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어머니가 친필로 작성한 '출생신고서' 26년만에 직접 떼봤다

배너
배너

[평범한미디어 최은혜 기자] ‘출생신고서’는 아이가 태어나면 가족관계등록 및 주민등록을 위해 공공기관에 신고하는 첫 번째 절차다. 그래서 출생신고를 통해 출생을 증명하는 것은 아이가 사회의 일원으로서 마땅한 권리를 누리고 국가의 보호 안에서 안전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하는 첫 걸음이다.

 

출생신고를 하려면 병원에서 제공하는 출생증명서 1부와, 부모가 직접 작성하는 출생신고서 1부가 필요하다. 그렇게 주민센터에 제출된 서류들은 관할 가정법원으로 이관되어 보관되는데 딱 '27년'까지만 보관된다고 한다. 27년이 넘으면 폐기된다. 그래서 올해는 1994년생까지만 열람이 가능하고 2022년부터는 1995년생까지만 열람이 가능하다.  

 


사람들이 출생신고서를 열람하는 목적은 무엇일까.

 

법원 관계자는 평범한미디어와 만나 "주로 사주를 보는데 필요한 태어난 시간을 확인하기 위해 오는 사람들이 대부분이고 27년 동안만 보관된다고 하니 폐기되기 전에 한 번 확인하고 싶어서 방문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말했다. 

 

본지 기자 역시 1995년생으로 폐기 기한까지 얼마 남지 않은 상황이었기에 나 자신에 관한 최초 기록을 확인하고 싶어서 가정법원에 방문해봤다. 출생신고서를 열람하기 위해서는 등록소재지 기준 관할 가정법원을 찾아가야 한다. 일단 등록소재지부터 알아야 한다. 호적 제도가 폐지되면서 본적이 등록기준지로 대체되었는데 본적과 달리 자유롭게 선택이 가능하다. 기자의 등록소재지는 전남 장성군이었다. 태어난 곳은 경상북도다. 그래서 "(광주광역시에 거주하고 있는데) 설마 출생신고서를 열람하기 위해 경북까지 가야 하는 건가"라는 걱정이 들었지만 등록기준지와 출생지는 전혀 다른 의미였고 둘 다 기본증명서를 발급하면 확인할 수 있다. 기본증명서는 출생신고서를 열람하기 위해 법원에 제출해야 한다.
 

 

무인발권기에서 발급받은 기본증명서를 들고 장성군의 관할 법원 '광주가정법원'으로 향했다.


법원에 도착해서 가방 검사와 방역을 마치고 바로 입구 오른편에 있는 종합민원실로 들어가면 가장 안쪽에 가족관계등록사무실이 있다. 이곳에서 준비해온 서류를 제출하고 접수증을 작성하고 대기하면 담당자가 서류를 찾아서 열람할 수 있게 도와준다. '법원'이라는 단어 자체가 특유의 긴장감을 느끼게 만들었지만 사무실 내부 분위기는 편안했다. 담당 직원은 친절했고 소소한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담당 직원 A씨는 후임 직원 B씨에게 "문서가 주소 기준으로 정리되어 있어서 오래된 문서라도 잘 찾아낼 수 있다"고 팁을 알려줬고 실제 캐비넷에서 오래된 서류철이 꺼내졌다.  

 

이제 서류철에서 해당 문서를 찾아내야 한다. 노하우가 있다. 

 

A씨는 "수기로 작성하다 보니 작성자가 악필인 경우가 있는데 알아보기 힘들 때가 있어 한자도 같이 찾아보면 된다. 2년 정도 하다 보니 이제는 한자 시험을 보러 가도 될 정도가 되었다"고 말하며 살짝 웃었다.
 
A씨가 꺼내 든 두껍게 철한 문서들은 노랗게 빛이 바래 세월의 흔적이 물씬 느껴졌다. 나의 출생신고서는 26년이 넘은 만큼 얼룩덜룩했다. 
 


출생신고서 사본을 받았다. 내 것이 맞는지 내용을 확인해봤다. 의사 소견이 담긴 출생증명서와 어머니가 직접 작성한 출생신고서를 모두 확인할 수 있었다. 낡은 모습 그대로 복사된 종이에는 내가 2.4kg으로 건강하게 태어났다고 기록되어 있었고 당시 29세였던 어머니의 손글씨가 남아있었다. 갓 태어난 날 보며 한 글자씩 써내려갔던 어머니의 마음은 어땠을까. 엄마가 되었기에 많은 것을 내려놔야 할 것 같은 책임감을 어깨 가득 느끼진 않았을까.
 

 

어쩌다보니 자전적인 방향으로 흐르게 됐는데 나는 이제 당시 어머니가 출산을 했던 나이와 비슷해졌다. 그러나 아직 어른이 되진 못 한 것 같다. 사실 가족이란 존재는 애증이었다. 그동안 나는 결혼을 한 언니를 대신해서 가족을 책임지는 새로운 첫째로 살아왔던 것 같다. 알게 모르게 경제적으로 보탬이 되길 바라는 가족들은 이제 막 사회에 나온 내게 작지 않은 부담이었다.

 

그러나 출생신고서를 적고 있던 어머니를 떠올리자 우리 가족들 역시 날 위해 부담을 안고 살았던 순간들이 있었겠구나. 그런 생각이 뇌리를 스쳐갔다. 언니는 청소년 시절 어머니를 대신해서 어린 나를 돌봐주기도 했지만 친구들과 놀고 싶다며 짜증을 내기도 했다. 언니가 날 돌봐야 했던 책임은 마땅히 선택한 것이 아닌 어느날 그냥 선고되어 부여된 것이었다.

 

나의 출생신고서에는 어머니와 언니의 희생이 묻어 있다. 출생신고서를 열람해보는 것은 나를 성장하게 한 세월과 가족의 마음을 온전히 직면하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프로필 사진
최은혜

평범한미디어 최은혜 기자입니다.
다양한 시각과 관점을 담아 목소리를 내도록 하겠습니다.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