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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이순재의 “신세 많이 졌습니다”에 담긴 이야기

※ [박성준의 오목렌즈] 100번째 특집 대담으로 조명해본 <이순재의 삶과 ‘배우’의 본질>이라는 기사를 먼저 읽고, 이번 기사를 정독해보면 더욱 좋을 것 같습니다.

 

[평범한미디어 박효영 기자] 결국 전국민 앞에서 마이크를 잡고 유언처럼 남긴 마지막 메시지가 되었다.

 

늦은 시간까지 와서 이렇게 격려해주신 시청자 여러분. 또 집안에서 보고 계실 시청자 여러분 정말 평생 동안 신세 많이 지고 도움 많이 받았습니다. 감사합니다.

 

 

과거 1974년 TBC 연기대상을 수상한 이후로 이순재 선생님은 지상파 시대가 열린 이래 연기대상을 받지 못했다. 그런 경력 70년의 대배우가 세상을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국민들에게 “신세 많이 졌다”고 읊조렸던 점이 인상적이고 많은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 이순재 선생님은 70년간 영화, 드라마, 연극 등 매체를 가리지 않고 종횡무진 활동할 수 있도록 본인의 연기를 아끼고 사랑해준 소비자로서의 대중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고 홀연히 우리 곁을 떠났다. 신세 많이 지고 도움 받았다는 그의 진심은 지속적으로 캐스팅될 수 있도록 자신의 연기를 인정해준 ‘온국민에게 은혜’를 입었다고 생각하는 마음이었다. 이순재 선생님의 감사 인사를 듣고 한 네티즌은 아래와 같이 댓글을 달았다.

 

본인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느끼고 저날 무대로 올라가서 국민들께 마지막 인사하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신세는 국민들이 더 많이 졌습니다. 덕분에 안방에서 울고 웃었습니다. 존경합니다. 편히 쉬시길 바라겠습니다.

 

평생에 걸쳐 좋은 연기와 좋은 작품을 보여주기 위해 철저한 자기관리와 끊임없는 노력을 온몸으로 실천한 이순재 선생님에게 온국민이 신세를 졌다.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는 “대중문화 시대는 팬들과 관객들이 바라는 연기들을 해줘야 한다. 이순재 선생님은 그런 역할을 해줬다”면서 “70대의 노배우가 정극이 아닌 시트콤에 출연해서 조롱과 희화의 대상이 된다? 그런 선택을 한다? 그건 쉽지가 않고 시대를 앞서 갔던 것이다. 자기만의 연기가 아닌 걸 앞서서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이서진 배우도 MBC 추모 특집 다큐 <배우 이순재, 신세 많이졌습니다>에서 나레이션을 맡았는데 마지막 멘트를 아래와 같이 남기면서 흐느꼈다.

 

우리에게 웃음과 감동, 위로와 용기를 주셨던 선생님. 당신이 있어 따뜻하고 행복했습니다. 선생님 그동안 신세 많이 졌습니다, 고맙습니다. 선생님 이번 여행은 함께 하지 못해 죄송합니다.

 

 

이순재 선생님의 부고를 듣고 그 직후 100번째 오목렌즈 특집 기사로 ‘배우로서 이순재의 삶’을 조명했다. 오목렌즈 대담 기사와는 별도로 ‘인간 이순재가 평생 보여줬던 삶의 태도와 자세’는 어땠는지를 다루고자 한다. 기사가 많이 길다. 스크롤 압박이 있겠지만 이순재 선생님의 발자취를 꼼꼼하게 정리해보고 싶은 만큼 어쩔 수 없었다.

