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미디어 문명훈 칼럼니스트] 집이라는 공간의 성격이 바뀌고 있습니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직장인은 재택 근무를 하고 학생들은 집에서 수업을 듣습니다. 붐비는 곳을 피해 집에서 사람을 만나거나 심지어 온라인으로 만남을 갖는 경우도 있죠. 홈트레이닝을 통해 건강을 챙기는 홈트족도, 집에서의 활동을 SNS로 인증하는 놀이 문화도 생겼습니다. 업무, 교육, 사교, 운동, 문화생활 등 집의 기능과 역할이 확장되고 있습니다. 집 외에도 여러 공간의 의미가 달라졌습니다.
이런 변화는 코로나가 종식되면 사라질까요?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아무일도 없었던 것처럼 예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을 겁니다. 장기간에 걸친 코로나 팬데믹과 기술의 발전으로 공간에 대한 인식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관계를 보여주는 거리감
여러 학교를 다니며 강의를 하다보면 강의 조건이 천차만별입니다. 대강당에서 100명이 넘는 학생과 수업을 할 때도 있고, 일반 강의실에서 20명 남짓의 학생들과 수업을 할 때도 있습니다. 최근에는 온라인 공간에서 수업을 많이 하죠. 그런데 어떤 상황에서 수업을 하느냐에 따라 말투나 태도가 달라집니다. 소규모 강의에서는 장난도 치고 편하게 대하지만 대강당에서는 저도 학생들도 격식을 갖춥니다.
문화인류학자 에드워드 홀(Edward T. Hall)은 『숨겨진 차원』에서 우리가 관계에 따라 다른 거리를 유지한다고 말합니다. 그는 4가지 유형으로 거리를 구분하는데요. 유형에 따라 행복 방식도 달라집니다. 문화권마다 다르지만 일반적으로 친밀한 거리(intimate distance)는 46cm 이내, 개인적 거리(personal distance)는 120cm 이내, 사회적 거리(social distance)는 360cm 이내, 360cm가 넘으면 공적 거리(publice distance)입니다. 이 분류에 따르면 제가 대강당에서 수업할 때의 거리가 공적 거리인 셈이죠.
친밀하게 느끼는 관계일수록 거리가 좁혀집니다. 보통 카페 의자 간격은 1m 이내입니다. 개인적 거리에 맞춰져 있죠. 연인들은 그 거리도 멀다고 느껴 바로 옆자리에 붙어 앉습니다. 연인이 될 가능성이 있는 사이에서는 거리감이 미묘해지는데요. 상대에게 호감이 있다면 몸을 상대쪽으로 기울여 간격을 줄이려는 시도를 하고, 산책을 할 때도 되도록 가까이 붙으려 합니다. 길을 걷다 어깨나 손이 닿을락 말락 하는 장면이 드라마에 자주 연출되는데 실제로 연인으로 발전하는 관계에서는 거리를 좁히려는 시도가 보입니다.
만약 호감이 없는 상태에서 누군가가 사적인 거리로 들어오려 한다면 불쾌감을 느낄 겁니다. 그건 무례한 행동이죠. “도를 아십니까”라고 묻는 전도자(일명 도믿맨 또는 도믿걸)가 다가올 때 느끼는 위기감이나 위화감은 우리에게 거리를 가늠하는 일종의 센서가 있다는 것을 잘 보여줍니다. 공간에는 나름의 논리가 스며들어 있습니다.
공간이 행동을 결정한다
다시 수업하는 상황으로 돌아가 봅시다. 강의가 아니라면 저와 학생들은 서로 신경 쓸 일 없는 남남일 뿐입니다. 그런데 강의실 안에서는 선생과 학생의 관계입니다. 저(강사)는 양질의 교육콘텐츠를 제공해야 하고, 학생은 수업에 잘 따라야 할 의무가 생깁니다. 역할에 따라 규범이 만들어지는 겁니다. 설사 원치 않더라도 제가 질문을 하면 학생들은 대답하기 위해 머리를 쥐어짭니다. 상황이 개인의 행동을 강제하는 거죠. 강의실에는 이런 역할 구분을 명확하게 해주는 장치들이 있습니다.
지금은 거의 사라졌지만 예전 학교에는 교실마다 교단이 있었습니다. 학생 입장에서는 앉아 있는 데다가 선생님이 교단에 올라가기까지 하니 저절로 우러러 볼 수 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선생님의 권위를 높이기 위해 물리적 위치를 조정한 것이죠. 대형 강의실에는 아직도 이런 장치가 남아 있습니다. 좌석이 고정되어 있고 강단까지 있어 강사에게만 집중할 수 있도록 자리가 배치되어 있죠. 고등학교 수업에 가면 토론식 수업을 위한 원형 테이블을 자주 보게 되는데요. 반대로 이 좌석 배치에서는 선생님의 영향력이 줄어듭니다. 강사는 일종의 퍼실리테이터(조정자)가 되고 학생들 간의 의사소통이 극대화됩니다. 공간 구성이 공간 속 사람들의 행동에도 영향을 주는 겁니다.
