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미디어 문명훈 칼럼니스트] 지난 칼럼에서는 보수주의의 멘토 하이에크의 '자유' 개념에 대해 알아봤는데요. 하이에크는 자유를 ‘타인에 의한 강제가 없는 상태’로 규정하고 국가가 개인에 대한 강제를 최대한 줄여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는 강제가 없는 자유로운 상태에서 애덤 스미스가 말한 ‘보이지 않는 손’과 같은 상호조정 메커니즘이 나타나 자연스럽게 균형에 도달하게 된다고 생각했죠. 이런 생각은 하이에크 이후 보수주의 사상의 기본 전제가 되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소극적 자유를 주장하는 보수진영과는 달리 적극적 자유를 추구하는 진보진영의 자유를 살펴볼텐데요. 여기서 '자유'는 단지 강제가 없는 상태가 아니라 '무언가를 성취할 수 있는 역량(capability)을 포함하는 포괄적인 개념'입니다. 이런 주장의 대표적 사례를 경제학자 ‘아마티아 센’(Amartya Kumar Sen)과 법철학자 ‘마사 누스바움’(Martha C. Nussbaum)에게서 찾을 수 있습니다. 누스바움이 ‘역량접근법’이라고 부르는 관점입니다.
역량접근법은 간섭의 배제를 추구하는 소극적 자유가 명목상의 자유일 뿐이라고 말합니다. 타인의 간섭이 없더라도 장기실업 상태에 있는 사람이 스스로를 자유롭다고 느낄까요? 경제적 궁핍과 자존감 하락으로 비참해질 가능성이 큽니다. 현실에서는 적극적 자유가 없다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합니다. 소극적 자유는 복잡한 현실을 반영하지 못 하기에 실질적 자유를 누리려면 적극적 자유가 필요합니다. 진보진영은 자유를 누리는 데 일정한 능력과 조건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전제로 삼고 있는데요. 그래서 지속적으로 복지를 확대하고 사회안전망을 구축해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지난 글을 읽지 않은 분을 위해 다시 정리하자면 ‘소극적 자유’는 ‘한 사람에게 다른 사람의 간섭이 없는 상태’를 뜻하고, ‘적극적 자유’는 ‘주도적으로 목표와 가치를 설정하고 실현한다는 의미에서의 자유’입니다. 그래서 적극적 자유에는 가치 설정과 실현에 필요한 능력이 포함됩니다. 소극적 자유와 적극적 자유는 정치학자 이사야 벌린이 제시한 유명한 구분법으로 자유를 논의할 때 빠지지 않고 언급되고 있습니다.
자유에는 역량이 필요하다
아마티아 센은 역량접근법을 대표하는 학자로 평생 빈곤과 불평등에 대해 연구했습니다. 그 업적을 인정받아 1998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했죠. 그는 사회의 발전이란 단순히 경제적 성장이 아니라 자유를 확장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때문에 GDP(국내총생산) 중심의 평가가 아니라 개인이 자유를 누릴 수 있는 환경을 평가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했죠. 매년 국제연합개발계획(United Nations Development Programme)에서 인간개발지수(Human Development Index)를 발표하는데요. 평균 수명, 교육 수준, 소득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해 국가의 발전 정도를 산정하는 겁니다. 이 지수를 만든 사람이 바로 센입니다.
하이에크는 자유를 ‘개인적 자유’에 한정했습니다. 타인에 의한 간섭이 없는 상태를 사회가 지켜야 할 자유로 봤던 것이죠. 그런데 센은 개인적 자유만 이야기하는 주장이 개인을 타인이나 주변 환경과 동떨어진 허구의 섬으로 가정하는 것이라고 비판합니다. 정치적 과정에 참여할 자유(정치적 자유), 빈곤하지 않다는 의미에서의 자유(경제적 자유), 부당한 이유로 차별받지 않을 자유(사회적 자유) 등은 하이에크가 말한 개인적 자유는 아니지만, 결국 이런 자유들이 지켜지지 않으면 개인적 자유도 파괴될 수밖에 없습니다. 하이에크는 적극적 자유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소극적 자유가 파괴된다고 말하지만, 역량접근법의 관점에서는 적극적 자유를 추구하지 않으면 소극적 자유까지 파괴되는 겁니다. 그래서 누스바움은 “모든 자유는 적극적 자유”라고 말합니다.
