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든 좋으니 아무 연극이나 일단 봤으면 좋겠다”

  • 등록 2024.02.03 22:4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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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가볍게 봐주었으면 좋겠다.

#2022년 2월부터 평범한미디어 윤동욱 기자가 진행하고 있는 기획 인터뷰 시리즈 [독고다이 인생] 21번째 인터뷰입니다. 독고다이 인생은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대한민국 사회에서 자신의 길을 묵묵히 뚜벅뚜벅 걸어가는 사람들의 삶에 주목해보기 위해 기획되었습니다. 21번째 인터뷰 주인공 장도국씨에 대한 기사는 2회에 걸쳐 출고됩니다. 이번 기사는 1편입니다.

 

[평범한미디어 윤동욱 기자] 독고다이 인생 기획 인터뷰가 시작된지 벌써 2년이 흘렀다. 그동안 20명을 만났다. 2024년 갑진년 새해를 맞아 21번째 인터뷰이를 만나고 왔는데 광주광역시에서 연극배우로 활동하고 있는 장도국씨다. 도국씨는 청년유니온과 정의당 등 다양한 대외활동 과정에서 마주친 적이 있는 구면이다. 개인적으로 한때 배우가 되고 싶었던 만큼 도국씨를 만나서 ‘연기와 배우’에 대해 수다떨고 싶은 것들이 많았다.

 

 

지난 1월25일 14시 광주 서구 상무지구의 모 카페에서 도국씨를 만났다. 독고다이 공통 질문부터 하나씩 진행했는데 도국씨는 주로 하고 있는 본업에 대해 당연히 연극배우라고 답했는데 의외로 연기 말고도 “새로운 활동을 하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새로운 활동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차차 다루기로 하고 그동안 연극을 하면서 좋은 점과 안 좋은 점은 각각 무엇이었는지 물었다. 도국씨는 먼저 좋은 점에 대해 설파했다.

 

좋은 점을 먼저 이야기하고 싶다. 사실 학창시절부터 예술인이 되고 싶은 것은 아니었다. 고등학교 시절 우연한 계기로 연극을 만났다. 그렇게 참여하게 된 연극 속에서 많은 것을 느꼈다.

 

우연히 접했을 때 느꼈던 카타르시스. 그렇게 평생 영위하게 될 직업군을 만나게 되는 것이다. 도국씨는 연극을 하며 일종의 해방감을 만끽했다고 말했다.

 

학교는 획일화된 시스템 안에서 굴러간다. 억압이라고 표현하기 그렇지만 거의 그렇게 느낀 것 같다. 나에게 또 다른 여지는 없었다. 무엇이 궁금한지? 뭘 하고 싶은지? 확인해 볼 수 있는 시간도 없었다. 당장 자율학습을 빠질 수도 없다. 이러한 시기에 문화예술 연극을 만나서 정말 새로운 기분을 느꼈다. 일종의 해방감이었다. 내가 어떻게 준비하고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를 컨트롤 할 수 있는 부분에서 연극은 정말 매력적이다.

 

나아가 도국씨는 “예술은 자기 성찰의 연속”이라고 말하며 연극의 매력에 대해 풀어냈다.

 

예술은 자기 성찰의 연속이다. 내가 아닌 인물을 만나면서 새로운 세계를 알게 된다. 작품마다 세계가 존재한다. 그 세계를 구성하고 있는 인물들의 삶에 다가가는 경험은 정말 놀랍다. 그냥 일반 직업인으로 살았다면 느껴보지 못 했을 세상의 면면을 볼 수 있다. 그리고 내가 관계를 맺기 어려운 존재들의 심리도 느껴볼 수 있다. 직접 그 존재가 되어 무대에 올라가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러한 것들이 정말 흥미롭다. 더불어 나를 이해하고 사회를 이해하고 관계 맺는 데 너무 중요한 역할을 해주었다. 문화예술은 정말 좋다. 예술가들은 예술을 통해서 사회, 문화, 경제, 정치적으로 본인들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전달하기도 한다. 그런 것들이 효과가 있을 때도 있다.

