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성준의 오목렌즈] 100번째 특집 대담의 주제는 배우 이순재 선생님입니다. 두 편에 걸쳐 나갈 예정이고 이번 기사는 1편입니다.
[평범한미디어 박효영 기자] ‘박성준의 오목렌즈’ 기획 대담 시리즈가 100회를 맞이했다. 2023년 12월에 첫 기사를 출고한 뒤로 2년이 흘렀는데 그동안 100개의 주제로 110개의 기사를 만들어냈다. 매달 2회씩 박성준 센터장(다소니자립생활센터)과 정치, 사회, 연예, 스포츠 등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각종 이슈들에 대해 대화를 나눴는데 좋은 기록으로 남은 것 같아 감개가 무량하다. 오목렌즈가 진행되는 동안 박 센터장은 평범한미디어 정식 멤버(크루)로 합류하게 됐고 그만큼 마음이 통할 수 있는 깊은 대화를 나눴던 것 같다. 박 센터장과 100번째 주제로 무엇을 다뤄보면 좋을까 고민하던 찰나에 故 이순재 선생님의 부고 소식을 접했고 기존 계획을 접고 그의 인생과 철학을 조명해보기로 했다.
개인적으로 시트콤 하이킥 시리즈 이전 이순재 선생님이 내 인상에 깊게 남게 된 계기가 됐던 작품은 MBC <허준>과 SBS <야인시대>였다. 이순재 선생님이 두 작품에서 연기했던 ‘유의태’와 ‘원노인’은 상반되는 캐릭터였다. 세상 비천하고 낮은 사람들을 돌보고 치료했던 참 의술인 유의태는 그 누구보다 엄격하고 카리스마 넘치는 인물이었고, 원노인은 어린 김두한에게 한없이 다정하고 자상한 인물이었다. 이순재 선생님은 이처럼 상반된 캐릭터의 특성을 완벽하게 파악해서 이질감 없이 표현해내기 위해 끊임 없이 분석했고 노력했다. 수많은 인물들이 갖고 있는 캐릭터의 스펙트럼을 전부 소화하기 위해 본인의 연기폭을 확장해왔다. 그를 스타로 만들어줬던 1990년대 초반에 방영된 MBC <사랑이 뭐길래> 속 ‘대발이 아빠’의 경우, 그땐 너무 어려서 보지 못했는데 어떻게 연기했을지 느껴보기 위해 조만간 정주행을 해봐야겠다.
이번 오목렌즈 전화 대담은 11월28일 13시에 진행됐다. 박 센터장은 “한달 전부터 저희가 좀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얘기했던 것이 이순재 선생님의 건강이었는데 이렇게 돌아가시니 황망한 마음이 든다”면서 운을 뗐다.
한 사람의 일생 만큼의 기간 동안 연기의 끈을 놓지 않고 해오셨다. 아무나 할 수 없는 굉장히 대단한 일이다. 고작 1년 전이었던 2024년에도 드라마 원톱 주연으로 활동했고 연기대상을 받을 만큼 연기의 혼을 태웠다. 그때 선생님께서 고령의 연기자라고 해서 공로상을 받을 게 아니라 연기력으로 좋은 성과를 냈다면 대상을 받아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그만큼 이순재 선생님은 나이가 많은 고령 배우일지라도 스스로 여전히 좋은 연기를 할 수 있다는 자부심을 갖고 계셨다. 되게 큰 울림을 주는 부분이다. 물론 연기를 오래 했고 잘하는 원로 배우들이 많았지만 ‘영원한 현역’으로서 제대로 평가를 받고 싶다는 선한 욕심을 돌아가시기 직전까지 갖고 계셨다는 사실이 정말 놀랍다.
같은 날 저녁 MBC에서 추모 특집 다큐 <배우 이순재, 신세 많이졌습니다>가 방영됐다. 유작으로 남은 KBS <개소리>를 촬영했을 당시가 2023년 7월~2024년 2월이었는데 그때 이미 이순재 선생님은 왼쪽 눈이 실명될 정도로 건강이 급격히 안 좋아졌다고 한다. 이순재 선생님의 소속사를 운영했던 이승희 대표(에스지웨이엔터테인먼트)는 직접 대본을 읽어주며 대사 암기를 도왔는데 그때를 아래와 같이 회고했다.
실명이 되기 전과 안보였을 때와 똑같이 연기 훈련을 하고 더 해야 한다고 했다. 안 보이니까. 제일 가슴 아팠던 게 그 부분이다. 안 보이니까 나 또는 매니저한테 큰소리로 읽어달라고 했다. 읽어주는 걸 외우겠다고 했다. 그때 가슴이 아팠다.
