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미디어 박효영 기자] 그동안 국민의힘이 공을 들였던 게 통했는지 ‘5.18 민주유공자 유족회’가 보수정당 소속 정치인을 추모제에 초청했다. 사상 최초다.
국민의힘 소속 정운천·성일종 두 의원은 17일 광주광역시 북구 망월동에 위치한 국립 5.18 민주묘지를 방문했다. 이곳에서 열린 추모제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안성례 전 5월 어머니집 관장은 두 의원과 손을 맞잡으며 “역사상 처음으로 악수를 한다”고 환영의 인사를 건넸고 박행순씨(故 박관현 열사 유족)는 “이 두분이 정말 힘차게 설득해가면서 색깔론을 떠나서 우리는 하나가 돼야 한다는 마음으로 열심히 해주셨다”며 “와주셔서 감사하다”고 말했다.
사실 상전벽해다. 2년 전만 해도 국민의힘은 5.18 유족들 앞에 얼굴을 내밀 자격이 없었다.
자유한국당 시절이던 2019년 2월8일 김진태·이종명·김순례·이완영·백승주 전 의원이 국회에서 <5.18 진상규명 공청회>를 개최했고 극우 인사 지만원씨에게 마이크를 제공했다. 지씨는 10년 넘게 ‘광주에 투입된 북한특수부대’ 즉 광수론을 주장해왔던 인사다. 5.18 가짜뉴스 전파의 첨병 그 자체다. 그 당시 이종명 전 의원과 김순례 전 의원은 축사를 통해 도무지 믿을 수 없는 망언을 쏟아냈다.
“5.18 사태가 발생하고 나서 5·18 폭동이라고 했다. 이후 20년 후 민주화운동으로 변질됐다.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세력에 폭동이 민주화운동이 된 것이다. 지만원 박사가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것이 아니다. 첨단과학화된 장비로 사실에 기초해 논리적으로 북한군이 개입한 폭동이라는 것을 밝혀내야 한다. 5.18에 북한군이 개입됐다는 것을 하나 하나 밝히는 역할에 최선을 다하겠다.”(이종명 전 의원)
“故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이 한강의 기적으로 일궈낸 자유 대한민국의 역사에 종북 좌파들이 판을 치면서 5·18 유공자라는 괴물 집단을 만들어내 우리 세금을 축내고 있다.”(김순례 전 의원)
망언 소동 직후 정국이 뒤집어졌다.
일부 정치인들의 일탈에 불과한 걸까? 그렇지 않았다. 국민의힘은 망언 당사자들을 끊어내지 못 했고 사실상 비호했다. 그때 당권을 잡고 있던 김병준 전 비대위원장은 단호한 조치를 약속만 했고 망언 당사자들을 제대로 징계하지 않았다. 이종명 전 의원은 당 윤리위에서 제명 결정을 받았음에도 20대 국회 임기를 다 채웠고 심지어 2020년 4.15 총선에서 위성정당 미래한국당으로 파견되기까지 했다. 나경원 전 원내대표는 입장문을 내고 이미 허위로 판명난 북한군 개입설에 대해 역사적 해석의 다양성 차원으로 가져가며 다시 한 번 유족들의 상처에 소금을 뿌렸다.
무엇보다 국민의힘은 5.18 관련 진상규명을 방해했다. 헬기 사격, 전투기 출격, 집단 발포 명령자, 집단 성폭행 등 밝혀지지 않은 5.18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이 국회에서 통과됐고 그에 따라 진상조사위원회 위원 추천이 이뤄져야 했지만 국민의힘 지도부는 극우 인사를 앉히려고 했다. 5.18 폄훼자들에게 조사권을 쥐어주려고 했던 정당이 국민의힘이었다.
소위 비박계(박근혜 전 대통령) 개혁보수로 불리는 일부 정치인들은 당내 5.18 폄훼 흐름을 진화하려고 했다. 그들은 故 김영삼 전 대통령이 5.18을 민주화운동으로 인정했던 행보를 언급하며 수습에 나섰지만 많이 부족했다. 고작 SNS에 글을 쓰는 것에 불과했다.
망언 소동 이후 1년 반이 흐른 시점(2020년 8월)에서 국민의힘 당권자가 5.18 민주묘지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김종인 전 비대위원장은 울컥하는 심정으로 “5.18 민주 영령과 광주시민 앞에 용서를 구한다. 부끄럽고 부끄럽고 죄송하고 또 죄송하다. 나의 미약한 발걸음이 역사의 매듭을 풀고 과거 아닌 미래 향해 나가는 작은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발언했다.
그 이후 뭔가 흐름이 바뀌었다. 그동안 광주에 방문해서 유화적인 제스처를 취하는 수준에서 머물렀던 국민의힘의 5.18 행보는 확실히 실속있게 변화했다.
