 만들어냈다.

 

 

김 피디는 <놀면 뭐하니?> 연출에서 손을 뗐고 동시에 20년간 몸담았던 MBC에서 퇴사했다. 그리고 컨텐츠 제작사 ‘테오’를 설립했다. 그 직후 제작했던 프로그램이 <먹보와 털보> 그리고 <서울체크인>이었다. <서울체크인>에 대해 김 피디는 “이효리씨가 슈퍼스타니까 무한도전 출연을 위해 서울로 올라오면 호텔을 잡아주려고 했는데 다 싫다고 하더라”며 “매번 서울에 사는 지인들 집에 숙박했던 걸 기억해서 기획을 했고 파일럿 하나 찍어놓고 티빙과 넷플릭스에 제안했다”고 털어놨다. 티빙을 선택했던 이유가 있다. 컨텐츠 제작사로서 테오의 수익모델과 직결되는 부분이다.

 

근데 넷플릭스는 저작권을 다 넘겨야 한다. 티빙은 우리 저작권을 인정해줬다. 그 저작권을 다시 tvn과 티빙에 팔아서 유통 수익도 얻을 수 있었다. 나중에 잭블랙이나 데이비드 베컴이 서울에 방문하는 컨텐츠를 다시 찍을 것이다. 이효리씨의 캐나다 체크인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체크인을 할 때 야놀자나 여기어때 등과 콜라보 커머스를 할 수 있게 됐는데 넷플릭스가 아닌 티빙과 한 것이 훨씬 좋은 선택이 됐다.

 

김 피디는 테오의 컨텐츠 활용 비전을 찾았다고 했다. 대형 OTT 업체들의 경쟁이 치열해진 만큼 결국 좋은 컨텐츠를 공급하기 위한 확보 싸움이 커질 수밖에 없는 건데 테오가 컨텐츠를 잘 만들어서 “플랫폼들을 엮어내어 잘 활용”한다면 지속적인 수익을 낼 수 있다.

 

수많은 컨텐츠 플랫폼들 사이에서 저희 같은 아주 작은 회사는, 리스크도 많지만 역으로 경쟁이 심한 시장에서 플랫폼들이 더욱더 자기들의 파워를 유지하려면 좋은 컨텐츠들을 확보하는 싸움이 될 것이기 때문에 예능 컨텐츠를 만드는 제작진들이 플랫폼들 위에 있을 수 있는 시대가 오지 않을까라는 생각으로 겁 없이 뛰어들었다. 그 이후 1년이 흘렀는데 어마어마한 넷플릭스가 어떻게 하면 저희에게 더 좋은 대우를 해줄까를 고민하고 있는 걸 보면 앞으로 좀 더 까불어도 되겠구나란 생각이 든다. 앞으로 어떤 걸 해볼까? 뭘 만들어볼까? 그런 고민을 하고 있다.

 

 

김 피디는 <대장금> 이야기를 꺼냈다. 김 피디는 <대장금>이 전세계 100개국에 수출된 만큼 어마어마한 성공을 거뒀는데 “처음 MBC에서 그 컨텐츠를 판매한 곳은 4곳(대만/홍콩/일본/중국) 밖에 안 된다”면서 어떤 컨텐츠가 터질지 모르기 때문에 작은 아이디어라도 수집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파했다.

 

(대장금이 대박난 것처럼) BTS가 빌보트차트를 석권하고, 오징어게임이 전세계 사람들의 눈과 귀를 즐겁게 할 것이라고 과거엔 상상할 수 있었을까? 그래서 지금 우리 회의실에서 이거 어떨까? 저거 어떨까? 작은 아이디어들을 기록해두는 것은 나중에라도 10년 이후라도 저희 회사와, 대한민국을 먹여살릴 수 있는 아이디어일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주 조용한 곳에서 작게 나온 아이디어라도 쉽게 버리지말자고 해서 계속 기록으로 남기고 축적을 해놓고 있다. 결국 5년 뒤면 편집실에 있는 후배들의 자리를 AI가 대체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AI와 싸울 필요가 없다. 그러면 뭘 갖춰야 하느냐. 결국 생각하고 새로운 걸 만들어내는 기획 능력이 우리가 살아남을 무기다.

 

한편, 김 피디는 질의응답 시간에 국민 대다수의 인기를 얻는 컨텐츠가 출현하는 것이 점점 더 어려워지는 시대로 진입했다면서 타겟팅 전략을 강조했다. 김 피디는 “요즘 방송과 컨텐츠쪽으로 꿈을 갖는 분들을 많이 만나는데 국민 드라마와 국민 예능이 쉽지 않은 시대가 됐다”며 “타켓층이 명확해서 단 1명만이라도 10명, 100명만 만족할 수 있다고 하면 그 컨텐츠는 존재할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저희도 컨텐츠를 만드는 사람들인데 주말 지나서 월요일에 출근해서 작가들과 피디들에게 지난주에 재밌게 본 걸 물어보면 다 다르다. 뭘 봤는지도 모르고. 이런 시대에 모든 연령층과 모든 세대가 한꺼번에 좋아하는 컨텐츠를 만드는 것은 힘든 일이다. 그래서 갈수록 명확한 타겟팅을 해서 접근하는 게 좋다는 생각을 해봤을 때, 나는 가장 즐겨보는 게 피식대학 등인데 이처럼 유튜브나 여러 OTT 채널들이 있으니까 그에 맞게 누군가가 보고 싶어하는 내러티브를 만들어낼 능력을 길러서 잘 만들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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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효영

평범한미디어를 설립한 박효영 기자입니다. 유명한 사람들과 권력자들만 뉴스에 나오는 기성 언론의 질서를 거부하고 평범한 사람들의 눈높이에서 사안을 바라보고 취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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