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고다이 인생⑬-2] 손비야가 정치인이 되면 하고 싶은 일 “발달장애인 가족지원법 만들겠다”

  • 등록 2023.01.01 23: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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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미디어 윤동욱 기자]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알 수 있듯이 손비야씨는 확실히 비범한 사람이다. 그동안 비야씨는 주변으로부터 성격이 4차원이라거나 독특하다는 평가를 많이 받았다고 한다. 2013년 영화 제작발표회에서 비야씨는 “성격이 독특하다는 걸 인정하지 않지만 학창시절부터 64차원으로 불렸다”고 표현했는데 지금은 어떤지 물어봤다.

 

변하긴 했다. 그때보다는 좀 더 다듬어졌다. 그 당시에는 정말 어디로 튈지 모르는 사람이었다. 말도 막 정제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 다듬어졌다. 다만 넘치는 열정과 에너지는 그대로다. 사람들이 30세가 넘어가면 이제 지친다고 하지만 난 그대로였다. 오히려 나이를 먹을수록 더 힘이 넘쳤다. 다만 35세 때 살짝 번아웃이 오기도 했다.

 

지난 11월18일 16시 비야씨가 운영하고 있는 24시간 무인 카페로 직접 찾아가서 2시간 넘게 인터뷰를 진행했다.

 

 

열정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중간에 다이어트로 대화 주제가 넘어갔는데 비야씨는 엄격한 식단 관리가 별로 힘들지 않고 꽤 할만했다고 말했다. 오히려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불쌍하게 여겼다고 한다. 비야씨는 다이어트 식품으로 채소, 닭가슴살, 감자, 고구마 등등만 먹고 살아가는 것이 좋았다고 했다.

 

사실 배우의 꿈을 내려놓고 나서는 거의 그냥 일반식으로 먹는다. 배우를 하려면 몸 관리가 필수니 다이어트를 했다. 정말 35세 이전에는 라면도 안 먹었다. 식단과 운동은 정말 필수다. 물론 어쩌면 괴로울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모든 과정이 배우가 되기 위한 과정이라면 전혀 괴롭지 않은 게 된다. 누가 술은 살이 안 찐다고 하는데 하나 하나 다 반박하고 싶다. 알콜은 근육을 풀어지게 한다. 그렇게 되면 물렁살이 된다. 결과적으로 몸이 탄탄해 보이지 않게 된다. 몸선이 예뻐지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비야씨는 2004년 고등학교 3학년이었을 때 잠깐 집을 나와 밖에서 살아갔던 경험이 있다. 스스로 “가출 아닌 출가”라고 표현했는데 입시 위주 교육의 한국 사회에서 고3이 대입의 압박을 벗어나 스스로 다양한 경험을 해보기 위해 결단을 내린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왜 그런 판단을 했을까? 그리고 그 4년간 무엇을 하며 살았을까?

 

나는 가출이 아니다. 목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가출은 나가서 그냥 며칠 안 들어오는 거 아닌가? 그런데 나는 3년을 안 들어갔었다. 우연히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이전에 싯다르타에 관한 만화책을 읽었는데 출가라는 표현이 눈에 들어왔다. 그래서 나는 가출이 아니라 출가라는 표현을 썼다.

 

의외로 출가를 단행했을 때 부모님의 반대가 심하지 않았다고 한다.

 

우리 집은 입시 압박 자체가 없었다. 우리 부모님은 모두 교직에 계셨다. 한 마디로 교육자 집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입시 압박을 하지 않으셨다. 그냥 공부에 신경을 쓰지 않았다. 알아서 하라는 식의 방임주의였다. 고3 때 내가 자유로운 성격이다 보니 누가 터치하는 것을 싫어했다. 그런데 고3이 되다 보니 학교를 일찍 가라는 일상적인 잔소리를 부모님께서 하셨다. 그리고 초등학교 교사인 어머니가 가는 길에 학교까지 태워다 주겠다고 했다. 그게 너무 싫었다. 그냥 버스를 타고 부대끼면서 가고 싶었다. 엄마 시간에 맞추려면 오히려 더 일찍 일어나야 했다. 나는 모든 것을 스스로 하고 싶어서 참견하는 게 너무 싫었다. 아무래도 사춘기가 늦게 온 거 같았다.