 

이순재 선생님은 연예인이자 배우로서만이 아니라 인간의 삶 그 자체로도 모든 이들의 존경을 받았다. 또 다른 네티즌은 “한 번도 직접 뵌 적은 없지만 집안 어른이자 가족이 돌아가신 것 같은 슬픔”이라면서 “그동안 종종 방송에서 말씀하신 삶의 태도에 대해 깊은 존경과 배움을 가졌다. 그동안 신세 많이 졌습니다”고 고백했다. 최민식 배우도 “신구 선생님과 이순재 선생님과 같은 그런 분들이 대배우”라면서 자신에게 붙는 대배우라는 칭호를 사양했는데 아래와 같이 설명했다.

 

대배우라는 것이 어떤 커리어나 유명세 뿐만이 아니라 배우 인생 통틀어서 그런 존경 받을만한 길을 그렇게 오랫동안 걸어오신 그런 배우들에게 붙여드려야 할 칭호인 것 같다.

 

키워드 3가지를 꼽았고 하나씩 다뤄보고자 한다.

 

언제든지 할 말 하는 어른

 

첫 번재 키워드는 ‘쓴소리와 소신’이다. 이순재 선생님은 눈치 보지 않고 할 말은 해야 하는 소신파 배우이자 ‘쓴소리’를 할 수 있는 어른이었다. 이순재 선생님은 광고만 하고 연기를 하지 않는 배우를 “모델 스타”라고 불렀고, 인기가 있어도 연기 활동에 매진하는 배우를 “액팅 스타”로 규정했다.

 

개인적인 편견인지 모르겠지만 난 스타를 두 가지로 분류한다. 하나는 이쁘고 아름답고 멋지고 그러면서도 어떻게 우연히 프로그램 하나 잘 만나서 떠가지고 광고 많이 하고 돈 많이 버는 스타. 출연은 잘 안하면서. 난 이런 스타를 ‘모델 스타’라고 부른다. 근데 인기도 높으면서 연기를 알차게 하는 스타. 이런 스타를 ‘액팅 스타’라고 구분한다. 난 여러분 모두가 액팅 스타가 되길 바란다.

 

이순재 선생님이 이런 취지로 충고를 할 때마다 사람들은 원빈 배우와 배용준 배우를 거론했다. 실제로 그런 사례에 해당하는 대표적인 두 배우를 염두에 두고 냈던 메시지로 받아들여지긴 하는데 단순히 특정인에게만 국한되는 말이 아니다. 배우로서 수행해야 할 본질적인 역할은 ‘연기 활동’이다. 아예 연기를 관두고 다른 업을 영위하지 않는 이상 연기 활동에 충실하고 그것에 주 수입원을 둬야 한다는 뜻으로 배우라면 누구에게나 해당되는 어드바이스다.

 

이순재 선생님은 2019년 상반기에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한 ‘버닝썬 사태’를 두고 아래와 같이 충언한 적이 있다.

 

우리 직계들은 아니더라. 노래 부르는 쪽에서 일어났던 일 같은데 우리 직종은 어차피 활동하다 보면 인기라는 게 따라붙는다. 과거엔 뭐 인기 있어 봤자 수익상으로 경제적으로 큰 보답이 되는 건 아니었다. 뭐 우리만 해도 평생을 해왔지만 지금 뭐 빌딩 하나 없다. 평생을 해왔음에도. 근데 요즘은 그렇지 않다. 수익이 좀 있다 보니 광고 찍고 그러다 보면 큰돈이 생기는데. 사회적 조건으로 봤을 때 우리가 공식적인 공인이 아니지만 공인적 성격을 띠고 있다. 왜? 우리가 하는 행위가 모든 관객들이나 청소년들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바로 이런 문제다. 이번 문제도 법적으로 판단이 나오겠지만 뭔가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게 아닌가. 요즘 신문에 많이 나오는데 거의 스스로 자퇴해야 될 사람들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인기가 올라갔을 때 관리를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하다. 그래서 자기관리들 좀 철저히 했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연예업계에는 알려지지 않은 무명 연예인들이 전체의 90%가 넘을 정도로 수두룩하고, 그중에서 극소수가 대중들에게 자기 이름을 각인시키고, 더 나아가 최고의 인기를 누리는 스타가 된다. 이순재 선생님은 인기가 생겼을 때 철저한 자기관리를 주문했다. 더구나 인기 연예인의 물의와 일탈은 청소년을 비롯 사회적 모방 효과를 야기하며 ‘규범’을 세우는 기준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이를테면 2018년 ‘윤창호 사건’ 이후로 윤창호법이 제정되고 음주운전에 대한 경각심이 날로 높아지고 있지만, 유명 연예인이 음주운전을 저지르고 조금 자숙한 뒤에 곧바로 복귀하게 되면 그 자체로 음주운전 범죄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순재 선생님은 2024년에도 비슷한 취지로 말씀을 하셨는데 아래와 같다.