배우로서 70년간 영화 150편, 드라마 175편, 연극 100여편 등 400여개의 작품에서 수많은 인물을 연기했지만 삶을 마감하는 직전까지 다음 작품 준비를 했던 이순재 선생님이었다. 선생님의 연기 인생을 집약적으로 설명해주는 “국민 배우”와 “대배우”라는 표현보다도 “영원한 현역”이라는 것이 그를 이해하는 정확한 키워드다. 복잡할 것 없다. 배우는 연기를 해야 한다. 큰 인기를 얻어 광고를 찍고 다른 사업을 할 수는 있지만 그렇게 쉽게 부를 거머쥐는 것에 취해 연기 활동을 놓게 되면 배우가 아니다. 이순재 선생님은 아래와 같이 역설했다.
평생 연기를 할 수 있는 바탕과 자세가 돼 있어야 한다. (과거 한 드라마에서) 다른 친구 하나가 맨날 늦어. 가서 불러와야 했다. 그게 뭐냐면 결국 스타의식이다. 그런데 내가 보기에는 아직 그때 그 당시 그렇게 평가를 받는 스타 이전 단계다. 그래서 내가 한 번 야단을 친 적이 있다. (배우와 스타는 다르지 않고) 똑같을 수 있는데 의식의 문제다. 스스로 인기 있는 스타이자 갈채 받고 돈 많이 버는 스타라는 것에 만족하고 거기에만 성공한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예술가로서의 배우, 예술가로서의 액터, 이거는 좀 차원이 다르다는 얘기다. 예술적 완성도를 높이는 것이다. 이걸 나는 액팅 스타라고 한다. 그러니까 이런 배우들은 대부분이 다 밑바닥부터 연극에서부터 갈고 닦은 배우들이다. 그러니까 그런 기본적인 탄탄한 바닥 위에서 모든 역할이 가능해지는 배우들. 쉽게 얘기하면 우리 최민식, 송강호, 이병헌 같이 이런 실력 있는 배우들. 그러니까 연기력이 단단하니까 어디 내놔도 손색이 없지 않는가? 이런 배우들은 본인들의 건강만 유지하고 정신만 유지하면 죽을 때까지 할 수 있는 것이다.
거듭하지만 안주하고 계속 노력하지 않으면 배우로서의 경력도 끝이다.
내가 늘 하는 얘기다. 1961년도에 KBS TV가 시작돼서 오늘날까지 수백명의 배우가 지나갔다. 나보다 나이 많은 배우는 별로 없다. 그건 뭐냐. 자기 계발을 안하고 조금 떴다고 거기에 안주해버린 배우들은 다 없어졌다. 지금 내 얘기를 하는 게 아니다. 남아 있는 배우들 중에서 신구 배우가 있다. 이 배우는 뜬 사람이 아니다. 또 늦게 시작했다. 내가 이렇게 보니까 KBS에서 하나 하나 짚고 올라가더라. 결국 톱배우가 됐다. 그때 멜로 드라마 주인공 하던 여러 배우들은 다 없어졌다. 신구 하나만 남았다. 신구는 화려한 역할을 하는 배우가 아니다.
말년에 급격히 건강이 나빠졌지만 이순재 선생님은 80대 후반이 된 시점에서도 누구보다 활력이 넘쳐보였고 의욕적이었을 만큼 건강하셨다. 스스로 “생명력”이라고 표현했는데 연기를 하는 배우의 본업 활동에 집중하는 것이 에너지를 얻는 일이고 건강과 장수의 비결이었다.
배우로서 연기는 생명력이다. 예를 들어서 내가 몸살감기로 누웠다가도 ‘레디 고’ 하면 벌떡 일어나게 돼 있다.
이순재 선생님은 단순히 계속 연기 활동을 이어가는 것을 넘어 새로운 도전을 주저하지 않는 배우였다. 3시간 넘는 러닝타임에 2시간의 독백 대사를 홀로 소화해야 하는 연극 <리어왕>을 했던 때가 88세였고, 연극 <갈매기>의 연출을 맡았던 때가 89세, 개와 속마음으로 대화를 할 수 있다는 참신한 소재의 드라마 <개소리>의 원톱 주연을 연기했던 때가 91세였다. 이미 70대를 넘긴 원로 배우가 기존의 이미지를 탈피해 급격한 코믹 연기를 해야 했던 시트콤 하이킥 시리즈 역시 이순재 선생님에겐 큰 도전이었을 것이다. 이순재 선생님은 “배우도 마찬가진데 (히트작 하나로) 떴다고 해서 그 뜬 것 하나에 목이 메어있으면 그것은 금방 끝난다”며 “뜬 것은 뜬 거고 그것은 그걸로 끝이고 우리에게 보람이 뭔가. 항상 새로운 걸 만들고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이다. 하던 걸 반복해서 우려먹는 게 아니”라고 설파했다.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정신이 바로 배우의 덕목이다. 박 센터장은 “제일 큰 변신이 바로 야동 순재로의 변신이라고 생각한다”며 “그 나이에 내려놓을 수 있다는 건 대단한 거고 그만큼 작품이 정말 재밌었다”고 설명했다.