 

 

비야씨는 다양한 경험을 해보는 것이 대입보다 훨씬 중요했다.

 

그런 생각을 했다. 집안이 너무 편하다. 넓은 아파트에 살다 보니 어려움을 모르고 자랐다. 그때는 내가 뭘 하고 싶은지도 몰랐다. 사실 대학교 입시도 어머니가 그런 교육을 시키지 않아서 잘 몰랐다. 어느 정도였나면 그냥 공부해서 연세대에 지원하면 입학하는줄 알았다. 그 당시에 대학은 내가 원하는 때에 언제든지 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내 기준에서 대학은 언제든지 갈 수 있으니까 먼저 세상 경험을 좀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머니의 참견과 잔소리가 듣기 싫은 것도 있었다. 그래서 나 혼자서도 등하교를 잘 할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아마 어머니는 내가 포기하고 일찍 돌아올줄 알았을 것이다. 그러나 나가서 사는 그 3년이 너무 행복했다. 고시원, 그 조그마한 1평짜리에서 나는 해방감을 맛보았다.

 

이어 비야씨는 공부에서 ‘동기부여’가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런데 혼자 사니 확실히 늘어지는 게 있었다. 늦잠을 자게 되고 학교도 잘 안 나가게 되었다. 그래서 알바를 했다. 알바는 재미있어서 딱히 힘들다는 느낌을 안 받았다. 게다가 자발적으로 했기 때문에 더 그랬던 것 같다. 그러나 공부는 자발적으로 하는 게 아니지 않은가? 별로 동기부여도 되지 않았기 때문에 공부가 하기 싫었다. 공부는 내가 하고자 하는 의지와 욕구가 있을 때가 ‘공부할 때’라고 생각했다. 내가 확실하게 때를 만났을 때 몰입을 하니까 더 효과적이었다. 내가 대학교를 스물세살에 들어갔는데 스무살 친구들보다 더 열심히 다녔다. 나는 동기부여가 정말 중요한 사람이다. 그러니까 출가를 한 이유는 (대입 관련) 목표가 없었기 때문이다. 내가 어떤 대학에 가야 하는지에 대한 목표가 없었고 대학에 가서 어떤 공부를 해야 하는지 몰랐다. 대학교를 어딜 갈지도 아예 생각을 안 했다. 어느 정도였냐면 4년제, 2년제 개념도 몰랐다.

 

근데 또 비야씨는 정말 다양한 대학 타이틀을 보유하고 있다. 일찍 사회 경험을 해본 뒤로 배움의 필요성을 깨닫고 열정적으로 대학 교육을 받기 위해 노력했던 것이다. 중국 교환학생부터 학사와 석사, 박사과정까지 버라이어티한 전공들을 공부했다. 원래 배움에 대한 열정이 남달랐던 걸까? 비야씨는 그야말로 ‘열정 만렙’이었다. 

 

배움의 열정이 확실히 있다. 공부는 죽을 때까지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말 배움의 연속이다. 이제 박사 수료까지 했기 때문에 좀 더 좁혀진 느낌이다. 이 공부를 더욱 깊게 할 생각이다.

 

 

비야씨는 2013년 당시 정치 토크쇼 “썰전”에 대한 관심을 표했던 게 기사화된 적이 있었다. 언제부터 비야씨는 정치사회 문제에 대한 관심을 갖고 있었을까? 

 

고등학교 때는 외교관에 관심이 있었다. 20대 초반에 배우 일을 할 때도 막연하게 공적인 역할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예를 들면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같은 것도 해볼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한 적도 있다. 사실 배우 출신이 정치를 하기에 유리한 점은 있다. 둘 다 주목을 받아야 된다는 공통점이 있기 때문에 성향상 비슷할 수 있다. 확실히 쇼맨십이 필요한 직업이다. 배우 활동을 할 때도 공적인 일을 하고 싶다는 욕구가 있었다. 정치인이 되고 싶다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공적인 일을 하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이 있었다. 공적 영역으로 확대하자면 초등학교 때부터다. 그때부터 봉사활동을 다니는 것을 너무 좋아했다. 나 자체가 그런 성향이 있는 것 같다. 배우가 되려고 했던 것도 좋은 영향력을 전파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였다.

