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엄고’라고 떠드는 사람들에게

  • 등록 2025.01.09 13: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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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2월부터 평범한미디어에 연재되고 있는 [박성준의 오목렌즈] 53번째 기사입니다. 박성준씨는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뇌성마비 장애인 당사자이자 다소니자립생활센터 센터장입니다. 또한 과거 미래당 등 정당활동을 해왔으며, 현재 사회적 약자의 권익을 위한 각종 시민사회 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한국 정치에 관심이 많고 나름대로 사안의 핵심을 볼줄 아는 통찰력이 있습니다. 오목렌즈는 빛을 투과시켰을 때 넓게 퍼트려주는데 관점을 넓게 확장시켜서 진단해보려고 합니다. 매주 목요일 박성준씨와의 전화 인터뷰를 통해 색깔 있는 서사를 만들어보겠습니다. 더불어 박성준 센터장은 2024년 7월11일부터 평범한미디어 정식 멤버로 합류해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평범한미디어 박효영 기자] 요즘 누가 학연을 따지냐고 할지 모르지만 의외로 처음 만난 사람들끼리 뻘쭘할 때 동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급 동질감을 갖게 된다. 좋은 의미로 동문이라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부끄러운 인물이 고등학교 동문이라면 굉장히 께름칙하다. 무엇보다 악인과 동문이라는 이유만으로 욕을 먹는다면 그것만큼 불합리한 건 없다.

 

 

서울시 은평구에 위치한 충암고에 재학 중인 고등학생들은 요즘 부당한 손가락질을 받고 있다. 12.3 계엄 사태를 주도한 핵심 인물 4인방(윤석열 대통령/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이 모두 충암고 출신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교복도 입지 못 하고 있다. 셔틀버스 운행에도 차질을 빚고 있으며, 야구부 유니폼에 박힌 충암고라는 문구를 가리기 바쁘다.

 

박성준 센터장(다소니자립생활센터)은 평범한미디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대한민국 사람들이 보통은 최종 학력에 집중하는데 이제 최종 학력 아닌 것에도 집중하게 생겼다”고 말했다. 대한민국 권력 서열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서울대 법대 출신이 나라를 뒤흔든 사례들은 수없이 많아서 “서울대 법대파”라는 말은 뭔가 어색하다. 서울대 법대 빼고 특정 그룹으로 묶을 수 있는 것을 찾다 보니 충암고가 눈에 들어왔다.

 

예를 들어 충암파 4인방이 광주 전남에 있는 조선대 출신이었다면 조선대가 부각됐겠지만 출신 대학은 다 달랐다. 같더라도 서울대 법대라면 부각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 근데 이상하게 다 충암고네? 그래서 충암고가 계엄 세력을 배출한 고등학교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게 됐다.

 

충암고는 재학생들의 피해 사례를 호소하며 “지금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사람들은 교육의 의무로 충암고를 잠시 거쳐간 인물들일 뿐”이고 “재학생들과는 아무 관련이 없다”고 입장을 냈따. 굳이 말하지 않아도 누구나 알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의 계엄 선포와 충암고는 하등 관련이 없다. 편의상 정치적 용어로 충암파라고 쓰는 것까지도 그럴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충암고 재학생들과 교직원들에게 모욕을 가하는 것은 몹쓸짓이다. 그러면 안 된다. 충암고를 두고 “계엄고”라고 멸칭을 만들어 혀를 끌끌 차는 사람들조차 충암고 재학생들이 욕을 먹는 것이 부당하다는 사실을 인정할 것이다. 그러면 자제해야 한다. 은평구 주민들은 특히 더 그렇다. 충암고 재학생들이 교복을 입고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

 

윤 대통령이 1979년 졸업이다. 60년생이라서. 그러면 지금 충암고 1학년 정도 재학하고 있는 학생의 아버지가 1979년생일 가능성도 있다. 그냥 정말 우리 쉽게 얘기를 하면 역사책에서나 볼법한 사람의 사건 때문에 내가 피해를 보는 상황이다.

 

원래 대한민국 사람들이 분류하고 묶는 것을 좋아하는데 좋은 의미라면 그나마 괜찮지만 나쁜 의미로 묶었을 때 애꿎은 피해자가 나오지는 않는지 고민해봐야 한다. 특히 계엄 사태 초기에 충암고에 전화를 걸어서 다짜고짜 비난을 한다든지, 동네에서 충암고 교복만 봐도 째려본다든지 실제로 이렇게 했던 사람들은 지금이라도 사과를 해야 한다. 충암고 논리적으로 생각해 봐도 아무 상관 없는 사람들에게 왜 화풀이를 하는가. 계엄 사태에 화가 나면 화나게 만든 대상에게 화력을 집중해야 한다.

