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미디어 문명훈 칼럼니스트] 지난 글(칼럼 읽기)에서 《어쩌다 발견한 하루》라는 드라마를 언급하며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자유롭지 않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이 드라마의 배경은 만화 속인데요. 작가가 만든 스토리에서 벗어나 자유를 찾으려는 캐릭터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만화 속 캐릭터가 작가의 의도대로 행동할 수밖에 없듯이 우리도 이미 짜여진 극본에 따라 행동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상황과 역할에 따라 나름의 규범이 주어지고 그 규범에 따르지 않으면 불이익과 제약이 발생하죠. 조금만 방심하면 개인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주변 환경에 휩쓸려 가게 됩니다. 저는 수업 시간에 가끔 학생들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하는데요. 이야기에 삶을 주도할 수 있는 힘이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이야기가 갖는 여러 기능에 대해 써볼까 합니다. 좋든 싫든 우리는 살면서 끊임없이 자신의 이야기를 해야 합니다. 가깝게는 친구와 대화를 하면서도 내가 어떤 생각인지,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 표현하게 됩니다. 학교에서 조별 과제를 할 때도 내가 가진 생각과 지식을 정리해 보여주는 것은 중요하죠. 사회생활을 하면서는 그런 상황이 더 많
[평범한미디어 문명훈 칼럼니스트] 최근 MBC 《어쩌다 발견한 하루》라는 드라마를 정주행했습니다. 그동안 제목만 알고 있었는데 드라마의 소재가 독특해서 흥미가 생겼습니다. 하이틴 드라마라 제게는 맞지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몰입도가 꽤 높았습니다. 여기서 jtbc 《스카이캐슬》의 김혜윤 배우가 주인공 ‘은단오’ 역을 맡았는데요. 독특하게도 이 드라마의 배경은 만화 속 세상입니다. 로맨스 만화 속 단오는 엑스트라입니다. 심장병을 갖고 있고, 10년째 짝사랑을 하고 있죠. 만화 속 캐릭터들은 모두 작가의 의도대로 말하고 행동하는데, 어느날 은단오가 자아를 갖게 되면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만화 속에서 자아를 갖지 못 한 캐릭터들은 아무 것도 기억하지 못 하는 작가의 꼭두각시인데요. 단오는 부자연스럽게 흘러가는 상황을 보며 그곳이 만화 속 세계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때부터 단오는 만화의 스토리를 바꾸려고 노력합니다. 자신이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는 척해야 하는 것도 싫고, 무엇보다도 심장병으로 언제 죽을지 모르는 위태로운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작가가 만든 이야기를 바꾸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닙니다. 갈수록 병은 악화되고 자신이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평범한미디어 문명훈 칼럼니스트] 지난 칼럼에서는 보수주의의 멘토 하이에크의 '자유' 개념에 대해 알아봤는데요. 하이에크는 자유를 ‘타인에 의한 강제가 없는 상태’로 규정하고 국가가 개인에 대한 강제를 최대한 줄여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는 강제가 없는 자유로운 상태에서 애덤 스미스가 말한 ‘보이지 않는 손’과 같은 상호조정 메커니즘이 나타나 자연스럽게 균형에 도달하게 된다고 생각했죠. 이런 생각은 하이에크 이후 보수주의 사상의 기본 전제가 되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소극적 자유를 주장하는 보수진영과는 달리 적극적 자유를 추구하는 진보진영의 자유를 살펴볼텐데요. 여기서 '자유'는 단지 강제가 없는 상태가 아니라 '무언가를 성취할 수 있는 역량(capability)을 포함하는 포괄적인 개념'입니다. 이런 주장의 대표적 사례를 경제학자 ‘아마티아 센’(Amartya Kumar Sen)과 법철학자 ‘마사 누스바움’(Martha C. Nussbaum)에게서 찾을 수 있습니다. 누스바움이 ‘역량접근법’이라고 부르는 관점입니다. 역량접근법은 간섭의 배제를 추구하는 소극적 자유가 명목상의 자유일 뿐이라고 말합니다. 타인의 간섭이 없더라도 장기실업 상태에 있는 사람이 스스로