 

이제 본격적으로 정치 이야기를 해볼 시간이다. 비야씨는 과거 2016년 국정농단 정국이 막 시작됐을 때 안철수 의원(국민의힘)이 참석한 모 행사에 참여한 적이 있었다. 그때부터 안 의원과의 인연이 시작되어 정치권으로 자연스럽게 오게 된 건지 궁금했다. 그리고 비야씨가 펼쳐보고 싶은 정치적 비전에 대해 물어봤다. 일단 비야씨는 정치인 안철수를 지지하게 된 배경부터 설명했다.

 

2012년 소위 안철수 열풍이 불때부터 지지했다. 그때는 뭔가 새로운 인물 같았다. 과거 2016년 국정농단 정국이 막 시작됐을 때 안철수 의원이 참석한 모 행사에 참여했던 것은 맞다. 하지만 그 당시에는 정치에 도전할 생각이 없었다. 좀 조심스러웠던 게 그때까지만 해도 배우는 정치적 발언을 삼가야 된다는 인식이 강했던 시기였다. 오히려 잘 못 말했다가는 피해를 볼 수 있었다. 근데 안철수 의원이 주장하는 것들이나 정책이 약자에 대한 따뜻한 배려가 있어 보였다. 기업가임에도 불구하고 V3 백신을 일반인들에게 그냥 배포하는 공적인 마인드까지 갖추었기 때문에 안철수 의원이 좋아보였고 선해보였다. 그래서 지지했다. 

 

그러다가 비야씨가 배우 일을 좀 줄여갔던 2021년 즈음 대선 정국이 활활 타오를 때 ‘국민의당 마포갑 선대위원장(서울)’을 맡게 됐다. 비야씨는 “배우에서 멀어졌기 때문에 좀 더 자유로워져 그 일을 맡을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정치적 비전에 대한 구체적인 이야기는 뒤에서 이어진다. 그렇게 비야씨는 2021년 하반기부터 대선 주자 안철수의 ‘마포갑 선대위원장’도 맡아서 해보고, 2022년 지방선거에서 직접 마포구의원 후보로 출마했다가 낙선의 쓴맛을 보기도 했다. 정치인으로서 필드에서 뛰어보니 어땠는지, 앞으로도 정치인으로서의 도전을 이어갈 계획인지 물었다. 비야씨는 “일단 당장은 정치를 할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물론 그렇다고 아예 정치를 평생 하지 않겠다는 말은 아니었다. 언제든지 기회가 오고 준비가 된다면 다시 도전할 여지는 분명히 있어 보였다. 실력과 전문성을 갖춰서 다시 도전해보겠다는 뉘앙스로 읽혀졌다.

 

당장은 정치를 할 생각은 없다. 아예 안 한다고 하면 좀 그렇고 좀 쉬어가고 싶다. 일단 통합예술치료 분야의 전문성을 쌓아갈 계획이다. 어떻게 보면 이게 정치적 비전일 수도 있겠다. 특히 세분화시키면 발달장애인 가족 지원 정책 수립에 초점을 맞추고 싶다. 발달장애인 가족들은 정말 고통 속에 산다. 장애인 가족을 케어하는 것이 너무 힘들기 때문에 자녀 또는 부모나 배우자 살해 후 자살을 하는 사람들도 많다. 이 부분에 대한 정책적인 접근이 반드시 필요하다. 앞으로도 발달장애인 가족들은 더 많아질 것이다. 장애인 지원 뿐만 아니라 그 가족들에 대한 지원도 절실하다. 발달장애인 가족지원법 같은 것을 만들고 싶다.

 

비야씨는 조카가 발달장애인이라고 고백했다. 곁에서 지켜본 발달장애인 가족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싶고 그들을 위한 정책 계발을 해보는 것이 정치적 동기부여가 됐다. 

 

전문성을 쌓아서 내실을 다지고 싶다. 기회가 있으면 도전하는 거고 그게 아니더라도 일단 묵묵히 내 일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내 능력이 어디 쓰일지는 모른다. 그게 정치인으로 쓰일지, 다른 공적 영역에서 쓰일지는 모르겠다. 다만 일단 내가 쓰임이 될 수 있는 존재로 채워져나가는 게 우선이라는 생각이 든다. 필요한 사람이 되고 싶다.

