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미디어 박효영 기자] 건설 현장에서 틀비계를 옮기다가 다른 철근더미가 떨어져서 사람의 목숨을 앗아가는 사고가 발생했다. 틀비계는 ‘이동형 발판계단’으로 일종의 사다리와 같은 기능을 하는데 작업자가 틀비계 위에 올라가서 건물 외벽 공사를 하곤 한다. 작업을 마치면 틀비계를 움직여서 다른 곳으로 가서 작업을 이어가는데 사람이 직접 밀기도 하고 크레인으로 옮기기도 한다.
지난 14일 아침 7시50분 즈음 경기도 화성시 팔탄면의 모 물류센터 신축 공사장에서 작업하고 있던 45세 한국인 남성 노동자 박모씨가 추락한 철근더미에 깔려 숨졌다. 박씨 외에도 베트남 노동자 2명이 크게 다쳤다. 해당 공사장은 ‘요진건설산업’이 시공을 맡은 곳이다. 작년 2월8일 성남의 연구시설 공사 현장에서 승강기 추락으로 2명이 숨졌을 때도 요진건설이 시공사였는데 그때 이미 요진건설측은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혐의로 조사를 받은 바 있다.
사고 상황을 들여다보면 이런 거다. 크레인으로 틀비계를 들어 다른 곳으로 옮기고 있었는데 틀비계가 10미터 길이(2.5~3층 높이)의 철근 구조물에 근접했고 갑자기 철근더미가 쏟아져내렸다. 아이러니하게도 A씨는 지상에서 안전을 위한 신호 업무를 보고 있었는데 찰나의 순간 철근더미를 피하지 못 했다.
SBS와 한겨례 등 이번 사고에 대한 언론 보도들과 달리 평범한미디어 취재 결과, 틀비계가 옮겨지는 도중 철근을 건드린 것인지에 대한 여부는 아직 확정적이지 않은 상황이다. 그러니까 △틀비계가 옮겨지면서 철근을 건드려 떨어진 것인지 △틀비계와 관계없이 철근 구조물이 취약해서 무너진 것인지, 둘 다 가능성에 불과한데 노동당국(고용노동부 경기지청)은 단정하지 않고 정확한 사고 원인을 조사하고 있다. 특히 현장 관계자들은 틀비계가 들어올려지며 옮겨지다 철근을 건드린 것으로 보고 있는 분위기인데 반해, CCTV 영상으로 봤을 때는 닿은 것 같긴 하지만 접촉없이 단독으로 철근더미가 무너졌을 수도 있는 그림이었다. 그래서 당국은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과 함께 좀 더 면밀히 파악해서 사고 원인을 밝힐 계획이다.
만약 틀비계와 무관하게 무너져내렸다면 철근 구조물을 취약하게 세운 것이 된다. 즉 그 자체로 부실 공사에 따른 노동자 사망 사고로 귀결될 수도 있기 때문에 법적 책임의 성격이 달라질 수 있다.
김승환 사무국장(민주노총 건설노조 수도권남부본부)은 17일 저녁 평범한미디어와의 통화에서 “사실 틀비계는 건설 현장에서 안전한 작업을 위해 도입된 장비인데 사고를 낸 건설업체는 틀비계가 사고 원인인 것으로 다 뒤집어씌워서 법적 책임을 경감시키려고 했을 수도 있다”며 “책임 소재가 달라지니까 각자 다른 주장이 나올 수 있는 여지가 다 있는데 노동부 조사관들과 산업안전공단이 합동 감식을 해서 밝혀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틀비계로 인한 사고가 맞다고 해도 법 규정 위반 사실관계가 별도로 조사되어야 하는 부분이 있다. 이를테면 공사장에서 틀비계 작업을 하려면 산업안전보건법 시행규칙(산업안전보건 기준에 관한 규칙)에 따라 △아웃트리거 설치 △바퀴 고정 △일정 높이 이상이면 별도로 벽체에 고정 등을 준수해야 한다.
아무튼 해당 공사장이 666억원 규모인 만큼 중대재해처벌법이 적용(사망자 1명 이상/동일한 사고로 6개월 이상 치료가 필요한 부상자 2명 이상/동일한 유해 요인으로 급성중독 등 직업성 질병자가 1년 이내에 3명 이상 발생/공사금액 50억원 이상)될 수밖에 없다. 중대재해처벌법은 2021년 1월8일 국회에서 통과됐고 1년 후인 2022년 1월27일부터 시행되고 있다. 50인 미만 사업장에는 2024년부터 적용될 예정이다.
요진건설은 작년에도 2명의 사망자를 낸 공사장의 시공사였음에도 중대재해처벌법에 따른 법적 처분이 흐지부지됐고, 이는 시행 1년이 지난 중대재해처벌법의 본질적인 한계라고 볼 수 있다. 처벌 받지 않은 요진건설은 또 다른 공사장에서 노동자 사망 사고를 반복하고 말았다.
이처럼 원청업체 경영 책임자의 발끝도 건드리지 못 하는 상황에서 “경영자 과잉 처벌”이라는 재계의 구호가 난무하고 있고 “예방 아닌 처벌 위주의 법 자체가 문제”라고 보는 진단들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실상은 중대재해처벌법으로 입건이 되더라도 재판까지 가서 제대로 처벌되는 사례가 없다. 현재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벌어진 주요 산업재해 사고 211건 중 163건이 수사 중에 있고 기소가 이뤄진 경우는 31건에 불과하다.
노동당국 관계자는 “(기본적으로 의무있는 원청의) 부작위 범죄를 입증해야 하는 부분들이 있기 때문에 관련 서류들이 적게는 2~3000쪽이 되고 많게는 5000쪽이 넘는다. 그런 서류들을 다 검토하고 지문 자료 만드는 것만으로도 벅찬 현실”이라고 귀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