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미디어 박효영 기자] “대한민국은 가까이서 보면 정권교체였지만 멀리서 보면 권력 나눠먹기였다. 고착화된 양당제는 두 당의 장기집권이라고 봐야 한다. 때문에 진정한 정권교체는 여야를 뒤집는 것이 아니라 이 판! 양당체제라고 하는 고착화된 판을 뒤집는 것이어야 한다.”
대선전환추진위원회(대전추)를 이끌고 있는 신지예 대표(한국여성정치네트워크)의 굳은 신념이다. 신 대표는 4.7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두 달 앞둔 지난 2월부터 3지대론을 구상해왔다.
대전추는 1일 14시 국회도서관 소회의실에서 <제3지대는 어떻게 희망이 되는가>란 주제로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는 대전추 구성원들(계약직 노동자 청년 김주영씨/국민의당 청년당원 최준원씨/간호사 출신 청년 김주희씨) 외에도 국민의당(김윤 서울시당위원장)과 정의당(김종민 전략기획본부장), 김수민 평론가와 정치학자 안병진 교수(경희대) 등 그동안 3지대론을 논의 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당사자들이 대부분 참석했다.
가장 먼저 발제자로 나선 신 대표는 “내가 제3지대를 주장하기 시작한 때부터 그런 질문을 많이 받았다. 어떻게 보수와 진보가 만나냐고. 어떻게 (이념과 가치관이) 다른 사람들끼리 만날 수 있느냐. 그리고 또 정체성을 퇴보시키지는 않겠느냐?”라며 “물론 정치 노선이 비슷한 집단 간의 연합도 중요하지만 이런 형태의 연합으로는 두 거대정당의 장기집권 체제에 대항하는 민주주의를 만들어낼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어 “가장 효과적인 형태는 미국의 정치학자 스티븐 레비츠키(1968년~)가 말했던 것처럼 서로 이질적인, 여러 사안에 반대 입장을 취하는 집단이 하나로 뭉치는 연합체제다. 그리고 보통 이런 연합은 친구가 아니라 경쟁자들 사이에서 이뤄진다”고 밝혔다.
신 대표는 세계 정치사에서도 이질적인 집단이 연합정치를 성사시킨 사례들이 꽤 있다는 점을 거론했다. 대표적으로 가장 최근 독일의 신호등 연정만 봐도 알 수 있다. 연정 파트너인 세 정당들 중 그나마 사회민주당과 녹색당은 공통분모가 넓은 편이지만 자유민주당은 기업조세부담을 낮춰야 한다고 주장하는 등 누가 봐도 보수우파적인 정당이다.
그러나 신 대표는 “(세 정당이) 부처 장관직 중 자신의 장점을 발휘할 수 있는 주요 역할을 나눠서 가져갔다”면서 “자민당은 예산과 법치를 맡고 녹색당은 환경을 맡는 식”이라고 말했다.
물론 3당의 공동목표도 설정됐다. 3당의 연정 합의서에 보면 “(3당은 연방 하원의원 선거 결과를 토대로) 서로 다른 전통과 관점에도 불구하고 독일의 미래, 현대화의 진전, 안전의 확보를 위해 함께 성공하고자 한다. 우리는 모든 시민의 이익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돼 있다.
신 대표는 과거 독일에 갔을 때 실제로 녹색당과 사민당의 연정합의서를 본 적이 있다면서 “농담 보태지 않고 정말 이만(대략 1미터 높이)했다. 그 안에 예산, 정책, 정부 구성, 인사 등 모두 다 빽빽히 담았다”고 묘사했다.
사실 멀리 갈 것도 없다. 한국 정치권에서 자주 소환되는 DJP연합 사례도 있다. 신 대표는 “1997년 자민련은 DJP연합으로 김대중 정부 출범에 기여하고 약 2년간 공동 여당으로서 권력의 한 축을 담당했다”고 밝혔다. 이때도 나름의 합의서가 있었을 것이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거대 양당이 기득권이고 그동안 좋은 정치를 1도 보여주지 않았다는 점에 대해서는 지나가는 일반 시민도 동의하고 있다. 근데 양당 위주의 질서가 너무 공고하다. 그래서 뭔가 다른 대안이 있어야 하는데 신 대표는 ‘제도와 구조’를 뚫고 나갈 3지대에 주목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 한국의 대선판에도 그 틈이 열리고 있다는 것이 신 대표의 판단이다.