 

우리 연기자들이, 특히 잘나가는 연기자들. 돈도 많이 벌고 멋있게 잘생긴 배우들. 보면 더러 옆길로 새는 친구들이 있더라. 소위 일반적인 ‘소셜 룰’을 안지키는 친구들이 있다. 교통 법규를 위반한다든지, 음주운전을 한다든지, 또 이걸(성범죄) 한다든지. 우리가 공인은 아니다. 그러나 준공인적 성격을 띠고 있다는 걸 명심하란 말이야. 나를 보고 있는 팬들 가운데 날 따라하는 경우가 많을 수 있다. 옛날에 담배를 피우고 있는데 어떤 아저씨가 그러더라. 그 좀 TV 브라운관에서 담배 좀 피지 마시오. 거기서 당신들이 멋있게 피고 있으니까 애들이 다 따라서 피지 않느냐. 이러는 거야. 이게 간접 효과다. 그런 간접 영향을 미치는 것이 배우(연예인)다.

 

항상 공부하고 사색했던 배우

 

두 번째 키워드는 ‘지적 호기심과 사유 능력’이다. 이순재 선생님은 학문적 탐구와 사색을 했던 배우였다. 생각이 깊었고 박학다식 그 자체였다. 일주일 내내 영화, 드라마, 연극 등 연기 활동 스케줄로 가득하지만 틈날 때마다 영어 공부를 하고, 한문 필사를 하고, 책 보고, 신문을 읽는다. 끊임 없이 공부하고 지식을 쌓는다. 정영숙 배우는 이순재 선생님이 대기실에서도 “남는 시간이 없다. 한문을 써본다든지, 대본을 외우고, 영어 공부를 하고 그 짬짬이 시간을 다 활용한다”고 묘사했다. 무엇보다 본인이 맡은 작품 하나하나의 의미와 상징을 완전히 이해하고 연기를 수행했다. 이순재 선생님의 후반기 커리어를 수놓은 작품으로 전체 연기 인생에서 빼놓을 수 없는 하이킥 시리즈에 대해 아래와 같이 설명했다.

 

그거는 내가 했다고 해서 하는 게 아니라 시츄에이션 코미디 역사의 걸작이다. 김병욱 감독이 아주 정말로 거침없이와 지붕뚫고 두 연작을 잘 썼다. 원래 시츄에이션 코미디의 진수는 보며 웃지만 웃으면서 콧날이 시큰시큰해진다. 원래 고전적으로 희극을 4가지로 구분한다. 센스 오브 유머(Sense of Humor 유머 감각), 사타이어(Satire 풍자), 아이러니(Irony 반전), 페이소스(Pathos 연민). 페이소스라는 게 연민인데 연민은 사랑이다. 인간애가 들어가야 한다. 그런 것들이 끼어있을 때 관객들은 웃으면서도 순간 가슴을 치는 그런 게 있다. (하이킥에서) 몇 군데 시도해봤는데 가장 인상적인 시도는 뭐냐면 준하가 취직을 안 하고 맨날 컴퓨터만 들여다본다. 그것 때문에 내가 야동을 보게 된 건데 사실은. 야 너 뭐해? 주식 동향을 봅니다. 야단을 치고 결국은 수소문을 해가지고 (준하의 와이프 해미 친척의 회사로) 취직을 시켰는데 그래서 아버지가 가서 근무하고 있나 보구나 했는데 상사 구두를 닦고 앉아 있는 것이다. 그래서 아버지가 데리고 나왔다. 그걸 찍고 같이 운 적이 있는데 다 울었다.

