잦은 이직으로 지쳐있던 그때 ‘쥬얼리 공예’를 만났다...

  • 등록 2023.12.16 14: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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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2월부터 평범한미디어 윤동욱 기자가 진행하고 있는 기획 인터뷰 시리즈 [독고다이 인생] 20번째 인터뷰입니다. 독고다이 인생은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대한민국 사회에서 자신의 길을 묵묵히 뚜벅뚜벅 걸어가는 사람들의 삶에 주목해보기 위해 기획되었습니다. 

 

[평범한미디어 윤동욱 기자] 지난 6월 이후 반년만에 독고다이 인터뷰를 재개했다. 이번에는 서울에서 쥬얼리 공예 공방(디라이트)을 운영해왔다가 곧 유럽으로 떠나게 될 조은비씨를 만났다. 올초 박효영 기자와 함께 관악구에 있는 은비씨의 공방으로 가서 만난 적이 있었다. 당초 박 기자가 모임 커뮤니티를 통해 알게 됐던 인연이었는데 셋이 만났을 때도 짧았지만 더 많은 대화를 나눠보고 싶은 여운이 남을 만큼 참 좋았던 기억이었다.

 

지난 1일 18시 즈음 신림동의 한 카페에서 은비씨를 다시 만났다. 공방은 곧 출국을 해야 하기 때문에 정리했다고 한다.

 

 

올초에 짧게 만나고 1년 남짓 흘렀다. 독고다이 공통 질문부터 빠르게 들어가봤다. 혼자 공방을 운영하면서 힘든 점은 없었을까? 은비씨는 자영업자로서 고충을 토로했다.

 

모든 자영업자가 그렇겠지만 역시 힘든 점은 모든 걸 나 스스로 결정하고 책임져야 한다는 점이다. 매출도 당연히 많이 신경 쓰인다. 이 모든 것을 오롯이 나 혼자 감당하는 것이 힘들었던 것 같다.

 

단점이 있다면 장점도 있을 것이다. 

 

좋은 점은 내가 원하는 일을 원하는 시점에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일을 하며 정말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그분들이 내 일의 매개체가 되어 주었고 더 열심히 일을 할 수 있었다.

 

사람은 누구나 자유롭고 싶으면서 타인에게 의지하고 싶어 한다. 자영업자의 아이러니다. 은비씨에게 힘들어도 버텨내고 극복해낼 수 있는 원동력은 무엇인지 물었다.

 

일단 좋은 사람들이 원동력인 것 같다. 그 사람들에게서 얻은 에너지로 버텼던 것 같다. 한 번씩 해외에서 체류하며 휴식을 취한 것도 삶의 원동력이 되었던 것 같다. 정신적으로 힘들 때는 상담가나 의사 선생님 같은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았다.

 

독고다이 시즌1 때부터 포함시킨 질문이 내 인생의 전성기는 언제였는지에 대한 것이다. 사실 거의 모든 인터뷰이들이 이 질문을 받고 부담스러워했다. 전성기란 표현 자체가 좀 그렇긴 하다. 일단 은비씨는 이 질문을 사전에 받아 보고 굉장히 흥미로웠다고 말했다.

 

이 질문은 정말 흥미로웠다. 나는 지금이 전성기라고 생각한다. 과거를 회상하며 ‘이때가 좋았지~’라는 생각을 하지만 분명 그때도 힘든 일들이 있었다. 그것들을 다 거쳐오고 또 하루하루 꾸려나가는 지금이 가장 전성기라고 생각된다. 가장 행복한 순간도 지금인 것 같다. 그냥 다 떠나서 현재가 마음이 가장 편하다. 지금 내가 찬란하게 빛나고 있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지금이 제일 행복하다.

 

사실 전성기 질문에 머뭇거리면 가장 행복했던 순간으로 순화해서 다시 물어보곤 했는데 은비씨는 과거의 시간들을 지나온 현재가 가장 행복하다고 강조했다. 누구나 과거를 떠올려보면 좋았던 순간보다 힘들었던 시기가 먼저 생각나기 마련이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이 가장 다행스럽다고 느껴질 수 있을 것 같다. 특히 가장 마음이 편하기 때문에 지금이 가장 좋다는 답변에 공감이 갔다. 

 

 

이제 개별 질문 타임이다.

 

은비씨는 명문대 사학과를 졸업했지만 전공과 관련없는 직장들을 거쳐왔다고 스스로를 소개하곤 한다. 공공기관, 화장품 기업, 금융권, 모금기업, 사회적기업 등등. 그런데 은비씨는 직장생활을 오래 유지하지 못 하고 3개월만에 이직을 거듭했다고 고백했다. 박 기자는 은비씨가 한국 사회의 통념적인 압박에 많이 힘들어하는 유형이었다고 설명했다. 조직생활에서의 적응이 무척 어려웠을 것이다. 그래서 은비씨의 학창 시절을 묻고 싶었다. 입시위주교육 시스템이 꽤 힘겨웠을 것 같았다.

