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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만 육아휴직 3년? 나머지는 1년? “말이 안 된다!”

[김진웅의 정책 스토어] 16번째 칼럼입니다.

 

 

[평범한미디어 김진웅 성동구의회 정책지원관] 최근 헌법재판소는 남녀고용평등법(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 19조 1항과 2항) 관련 헌법소원을 각하하는 결정을 내렸다. 지난 2020년 11월 시민단체 ‘정치하는엄마들’ 주도로 헌법소원이 제기됐는데 남녀고용평등법상 공무원 육아휴직 기간을 3년으로 해뒀으면서 비공무원 노동자들은 1년에 불과하다는 점에 주목했다. 공무원 여부에 따라 달라지는 육아휴직 기간이 3배나 차이가 나는 것은 차별적이라는 얘기다.

 

일반 노동자들은 공무원이 아니라는 이유로 사회적 신분에 따른 차별을 겪고 있다.

 

그들은 남녀고용평등법이, 헌법이 보장하는 평등권과 양육권을 침해한다고 주장했다. 해당 남녀고용평등법은 40여년 전에 만들어졌고 그때 생겨난 일반 육아휴직 규정이 ‘1년’을 못박아뒀다. 강산이 네 번 바뀌는 동안 1년에서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한 반면 공무원의 육아휴직 기간은 3년이어서 국가가 차별을 조장한다는 문제제기가 지속돼왔던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인권 보장의 최후 보루인 헌재가 합리적인 결정을 해주길 기다렸으나 1980년대의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한 결정을 내린 것이다.

 

보건사회연구원의 연구 조사 결과에 따르면 여성의 직장 유형에 따른 육아휴직 이용률은 정부기관 78.6%, 공공기관 61.7%, 대기업 56.1%, 중기업 44.7%, 소기업 29.0%, 5인 미만 개인사업체 10.2% 순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육아휴직 이용률에 있어서도 공무원과 준공무원, 민간 직장인들간의 차이가 뚜렷하다. 동일한 제도의 적용을 받지만 직업의 신분에 따라 누구는 육아휴직을 더 쓸 수 있고, 누구는 덜 쓰게 되는 것은 명백한 차별이 맞다. 정치하는엄마들 강미절 활동가는 아래와 같이 말했다.

 

양육자는 출산하자마자 매시간 아이가 숨이 붙어있나 확인하고 기저귀 갈다 보면 1년이 간다. 패션계나 5인 미만 사업장은 3개월 후 복직을 당연히 여겨 전문 여성인력이 임신·출산을 거치면서 노동시장에서 사라지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이러한 현실은 우리나라가 직면한 인구사회학적 위기 상황과도 직결돼 있다고 생각한다. 즉 사회보장제도 운용에 필요한 장기적 세입 전망의 불투명성, 지역균형 발전 저해, 지역소멸 현상을 촉진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명실상부 세계 10위권 경제대국 대한민국의 위상과도 맞지 않고, 선진국형 복지국가로 나아가는 데에도 걸림돌이다.

 

사회보장제도는 노동력의 탈상품화와 맞닿아 있다. 덴마크 사회학자 에스핑 앤더슨은 보다 완전한 복지국가의 척도 중 하나가 바로, 노동하지 않아도 사회보장제도에 의해서 생계를 보장받고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는 것이다. 대표적인 노동력 탈상품 정책이 바로 육아휴직이다. 탈상품화를 좀 더 구체적으로 풀어 말하면 시민 개개인의 사회권을 적극 보장하여 가능한 많은 복지 급부를 제공하는 고도의 복지국가로 이해할 수 있겠다.

 

이재명 정부는 ‘기본사회’를 천명하면서 대한민국 국민이 기본적으로 보장받아야 할 복지를 더욱 강화해서 경제와 복지가 선순환하는 구조를 만들겠다는 포부를 천명한 바 있다. 이재명 정부가 발표한 국정운영 5개년 계획에는 대한민국이 당면한 문제들에 대한 진단이 있다. 이중 최우선 과제가 바로 ‘저출생 해결’이다. 길거리로 나가 대한민국 시민 아무나 붙잡고 물어봐도 ‘저출생 고령화 현상’을 우리나라의 가장 중요한 해결 과제로 꼽을 것이다.

 

물론 독재 국가도 아니고 국가에서 다짜고짜 국가의 존속을 위해 애를 많이 낳으라고 마냥 요구할 순 없을 것이다. 국가가 강요할 수도 없고, 강요해서도 안 된다. 하지만 개개인이 새로운 생명을 낳으려고 선택함에 있어서 꺼려지는 부분을 국가가 나서서 해결해줄 필요가 있다. 애를 낳으라고 부추기고 압박하는 게 아니라, 낳으려고 하는 사람들에게 고민되는 부분을 해소시켜주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 실질적이고 평등한 육아휴직 제도를 확립하는 것은 그런 기본적인 환경을 조성하는 조치들 중 가장 핵심이다.

 

관련해서 국회 상임위(기후에너지환경노동위원회)에 회부된 남녀고용평등법 개정안들 중 육아휴직 관련 내용들을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①육아휴직 기간 1년에서 3년으로 확대(조인철 의원)

②육아휴직 대상을 ‘사실혼 관계에 있는 자’로 확대(이광희 의원)

③상시 사용하는 근로자가 300명 이상인 사업주의 육아휴직 통계 공시 의무화(김위상 의원)

④육아휴직 신청시 사업주 응답 여부와 관계 없이 육아휴직 자동 개시(민홍철 의원)

 

사실 조인철 의원이 발의한 ①은 헌재가 각하했던 내용과 일맥상통한다. 헌재가 각하했기 때문에 헌법에 부합하지 않는 입법을 했던 걸까? 그게 전혀 아니다. 내가 보기엔 오히려 입법부가 기본권 증진과 사회권 향상을 위해 상식적인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보고, 헌재가 중요한 현실을 간과했다고 생각한다. 정말로 헌법재판관들은 공무원만이 3년 육아휴직을 가져야 한다고 판단하는 걸까?

 

이재명 정부는 결단해야 한다. 스스로 공개한 국정계획 과제 87번에 보면 <아이 키우기 좋은 출산·육아 환경 조성>이라고 돼 있다. 육아휴직 제도를 실질적으로 강화하는 것은 87번을 실현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마침 여야 할 것 없이 육아휴직 기간 확대와 육아휴직 자동제도 등을 골자로 한 법안들을 내놨다. 고용노동부는 더 고심할 것 없이 적극적으로 나서주길 바란다. 비록 헌재는 국민의 권익을 무시하는 판결을 내렸지만 선출 권력인 입법부가 좋은 법안들을 만들어놨기 때문에 이재명 정부가 이를 받아들여 빠르게 나서지 않을 이유가 없다. 그냥 결단이 필요할 뿐이다. 1980년대에 머물러 있는 헌재가 제동을 걸었지만, 민의의 전당인 국회와 이재명 대통령은 앞으로 나아가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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