신 대표는 안심연(안철수·심상정·김동연) 각각의 지지율을 다 합쳐도 채 8%가 넘지 않지만 이들이 단일화를 했을 때 투표할 의향이 있는지 묻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한 수치는 10%가 넘었다는 점을 환기했다. 대략 3%나 더 늘었다. 게다가 대선이 100일 남은 시점에서 아직까지 그 누구도 지지하지 않고 있는 무당층이 20%에 육박하고 있다. 누굴 찍을지 결정했다는 쪽과 결정하지 못 했다는 쪽의 비율은 5대 4다. 무당층과 스윙보터에 주목하는 것은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도 마찬가지다. 안 후보는 마음을 결정하지 못 한 스윙보터가 대략 40%에 이르고 있다는 점을 근거로 들며 “내가 1지대”라는 주장을 펴고 있다.
그런데 과연 그들이 안 후보를 비롯 3지대에 표를 줄 것인지가 핵심이다. 그래서 신 대표는 기득권 양당이 아닌 정치세력들이 서로 다르더라도 손을 잡아야 한다는 3지대론을 밀고 있다.
신 대표는 “다른 판이 가능하다는 걸 유권자에게 보여줘야 한다”며 “이대로라면 최악의 대선을 속수무책 보고만 있어야 할지도 모른다. 제3지대 후보들은 양강 후보의 지지율을 합친 것보다 제3지대에 표를 주겠다는 유권자의 목소리가 더 강하다는 것에 진심으로 귀기울여야 한다”고 역설했다.
특히 신 대표는 프랑스 정치학자 모리스 뒤베르제(1917년~2014년)의 정치체제 법칙까지 언급하며 제도의 기속성을 뛰어넘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니까 뒤베르제에 따르면 선거제도의 유형이 1등당선제(단순다수대표제)는 양당제, 비례대표제는 다당제를 불러오는데 꼭 그렇지 않을 수도 있으니 제도탓을 하지 말자는 게 신 대표의 취지다. 한국은 비례대표제를 실시하고 있지만 국회의원 300석 중 47석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전부 1등당선제로 뽑는다.
신 대표는 “제도의 변화가 정치판의 변화를 이끈다기 보다는 정치판이 만든 변화의 결과가 제도로서 더 잘 뒷받침될 수 있었다”며 “지금 상황에 적용해보면 다당제 연정이 제도화되기 전 이를 꿈꾸는 정당과 정치인들이 먼저 연정을 시도해서 성공해야 제도화가 된다는 것”이라고 설파했다.
본론은 따로 있다.
신 대표는 “적어도 12월 안에 제3지대를 열 정당들이 함께 이 정도까지는 공통으로 추진할 수 있지 않겠냐고 하는 정책 이슈를 함께 논의하고 어떻게 정치개혁을 할 것이며 다당제 책임연정을 꾸릴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담긴 합의서를 만들어주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당대표의 서명으로 이를 확인해야 한다”는 게 신 대표의 요구사항이다.
무엇보다 신 대표는 안 후보와 정의당 심상정 후보가 “좀 서둘러야 한다”고 압박했다. 왜냐면 “협력해서 거대 양당에 대한 비판과 공격을 이어가지 않는다면 시간이 흐를수록 양강 구도에 휘말려 갈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심 후보도 그렇고 안 후보도 그렇고 둘 다 양당과의 결합이 의심되는 부분이 있다. 심 후보는 지난 10월 “민주당과의 책임연정” 소동으로 곤욕을 치른 바 있다. 안 대표는 4.7 보궐선거 정국에서 국민의힘과 단일화를 했고 선거운동에 나서면서 오세훈 서울시장의 당선을 도왔다. 그 이후에도 일찍이 약속했던 국민의힘과의 합당을 논의하기도 했으나 불발됐다.