자유에서는 크게 두 가지가 중요한데 하나는 개인의 (내적인) 행위 선택 과정이고 다른 하나는 선택을 실현시킬 수 있는 (외적인) 환경적 조건입니다. 역량접근법은 보수진영의 자유 개념과 다르게 환경적 조건을 강조합니다. 아무리 똑똑한 학생이라도 가난한 가정환경에서 좋은 교육을 받기는 어려울 겁니다. 어려움을 이겨내고 좋은 성적을 유지하더라도 자신이 원하는 대로 진로를 선택하지 못 할 가능성이 크죠. 자신의 상황을 고려해 장학금을 많이 주거나, 높은 수익을 보장하는 전공을 선택하게 되겠죠. 누가 강제하지 않더라도 환경적 조건이 개인의 선택에 압력을 가하는 겁니다.
역량접근법의 자유는 스스로 삶을 선택하고 그 목표를 성취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 실질적 자유입니다. 그래서 자유가 곧 역량이라고 말하는 거죠. 센이 예시로 드는 몇 가지 사례를 보면 역량이 자유에서 왜 중요한지 알 수 있습니다. 부자의 다이어트와 빈자의 굶주림이 같을 수는 없습니다. 간섭이 없는 상태라고 두 사람이 모두 자유로운 걸까요? 부자는 자유롭게 식단을 선택할 수 있지만 경제적 역량이 없다면 굶주림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인도에서 가정폭력에 시달리는 여성의 사례도 마찬가지입니다. 이혼하고 혼자 사는 선택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이혼 절차가 까다롭고, 이혼 후 여성이 독립적으로 생계를 꾸려갈 사회 환경이 갖춰지지 않은 상황에서는 그녀에게 선택권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자유롭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자유에는 역량이 필요하고, 그 역량에는 개인의 능력뿐 아니라 환경적 조건이 포함됩니다.
자유들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자유에 필요한 기초 역량에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센은 크게 다섯 가지를 말하는데요.
①정치적 자유
②경제적 용이성
③사회적 기회
④투명성 보장(투명성이 사회적 신뢰를 형성)
⑤안전보장
이 다섯 가지가 기본적으로 사회가 지켜야 할 자유의 목록들입니다. 나아가 누스바움은 △생명 △신체건강 △신체보전 △감각·상상·사고 △감정 △실천이성 △관계 △인간 이외의 종 △놀이 △환경 통제 등이 인간이 자유를 누리는 데 필요한 역량들이라고 말합니다. 두 학자가 말하는 역량에 차이가 있는데요. 둘 다 이 목록이 절대적인 것은 아니라고 말합니다. 사회적 합의를 통해 기초역량의 목록은 바뀔 수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따지면 자유에 필요한 역량은 조금씩 차이가 나지만 핵심은 한 개인이 자유롭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삶의 질이 보장돼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삶의 질이 보장되려면 여러 가지 조건이 필요합니다. 정치적 자유, 경제적 자유, 사회문화적 자본, 건강, 일정한 수준의 지적 능력 등 여러 요소들이 결합해서 삶을 구성하죠. 이 요소들은 서로에게 영향을 줍니다.
정치적 자유가 없다면 경제적 자유도 얻기 어렵습니다. 새롭게 등장한 플랫폼 노동자들은 상대적으로 사회적 약자인데요. 택배기사, 배달라이더 등 플랫폼 노동자들이 노조를 결성하고 협상을 통해 임금과 노동조건을 바꾸고 있습니다. 정치권도 불공정 노동을 없애기 위해 법을 개정합니다. 정치에 참여할 수 없다면 노동환경을 바꾸기 어려워 앞으로도 열악한 환경에서 낮은 임금을 받고 일하게 될 겁니다.
