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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해한 예술작품’ 해석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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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미디어 박효영 기자] 기괴한 작품들의 향연이었다. 사실 도슨트(해설사)의 설명이나 가이드북이 없다면 이 작품으로 무슨 메시지를 주고 싶은 것인지 도무지 알기가 어렵다. 그러나 아무 사전 설명을 듣지 않고 혼자 둘러봐야 한다. 원래 예술작품이란 게 쉽지 않지만 쉽지 않기 때문에 해석의 자유가 있는 법이다.

 

 

지난 4월7일 제14회 광주비엔날레(광주 북구 용봉동)가 개최됐다. 7월9일까지 석 달간이다. 이숙경 예술감독이 총괄 지휘자의 역할을 맡았다. 2006년 이후 17년만에 한국인이 예술감독을 맡게 됐는데 그만큼 광주비엔날레는 세계적인 예술전시로도 유명하다. 이 감독은 이번 광주비엔날레의 주제를 <물처럼 부드럽고 여리게>로 잡았다. 노자의 ‘도덕경’에 나오는 표현인데 서로 다른 존재들의 이질성을 모두 포용하는 물의 속성을 담아냈다고 한다.

 

우리는 함께 살아가야 하고, 그것은 분열과 차이를 인정하는 데서 시작한다. 물의 은유를 사용한 것은 이런 이유에서였다.

 

 

사전에 티켓을 구매한 뒤 4월30일 일요일 점심 즈음 방문해서 2시간 동안 보고 왔는데 아직도 기억이 생생한 작품들이 있었다. 4전시관에 있는 ‘질병 투척기’란 작품이 대표적이다. 석회암 동굴이나 고드름이 연상되는 흉측한 것들로 둘러쌓인 미니 침대 같은 컨셉인데 그 끝엔 ‘징’이 있다. 꽹과리와 징의 그 징이다. 도슨트가 설명하기로는, 해당 작품을 만든 과달루페 마라비야(본명 이르빈 모라잔)가 실제로 암에 걸린 사람들을 그곳에 눕히고 징을 쳤다고 한다. 질병을 날려버리는 일종의 치료 의식인 셈이다. 그런데 왜 그렇게 징그러운 것들을 데코 삼아 줄줄이 걸어놨던 걸까. 집에서 곰곰이 생각해보니 마라비야 작가 본인의 상처를 반영한 것 같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1976년생 중남미 국가 엘살바도르 출신 마라비야는 8살 때 ‘살바도르 내전’으로 인해 홀로 미국으로 피난을 가게 된 기구한 삶을 살아왔다. 그는 자신과 같은 이주자들의 고통과 비극을 작품에 녹여내기 위해 노력한 예술가로 평가 받는다. 실제로 중남미 지역 어디든 달려가서 이민자들이 거쳐간 죽음의 경로를 추적하며 그들의 이야기를 들었다고 한다. 이민자들이 들려준 이야기로 ‘트라우마 공동체’를 조성하고 싶었던 거다. 2011년 마라비야도 암에 걸려 크게 고생했는데, 불법체류 이민자로서 필연적으로 지니게 된 깊은 트라우마가 암까지 유발했다는 우울감이 그를 짓눌렀다. 그때부터 질병 투척기를 기획하게 됐다. 질병 투척기에는 해부학 모형, 소라껍질 등이 덕지덕지 붙어 있는데 전부 중남미 지역 곳곳을 돌며 수집한 것들이다.

 

 

 

나쁜 기운과 끔찍한 기억들은, 전부 질병 투척기에 있는 흉측한 조형물로 빨려들어가길 바란 것 같다. 마라비야는 징에서 나오는 진동음이 환자의 리프레시를 돕고 회복의 상징으로 기능할 것이라고 믿었다. 질병 투척기를 지긋이 바라보고 있으면 불법체류자들의 저항감 같은 것이 느껴지기도 한다.

 

이번 광주비엔날레는 총 5개의 전시관과 4개의 소주제로 구성돼 있다. 꽤 넓은 전시관을 도장깨기 하듯 다 둘러보고 여러 번 이동해야만 한다.