사실 신 대표는 안 후보가 우려스럽다. 심 후보가 책임연정 소동 이후 3지대 행보를 적극적으로 밟아나가는 것에 비해 안 후보는 상대적으로 소극적이다. 매우 조심스럽기까지 하다.
그래서 이날 신 대표는 토론자로 참석한 국민의당 김윤 서울시당위원장에게 “내부의 고민들이 많다는 느낌이 나도 든다. 밖에서 보기에도 딱 뚜렷하게 결정되지 않았구나”라며 “근데 개인이든 정당이든 정치인이 어디까지 갈 것이고 내 비전이 무엇이냐가 정확하면 이번 대선에서 국민의힘에 갈 것인지 아닌지는 너무 명확한 이야기인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제도가 만들어져야 뭘 할 수 있다고 얘기를 하는 것처럼 분위기가 만들어져야 내부에서 결정이 나겠다라는 것으로 들린다. 근데 의지가 더 중요하다”며 “후보자의 의지가 과연 무엇이냐. 그래서 내가 발제문에서도 물어봤다. 염치 불구하고 다시 한 번 묻고 싶다. 국민의당은 양당체제를 종식할 의지가 있는지?”라고 질문했다.
김 위원장 개인은 일찌감치 3지대에 대한 적극적인 의지를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안 후보는 그렇지 않다.
김 위원장은 안 후보도 “기득권 양당체제 극복하는 데 본인이 최선을 다해서 끝까지 국민들의 호응을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 된다는 이런 관점을 명확하다”면서도 솔직하게 풀어냈다.
그러니까 “우리 입장에서 안타까운 것이지만 10년 전에 안철수 현상이 크게 불 때의 안철수가 아니다. 그런 큰 바람과 세력을 못 갖추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가 N분의 1이다. 그런 차원에서 이런 자리와 맥이 통하게 되는 것”이라는 점이다.
10년 전 안 후보는 개인의 브랜드 파워로만 민주당과 한나라당의 양당 질서에 충분히 위협적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 않기 때문에 3지대 세력과 힘을 합쳐야 하는 것인데 김 위원장은 “한꺼번에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할 때 우선적인 과제가 기득권 양당체제를 극복하는 거라는 걸 이걸 앞에 두고 작은 차이들을 넘어서서 함께 할 수 있는 큰 하나의 플랫폼을 구성해나가야 된다”고 피력했다.
신 대표는 독일의 사회학자 막스 베버(1864년~1920년)가 “정치는 단념의 기술”이라고 했던 말을 인용하며 “해서는 안 될 일을 빨리 단념하는 기술이 정치인데 만약에 국민의당이 이후라도 국민의힘과 단일화하거나 논의를 이어간다고 한다면 제3지대인 나로서는 더 이상 거대 양당에 종속될 이들을 호명하고 싶지 않다”고 분명히 했다.
끝으로 신 대표는 재차 서로 다른 사람들의 ‘만남’이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에 대해 설명했다.
신 대표는 “대전추라는 시민 모임은 어떤 조직이 앞장선 것도 아니고 자원이나 인력이 많은 모임은 아니다. 청년 중년 장년 나이나 지역이나 의제와 상관없이 대한민국 유권자인데 이번 대선에 문제의식을 느낀 시민 개개인이 참여하는 모임”이라고 운을 뗐다.
그러다가 신 대표는 “사실 이따금씩 아까 축사해준 (매우 보수적인 신자민련) 박석우 대표를 만날 때마다 내가 어떻게 이분과 만나고 있지라는 생각을 가끔씩 많이 한다. 아마 박석우 대표도 나한테 그런 생각을 할 것”이라며 “위기의 상황이 이렇게 우리를 만나게 해준 것 같다. 이번 대선이 정당의 일정만이 아니라 유권자 대한민국 국민들의 시간이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