 

 

연극배우가 부유한 것 봤나? 역시 안 좋은 점 즉 힘든 점은 경제 문제다. 배고프고 배고프다. 불안하기도 하다.

 

다만 직업의 측면에서 보면 경제적인 부분에서 아쉬운 게 사실이다. 나름의 불안함은 분명 있다.

 

그렇다면 먹고사는 문제를 포함 각종 어려움들에 직면할 때마다 연극배우 생활을 이어나갈 수 있는 원동력은 무엇일까? 도국씨는 ‘막연한 믿음’으로 정의했다. 하고 싶은 일이니까 맨날 배고프고 그 어떤 희망도 없다고 비관하기 보단 언젠가 좋은 날이 올 거라는 막연한 믿음을 갖고 업을 유지해가는 것이다.

 

막연한 믿음이다. 연극을 처음 시작했을 때 먼저 활동했던 분들이 열악한 예술환경에 대해 설파했다. 돈도 못 벌고 힘들어도 인내하고 묵묵히 하면 언젠가 기회가 온다는 식으로 말했다. 그때가 오는줄 알고 버텼다. 그러니 원동력이라는 표현을 써도 될 것 같다. 돈을 못 벌어도, 폭력적인 상황을 마주해도, 내 미래가 불안해도 그 믿음 하나로만 버텼다. 물론 예술 자체가 좋은 것도 있다.

 

그러나 요즘 다른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인생은 원래 다이나믹하고 계속 변하는 것. 

 

그렇게 버텨왔지만, 요즘은 다른 생각이 들기도 한다. 막 믿음만 가지고 있다고 해서 그 기회가 찾아오는 것은 아닌 거 같다. 그런 생각을 한다. 다른 도전도 좀 해보고, 다른 곳으로 막 떠나도 보고, 소속사 문도 두드려 보고, 오디션도 100번 넘게 봐보고 했으면 또 다른 기회가 찾아올 수도 있었을 것 같다. 그런 것들에 대한 아쉬움이 있다.

 

도국씨는 인생에서 새로운 도전의 길목에 서있다. 커다란 변주를 주려고 한다. 그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2시간 동안 인터뷰를 했던 만큼 지금 쓰고 있는 두 번째 기사에서 소개하도록 하자.도국씨는 일단 새로운 모험을 할 수밖에 없는 지역의 연극배우, 즉 지역 예술가들의 삶의 고충을 들려줬다.

 

지역하고도 상당히 직결되는 문제인데 지역에서 활동하는 예술인들은 조명받기가 상당히 어렵다. 기회를 얻는 게 어렵다. 우리가 원하는 기회의 장은 수도권에 몰려 있다. 지역에서 정주하며 버틴다고 해서 누가 찾아오지 않는다. 유명 감독, 기획자, 유명 엔터사의 임직원이 이곳을 찾아오는 경우를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단 한 번도! 단 한 번도! 단 한 번도 없었다. 뭐 대형 아이돌 기획사는 전국 순회 오디션을 하기도 하지만 다양한 순수 예술의 영역으로 확장해본다면 거의 없다. 그렇다면 수많은 예술인들이 다 어디로 가겠는가? 서울로 간다. 미스트롯으로 스타가 된 진도 출신의 송가인씨처럼 아직도 지역 곳곳에 원석들이 존재할 것이다. 그러나 조명받지 못 하고 있다. 그저 창작 지원금을 받아서 공연 한 편하고, 또 한 편하고 이러면서 일에 대한 동력을 얻는다. 그것을 넘어 예술인으로서 자아 실현, 개인으로서 꿈의 실현, 이것에 대한 보상은 되게 막연하다. 거점으로부터 떨어진 지역일수록 상당히 막연하다. 나는 전국 곳곳을 다니면서 서울에 있는 분들과 같이 공연도 해보고 부산에 있는 분들과 공연도 해봤다. 역량은 별 차이 없다. 다만 아이템에 얼마나 투자하고 갖추는지에 대한 차이는 있을 것이다.

