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민주주의 국가에서 투표 안 하는 사람들은 무개념”

배너
배너

#2021년 6월부터 연재되고 있는 [불편한 하루] 칼럼 시리즈 16번째 기사입니다. 윤동욱 기자가 일상 속 불편하고 까칠한 감정이 들면 글로 풀어냈던 기획이었는데요. 2024년 3월부턴 영상 칼럼으로 전환해보려고 합니다. 윤동욱 기자와 박효영 기자가 주제를 정해서 대화를 나눈 뒤 텍스트 기사와 유튜브 영상으로 전달해드리겠습니다.

 

[평범한미디어 →대담: 윤동욱·박효영 기자 / 기사 작성: 박효영 기자] 22대 총선이 끝나고 2주쯤 지난 시점에서 윤동욱 기자가 다짜고짜 “선거날 투표하지 않고 그냥 놀러간다고 자랑스럽게 말하고 다니는 사람들은 민주주의 국가에 살 자격이 없다”고 역정을 냈다. 정회민 크루, 박효영 기자, 윤 기자 등 평범한미디어 멤버 3인은 모두 사전투표로 국회의원 선거를 마쳤는데 바쁜 와중에도 시간을 내서 소중한 권리를 행사한 것이었다. 그건 그렇고 투표 안 했다고 그렇게까지 욕을 먹어야 하는 걸까? 윤 기자가 3년간 연재해왔던 불편한 하루 시리즈는 “일상을 살아가며 개빡치는 트리거를 맞닥뜨리면 한 마디를 하는 것”이었는데 투표를 하지 않는 행위도 소위 “발작 버튼”이 눌렸다는 것이다. 물론 윤 기자는 불편한 하루 대담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어느정도 어조를 톤다운했다.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투표를 의무적으로 하지 않으면 불이익을 주는 투표의무제에 대해 동의할까? 윤 기자는 “사실 그때는 흥분해서 막 얘기했는데 지금 다시 좀 가라앉히고 생각해 보면 투표의무제까지는 오버인가라는 생각도 들고...”라고 한발 물러섰다.

 

일단 민주주의 국가에서 투표 안 하는 사람들은 자기 의무를 포기한 사람들이자 무개념이라고 생각한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투표권이라는 게 소중한 의미가 있다. 우리나라 역사 속에서 직선제를 쟁취하기 위해서 민주화 운동을 하면서 죽은 사람도 있고 다친 사람도 많고 일자리를 잃은 사람도 있고 감옥 간 사람들도 많았다.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리잡았다. 이렇게 얻게된 투표권과 선거권은 단순히 민주적 권리를 넘어 헌법적 권리이자 의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런 게 보장되어 있는데 투표를 하지 않는 것은 과연 무개념이 아니라고 할 수 있는가? 그래서 세게 표현하면 민주주의 국가에 살 자격이 없는 것 아닌가라고 생각해서 한 마디 해봤다.

 

흔히들 이야기하는 서사이자 꼰대 냄새가 살짝 나기도 한데 단순히 그렇게만 볼 수 없는 복잡한 이야기가 있다. 대화가 진행되자 윤 기자는 슬슬 발동이 걸렸다.

 

저기 중국이나 북한 같은 데 가면 투표 안 해도 된다. 중국 가서 살면 될 것 같다. 더 직설적으로 말하면 투표날 투표를 하지 않고 놀러 가겠다는 것은 이한열 열사나 박종철 열사에 대해서 그들이 피흘리며 죽은 것에 대해 잘 모르겠고 죽든 말든 뭔 상관인가? 물론 투표도 하고 놀러 가는 거는 그건 좋지. 최고지. 투표만 하면 되는 거야. 투표하고 뭘 하든 놀러 가든 다 상관없다.

 

사실 사전투표와 거소투표 등 부재자 투표 제도가 잘 갖춰진 현대의 투표 제도상 투표하러 가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다. 윤 기자는 “진짜로 만약에 예를 들어서 투표를 하는데 절차가 복잡하거나 하루종일 걸리거나 한 5시간 걸린다! 그러면 내가 이해를 한다”면서도 “근데 요즘 투표라는 게 되게 간단하다. 실제로 투표장에 가면 5분이면 끝난다”고 말했다.

 

박 기자: 난 사실 사전투표 첫날(4월5일) 출근 시간이 아니라 좀 지나서 오전 11시에 가니까 진짜 장난 안 하고 1분30초 걸렸다. 진짜로 그냥 들어가서 바로 했다. 관외와 관내가 있는데 관내라서 별도로 투표지를 인쇄할 필요가 없어서 더 짧았다. 정말 간단하긴 한 것이 사전투표 기준으로 민증 주고 지문 찍고 그러면 바로 투표지가 나온다. 그걸 받고 투표소로 들어가서 비례대표 정당 투표와 지역구 후보 투표 두 곳에 각각 도장을 찍으면 끝이다. 선거 기간에 미리 공보물을 보고 1시간 정도 공부해서 누굴 찍을지 정해놓으면 정말 편하다.