 

<거침없이 하이킥> 속 ‘순재’는 <사랑이 뭐길래>의 ‘대발이 아빠’ 못지 않게 권위적이고 체면을 중시하는 인물로 나온다. 그런 순재가 본인이 운영하는 병원 앞에 설치된 트램폴린을 체면 벗어던지고 신나게 탔던 에피소드가 있다.

 

시츄에이션의 코미디의 요소 중 하나인데 불가능한 것을 하기 전에 가능성의 과장이다. 병원 앞에 있길래 내가 널판때기(트램폴린) 뛰는 게 있다. 준하가 가서 뛰길래 내려와 인마. 어른이 뭐 하는 거야. 근데 내가 한 번 해보니까 재밌단 말이다. 올라가다 보니까 너무 올라가서 2층까지 뛴다. 물론 과장이다. 뛰면 올라갈 수 있는 가능성을 던지는 것이다.

 

사실 해당 에피소드에서 순재가 트램폴린조차 맘껏 못 타다가 타기로 결정하기 직전 독백으로 읊조리는 대사를 음미해볼 필요가 있다. 시트콤의 본질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이순재. 칠십 평생 남 시선 의식하고 체면 차리고 살아온 결과가 겨우 이거냐. 제 이름 건 간판 하나 건사 못하는 주제에 체면 때문에 죽기 전에 못볼 여자 손 한 번 못잡아주고, 체면 때문에 그런 놈들도 친구라고 그런 모욕 다 웃으면서 받아주고. 뭐가 무서워서. 내가 앞으로 살면 얼마나 더 산다고. 이 빙충아.

 

 

이순재 선생님은 삶을 마감하기 직전까지도 ‘연극 활동’에 집중했고 몰두했다. <갈매기>를 직접 연출했고, 3시간 넘는 러닝타임의 <리어왕>에 출연해서 2시간 동안 독백 연기를 했다. 둘 다 고전 작품인데 이순재 선생님은 고전의 중요성에 대해 이렇게 설파했다.

 

연극을 하라는 얘기는 뭐냐면 물론 우리 창작극도 좋은 창작극들이 많이 있으니까 그것도 좋고 다 하는데. 고전을 하게 되면 그냥 작품으로만 볼 게 아니라 그 문학 속에 철학과 사상이 들어가 있다. 내가 <리어왕>을 하면서도 셰익스피어가 왜 그 3시간짜리 작품을 썼는지 생각해보니까 마지막에 그 한 마디 때문에 쓴 거야. (리어왕이) 비 맞고 다 쓰러져서 바닥에 떨어져보니까. 그 바닥에 살고 있는 자기 백성들이 보이기 시작한 거야. 부자들아. 가난한 자의 고통을 몸소 겪어봐라. 그리하여 넘쳐나는 것들을 그들과 나누고 하늘의 정의를 실천하자. (셰익스피어가) 이 얘기를 하려고 쓴 거야. 봉건 군주제의 지배 계급에 던지는 메시지라고.

 

우리나라 창작 연극 작품 중 6.25 전쟁 이후 한국 사회의 혼란과 구조적 폭력을 배경으로 하는 〈누가 이 사람을 모르시나요〉가 있다. 이순재 선생님은 이 작품의 의미에 대해 아래와 같이 강조했다.