 

도국씨는 거진 15년차 연극배우다. 연극 포함 순수 예술의 영역에서 지역의 인재를 찾기 위한 중앙 차원의 스카웃 움직임이 가뭄에 콩나는 것과 같다는 현실을 그토록 강조하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단 한 번도 없다는 표현을 네 번 연속 반복해서 읊었다.

 

다음 질문은 내 인생 전성기에 대한 것인데 전성기라는 말 자체에 어색해하는 인터뷰이들이 많았다. 그래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으로 바꿔서 묻곤 한다. 도국씨는 천상 배우답게 무대 위에 있는 순간을 꼽았다.

 

삶의 모든 순간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자는 게 내 모토다. 행복한 순간은 매번 무대에 오르는 순간들이다. 너무 찬란하다. 누가 사랑해주고 안 사랑해주고, 관객이 얼마가 왔는지는 다 상관없다. 무대 위에 배우로 있는 순간이 제일 행복하다.

 

 

진짜 너무 하고 싶어서 극단 오디션에 떨어지더라도 청소와 허드렛일이라도 할 수 있게 해달라고 간절하게 빌어서 시작했던 스타 배우의 스토리 같은 게 있는 걸까? 일반적으로 연극인들은 어떤 경로를 통해 업계로 진출하는 것일까? 다양할 것 같긴 한데 그냥 궁금했다. 

 

예술에 첫발을 내딛는 시점은 굉장히 많이 빨라졌다. 왜냐하면 늘 노출되어 있다. 어렸을 때 만화 영화를 보는 것으로 시작해서 사람들은 서사에 노출되고 그 안에 있는 음악, 대사, 연기를 즐긴다. 예술인이 되는 진로는 크게 절반씩의 비율로 나뉘는 것 같다. 첫 번째 정해진 루트를 타는 것이다. 예술 학교에 가는 것이다. 예술 중고등학교를 나와 연영과에 진학하는 것이다. 딱 정석적인 루트다. 그런데 주목해야 하는 부분은 나머지 절반이다. 이들은 정해진 루트를 밟는 게 아니다. 일반 학교에서도 예술 과목이 있는데 거기서 매력을 느끼는 것이다. 동아리를 통해서 접하기도 하고 졸업 이후에 접하기도 한다. 처음에는 취미로 시작했다가 점차 그쪽으로 가는 경우도 있다.

 

결국 ‘예술 전공이냐 아니냐’의 차이인 것 같다. 더불어 도국씨는 기본기의 차이가 존재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전공자들은 나름대로 매일 교육을 받으며 훈련을 했다. 예술 한 번 해볼까? 이렇게 진입한 사람과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기본기의 격차가 많이 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비전공자들은 많이 포기한다. 물론 전공자라고 다 배우로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그 안에서도 엄청난 경쟁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벽을 느끼고 포기하는 사람도 있다.

 

전형적인 두 코스 외에 세 번째 코스가 등장했다. 독학으로 뭔가 공부해보고 도전해볼 수 있는 시대다. 유튜브의 세계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유튜브의 세계를 맞아 예술 자체가 삶이 되는 경우도 있다. 버스킹 유튜버가 되어 버스킹을 하고, 연극 유튜버가 되어 직접 연기를 해볼 수 있다. 도국씨의 설명을 들어보자.

 

어쨌든 이 두 그룹이 있는데 요즘은 여기에 또 다른 그룹이 출연했다. 예술 자체가 삶인 사람들의 등장이다. 어떤 정치인(故 노회찬 의원)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모든 국민이 악기 하나쯤은 다룰 수 있는 사회를 꿈꾼다고. 이미 그런 사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게 악기는 아니다. 유튜브를 말하고 싶다. 요즘은 정말 1인 1컨텐츠 시대다. 순수, 대중 예술과는 또 다른 차원의 콘텐츠를 만들고 소비한다. 대한민국은 그런 점에서 선진국이다. 이제 기본권 차원의 문화를 넘어 다음 단계로 어떻게,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 고민하고 새로운 문화와 예술의 비전을 제시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세 주체 중에 어느 하나 또는 둘이 다른 주체에 종속되어버릴 수도 있다.