 

윤 기자: 줄을 서게 되더라도 우리 맛집 갈 때 다 줄 서잖아. 그건 되는데 왜 투표 줄은 못 서는가. 너무 간단한데 이 간단한 것조차 왜 안 하는지 난 이해가 너무 안 된다. 더구나 국가에서 공휴일로 정해서 편의를 봐주고 있다. 안 할 이유가 없다.

 

 

무엇보다 본질적으로 나의 의사가 반영되지 않은 정치 세력이 권력을 잡는 것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물론 나의 1표가 대세에 영향을 주진 않을 것이다. 그러나 투표 행위는 나의 정치적 의사를 공식적으로 확인하는 의미가 있고 SNS에 글을 올리거나 지인들에게 설명함으로써 알게 모르게 작은 여론 형성에 기여할 수 있다.

 

의례적으로 권리에 잠자는 자는 보호를 못 받는다고 하듯이 계속 투표를 그렇게 등한시하다가는 또 이상한 놈들이 정권을 잡고 지금처럼 이상한 윤석열 대통령 같은 사람이 권좌에 앉아서 이상하게 흘러갈 수 있다.

 

물론 윤석열 대통령에게 다수 국민들이 표를 줬기 때문에 당선이 됐다. 윤 기자는 투표 행위 자체가 민주주의 국가의 주권자들이 주권을 행사하는 취지로 해석하고 있다. 주권을 행사했으나 원하지 않는 후보가 당선됐다면 정치적 비판, 정당 가입, 시민운동 등등 후속 참여로 이어질 수 있지만 투표를 하지 않는 방식으로 무감각해지면 본인의 뜻과 무관한 공동체의 정책 결정이 지속될 수밖에 없다.

 

윤 기자: 그러니까 우리의 모든 것과 관계된 것들을 결정하는 대리인들을 뽑는 일이다. 어떤 밥 먹고, 잠자고, 취업하고, 아프면 치료 받고 등등 이런 모든 것들이 결국 정치와 직결돼 있다. 대한민국에서 정치와 상관이 없는 건 없다. 완전 고립돼서 어디 산이나 무인도 가서 살지 않는 이상. 그러기도 불가능하다. 정부 정책의 방향에 따라 누군가는 혜택을 받고 누군가는 불이익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반드시 투표를 해야 한다. 사표가 발생하더라도 득표율 데이터를 보고 정치 세력들이 해석을 한다. (내 표가 어디 가지 않고) 다 남아 있다.

 

박 기자: 이런 얘기를 자주 했는데 그런 게 있는 것 같아. 그러니까 우리가 투표날 투표를 하지 않고 그 시간에 차라리 여자친구랑 시간을 보내거나 가족들이랑 밥을 먹거나 이런다고 했을 때 예를 들어서 가족들이랑 밥을 먹을 때 그 밥값이나 물가를 결정하는 게 정치인들일 수 있어. 그게 지방선거든 국회의원 선거든 대통령 선거든. 특히 우리나라는 중앙집권국가라 중앙 정치인들의 힘이 더 세다. 그래서 국회의원이나 대통령 뽑는 게 되게 중요하다. 근데 우리가 여자친구를 만나러 가기 위해서라도 일자리가 있어야 하고 소득이 있어야 된다. 내 일자리하고 관련된 것도 사실상 정치인들이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 어쨌든 동욱이가 격하게 발언한 것을 풀어서 이야기를 해보면 단순히 투표를 선택사항으로만 생각한다는 거는 좀 아니다는 뜻이다.

 

윤 기자: 물론 일어나서 머리를 감고 옷을 입어야 한다. 머리 안 감고 나가도 된다. 모자 쓰고 가면 된다. 만약에 투표하는 행위가 귀찮다면 밥 안 먹을 건가? 똥 안 쌀 건가? 이런 것들과 비슷한 수고로움이 드는 투표하는 그 행위조차도 엄청 길어야 5분 걸리는 그 행위조차도 귀찮으면 그냥 나가 죽는 게 낫다. 그냥 내가 좀 극단적으로 표현하겠다.

 

 

이런 주장도 있다. 대한민국 정치판이 썩었기 때문에 투표를 하지 않는 방식으로 항의 의사를 드러내는 것이다? 윤 기자는 “핑계”라고 일축했다.

 

그러니까 내가 항상 얘기하는 거는 시크한 척한다고 막 쿨병 걸려가지고 나는 그래도 투표 안 해! 한국 정치가 썩었으니까. 이런 애들은 쿨몽둥이로 맞아야 된다. 정치인들 다 썩었으니까 난 정치에 관심 없고 투표 안 해! 그러면 상황은 계속 악화되는 것에 불과하다. 양당이 싫으면 제3지대 정의당 등에 표를 주면 되고. 차라리 투표지에 X자라도 쳐서 항의 표시를 하든지. 그러니까 투표장에 안 가는 것과 무효표를 일부러 찍는 건 다르다. 완전 다르다. 무효표라도 찍으러 가서 예를 들어 개새끼라고 적고 나오기라도 해야 한다. 어쨌든 투표장만 가면 되는 거야. 그런 식으로 기발하게 무효표를 만들면 언론을 통해서 기사화가 될 수도 있다. 근데 투표장에 안 가고 그냥 놀러 간다는 거는 다르다. 다시 말하지만 의도적으로 정치적 의사표현을 하려면 무효표를 통해서 해야 한다.