 

(6.25 전쟁은) 정말로 우리 민족사에 씻을 수 없는 비극 중에 비극이야. 이것도 우리끼리. 한 독재자의 만용에 의해서 벌어진 민족적 비극이야. 그래서 이 작품에서도 내가 마지막에 해설로 나와서 부탁하는 게. 우리 젊은 사람들 이 아름다운 대한민국을 굳게 굳게 지켜달라는 게 내 부탁이다.

 

연기하는 배우의 본질에 대한 그의 철학도 확고했고 간명하다.

 

내가 나가서 내 걸로 다 하는 게 연기가 아니다. 그건 자기 자신이다. 내가 아닌 것을 만들어내는 게 연기다. 흔히 분장과 화장을 이야기한다. 배우가 메이크업하는 것을 ‘분장’이라고 한다. 분장은 하는 순간 내 얼굴을 버린다는 거다. 이 얼굴을 이 인물에 대입하는 거다. 그런데 연예인들이 토크쇼 할 때 하는 건 분장이 아닌 화장이다. 본인을 더 예쁘게 보이는 거다. 연기에서의 분장은 나를 없애는 거라고, 의미가 다르다고, 바로 그 생각으로 하면 된다. 나를 버리고 새로운 인물은 만드는 데 내 모든 걸 대입해서 그 인물이 되는 것이다.

 

 

민폐 용납하지 않는 솔선수범

 

세 번째 키워드는 ‘솔선수범’이다. 오현경 배우는 <지붕뚫고 하이킥> 촬영 현장에서 목격한 이순재 선생님의 모습에 대해 아래와 같이 풀어냈다.

 

선생님과 이제 작품을 한 것 자체도 영광이기도 하지만 어땠냐면 선생님은 항상 30분 전에 오신다. 그리고 NG가 없다. 그리고 첫 씬을 하고, 두 번째 씬이 처음에 있고 끝에 있어도 나 이거 밖에 없으니까 좀 먼저 해주고 보내줘라는 얘기를 하지 않으셨다. 사실은 저희도 조금 그렇게 편의를 봐달라고 할 때가 있는데 선생님이 그렇게 하시지 않았다. 근데 제일 존경하는 거는 그 당시에도 학교의 학생들을 가르치고 그 바쁜 스케줄에. 그 학생들에 대한 열정이 대단하셨다.

 

실제로 이순재 선생님은 마지막 수상소감에서 가천대 연기예술학과 제자들의 배려 덕분에 드라마 <개소리> 촬영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면서 눈물을 흘렸다.

 

(<개소리> 촬영지였던) 거제까지 자동차 타고 4시간 반이 걸린다. 이걸 20회 이상 왔다 갔다 하면서 찍은 드라마다. 그리고 내가 이 자리를 빌어서 죄송합니다만 양해를 좀 구하고 감사할 학생들이 있다. 내가 아직까지도 우리 총장님이 배려해서 가천대 석좌교수로 13년째 근무하고 있다. 그러면 무슨 수업이냐면. 학생들 하나 하나를 다 구체적으로 지도하는 것이다. 작품을 정해가지고 한 학기 동안 연습해서 기말에 발표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게 한 달에서 6개월 걸리니까 도저히 시간이 안 맞더라. 들락날락이 안 된다. 내가 학생들한테 이거 정말 미안하다. 정말 미안하다. 내가 교수 자격이 없다고 그러니까 선생님 걱정하지 마십시오. 모처럼 드라마 하시는데 잘하세요. 잘하세요. 가르쳐주신 대로 우리가 어떻게든 다 만들어내겠습니다.염려 마십시오. 눈물이 나왔다. 그 학생들을 믿고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서 오늘의 결과가 온 걸로 알고 있다. 감사하다.

 

2012년 방영된 <마의>로 처음 드라마 연기에 도전했던 조승우 배우는 그 당시 쪽대본과 촉박한 현실로 인해 대본을 전부 암기하지 못해 종이 프롬프터를 보고 읽으며 연기를 했다고 고백한 적이 있다. 조승우 배우는 그때를 회고하며 이순재 선생님의 배려와 격려에 대해 아래와 같이 감사 인사를 전했다.

