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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훈의 뷰 포인트⑪] 언어의 힘 '행위를 유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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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미디어 문명훈 칼럼니스트] 인간은 일어나서 잠들 때까지 언어에 둘러싸여 삽니다. 언어는 우리가 사용하는 주요 의사소통 수단인데요. 우리는 언어를 통해 감정을 표현하고, 무언가를 설명하고, 누군가를 설득합니다. 그런데 언어는 의사소통 수단을 넘어 현실을 창조하고 변화를 불러오는 힘을 갖고 있습니다. 11번째 칼럼에서는 언어의 힘을 연구한 20세기 철학자 오스틴(John Langshaw Austin)에 대해 다뤄볼까 합니다. 

 

 

현실을 구성하는 언어

 

전통적으로 철학에서 언어는 진리를 전달할 때만 의미있는 것으로 인정을 받았습니다. 언어는 세계를 설명하거나 기술하는 것이고 우리는 이에 대한 참과 거짓을 판단할 수 있다는 것이죠. 그런데 오스틴은 이런 가정이 잘못됐다고 말합니다. 세계에 대한 설명이라고 생각했던 언어가 다른 역할을 하는 경우가 더 많기 때문이죠.

 

오스틴은 참과 거짓을 가를 수 있는 문장을 진술문(statement)이라고 부릅니다. "오늘 날씨가 맑다", "나는 오늘 점심에 유부초밥을 먹었다", "4학년 1학기 성적 평균은 4.5점이다" 등은 참과 거짓을 가려낼 수 있는 명제입니다. 그런데 진술문처럼 보이지만 참과 거짓을 따지는 게 의미없는 경우도 있습니다.

 

결혼식에서 주례자가 “두 사람은 부부가 됐습니다”라고 말하는 경우 이 문장은 두 사람이 부부가 되었다는 것을 설명하는 게 아닙니다. 이 선언 때문에 두 사람이 부부가 된 것이죠. 야구의 풀카운트 상황에서 투수가 던진 공을 보고 심판이 “스트라이크”라고 외쳤다면 이때의 “스트라이크”는 단지 공이 스트라이크 존을 지났다는 것을 설명하는 게 아닙니다. “스트라이크”라는 말이 아웃카운트를 결정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죠. 특정 상황에서 언어는 현실을 구성하고 창조하는 역할을 합니다.

 

 

언어가 곧 행위

 

오스틴은 두 사람을 부부로 선언하는 문장이나 “스트라이크”처럼 현실적인 힘을 발휘하는 문장을 진술문과 대비해 ‘수행적 발화’(performative utterance)나 ‘수행문’(performative)이라고 불렀습니다. 수행문은 언어이면서 동시에 현실을 바꾸는 행위죠. 그래서 오스틴은 ‘화행’(speech act)이라는 표현을 씁니다.

 

우리가 사무실에서 일하고 있는 상황을 가정해봅시다. 누군가 점심 때가 다 되어 “배고프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이때 이 사람은 배가 고픈 상태를 표현하려고 한 것이 아닙니다. 화자는 이 말을 통해 동료들에게 ‘점심 먹으러 가자’는 의사를 표현한 것이고 이 말을 들은 동료 직원들은 주섬주섬 옷을 챙겨 식당으로 향합니다.

 

 

언어는 문장이 가진 원래 의미에서 벗어나 사람들의 반응에 영향을 줍니다. 언어와 행위 사이의 차이는 생각만큼 크지 않습니다. 언어는 현실을 움직이는 힘을 갖고 있습니다.

 

표현의 자유와 책임

 

악성 댓글과 관련된 뉴스가 나올 때마다 저는 오스틴의 이론이 떠오릅니다. 댓글을 보지 않고 사람들의 말에 신경쓰지 않으면 되는 것 아니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언어는 생각보다 강력한 힘을 갖고 있습니다. 어느새 악성 댓글은 개인을 옥죄는 감옥이 됩니다. 많은 유명인들이 악성 댓글에 시달리다 스스로 죽음을 선택했습니다. 그래서 악플러를 강력하게 처벌하는 법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몇 년 전부터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전통적으로 표현은 행위와 달리 처벌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인식이 강합니다. 표현은 행위만큼 피해가 크지 않고 표현의 자유를 제약하는 것이 곧 사상의 자유를 제약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미디어를 통해 악성 댓글과 사이버불링의 사례를 접할 때마다 사람을 칼로 찌르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정작 디지털 세계의 익명성 때문에 말로 사람을 찌른 본인은 그것을 깨닫지 못 하겠지만요.

 

 

최근 혐오 문제를 다루는 학자들 사이에서 표현도 처벌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 바탕에는 오스틴의 화행론이 자리잡고 있죠. 언어가 곧 행위라는 오스틴의 이론을 전제로 하면 혐오 표현이나 악성 댓글이 물리적 폭력만큼이나 혹은 그보다 더 큰 상처를 남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문제가 될 때마다 악성 댓글을 자제하자는 반응이 나옵니다. 그렇지만 자정 작용만으로는 상황이 크게 달라질 것 같지 않습니다. 우리는 표현의 자유에 걸맞은 책임을 고민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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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훈

학생들과 철학, 역사, 사회 분야를 공부하는 인문학 강사입니다. 의미있는 이야기를 여러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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