 

근데 또 한국 정치를 막연하게 까기만 하고 무엇이 문제냐고 물어보면 “뭐가 문제인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그냥 한국 정치인들은 비리가 너무 많은 것 같다고 하는데 그러면 그나마 비리가 없는 사람을 잘 뽑아야 될 이유가 생기는 것이다. 혹은 “몰라 그냥 다 정치인은 똑같아”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똑같지 않다. 승자독식 양당의 적대적 공존 체제는 나쁜 게 맞지만, 모든 정치인들을 다 나쁘다고 퉁쳐버리고 그 명분으로 투표를 안 하게 되면 나쁜 정치인들에게 칼자루를 쥐어주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누가 더 나쁘고 덜 나쁜지 가려내야 한다. 최소한 집에 배달온 선거 공보물이라도 읽어볼 여유를 가질 필요가 있다. 민주당을 싫어하든 국민의힘을 싫어하든 편견을 잠시 내려두고 30분만 시간을 내서 “공약도 보고 전과도 보고 그 사람이 어떤 인생을 걸어왔는지도 보고 첫인상이나 공보물 디자인이라도 보고” 공부를 하고 투표를 하면 효능감을 느낄 수 있다.

 

그렇다면 그냥 호주처럼 투표의무제를 도입해보면 어떨까? 윤 기자는 “우리도 한 번 그 방향으로 나아가도 좋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한다”고 긍정적으로 말했다. 그런데 “투표하지 않는 행위를 범죄로 보고 불이익을 줘야 한다는 것이냐”고 되묻자 윤 기자는 “그렇게 표현하니까 좀 생각이 흔들린다”고 털어놨다.

 

(중국이나 북한 가서 살라고 했고 나가 죽으라고 그랬는데 범죄로 간주하고 처벌을 하는 것에는 거부감이 드는가?) 왜냐하면 범죄라고 하니까 내가 또 할 말이 없기도 하다. 이게 투표를 하긴 해야 되는데 결국 그러면 그냥 계속 투표를 이제 많은 사람들이 하도록 유도하고 권장하는 방법 밖에는 없는 것 같다. 아니 형 말을 듣고 보니까 내가 좀 색깔을 달리해야 될 것 같아.

 

사실 누구나 무단횡단 한 번쯤은 해봤겠지만 엄연히 도로교통법 10조를 위반한 것이다. 그러나 무단횡단을 했다고 해서 범죄를 저질렀다고 여기진 않는다. 그러니까 상과 벌, 칭찬과 비판 등 4가지 인센티브가 있다고 했을 때 윤 기자는 투표를 하지 않고 놀러가는 행위에 대해 강한 비판을 가하고 싶은 것이지 벌로 다스리고 싶진 않다는 입장이다. 다만 “감옥 가고 이러면 오버인데 벌금이나 과태료나 이런 거는 우리도 고려해볼 수 있다”고 단서를 달았다. 역시 범죄라고 하면 구속이 뒤따라오는 것 같아 부담스럽게 받아들여졌다.

 

 

호주에서는 만 18세 이상 국민이 합당한 사유 없이 투표를 하지 않으면 벌금으로 약 15달러를 내도록 하고 있다. 물론 드물지만 극단적인 경우 실형에 처해질 수도 있다고 한다. 투표를 하지 않아서 벌금형이 부과됐는데 벌금을 내지 않으면 법원에 가서 소명을 해야 하며 이때 법원 운영 경비까지 추가적으로 부과된다. 만약 법원에 출석하지 않으면 형사고발이 이뤄지고 구속영장이 발부될 수도 있다. 그래서 호주의 투표율은 무려 90%나 된다. 통상 선거 불문 한국에서는 투표율이 60~75% 가량이다. 그렇다면 25~40%는 투표를 쭉 안 해왔던 정치 무관심층이라고 할 수 있다. 아마도 우리가 투표의무제를 채택한다면 정치 무관심층도 대부분 투표장으로 향할 것이고 어쩌다 벌금을 한 번 물게 되더라도 계속 거부하다가 감옥을 가는 사람은 극소수일 것이다. 싱가폴이나 벨기에는 투표를 하지 않는 시민에게서 아예 투표권을 박탈해버린다. 볼리비아는 투표를 하지 않은 합당한 사유를 제시하지 못 하면 벌금을 부과하고 경우에 따라 은행에서 월급을 인출하지 못 하도록 하기도 한다. 반대로 발상을 전환해서 투표를 했을 때 2만원씩 현금을 주는 방법도 있겠지만 그러면 매표가 이뤄지는 것이기 때문에 비난가능성이 높다.

 

궁극적으로 윤 기자는 “과태료와 벌금을 물리되 상습적이라고 해도 감옥에 보내는 것은 조심스럽다”는 방향으로 정리를 했다. 다만 한국인들 모두가 당위적으로 투표의 중요성에 주목해서 투표율을 더 올리기 위해 고민하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덧붙였다.

관련기사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