 

나는 이순재 선생님한테 배웠다. 왜냐하면 그때 <마의> 찍을 때 그런 게 있었는데 선생님이 다 이해해주셨다. 내가 봐도 이건 너무 많아. 그러니까 전혀 이렇게 보고하는 거에 대해서 부담 갖지 말고 그냥 해. 그 텍스트에도 감정을 실어서 할 수 있으니까 그대로 해. 하시면서 선생님은 다 외우셨다. 난 얼마나 죄스럽겠는가? 선생님은 외워서 하시고 난 이러고 있는데. 시선이 안 맞는 것이다. 여기 보고 하고 있는데. 이게 예의가 아니지 않은가. 선생님이 그걸 인정해주시더라. 너무 감사했다.

 

또 다른 후배이자 연기 경력 50년이 넘는 김영철 배우도 이순재 선생님을 통해 깨달은 게 있다. 2011년 드라마 <공주의 남자>를 촬영했을 때인데, 이미 대선배였던 김영철 배우는 그때까지만 해도 촬영 현장에서 조금의 기다림도 참지 못하고 가장 먼저 찍어야 한다는 아집을 갖고 있었다.

 

(그 당시 촬영 현장에서) 내 것만 위주로 먼저 찍으니까 한 13시부터 찍었어. 계속 이제 찍고 내 것만 위주로 먼저 찍으니까. 그래서 이제 화장실 가려고 딱 나오는데 웬 차가 입구에 이렇게 있는 거다. 보니까 이순재 선생님이 주무시고 계셨다. 새벽 3시인데 아 오줌이 쏙 들어갔다. 뛰어가서 선생님! 다 찍었어? 그래서 선생님 찍으시죠. 아니야. 아니야. 괜찮아. 나는 신경 쓰지 말고 어서 니들 찍어. 괜찮아. 그래서 선생님 오시라고 그래갖고 이제 찍으셨다. 찍고 이제 가셨는데 해가 이제 막 뜰 때다. 선생님 어제 몇 시에 오셨냐고 물어봤더니 22시에 오셨다는 거다. 5시간을 기다리고 계셨다. 제작진은 내 거 먼저 다 찍어서 보낸다고. 무서우니까. 그 방송국 스태프들한테 못된 놈들 누구냐고 하면 거기에 내가 첫 번째로 들어가는 거야. 아 이런 죽일 놈이 어딨냐. 내가 행동을 잘못하고 살았다. 이러면 안 되지. 다음부터는 이제 촬영 나가면 내가 스태프에 절대로 내 위주로 찍지 말고 니들 편한 대로 찍어. 나 이제 옛날 김영철이 아니니까 마음대로 찍어라.

 

 

이순재 선생님은 여러 배우들과 연출진 및 스태프들이 함께 참여 하는 영화와 드라마에 대해 “공동 작업”이라고 표현했는데 그 의미를 뜯어보면 과거의 김영철 배우처럼 선배의 권위를 내세우는 것이 왜 문제인지 알 수 있다.

 

난 무서운 편 아니다. (후배들과) 상당히 친하다. 왜냐하면 우리 작업이라는 것은 공동의 작업이다. 그러니까 작업 시스템에서 내가 나이도 제일 많다. 그래서 (상황극처럼 재연하며) 너 왜 인사 안해? 야 연출 이리 와봐! 이런 병신 뭐 그걸 연기라고 해! 다시! 이러면 안된다.그러면 이 분위기는 얼어버린다고. 다만 이제 결정적으로 내가 봤을 때 아니라고 생각하는 부분은 프렌들리하게 얘기한다. 그건 그게 아니고 이런 거 아니냐? 또 본인이 수용할 수 있는 이런 표정이 보이면 덧붙여 얘기하는 거. 뭐 이런 부분이 내가 보기엔 좀 부족한 것 같은데 나중에 이 작품 끝날 때가서 보완하는 노력을 해라.