 

충암고 소속 충암학원 이사장으로 있는 분이 구재단의 비리 문제를 수습하고 얼마 되지 않아 엉뚱한 게 터졌는데 마른 하늘에 날벼락을 맞았다. 굉장히 위험한 발상인 게 나는 그렇게 이야기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안타까워지는 게 뭐냐 하면 어른 잘못에 아이들을 묶어서 욕하는 어른들을 어떻게 봐야 되지라는 생각이 드는 거다.

 

실제로 윤명화 이사장(충암학원)은 본인 페이스북에 아래와 같이 글을 올렸다.

 

충암고 교무실로 하루종일 항의 전화가 빗발치고 스쿨버스 기사들에게 지나가는 사람들이 시비를 걸었다고 한다. 윤석열과 김용현 등을 충암의 부끄러운 졸업생으로 백만번 선정하고 싶다. 교명을 바꿔달라는 청원까지. 국격 실추에 학교 실추까지. 부패한 구재단의 뻔뻔스런 항고 소송에 아직도 시달리고 있는 현 법인은 안간힘을 쓰고 있다.

 

누가 봐도 멍청한 짓인데 각잡고 비평을 하는 것도 우습다. 그렇지만 그냥 두고 볼 수 없다.

 

고등학교라는 곳은 우리나라 같은 경우는 거의 사실상 고등학교까지가 의무교육화 되어 있는 곳이다. 졸업한 친구들이 보수가 될지 진보가 될지 알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런데 어른이 되고 나서의 그것도 지도자가 돼서 중장년이 지나고 나서의 결과물로 인해서 과거 그 고등학교 출신이라는 점을 들어 현재 다니고 있는 학생들에게 뭐라고 하는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 될지 모르겠다. 좀 더 들어가보면 학연, 지연 이런 거를 굉장히 좋아하는 대한민국 국민들이 전두환 쿠데타 때는 하나회로 묶었다. 하나회는 본인들이 그냥 이름 붙여서 사조직을 만든 건데 하나회와 달리 충암고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지 않았고 엄연히 그 안에 존재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걸 기억해야 한다. 사실 고등학교 선후배가 지금 친하다고 해서 고등학교 때의 친분으로 친해졌다고 생각하기도 어렵다. 고등학교 동창이라서 더 친해진 게 아니라 그냥 친해진 것일 뿐이고 고등학교 동문이라는 사실을 갖다 붙일 뿐이다. 통성명을 하고 사회적인 친분을 쌓는 과정에서 고등학교 선후배라는 사실을 알게 되는 거지 그게 결정적인 친분의 배경은 아니다.

 

한편, 김건희 여사의 모교인 명일여고 역시 비슷한 일을 겪었을 것으로 보이는데 모 재학생이 작성한 대자보가 눈길을 끌었다. 대자보 제목은 “부끄럽지 않은 학교를 소망한다”인데 내용이 정곡을 찌르고 있다. 명일여고 재학생들은 익명으로 붙은 대자보 내용에 대해 다들 동의 의사를 표했다고 한다.

 

김건희 선배님. 안녕하십니까? 저희는 안녕하지 못 합니다. 택시를 탈 때 학교에서 행사를 나갈 때 우리는 기어가는 목소리로 명일의 이름을 말합니다. 당신께서 명일의 흔적을 지우려할수록, 국정에 관여할수록, 대통령의 계엄에도 이를 부끄럽게 여기지 않을수록, 온갖 뇌물을 수령할수록 우리는 더욱 명일을 부끄럽게 여길 것입니다. 부디 민주적으로, 양심적으로 행동하여 우리 후배들은 부끄럽지 않은 학교를 졸업하게 해주십시오. 사랑하는 명일의 이름으로 우리는 다시 한 번 외칩니다. 윤석열을 탄핵하라. 윤석열은 하야하라. 주가 조작, 공천 개입 등 비리 그 자체인 김건희를 체포하라.

박효영 edunalist@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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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효영

평범한미디어를 설립한 박효영 기자입니다. 유명한 사람들과 권력자들만 뉴스에 나오는 기성 언론의 질서를 거부하고 평범한 사람들의 눈높이에서 사안을 바라보고 취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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