 

 

비야씨는 “절대적인 건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주변 상황과 여건에 따라 언제든지 마음이 바뀔 수도 있다. 사실 인생이라는 것이 어떻게 될지 모른다. 비야씨는 출세를 위해 정치판에 기웃거리는 유형의 사람들이 보기 좋지 않다고 비판했는데 스스로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확신이 있기 때문에 그런 말을 할 수 있다.

 

내가 필요한 사람도 아닌데 정치판 같은 곳에 기웃거리는 것은 모양새가 아닌 것 같다. 나는 뭐 하나 되는 것도 없는데 ‘자리 좀 주세요’라고 하는 게 너무 웃기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행태 중 하나다.

 

그 다음 비야씨는 스스로 생각하는 리더와 정치인의 주요 덕목을 이야기했다. 사람 관리가 핵심이라고 설파했는데 편견없이 사람을 잘 쓰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는 취지다.

 

나는 대통령이 되었든 구청장이 되었든 제일 중요한 것은 인사 관리라고 생각한다. 사람을 잘 써야 한다. 아무 사심없이 그 분야에 전문성이 있는 사람을 니편, 내편 구분없이 등용해야 한다. 인성, 경력, 전문성 등 모든 것을 다 따져서 중책을 맡겨야 한다. 정말 인사만 잘 하면 리더의 역할은 끝나는 거다. 그래서 나는 그 부분에서 자신이 있다. 내가 만약 리더 역할을 맡는다면 사심없이 그 자리에 맞는 사람을 적재적소에 뽑아 앉힐 것이다. 그래서 그런 걸 못 하는 정치인들을 보면 답답하다. 그냥 개인적인 친분이 있다고 자리를 주고 이런 건 정말 아니다. 모든 정당에 해당되는 말이다. 자기 진영에 있는 사람들만 만나고 뽑으면 우물 안 개구리가 된다. 보다 다양한 사람들을 뽑아야 보는 폭이 더 넓어진다.

 

 

비야씨는 멀티잡의 전형이다. 배우, 중국어 사업, 정치인, 카페 창업까지. 이렇게나 많은 일들을 동시에 병행하기란 정말 어려운 일이다. 체력 안배나 각 영역간의 밸런스를 조화롭게 가져가야 할 것 같았다. 이런 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비야씨에게 질문했다. 비야씨는 “스케줄 관리를 잘 하기 때문에 걱정없다”고 말했다.

 

내가 월등히 잘하는 것 중에 하나가 스케줄을 기가 막히게 잘 짠다는 것이다. 그래서 너무 빡빡하면서도 빡빡하지 않다. 되게 유도리있게 짠다. 그리고 약속시간에 누가 늦어도 그렇게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다. 이런 식으로 체력 안배도 적절하게 하고 있다.

 

이제 마지막 질문이다. 비야씨는 최근 서울 마포구 망원동에 무인카페 체인점을 오픈했다. 왜 카페 창업을 했으며 프랜차이즈 카페를 선택한 이유가 있을까? 그리고 앞으로는 또 다시 새로운 분야에 도전을 하게 될까? 이런 것들이 궁금했다.

 

커피를 너무 좋아한다. 그래서 언젠가는 카페를 오픈할 거라고 항상 생각하고 있었다. 거의 커피 중독자다. 그리고 ‘커피에 반하다’ 브랜드 대표의 경영 마인드가 좋았다. 중요한 것은 원두다. 다른 데도 다 맛을 보긴 했는데 여기 원두가 제일 맛있었던 것 같다. 카페를 하는 이유는 고정적인 수익을 창출하기 위함도 있다. 배우 생활을 할 때는 고정적인 수입이 없어 힘들었다. 마음이 행복하고 만족스러운 것과는 별개로 금전적으로는 만족을 못 느꼈다. 또 도전하고 싶은 분야? 앞서 계속 말했다시피 일단은 통합예술치료 분야에 최대한 전념하고 싶다. 그래서 나중에 센터를 하나 차릴 계획이다.

윤동욱 endendj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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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평범한미디어 윤동욱 기자입니다. 권력을 바라보는 냉철함과 사회적 약자들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을 유지하겠습니다. 더불어 일상 속 불편함을 탐구하는 자세도 놓지치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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