 

그야말로 촬영 현장은 ‘팀 작업’이다. 이순재 선생님의 철칙 ‘3無’ 역시 ‘팀 플레이’에 대한 존중이다.

 

(3無는 NG, 힘들다, 적당히가 없다는 건데) 하다 보면 나도 더러 NG를 낼 때가 있다. 그렇다고 해서 무슨 결정적인 NG를 내고 이건 아니고. 깜빡깜빡 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는데. 열심히 대본 익히고 들어가기 전에 한 번 맞춰보고 하면 NG를 낼 수가 없다. 그러니까 철저하게 준비를 해가지고 가는 거다. (배우에게 기억력은) 자존심에 관한 문제다. 그러니까 아 미안해. 다시 해. 아이고 미안해. 아 내가 왜 이러지. 미안해. 그럼 그만둬야 한다. 왜냐하면 그 동료들과 후배들한테 피해를 입히는 거니까. 그래서 내가 이제 나름대로는 스스로 기억력 회복을 위해서 노력을 해보는 게 미국 대통령 이름도 외우는 거다. 그래서 연기가 쉬운 것이 아니다. 지금도 하다 보면 이걸 어떻게 해야 되나. 고민이 있다.

 

일맥상통하는 에피소드가 하나 있다.

 

(오래 촬영하고 쉬는 시간에 슬리퍼로 갈아 신는 것은) 그건 그럴 수 있다. 그건 문제가 안 된다. 근데 지금 한 씬을 1시간 찍고 한 커트를 찍었는데 그 다음 커트로 카메라 이동하는데 그 순간에 구두를 슬리퍼로 바꿔 신었다. 명색이 중견 배우 둘이 그러더라. 그래 내가 거기다 발에 안맞는 신발 갖다 줬냐? 어떻게 그 10분, 5분을 못참아 가지고서. 그 다음에 와서 대사 딱 던졌더니 앞에 찍은 표정으로 그냥 받더라. 근데 내가 연출이면 저건 NG다. 아까 했던 대사하고 지금 대사하고는 전혀 내용이 다르다. 표현이 저런 표현이 아니다. 그건 뭐냐면 대본을 제대로 안본 거야. 물론 대사는 외웠겠지. 다 외웠으니까 자기는 그렇게 표현을 했겠지만 글쎄 그래가지고 되나?

 

이순재 선생님이 절대 지각하지 않고 오히려 아주 일찍 현장에 나오는 이유가 있다.

 

(촬영 현장에 언제 올 것인지는) 물론 배우 따라 다 다르다. 나 같은 경우는 그 디테일 때문에 그런다. 같은 말도 이 대사 끝난 다음에 시선을 어디다 둘 것인가. 시선을 올려둘 건가. 내려둘 건가. 어미 처리를 어떻게 할 건가. 이런 걸 내딴에는 와서 분석을 하는 것이다. 그냥 툭 던지면 그건 일반적으로 던지는 거다. 누구나 다 그렇게 할 수 있는 거다. 근데 그거는 좀 다르다. 어미를 내릴 것인가. 올릴 것인가. 시선은 이쪽을 볼 것이고 저쪽을 볼 것이고. (현장에 일찍 와서) 표현의 디테일에 대해 생각을 하는 거야.

 

 

영원한 현역

 

이순재 선생님의 인생을 집약할 수 있는 수많은 수식어들이 있겠지만 “영원한 현역”이라는 말이 가장 정확하다고 할 수 있다. 그는 무대에서 쓰러져 죽는 것이 가장 행복하다고 말했다.