호남(전북) 출신 정운천 의원은 5.18 유관단체와 17차례 간담회를 열었고 관련 법안 통과를 위해 애를 썼다. 성일종 의원은 국회 정무위원회 야당 간사로서 국가보훈처를 상대로 5.18 단체를 공법단체로 승격시키는 관련 법률(5.18 민주유공자 예우 및 단체설립에 관한 법률)을 처리하기 위해 노력했다. 이 법안이 통과되어 5.18 희생자의 형제자매(방계가족)도 유족회의 회원이 될 수 있게 됐다. 유족회는 성 의원의 결단을 높게 평가했다.
정 의원은 묘지 참배를 마치고 기자들에게 “드디어 오늘로써 40년 두꺼운 벽을 넘은 것 같다. 5.18 정신이 국민 통합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생각으로 혼신의 힘을 다 해왔던 것이 오늘에 이르게 된 것 같다”고 밝혔고 성 의원은 “마음을 열고 따뜻하게 유가족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을 허락해줘 감사하다. 앞으로도 광주의 정신이 더 빛날 수 있는 역할을 하겠다”고 공언했다.
보수 야권에서 대권주자로 평가받는 유승민 전 의원도 이날 광주를 찾았다.
유 전 의원은 광주시의회 기자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호남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호남은 진보, 영남은 보수라는 구분에 결코 동의하지 않는다. 호남에도 건전한 보수가 잘 되기를 바라는 시민들이 계시고 영남에도 합리적인 진보가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며 “국민의힘은 개혁보수의 길을 가면서 5.18 민주화운동의 정신인 민주와 공화의 가치를 지켜나갈 때 호남에서도 지지를 받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역설했다.
유 전 의원은 5.18 정신을 헌법 전문에 수록하는 것에 대해서도 찬성 의사를 피력했다. 이는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이었다.
유 전 의원은 “5.18 정신은 결국 헌법 1조에 나온 민주와 공화의 정신이라고 생각한다”며 “5.18 민주화운동이 기폭제가 되어서 87년 6월 항쟁이 있었고 대한민국이 민주주의와 공화주의에 살아숨쉬는 나라가 되었다”고 말했다.
특히 유 전 의원은 조국 사태(조국 전 법무부장관) 이후 문재인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의 독주 행보에 대해 “민주주의 헌정 질서를 파괴했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유 전 의원은 “문 대통령과 민주당이 5.18 민주화운동 41주년을 맞아 지난 4년간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헌정 질서를 파괴한 그 문제에 대해서 반성하고 참회해야 한다”며 “광주전남 시도민께서도 민주 정권에서 민주주의와 공화당의 가치가 무너진 것에 대해서도 분노할 것으로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삼권분립에 있어서 문 정권이 법원을 사법부를 무력화했다. 180석 숫자의 힘으로 입법부를 거의 독점하면서 대통령이란 권력에 거의 종속됐다”며 “권력기관이 법치주의의 중심에 서지 않고 권력의 시녀가 된 부분에 대해서도 문 정권이 반민주적인 잘못을 저질렀다”고 날을 세웠다.
야당 정치인의 네거티브라고 보기에는 최근 현 여권을 바라보는 호남 민심이 심상치 않다. 문재인 정부에 대한 호남 민심이 곱지만은 않다.
평범한미디어는 광주에서 언론활동을 하고 있는 40대 남성 A씨의 동의를 받아 그의 견해를 인용하고자 한다.
A씨는 18일 페이스북에 글을 올리고 “광주시민들에게 5.18은 보수정당을 지지할 수 없는 최후의 심리적 장벽이다. 반대로 민주당은 5.18을 독점함으로써 견고한 지지 기반을 유지했다. 독점이 지속될 수 있을까?”라며 “그 균열이 생긴 첫 해가 올해”라고 주장했다.
이어 “가식적이든 가증스럽든 광주시민들은 보수정당의 진심어린 사과와 진정성있는 행동을 기다리고 있다. 그게 충족된다면 그때부터는 분명히 표심이 달라질거란 시그널을 계속 보내고 있다”며 “20년 후 광주 정치판에서 주가가 상승할 정당이 어디일까? 민주일까, 보수정당일까, 진보정당일까. 나는 보수정당에 배팅하겠다. 민주당의 독점 폐해에 신물난 광주시민들은 대안을 원한다”고 설파했다.
아울러 “광주시민들의 인식이 제 아무리 진보적이더라도 90대 10의 정치 지형은 아무래도 기형적이다. 60대 40, 70대 30으로 변화할 거다”라고 덧붙였다.
물론 A씨는 “사실 이 기형을 만들어 낸 게 보수정당의 5.18 혐오와 지역 혐오였다”고 전제했다.
호남 민심이 국민의힘에 틈을 내어준 것은 민주당의 실책 때문이다.
A씨는 “진정한 오월정신의 계승은 정치 개혁이다. 권력은 부패하고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 독점 정치는 결단코 민주주의가 아니”라면서 민주당에게 “지자체장과 기초·광역의회 줄세우기부터 중단하고 당신들만의 축제로 만들 생각마시라. 지자체 정당 공천제를 즉각 폐지하라. 타 정당에서 하든 말든 광주에서부터 정치 기득권을 과감히 내려놓으시라”고 주문했다.
이어 “또 예전처럼 그렇게 내년이 흘러갈 것으로 생각한다면 정말 큰 오산”이라고 일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