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6월부터 연재되고 있는 [불편한 하루] 칼럼 시리즈 19번째 기사입니다. 윤동욱 기자가 일상 속 불편하고 까칠한 감정이 들면 글로 풀어냈던 기획이었는데요. 2024년 3월부턴 영상 칼럼으로 전환해보려고 합니다. 윤동욱 기자와 박효영 기자가 주제를 정해서 대화를 나눈 뒤 텍스트 기사와 유튜브 영상으로 전달해드리겠습니다.
[평범한미디어 →대담: 윤동욱·박효영 기자 / 기사 작성: 박효영 기자] 22대 4.10 총선에서 정의당이 원외정당으로 전락하면서 진보의 위기가 가시화됐다. 이번 ‘불편한 하루’에서는 진보 혐오 현상에 대해 다뤄보려고 한다. 흔히 사람들은 “PC주의와 페미니즘”에 빠져 지적 우위를 가져가려는 모습을 진보의 이미지로 상정하고 밉상으로 인식한다. 자기만 잘난 건지 가르치려드는 훈계조의 태도 역시 비호감이다. 기후위기를 침 튀기며 말하면서 내연기관 자동차를 타고 다니는 등 내로남불과 강남좌파의 역설도 진보가 욕먹는 핵심 요소다. 무엇보다 거대 정치 팬덤이라고 할 수 있는 민주당계 지지자들이 정의당에 대한 반감이 극에 달한다.
윤동욱 기자는 “한 마디로 정의당이 나가리돼서 꼴 좋다고 생각하는 민주당 지지자들이 많다”고 말했다. 일단 그런 민주당적 반감이 큰 부분을 차지하겠지만 박효영 기자는 “민주당 지지자들이 민주대연합의 차원에서 정의당을 비난하는 것 말고도 정치에 큰 관심이 없고 라이트하게만 보는 사람들이 진보정당과 진보진영에 갖는 부정적인 인식이 있긴 있다”고 환기했다. 사실 이 주제를 선정하게 된 맥락이 있다. 윤 기자는 모노 드라마 연기를 하면서 아래와 같이 말하곤 한다.
진보와 진보정당을 욕하면서 막상 회사에서 부당한 일 당하면 그때 가서 노조 찾는다든지, 청년유니온이나 노동인권상담소, 도움 받을 수 있는 인권 변호사를 찾아간다. 자기들이 부당한 일을 당하면 그 부당한 일들에 대해 평생 목숨 걸고 싸우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때 가서 귀담아듣게 된다. 왜 그러는 걸까? (by 윤동욱 기자)
앞서 윤 기자는 “민주주의 국가에서 투표 안 하는 사람들은 무개념”이라고 주장했을 정도로 국민 개조론적 관점을 갖고 있다. 할 말을 해야 한다는 사명감이 앞선다. 그래서 이번 주제를 하게 됐는데 물론 영화 <변호인>처럼 송우석 변호사가 속물적이었다가 부림 사건을 만나 각성해서 인권 변호사가 되는 것과 같은 사례들도 많다.
그러니까 진보정당이나 진보적 시민단체에 대한 비아냥과 냉소와 이런 얘기를 엄청나게 쏟아내놓고 막상 안 좋은 일을 당하면 곁에 있어 주는 사람들이 진보적인 사람들이다. 근데 왜 진보를 무턱대고 혐오할까? (by 박효영 기자)
윤 기자가 봤을 땐 “인터넷으로만 보고 단면적으로 혐오 이미지를 갖게 되는 것”이 크다.
정말로 진보적 시민단체나 진보정당에서 활동해보지 않는 이상 결국 한국 진보에 대해서 그냥 단편적으로 인터넷 보고 특정 커뮤니티 들어가서 보고 그런 걸로만 판단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근데 인터넷 커뮤니티는 극단적으로 표현하고 과장 화법을 많이 쓴다. (by 윤동욱 기자)
이런 지점이 있다. 뭐냐면 치열한 생존 게임과 경쟁에 놓여 있는 한국인들에게 진보는 “자꾸 옳은 소리만 하는 이미지”를 갖고 있다. 이를테면 출퇴근하기 바쁜데 자동차를 덜 타야 된다고 하고, 내 자식 입시 준비하느라 정신 없는데 경쟁 교육이 문제라고 말한다. 취업에 올인하고 있는데 능력주의적 관점을 비판하며 이상적인 소리를 늘어놓기도 한다. 이 지점이 한국 사회에서 진보가 어려움에 처한 근본적인 배경이라고 할 수 있다.