공간의 힘은 직장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예외적인 몇몇 사례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회사는 직급과 담당 업무에 따라 자리를 배치합니다. 상급자는 보통 팀원 모두를 관찰할 수 있는 창가 자리에 앉습니다. 그 앞으로 직급에 따라 순서대로 앉게 되죠. 자연스레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극단적인 경우 업무보다 상급자의 시선을 더 신경쓰게 됩니다. 최근 등장한 자율좌석제나 거점 오피스는 수직적 업무 환경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환경에서 업무 효율을 극대화하려는 목적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어떤 공간에 있느냐에 따라 사람들의 행동이 달라집니다. 공간은 경직성을 높이기도, 창의성이 자극하기도 합니다.
비대면 공간의 특징
재택 근무나 비대면 수업을 해봤다면 온라인 공간에서 대면과는 다른 공간 논리가 작동한다는 것을 느낄 것입니다. 대면이냐 비대면이냐에 따라 업무 성격이나 수업 방식이 달라지죠. 가장 큰 변화는 전에는 주도권을 갖지 못했던 사람들이 주도권을 갖게 된다는 것입니다. 비대면 수업 상황을 떠올리면 무슨 의미인지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비대면 수업에서 강사는 학생에게 영향력을 발휘하기 어렵습니다. 녹화 강의의 경우 청중 없이 수업을 해야 하고, 화상회의 플랫폼을 이용해 실시간으로 수업한다고 해도 송출 지연이 발생해 원활한 소통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게다가 화면을 켜고 끄는 것도, 음소거를 해제해 발표하는 것도 학생의 권한입니다. 대면 수업이라면 자연스럽게 유도할 수 있는 호응도 온라인 공간에서는 어려워집니다.
대면 수업에서는 설령 학생이 강의 주제에 관심이 없더라도 수업 분위기를 따라가게 됩니다. 주변 친구들이 강사에게 주목하는 것 같으니 자신도 그러는 척 하는 거죠. 사실 다른 학생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지루하지만 다른 친구들이 수업에 집중하고 있으니 수업 내용에 귀를 기울입니다. 서로에 대한 오해가 겹쳐 좋은 수업 분위기를 만드는 겁니다. 이런 상황을 심리학에서는 ‘다원적 무지(pluralistic ignorance)’라고 합니다. 다수의 의견을 지레짐작하고 자신의 행동도 거기에 맞추는 거죠. 때문에 강사가 학생들 중 소수의 반응을 이끌어낼 수만 있다면 수업 분위기를 주도할 수 있습니다. (제 수업을 듣는 학생들은 이 글을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런데 비대면 수업에서는 이런 반응을 이끌어내기가 훨씬 어렵습니다. 화면으로 얼굴을 보고 있더라도 유리벽이 몇 겹 씌워져 있는 느낌입니다. 강사와 학생 사이에도 벽이 있지만 학생들끼리도 분리되어 있습니다. 이런 한계 때문에 온라인 공간에서는 선생님이 쓸 수 있는 방법이 많지 않습니다. 학생 스스로 의지를 갖지 않으면 좋은 수업을 하기 어렵습니다. 결국 주도권은 학생에게 있습니다. 다른 말로 학생들의 자유도가 높아졌습니다. 이것은 직장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정형화된 사무실을 벗어나면 공간이 갖는 구속력이 사라지고 개인의 자유도가 높아집니다.
새로운 규범
주도권의 이전과 참여자 자유도의 향상은 디지털 공간의 일반적 특징입니다. 가령 콘텐츠 생산자가 가졌던 주도권을 이제는 소비자가 갖게 되었죠. 제가 중고등학교를 다니던 200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아이돌 팬은 열정적 소비자였지만 콘텐츠 생산에 관해서는 수동적이었습니다. 주도권은 기획사와 아이돌 가수에게 있었죠. 여전히 기획사와 가수는 중요하지만 이제는 팬이 큰 영향을 발휘하는 시대입니다.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보듯 아이돌 그룹의 구성원을 팬이 결정하고 활동에도 관여합니다. 이제는 대중의 참여 없이는 성공하기 어렵습니다. SNS와 개인방송을 잘 활용한 BTS가 대표적인 예죠. BTS로 대표되는 K-pop 세대는 새로운 공간 논리를 잘 보여줍니다.
그렇다고 디지털 공간이 좋은 점만 갖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개인의 자유도가 높아졌다고 표현했지만 그만큼 디지털 공간을 좌우하는 플랫폼의 권력이 강해졌습니다. 이제 배달/배송 어플의 힘은 상품 생산자를 압도합니다. 카카오, 네이버, 구글 같은 포털의 권력은 여론을 좌우할 수 있는 정도입니다. 앞에서 언급한 다원적 무지는 인터넷 공간에서 파괴적으로 작동합니다. 익명의 환경에서 극단적 의견에 노출된 이들의 반응은 극단적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다수가 그렇게 생각한다고 착각하니까요. 집단의 폭력성이 발현되기 쉬운 환경입니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우리 삶 깊숙히 자리 잡게 된 디지털 공간이 오프라인 공간의 기능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이고 있습니다. 기존의 공간 논리와 규범은 힘을 잃고 새로운 기준이 만들어지고 있는 상황이죠. 백신으로 집단 면역을 갖게 된다 하더라도 바뀐 문화와 생활양식은 큰 흔적을 남길 것입니다. 비대면 수업에 익숙해진 학생들이, 재택 근무의 효율성을 알게 된 기업이, 온라인 쇼핑에 적응한 소비자가 디지털 공간을 외면하기란 쉽지 않겠죠. 대면과 비대면이 공존하는 환경이 만들어질 겁니다. 그런 혼용된 공간에서 나타날 논리와 규범은 어떤 것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