 

한 문장으로 ‘대단하고 짠했다’라는 표현을 쓰고 싶다. 아침부터 늦은 저녁까지 책상에 앉아있었다는 것 자체가 어떻게 보면 신체적 학대다. 그때 그렇게 무리해서 지금도 허리나 관절이 영 좋지 않은 것 같다. 무거운 책가방을 메고 다니느라 어깨도 아팠다. 너무 앉아만 있지 말고 주기적으로 신체 활동을 했으면 어땠을까? 그런 후회가 밀려온다. 학교에서도 학생들의 건강을 위해 신체 활동 프로그램을 필수적으로 진행해주었으면 하는 아쉬움도 있었다.

 

통상 인문계 고등학교를 다니고 있는 고3이 마음 놓고 체육 시간을 즐긴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체육활동이 절대적으로 부족하고 체육마저 줄세우기 평가의 수월함을 증명해야 하는 분야가 되어버렸다. 사실 학생 스스로 시험 공부 외의 모든 것들을 자발적으로 포기하며 자기 학대를 하게 되는 구조적인 문제가 있다. 은비씨도 그런 운동 부족을 호소한 걸 보면 한국 청소년들의 건강권 문제가 심각하게 받아들여진다.

 

은비씨의 첫 사회생활은 20대 중반에 경험했던 은행 인턴이었다. 그 당시 너무 힘들어서 자주 울었다고 한다. 그때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

 

지금의 내가 그때로 다시 돌아가서 똑같은 직장생활을 하면 훨씬 더 잘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때는 지금보다 나이가 너무 어렸다. 그때의 조은비가 겪었던 어려운 점을 이야기하자면, 사소하게는 용모, 옷차림 지적 같은 것도 있었고 크게는 인턴에서 정규직으로 뽑혀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었다. 그런 부담감을 포함하여 그때는 뭔가 내가 잘못한 사람 같았고 늘 눈치를 봐야 한다는 것이 너무 힘들었던 것 같다. 직장에 가면 판옵티콘에 갇힌 느낌이었다.

 

듣기만 해도 숨이 턱 막혀온다. 사회초년생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그런 기억이 있을 것이다. 드라마 <미생>에서 장그래가 원인터내셔널 영업3팀에 막 입사해서 고생만 하던 그때를 떠올리면 될 것 같다. 요즘 <SNL 코리아>에서 MZ 오피스 속 ‘맑은 눈의 광인’으로 상징되는 개념없는 사회초년생 MZ들이 주목받고 있는데 그런 사례는 아주 일부에 불과하다. 대다수 청년 신입사원들은 아직도 회사 조직에서 생존하느라 눈치 보기 바쁘다. 은비씨는 회식 문화의 경직성을 꼬집었다.

 

회식을 가면 상사의 비위도 맞춰줘야 하고 술잔 돌리기 등 억지로 술을 마셔야 하는 상황들에 직면하게 된다. 업무의 연장선이라고 말을 하지만 막상 회식에 참여했다고 수당을 더 주거나 하지는 않는다. 이러한 이유로 인해 지금 어른이 다 된 은비였을 때보다 그때가 더 회식이 싫었던 것 같다.

 

 

은비씨는 잦은 이직에 지쳐가던 2020년 우연히 쥬얼리 공예를 접하게 됐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 디라이트 공방을 창업했는데 그 당시의 상황과 창업 계기가 궁금했다.

 

그 당시 정신적으로 그렇게 좋지 않았다. 그 와중에 어차피 언제 죽을지 모르는데 하고 싶은 것을 다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계속 취업 준비를 하던 때였는데 ‘새로운 직장에 들어간다 하더라도 길게 못 다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었다. 그러다가 우연히 쥬얼리 원데이 클래스를 듣게 되었다. 이게 너무 재밌어서 취미반을 넘어 창업반까지 수강하게 되었다. 이후 취업 대신 창업을 선택하게 되었고 부모님 몰래 사업자 등록을 했다. 

 

창업의 방식이 처음부터 공방은 아니었다. 인터넷 쇼핑몰부터 시작했는데 시행착오가 있었다.

 

처음에는 인터넷 쇼핑몰 형태로 사업을 진행했었다. 그러나 경쟁도 너무 치열하고 반응도 잘 오지 않았다. 그래서 공방을 열고 싶었지만, 자금이 부족했다. 고심 끝에 내가 살던 원룸에서 홈 공방을 열기 시작했다. 처음 홈 공방을 열었을 때 가족들의 반응은 회의적이었다. 원룸에 누가 오겠냐는 반응이었다. 감사하게도 그런 반응이 무색할 정도로 손님들이 많이 와주셔서 지금까지 운 좋게 이어올 수 있었다.

 

은비씨는 인터뷰를 하고 있는 시점 기준 곧 오스트리아 빈으로 떠날 예정이다. 과거에도 유럽에 갔던 적이 있다. 어느정도 자리 잡아가고 있는 디라이트를 두고 오스트리아로 떠나는 이유가 무엇일까? 아주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이유가 있었다.