경쟁에서 살아남으려고 목숨 걸고 뛰어가는 사람들한테 윤리와 도덕과 원칙과 가치를 얘기하면 소위 씹선비 취급을 당하기 쉽다. 약간 뜬구름 잡는 것으로도 여겨질 수 있다. 윤 기자가 말한 인터넷 커뮤니티의 영향도 있겠지만 한국 사회의 시스템 자체가 보수적 경쟁 논리로 굴러가기 때문에 진보가 살아남기 어려운 것 같다. 근데 대한민국 사회가 15년 전과 지금을 비교해봤을 때 갈수록 경쟁 지상적인 분위기가 심화되고 있는데 그렇다면 진보는 더더욱 외면받을 수밖에 없는 환경에 처하는 것이다. 바야흐로 진보의 암흑기다. (by 박효영 기자)
인국공 사태와 ‘공정 담론’만 봐도 이런 함의를 엿볼 수 있다. 20~30대 남성들이 자연스럽게 안티페미니즘적인 관점을 갖게 되는 패턴과도 맞닿아 있다. 구조적인 성차별을 시정하자는 목소리에 특혜를 받은 것도 없는데 뭘 더 어쩌라는 거냐고 맞받아치는 젊은 남성들이 많다.
윤 기자는 “사람들이 여유가 있고 직장도 안정돼 있으면 진보적인 사고를 할 수가 있다. 그래. 사회적 약자를 당연히 돌봐야지. 그런데 한국 사람들은 전혀 그렇지 못 하기 때문에 진보적인 사고를 할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지적했다. 돈이 좀 있고 경제적으로 부유한 곳에서 성장한 사람일수록 타인의 처지와 공동체 문제를 고민할 여유가 있다. 반대로 하루 하루 빠듯한 처지라면 진보적 관점을 갖기 어렵고 냉정한 현실세계에서 우위를 차지한 사람들을 동경하기 쉽다. 관련해서 토머스 프랭크가 집필한 책 <왜 가난한 사람들은 부자를 위해 투표하는가>에서 제시한 화두는 정치학계에서 지금도 연구되고 있는 핵심 주제다. 한국은 좀 더 세밀하게 보면 경제력을 떠나 누구나 치열한 경쟁에서 자유롭기 어렵기 때문에 진보적 가치에서 점점 더 멀어지는 측면이 있다.
물론 가난한 사람이든 중산층이든 상류층이든 모두를 다 뭉뚱그려서 성격 규정을 할 수는 없다. 사람마다 다 다르고 변수가 많다. 일반화 할 수는 없지만 이런 건 있는 것 같다. 가난할수록 생존 법칙에서 살아남은 사람들 강자나 부자들을 동경하게 된다. 그러니까 그런 사람들이 되고 싶은 거지. 맑스의 논리대로 지배자와 피지배자가 있는 사회가 있다고 했을 때 지배자가 엄청 소수인데 다수의 피지배자를 지배하고 있다. 근데 피지배자들이 불평등한 구조를 혁파하고 깨부수는 걸 원하는 게 아니라 내가 지배자 위치에 올라가고 싶은 것이다. 또는 피지배자의 위치에서 탈피하고 싶어 한다. (by 박효영 기자)
허지웅 작가도 본인의 블로그와 책에서 아래와 같이 밝힌 바 있다.
가난한 사람들이 부자를 위한 정당을 지지하는 이유는, 그들이 부자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부유함이나 풍요로움 같은 부자의 가치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또한 그와 함께 수반돼 연상되는 보수적 언어를 옳은 것으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누가 혹은 어떤 정당이 서민을 대변하고 말고는 고려 대상이 아니다. 사람들은 부자를 보며 박탈감을 느끼지 않는다. 성공 신화에 매료될 뿐이다. 부와 이익이라는 (그들이 생각하기에) 긍정적 에너지에 박수를 보낼 뿐이다. 가난한 사람들은 적지 않은 부자들이 적당한 부패와 조작과 위장을 즐긴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이에 대해 문제의식을 갖지 않는다. 그저 부자라면 그 정도는 저지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다. 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훌륭하게 입신에 성공한 저 부자들은 그만한 권리와 폭력을 응당 행사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거다. 이것은 단순한 존경이나 예우와 다르다. 겨우 존경심 때문에 사익과 반대되는 선택을 할 정도로 인간의 두뇌가 간단하지는 않다. 그건 우리가 여태 태어나서 자라고 배우고 번식하고 경쟁하고 버티고 버텨온 이 사회가 근본적으로 보수적인 언어의 토대 위에 건설된 탓이다. (by 허지웅 작가)
나아가 윤 기자는 극빈층일수록 정권이 어떻게 바뀌고 누가 집권하느냐와 무관하게 “내 삶에는 큰 변화가 없다고 느낄 것”이라며 “그래서 굳이 뭘 바꾼다기 보다는 그냥 안정적인 보수쪽으로 기울게 성향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