 

△1전시관 전시 대주제에 대한 인트로격 작품들이 세팅돼 있음

△2전시관 첫 번째 소주제 ‘은은한 광륜’(개인의 삶 속에서 발견되는 저항과 연대의 방식)

△3전시관 두 번째 소주제 ‘조상의 목소리’(광주의 예술적 감수성이 다른 문화권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탐구)

△4전시관 세 번째 소주제 ‘일시적 주권’(디아스포라, 탈식민주의적 사고와 실천)

△5전시관 네 번째 소주제 ‘행성의 시간들’(지구를 무경계의 공간으로 상정)

 

도슨트들이 1시간 간격으로 정식 해설을 돌고 있는데, 대략 15~20여명의 관람객들이 따라붙는다. 처음부터 도슨트 해설을 듣는 걸 별로 추천하고 싶지 않다. 두 번 정도는 자유 관람을 해보는 것이 좋은데, 먼저 1~5전시관까지 개괄적으로 훑어보고, 다시 1전시관으로 돌아가서 몇몇 인상 깊은 작품들만 길게 감상하는 거다. 그 다음에 도슨트의 정기 해설을 따라가면 훨씬 다채롭게 비엔날레를 즐길 수 있다. 그리고 각각의 소주제들이 있지만 전반적으로 ‘공동체와 변방’의 관점으로 풀어낸 작품들이 많았던 것 같다. 수많은 외국 예술가들의 설치 작품들이 걸려있는데 주변부, 변방에 위치한 인간의 심리상태를 묘사한 것들이 상당수다. 그러다보니 다수의 공동체에 대한 저항의식이 포함될 수밖에 없다.

 

 

 

사실 1995년부터 지금까지 광주비엔날레 전시의 모든 회차가 그랬겠지만 이번에도 인상적인 영상 작품들이 꽤 있었다. 당장 1전시관으로 입장하자마자 음산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영상 작품이 바닥과 벽면에서 재생되고 있고 사람들이 모여들어 웅성웅성하고 있는 광경을 마주하게 된다. 남아공 출신 불레베즈웨 시와니의 ‘영혼 강림’이란 작품인데 남아프리카 여성이 몽환적인 노래 선율에 맞춰 슬로우 버전의 전통춤을 추고 있는 모습이 무한 반복된다. 숲과 바다에서 바람을 벗삼은 몸동작이 마치 자연과 하나가 된 것만 같은 인상을 준다. 가이드북을 살펴봤는데 시와니는 작품 취지에 대해 “영적 기운들이 땅과 물에 결부되어 있으며 이로부터 우리가 어떻게 태어나고 길러지는지를 깨닫고자 한다”고 밝혔다.

 

시와니는 남아프리카 여성의 ‘몸’ 자체를 가부장적인 틀을 흔드는 중요한 공간으로 상정했다. 남성이 여성을 속박하는 것은 인간이 자연을 함부로 파헤치는 것과 같다. 전통적으로 남아프리카 여성들은 현지에서 나오는 약초를 캐며 자연과 공존하기 위해 노력했는데, 시와니는 이러한 공존의 균형이 현대로 갈수록 무너지고 있다는 점을 환기했다. 그래서 남아프리카 여성의 퍼포먼스를 통해 자연과의 공존이 회복되길 바라는 메시지를 피력한 것이다.

 

 

이번 광주비엔날레가 특별한 이유는 재활용 작품들의 비중이 절반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미 다른 전시에서 공개된 작품들이 아닌 신작들로만 50%를 채웠다. 그래서 일반 관람객들이 무턱대고 감상하기엔 너무 난해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있는 그대로 작품을 느껴보고 해석해보고 싶은 도전정신이 샘솟는다는 점에서 괜찮았다. 이 감독은 매체 인터뷰에서 아래와 같이 말했다.

 

비엔날레의 장점은 동시대 미술의 현장과 정치·사회적 맥락을 생생하게 반영하는 새로운 작품 제작의 기회가 된다는 데 있다. 큐레이터로서 평상시 세계 각국의 비엔날레를 둘러보면서 비슷한 작품이 많이 등장하고 있다는 것에 안타까움을 느꼈고, 비엔날레 본연의 역할은 새로운 미술의 경향과 흐름을 여타 기관보다 빠르게 포착하고 제시하는 것이라는 신념에서 비롯되었다. 여기에 광주비엔날레재단 측이 지향하는 비엔날레의 역할에 대한 공감과 지원도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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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효영

평범한미디어를 설립한 박효영 기자입니다. 유명한 사람들과 권력자들만 뉴스에 나오는 기성 언론의 질서를 거부하고 평범한 사람들의 눈높이에서 사안을 바라보고 취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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