 

일단 한 번 가봤기 때문에 다른 나라의 도시보다 익숙하다. 그리고 도시가 정말 예쁘다. 특히 문화 예술이 발달한 도시다. 빈에 가기 전에는 내가 그렇게 예술을 좋아하는 사람인지도 몰랐다. 예술이 발달한 만큼, 그 방면으로 지원도 많이 해주는 도시다. 사실 나는 독일을 더 가고 싶긴 했다. 왜냐면 독일이 훨씬 더 예술에 대해 개방적이기 때문이다. 그냥 단순히 손을 흔드는 것도 하나의 행위 예술로 바라봐줄 정도다. 하지만 독일은 비자를 받는 게 어렵다. 엄밀히 말하자면 비자를 받는 것 자체는 어렵지 않은데 대사관 예약을 잡기가 어렵다. 거의 수강 신청하는 수준이다.

 

 

최근 넷플릭스 드라마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가 화제다. 은비씨도 오랫동안 정신건강의학과를 내원하면서 진료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처음 방문했을 때 마음의 문턱을 넘는 것이 두렵지는 않았을까?

 

두려움이 없었다고 하면 거짓말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문제가 있으면 어떻게든 해결하려고 하는 스타일이다. 다른 사람들보다는 병원의 문턱이 조금 더 낮았던 것 같다. 두렵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나는 빨리 나의 힘듦을 해결하고 싶었다. 처음 갔을 때는 문턱이 그렇게 높지 않았는데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처음에 애매하게 진료가 끝나고 나서 몇 년 동안 약도 안 먹고 병원도 가지 않았다. 다시 찾아갔을 때가 문턱이 높았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의사가 좋지 못 한 사람이었다. 진료를 위해 대화를 나누는데 굉장히 무례한 발언을 했다. 그 당시 진로에 관한 고민을 하고 있었고 우울증이 심했다. 그런데 의사가 ‘머릿속에 병균이 있다’는 식으로 말하며 소위 말하는 ‘라떼’ 이야기나 하고 있었다. 그때 도움이 필요해서 정말 용기 내서 갔던 건데 그런 말을 들으니 너무 속이 상해 울면서 약봉지를 병원 쓰레기통에 내다 버리고 뛰쳐나왔다. 그 다음에 다른 병원을 다니기까지 한 1년 정도 시간이 걸렸다. 그것도 친구가 진짜 한 번 가보라고 해서 가게 되었다. 의사가 중요한 것 같다.

 

들으면서 화가 났다. 그야말로 자격 미달의 의사다. 형편없는 정신과 의사를 만나는 것 만큼 큰 트라우마가 없을 것 같다. 마음을 치료하러 갔는데 마음이 더 상했다니, 마치 뼈에 문제가 있어서 정형외과를 갔는데 뼈를 부러뜨리는 것과도 같다. 다행스럽게도 은비씨는 현재 약을 줄일 정도로 증상이 많이 호전되었다고 한다. 은비씨는 “정신과를 다니고 약을 먹고 상담을 받는 것에 대해 안 좋게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다”면서 아래와 같이 강조했다.

 

그럼 술, 담배는 괜찮은가? 모두가 알고 있다시피 술과 담배는 발암 물질이다. 하지만 약은 임상 시험을 다 거친 물질이다. 너무 힘들 때, 술과 담배에 의존하는 것보다 차라리 약을 먹는게 횔씬 건강하고 인생에 더 도움이 될 것이다.

 

 

힘들어하는 사람들에게 상담소나 정신과 방문을 두려워하지 말았으면 하는 응원의 메시지를 부탁했다.

 

인생을 행복하게 누렸으면 좋겠다. 남들의 시선, 부작용, 걱정 때문에 치료를 거부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힘듦을 참기에는 너무 인생이 짧다. 게다가 한 번 뿐인 인생이지 않은가? 얼른 치료를 받고 더 좋아진 상태에서 행복한 인생을 풍요롭게 누렸으면 좋겠다.

 

남이 내 인생 대신 살아주지 않는다. 한국 특유의 ‘남의 눈치’ 보는 문화는 결국 모두를 불행하게 만든다. 은비씨는 한국에서 여전히 정신과 진료에 대한 편견이 있는 역사적 배경이 있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한국 현대사는 전쟁과 민주화 운동으로 점철되어 있었다. 그런 격동의 시기에 살던 사람들은 당연히 정신력을 많이 소모했을 것이다. 집단적으로 정신적 충격이 있었을텐데 이분들은 그 당시에 당연히 치료를 제대로 받지 못 했을 것이고 그 밑에서 자란 아이들도 그런 결핍을 가지고 살았을 것이다.

 

은비씨는 디라이트 시즌1을 이렇게 마치고, 1년 후 다시 돌아와서 디라이트 시즌2로 다시 사람들을 만날 것이라고 말했다. 

 

일단 빈에서는 충분히 휴식을 취할 계획이다. 한국에 돌아와서는 사실 잘 모르겠다. 일단 공방을 계속 이어나가야 할 것 같다. 많이 회복된 상태로 돌아와서 고객들을 만족시켜주고 사랑받는 디라이트를 만들고 싶다.

윤동욱 endendj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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