[평범한미디어 문명훈 칼럼니스트] 지난 칼럼(문명훈의 뷰 포인트⑫ 우리는 '같은 언어'를 쓰고 있는 걸까?)에서 저는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의 이론을 설명하면서 우리가 같은 언어를 다른 의미로 사용한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때 예시로 들었던 단어가 '자유'였는데요. 정치인과 학자들은 사회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이 단어를 자주 사용하지만 서로 다른 용법으로 쓰고 있습니다. 단어의 의미가 달라지면 당연히 그 단어를 둘러싼 맥락도 달라지겠죠. 보수진영과 진보진영에서 '자유'의 의미는 다릅니다. 이번 글과 다음 글에서 이 개념의 서로 다른 의미를 알아볼까 합니다. 그 차이를 이해하지 못 하면 서로 악다구니만 쓸 뿐 사회를 바라보는 관점의 간극을 좁히기 어렵습니다. 보수의 멘토, 하이에크의 자유 ‘하이에크’(Friedrich August von Hayek)는 1974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학자인데요. 그는 세계대공황 이후 시장에 대한 정부의 개입을 주장한 ‘케인즈’(John Maynard Keynes)의 사상에 반대하며 정부의 한계를 규정하고 시장의 힘을 강조한 신자유주의 경제학자입니다. 자유에는 여러 의미들이 있는데요. 하이에크는 ‘타인에 의한 강제가 없는 상태’를
[평범한미디어 문명훈 칼럼니스트] 코로나로 일도 줄고 여러모로 힘들고 불편하지만 긍정적인 면도 있습니다. 새로운 취미가 하나 생겼습니다. 팬데믹 전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던 드라마와 영화를 찾아보게 됐습니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혼자 있는 시간이 늘고, 그 시간을 활용할 방법을 찾아야 하는 상황에서 자연스레 넷플릭스, 왓챠, 티빙, 웨이브를 넘나들며 영상 콘텐츠를 찾아보게 됐습니다.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 〈싸이코지만 괜찮아〉 〈손더게스트〉, 영화 〈인턴〉 〈리틀포레스트〉 등 순간 떠오르는 작품들만 해도 많습니다. 과장을 조금 보태자면 1년 반 동안 그 전에 10년간 봤던 드라마 영화보다 더 많은 작품들을 본 것 같습니다. 최근에는 〈너는 나의 봄〉이라는 작품을 보고 있는데요. 로맨틱 코미디에 스릴러가 가미된 드라마입니다. 제게 이 드라마는 심정지 상태에 있던 연애 세포에 심폐소생술을 해주는 작품입니다. 서사도, 대사도, 연기도 뛰어나서 드라마 한 편을 보고 새벽까지 유튜브 관련 영상을 돌려보곤 합니다. 여느 드라마가 그렇듯 〈너는 나의 봄〉에도 다양한 갈등과 대립 구도가 있는데요. 심장이식수술로 언제 죽을지 몰라 사랑하는 사람을 밀어내려는 영도(배우 김동
[평범한미디어 문명훈 칼럼니스트] 인간은 일어나서 잠들 때까지 언어에 둘러싸여 삽니다. 언어는 우리가 사용하는 주요 의사소통 수단인데요. 우리는 언어를 통해 감정을 표현하고, 무언가를 설명하고, 누군가를 설득합니다. 그런데 언어는 의사소통 수단을 넘어 현실을 창조하고 변화를 불러오는 힘을 갖고 있습니다. 11번째 칼럼에서는 언어의 힘을 연구한 20세기 철학자 오스틴(John Langshaw Austin)에 대해 다뤄볼까 합니다. 현실을 구성하는 언어 전통적으로 철학에서 언어는 진리를 전달할 때만 의미있는 것으로 인정을 받았습니다. 언어는 세계를 설명하거나 기술하는 것이고 우리는 이에 대한 참과 거짓을 판단할 수 있다는 것이죠. 그런데 오스틴은 이런 가정이 잘못됐다고 말합니다. 세계에 대한 설명이라고 생각했던 언어가 다른 역할을 하는 경우가 더 많기 때문이죠. 오스틴은 참과 거짓을 가를 수 있는 문장을 진술문(statement)이라고 부릅니다. "오늘 날씨가 맑다", "나는 오늘 점심에 유부초밥을 먹었다", "4학년 1학기 성적 평균은 4.5점이다" 등은 참과 거짓을 가려낼 수 있는 명제입니다. 그런데 진술문처럼 보이지만 참과 거짓을 따지는 게 의미없는 경우도
[평범한미디어 문명훈 칼럼니스트] 잘 모르는 사람과 술자리를 갖게 되면 눈치 게임이 시작됩니다. 처음엔 상대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막막하지만 나이, 직업, 성별 등을 고려하면서 대화를 이어가죠. 그러다보면 상대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어느 정도 감을 잡을 수 있습니다. 술자리 뿐 아니라 전학을 간다거나 다른 팀으로 발령을 간다거나 하는 상황이 되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면서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배우게 됩니다. 일상 속 상호작용에는 우리가 의식하지 못 하는 나름의 규칙이 있는데요. 상황마다 요구되는 행동방식이 다릅니다. 인문학 강사로 일하고 있는 제가 강의에 들어가면 가족이나 친구들과 있을 때처럼 행동하지 않습니다. 강의실에서는 평소 잘 언급하지 않는 지식들을 수업 형식에 맞춰 풀어내죠. 마찬가지로 가족이나 친구들과 있을 때에는 학생들에게 강의하듯 가르치려고 하지 않습니다. 각각의 상황마다 행동방식은 다 다릅니다. 모든 상황은 그 나름의 논리가 있고 그 논리는 개인에게 일종의 압력으로 작용합니다. 사회학자 ‘어빙 고프먼’은 이런 일상의 상호작용을 주목한 학자입니다. 행동의 기준이 되는 ‘상황 정의’ 고프먼은 일상적인 상호작용을 연극에 비유합니다. 개인은 각각 상