경제적 자유는 학습과 지적 능력에 영향을 줍니다. 세이브더칠드런이나 초록우산의 후원 광고를 보면 가난한 환경에서 자라는 아이들의 어려움을 간접적으로 알 수 있는데요. 끼니를 거르고 생필품이 부족해서 걱정해야 한다면 그런 환경 속에서 아이들이 제대로 된 교육을 받을 수 있을까요? 학교에 간다고 온전히 공부에 집중할 수 있을까요? 교육에 집중하지 못 하면 나중에 저임금 노동을 하게 되고, 빈곤층이 될 가능성이 큽니다. 악순환이죠.
정치적 자유는 경제적 자유에, 경제적 자유는 지적 역량에 영향을 줍니다. 때문에 역량접근법은 각각의 자유를 키우는 것이 그 자체로 목표이면서 동시에 다른 자유를 향상시키는 방법이라고 말합니다. 하이에크처럼 개인적 자유 하나만을 이야기하는 것은 지나치게 현실을 단순화시킨 주장입니다.
사회의 역할
사회는 개개인의 자유를 확장시키는 일을 해야 합니다. 개인이 역량을 발휘하도록 환경을 조성하고 보조하는 역할을 하는 겁니다. 그런데 사회가 무엇을 장려하고 무엇을 금지하는지에 따라 개인의 행동 반경이 결정됩니다. 점점 사라지고 있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의 유리천장은 견고합니다. 2021년 기준 상장 법인 기업들 중 무려 63%에서 여성 임원이 1명도 없었습니다. 성평등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지만 여전히 여성이 역량을 발휘하기 어려운 상황이 있죠. 이런 상황을 바꾸기 위해 ‘이사회의 성별 구성에 관한 특례’가 만들어졌는데요. 2022년부터 자산 총액 2조원 이상의 상장 기업이라면 적어도 1명 이상의 여성 이사가 있어야 합니다.
미국에도 비슷한 규정이 있습니다. 2022년부터 증권거래소 나스닥에 상장된 기업은 여성 1명, 소수인종이나 성소수자 1명을 이사진에 포함시켜야 합니다. 미국 뿐 아니라 노르웨이, 스페인, 네덜란드, 독일, 일본 등 여러 국가가 소수자의 사회 활동을 장려하는 제도를 도입하고 있죠. 어떤 정책을 채택하느냐에 따라 개인의 역량 발휘 기회가 좌우됩니다.
이외에도 기초교육을 강화하고 복지제도를 정비하는 것, 사회 인프라를 늘리고 지역 격차를 줄이려는 정책 등은 모두 시민의 자유를 증진하려는 시도입니다. 국가는 최대한 많은 이들이 자신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제도를 정비해야 합니다. 역량접근법은 국가에게 적극적 역할을 부여합니다.
하이에크라면 국가에 적극적인 역할을 부여하는 역량접근법에 반대할 겁니다. 여러 역량을 키우려는 사회적 개입이 결국 개인적 자유를 파괴하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사회의 작동 원리에 대한 무지 때문에 국가의 개입이 오히려 의도하지 않은 역효과를 낳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아마티아 센은 합리적 판단에 따른 개입을 무용하지 않다고 강조합니다. 의도치 않은 부작용이 생길 것을 예측하고 대비하려는 노력이 더 필요할 뿐입니다.
지난 칼럼과 이번 칼럼을 통해 보수와 진보의 ‘자유’ 개념을 다뤘는데요. 거칠게 구분하면 소극적 자유 대 적극적 자유의 구도로 볼 수 있습니다. 실제로는 학자마다, 정치인마다 '자유'를 다른 의미로 쓰기 때문에 그렇게 단순화할 수는 없습니다. 과거와 다르게 보수진영의 정치인 중에서도 국가의 역할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시대에 따라 ‘자유’라는 개념도 변화하고 있는 거죠. 제가 이론을 공부하며 자주 느끼는 것은 시대와 상황에 따라 필요한 사고방식이 다르다는 겁니다. 오늘날에 필요한 자유관은 무엇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