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미디어 김인식 기자] 무료 글쓰기 강좌에서 50대 중반 건물주 A씨를 우연히 만났다. 나이도 비슷하고 친절한 사람이라 짧은 시간에 가까워졌다. 어느날 수업 마치고 생맥주를 겸해 뒤풀이를 하게 됐는데 그가 “직업이 없고 현금이 7억원 생기면 무엇을 하겠는가?”라고 물었다. 갑작스러운 질문이라 깊게 생각하지 않고 “우선 취업을 하고 고금리 정기예금에 넣어두고 싶다”고 편하게 답변했다.
그러자 A씨는 “신중하시다. 나도 그랬어야 했는데 아쉽다”면서 아래와 같이 말했다.
7년 전에 대기업을 그만두고 준정년 퇴직금 3억원을 받았고 부모님이 세상을 떠나고 4억원의 상속금이 있었다. 그런데 분양가가 비싼 구분상가 두 개를 매수했다가 시세가 하락하는 바람에 손해를 보고 있다.
나도 모르게 “와~ 건물주시구나”라는 추임새가 나왔다. 건물주라는 사실 자체가 부러웠다. A씨가 한숨을 내쉬며 풀어놓은 건물주의 고충을 듣다 보니 그저 알지 못 한 지식을 얻게 되어 새로웠는데 난데없이 “건물주라는 표현은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 하는 용어”라고 강변했다. A씨는 “일반 임대사업자가 올바른 표현”이라고 주장했다. 즉 일하지 않아도 사는데 지장이 없는 건물주는 최소 수십억원의 재산을 소유한 “전업 임대 사업자”이고 일하지 않으면 대출 이자와 생활비를 감당할 수 없는 수억원 수준의 “겸업 일반 임대 사업자”는 실제로 자영업자나 직장인일 뿐이라는 것이다.
너무 엄살이 심한 것 같고 워낙 와닿지 않는 말이라 “그래도 평범한 자영업자나 직장인보단 여유있는 편 아닌가?”라고 다시 질문했다. 그러자 A씨는 “(상대적으로 여유있는) 그런 분들도 있을 거다. 구분 상가에 대출 잔액이 없고 근로소득이나 사업소득이 월 300만원 이상이라면 말이다”라며 자기 사연을 본격적으로 늘어놨다.
나의 현실을 말씀드리면 분양가 9억9300만원에 임대소득이 월 200만원이다. 시세는 2억원이 하락해서 손해를 보지 않고는 매도할 수 없다. 그나마 매수자가 없다. 대출 잔액은 2억5000만원인데 금리가 연 3%에서 연 6% 이상으로 올라 월 대출 이자가 80만원에서 160만원이 되었다. 지금은 임차인에게 대출이자 금액을 전가하여 월세를 올리던 시절이 아니다. 종합부동산세, 재산세, 부가가치세, 종합소득세는 별도다. 내 근로소득은 월 200만원이다. 고정 지출이 월소득을 초과했다. 신용 대출을 받아서 차액을 메꾸고 있다. 불어나는 신용 대출 잔액에 정신이 아찔하다. 흑자 도산의 위험이 있다. 대학생 아들의 학비, 용돈, 방세도 줘야 한다. 그나마 아내가 생활비를 분담하고 있지만 아내는 처가 식구들도 도와야 한다.
그는 많이 속상해했다. 본의 아니게 A씨의 주머니 사정을 세세히 듣게 됐는데 그다지 유쾌하진 않았다. 자기 형편을 남에게 이해시키려고 과도한 자기 연민을 시도하는 것 같았다.
그런데 생활 형편이 나보다 좋지 않은 친구가 배부른 소리한다고 하면 이해한다. 그런데 퇴직금 8억원 받은 은행원이나 돈 많은 법인 대표자가 건물주가 엄살떤다고 말하면 솔직히 화가 난다. 모든 상가 임대인이 형편이 좋은 것은 아닌데 마치 일하지 않고도 사는데 지장없는 사람 취급을 하면 참 속상하다. 다시 2015년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부동산 투자했던 돈을) 정기 예금에 넣었을 것이다.
A씨는 ‘글쓰기 알바’를 하고 근검절약으로 유동 지출을 줄이고 있다고 했는데 아마도 그는 조만간 손해를 보더라도 구분 상가를 매도할 것 같다. 모든 보유 현금을 부동산에 ‘올인’했다가 유동성 부족으로 곤경에 빠진 그의 사정이 안타깝긴 하지만 솔직히 연세대생이 지방대생이나 고졸 앞에서 “서울대생에 비해 나는 매우 열악한 편”이라고 항변하는 것으로 들려서 마냥 편하진 않았다.
올해 들어 코로나 장기화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인해 불경기가 역대급으로 극심하다. 주식과 부동산에 투자한 사람들은, 그나마 저금리 시대에는 신용 대출로 현상 유지를 했겠지만 물가 상승으로 인한 금리 인상 이슈에 직격탄을 맞았다. 주식과 부동산에 소액이라도 투자를 하고 있는 개미들도, 역시 더 위에 있는 상위 1%에게는 게임이 안 될 것이다. 퇴직금으로 치킨집을 창업하던 패턴이 임대업의 길로 변형된 것 같은데, 사실 별도의 수익모델을 구축하기 위해 치열하게 노력하지 않으면 수억원 짜리 상가가 있어도 소용이 없는 시대가 요즘이다. 금수저의 불로소득이 부러워서 손쉽게 따라하다간 가랑이가 찢어질 수 있을 것 같다. 노동소득이 없이 부동산에 올인하는 것은 답이 아니다. 돈 좀 있다고 ‘묻지마 건물주’가 되면 오히려 큰 코 다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참으로 씁쓸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