 

왜냐하면 우리 작업은 예술이고 예술 자체는 완성이 없다. 어느 시대에 대가가 있을 뿐이지 그것이 그 예술의 끝은 아니다. 완성은 아니다. 우리 작업의 완성과 끝이 없다는 얘기는 뭐냐면 끊임없이 새것에 대한 도전이다. 얼마나 신나는 작업이지 않은가. 이제 나이에 한계가 있으니까 하기가 힘든 작품들이 많이 있지만 뭐 하고 싶은 일들이 많다. 조건이 허락된다면. 가장 우리가 행복한 거는 공연하다 죽는 거다. 내가 이제 농담처럼 무대에서 쓰러져 죽는 게 제일 행복한 죽음이라고 했는데 그것이 가장 배우로서 행복한 순간이다.

 

농담이 아니었고 실제로 그렇게 했다. 이순재 선생님의 진짜 유작은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를 기다리며>인데 마지막 드라마 <개소리> 촬영을 마치고 5개월 뒤에 곧바로 연극 연습에 돌입했다. 이때가 2024년 7월이었다. 두 달 뒤 무대에 올랐고 이순재 선생님은 마지막 혼을 불사르고 10월에 중도 하차했다. 그 이후로는 병원에서 1년간 투병 생활을 했고 2025년 11월25일 새벽 영면에 들었다. 마지막 작품에서 호흡을 맞춘 뮤지컬 배우 카이는 중도 하차했을 때의 상황을 이렇게 회고했다.

 

2024년 10월9일. 이날은 이순재 선생님의 컨디션이 유독 안좋아 보인 공연 날이었다. 모든 스태프들이 선생님께서 하루 공연을 쉬어가길 바랐지만 선생님께선 관객과의 약속을 반드시 지키고 후배들에게 피해를 주는 일을 하고 싶지 않다는 책임감으로 이날 무대를 완수하셨다. 그날 공연 이후 선생님은 절대 휴식이 필요하다는 의사의 강력한 권고 하에 부득이하게 공연을 잠정 중단하는 결정을 내렸다. 그리고 나와 동료들은 그것을 받아들였다. 그 무엇보다 선생님의 건강이 가장 우선이라는 같은 마음을 함께 확인하면서 그랬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이순재라는 명장과 함께 연습과 공연에서 호흡을 맞추며 그의 연기관을 자세히 듣고 지도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은 큰 영광이자 배우로서의 삶에 큰 자양분이었다. 혹자는 그분의 젊은 시절 연극과 지금의 연극은 시대적으로 특징의 차이가 있다고 말하기도 하지만 클래식과 기본이라는 것은 예술의 영역에서 절대 변하지 않는 뿌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선생님의 존재가 예술이고 그 숨결이 가르침이었다. 내게는 영영 잊혀지지 않을 숭고한 기반이 될 것 같다.

 

1964년 TBC 개국공신 배우 6인 이낙훈, 김동훈, 김성옥, 김순철, 오현경, 이순재. 전부 세상을 떠났다. 마지막으로 이순재 선생님이 동료들의 곁으로 갔는데 지금쯤 하늘에서 만나 즐거운 대화를 나누고 있을 것 같다.

 

김동훈, 김순철, 김성옥. 다 자네 기다리고 있으니까. 가서 잘들 배웅하고 나도 곧 갈 거니까. 우리 가서 다시 한 번 같이 만나세. 안녕.

 

지난 11월25일부터 일주일 넘게 이순재 선생님의 삶을 들여다보기 위해 수많은 자료를 찾아보고 곱씹어봤는데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할 것 같다. 아직 배우고 익힐 것이 너무 많이 남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만난 적은 없지만 이순재 선생님과 동시대를 살아가며 작품으로 소통할 수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영광이었다. 이순재 선생님. 그동안 고마웠고 존경했고 신세 많이 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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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효영

평범한미디어를 설립한 박효영 기자입니다. 유명한 사람들과 권력자들만 뉴스에 나오는 기성 언론의 질서를 거부하고 평범한 사람들의 눈높이에서 사안을 바라보고 취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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