 

그리고 도국씨는 문화예술이 왜 중요한 것인지에 대한 일반론을 피력했다.

 

문화예술에 대해 계속 강조하는 이유는 ‘우리가 잘 살고 싶어요’의 이유가 아니다. 문화예술은 지금 이 사회의 수많은 영역하고 맞닿아 있다. 지금 우리 사회가 해결하지 못하는 그 문제들을 또 다르게 생각하고 해결하는 물꼬를 트는 역할을 문화예술이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생각이 깊고 주관이 뚜렷한 도국씨가 존경하는 룰모델 배우가 있는지 진짜 궁금했다. 좋아하는 연기 장르가 있는지도 궁금했다. 연극배우로 시작해서 대배우가 된 송강호 배우나 황정민 배우 등 스테레오타입적인 답변이 나올 것 같았는데 의외로 그런 롤모델을 딱히 두고 있지 않다고 한다.

 

어떤 특정한 배우나 장르를 선호하지는 않는다. 어떻게 하면 더 다양한 장르를 소화해볼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더 다양한 동료들을 만날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한다. 그냥 현장에서 만나는 동료 배우들을 더 존경하고 좋아하려고 한다. 어떤 존경하는 배우를 설정했을 때 만약 그 배우가 물의를 일으킨다면 실망할까봐 일부러 존경하는 배우를 생각하지 않는 부분도 있다.

 

그렇다면 가장 추천하고 싶은 연극작품이 있을까? 연알못이라 연극으로의 입문을 희망하는 사람들에게 추천해줄 작품 같은 것이 있다면 알려달라고 부탁했다. 도국씨는 그런 건 없다고 딱 잘라 말했다. 그냥 보자. 많이 보자. 이게 핵심이다. 

 

추천하고 싶은 작품도 없다. 나는 일단 어떤 것이든 좋으니 아무 연극이나 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평론가들처럼 너무 엄격한 잣대를 가지고 보지 않아도 된다. 그냥 애인, 친구들이랑 가벼운 마음으로 근처 소극장에 가서 연극을 보는 문화가 되었으면 좋겠다. 물론 가성비적 측면에서 재미없는 연극을 보면 시간과 돈이 아깝다는 생각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연극 특유의 현장성에서 오는 묘미가 분명 있다. 찍어놓은 영화와는 달리 연극은 배우의 숨결, 감정이 같은 작품이어도 미묘하게 다르다. 거기서 오는 재미가 있고 그 풍부한 감정선에 집중하다 보면 한편의 좋은 클래식을 듣는 것처럼, 나에게 맞는 리듬이나 구간을 찾을 수 있다. 그때 엄청난 희열을 느낀다. 연극의 장르와 종류는 무지하게 많다. 한 번 감상하고 별로였어도 또 다른 작품을 찾아서 본다면 분명 만족할 것이다. 대형 뮤지컬이나 대형 연극이 아닌 이상 티켓값도 요즘 영화값보다 저렴한 작품도 있다.

 

 

도국씨는 한 사람과 2000일 넘게 연애 관계를 지속해왔다. 5년이 넘었다. 장수 커플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런 연애 경험이, 감정 표현이 중요한 배우 일을 하는데 도움을 주었을까? 당연히 도움이 많이 될 것으로 생각됐는데 도국씨도 이 지점에 대해 동의했다.

 

도움이 된다. 사랑은 인간의 삶을 넘어서 지구의 모든 것에 영향을 준다. 지금 만나는 사람과의 사랑이든 혹은 동료애든 간에 모든 유형의 사랑이 내가 살아가는 모든 순간에 많은 힘이 되어주고 있다. 늘 좋을 수는 없지만, 이 사랑이 세상을 살아가고 싶게 만든다. 배우 활동을 하든 뭘 하든 간에 우리는 사랑을 실천해야 한다. 내가 이런 말을 하면 다른 사람들은 추상적이라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이보다 더 구체화시킬 수는 없다. 사랑은 무궁무진하다. 사랑의 회복만이 지금의 문제들을 조금이라도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윤동욱 endendj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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