[평범한미디어 문명훈 칼럼니스트] 지난 6월11일 이준석 대표가 보수정당 국민의힘의 당권을 잡았습니다. 국회의원 평균 연령이 50대 중반 이상인 상황에서 만 36세의 나이로 100석 이상의 큰 정당의 당대표가 된다는 것은 이례적인 일입니다. 그만큼 세대교체에 대한 열망이 컸다는 뜻이겠죠. 청년세대의 목소리가 정치권에 반영되지 않고 있는 상황에 대한 우려가 결과로 나타난 것입니다. 이 흐름에 발맞춰 청와대는 만 25세의 박성민 청년비서관을 발탁했습니다. 파격적인 인사죠. 두 사람은 정치에 새로운 시각과 논리를 가져올 인물로 큰 기대를 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두 명의 청년 정치인이 두각을 나타내는 과정에서 공정성 시비가 붙었습니다. 이준석 대표의 경우 평소 신념으로 갖고 있던 ‘능력주의’(Meritocracy)가 공정하지 않은 기준이라는 비판을 받았고, 박성민 비서관은 만 25세의 나이에 1급 공무원이 됐다는 점이 다른 공무원에 비해 불공정한 처사라는 비판을 받았습니다. 제가 네 번째 칼럼(‘공정성’에 대한 고민)에서 정치를 ‘한정된 재화를 어떤 방식으로 누구에게 분배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과정’이라고 정의했는데요. 물리적 재화 뿐 아니라 유무형의 가치도 분배의
[평범한미디어 문명훈 칼럼니스트] 인기있는 문화 콘텐츠는 그 시대의 단면을 보여줍니다. 1978년 출판된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통해 우리는 70년대 도시 빈민층의 삶을 간접 경험할 수 있고, 1987년 발표된 소방차의 노래 <어젯밤 이야기>는 당시 한국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댄스 노래로 대중음악의 변화 양상을 보여줍니다. 1999년 개봉한 강제규 감독의 <쉬리>는 국내 첫 200만 관객 돌파 영화인데 그 영화를 통해 우리는 당시 한국 영화의 성장과 남북관계 개선에 대한 기대감을 엿볼 수 있습니다. 2000년대 수많은 부모님들의 속을 끓게 했던 <스타크래프트> <바람의나라> 등과 같은 게임은 지금 돌아보면 디지털 문화의 성장을 상징하는 콘텐츠입니다(사실 두 게임이 90년대에 출시되었다는 건 비밀입니다). 2013년에 시작한 예능 프로그램 <나 혼자 산다>는 급증하는 1인 가구들의 라이프스타일을 반영한 프로그램이죠. 어떤 콘텐츠든 어느 정도 그 시대의 모습을 담고 있습니다. 사회를 비추는 거울 넷플릭스 시트콤 <내일 지구가 망해버렸으면 좋겠어> 제가 최근 며칠 동안 빠져있는 콘텐
[평범한미디어 문명훈 칼럼니스트] 집이라는 공간의 성격이 바뀌고 있습니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직장인은 재택 근무를 하고 학생들은 집에서 수업을 듣습니다. 붐비는 곳을 피해 집에서 사람을 만나거나 심지어 온라인으로 만남을 갖는 경우도 있죠. 홈트레이닝을 통해 건강을 챙기는 홈트족도, 집에서의 활동을 SNS로 인증하는 놀이 문화도 생겼습니다. 업무, 교육, 사교, 운동, 문화생활 등 집의 기능과 역할이 확장되고 있습니다. 집 외에도 여러 공간의 의미가 달라졌습니다. 이런 변화는 코로나가 종식되면 사라질까요?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아무일도 없었던 것처럼 예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을 겁니다. 장기간에 걸친 코로나 팬데믹과 기술의 발전으로 공간에 대한 인식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관계를 보여주는 거리감 여러 학교를 다니며 강의를 하다보면 강의 조건이 천차만별입니다. 대강당에서 100명이 넘는 학생과 수업을 할 때도 있고, 일반 강의실에서 20명 남짓의 학생들과 수업을 할 때도 있습니다. 최근에는 온라인 공간에서 수업을 많이 하죠. 그런데 어떤 상황에서 수업을 하느냐에 따라 말투나 태도가 달라집니다. 소규모 강의에서는 장난도 치고 편하게 대하지만 대강당에서는 저도 학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