하이킥에는 수많은 캐릭터가 있었다. 젊은 캐릭터도 많았고 중간 세대 캐릭터들도 많았는데 결국 기억에 남는 최고봉이 바로 야동 순재 캐릭터다. 이순재 선생님이 했던 그 야동 순재를 비롯해서 故 김자옥 선생님과의 로맨스나 뭐 이런 것들을 보면 몸과 나이는 노인이지만 정신과 마음은 젊은이다. 그러니까 자신의 연기 캐릭터를 만들어가는 데에도 굉장하셨지만 장르에 대한 편견이 없으셨던 게 가장 중요하다고 나는 생각을 한다. 그러니까 젊은세대와 기성세대를 구분해서 원로의 위치를 정하고 그에 맞는 고정적인 것만 하지 않고 말 그대로 현역으로 같이 뛰는 사람으로서 다양한 도전을 하고 계속 움직여주시는 게 그게 가장 큰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정말로 분야를 막론하고 이 시대의 어른이라고 할만한 분이 돌아가셨다.
궁극적으로 그의 신체가, 정신적인 의지를 이겨내지 못하고 죽음에 이르렀지만 이순재 선생님은 “내 소망은 무대서 쓰러지는 것이고 그게 가장 행복”이라는 말을 몸소 실천하고 홀연히 떠났다. 서두에 거론했던 실명됐을 만큼 건강이 악화됐던 부분에 대해, 이순재 선생님이 직접 언급했던 적이 있다. 이순재 선생님의 ‘건강 악화설’이 처음 보도됐던 시점은 2024년 10월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를 기다리며>에서 하차했을 때였는데 사실 2년 전부터 그야말로 연극 스케줄의 강행군이었다. 4개의 연극 작품과 마지막으로 드라마 <개소리>까지 연달아 에너지를 쏟아내다보니 탈이 났다.
<아트> 2022년 9월~11월
<갈매기> 2022년 12월~2023년 2월
<장수상회> 2023년 4월~5월
<리어왕> 2023년 6월
<개소리> 2023년 7월~2024년 2월
<고도를 기다리며를 기다리며> 2024년 9월~10월
이순재 선생님은 “그때 내가 쓰러진 건 아니고 체중이 10kg 빠졌더라고 그래가지고 한의원에서 침 맞아가면서 버텼다”고 회고했다.
왜냐하면 그때 내가 네 작품을 계속 했거든. 우선 연극 <아트>라는 걸 백일섭·노주현과 두 달 했지. 그 다음에 이어서 <장수상회> 또 공연을 했지. 그러면서 한쪽으로 <갈매기>를 연출하기 시작했다고. 그거 끝나면서 이제 <리어왕>으로 넘어갔단 말이야. 그러니까 그냥 계속해서 물고 넘어가다 보니까 체력이 떨어지기 시작한 거야. 그래도 쓰러지지 않고 잘 버텼는데 집에서 목욕하다가 목욕탕에서 쓰러졌어. 넘어졌는데 그래가지고 이걸로 내 인생이 끝이구나. 그랬는데 응급실에 가서 찍어봤더니 머릿 속은 괜찮았어. 그래서 아 됐다. 머리만 살아 있으면 됐다. 그래가지고 이제 일어나 가지고 채 한 달 되기 전에 <개소리>라는 드라마를 찍기 시작한 거야. 이건 나 때문에 1년 반 전에 준비했던 드라마거든. 근데 이걸 강행을 했어. 거의 한 6개월 이상을 찍는데 그러다 보니까 이제 스트레스가 좀 쌓이고 해서 눈이 하나 고장이 나기 시작하는 거야. 백내장이어서 수술을 했어. 그래가지고 드라마를 찍다가 11월에 한 일주일 입원을 했다고.
이순재 선생님은 이내 퇴원해서 곧바로 <개소리> 촬영 장소였던 경남 거제로 향했고 마지막 불꽃을 태웠다. 당시 <개소리> 제작사(아이엠티브이)는 이순재 선생님의 건강 회복 기간을 고려해서 해를 넘겨 2024년 3월에 촬영을 재개하려고 했다. 하지만 이순재 선생님은 본인 건강 문제로 제작사에 손해를 안길 수 없어서 조기 복귀를 감행했다고 고백했다.
<개소리> 제작사에서 3월쯤 다시 찍겠다고 그러더라고. 근데 3개월 공백이 생기면 그 70~80명의 스탭이 몰려다니며 찍는데 회사 로스가 이만저만이 아닐 것 같아. 그래 내가 12월 초 딱 돼가지고. 제작진에게 내 표정은 보이지? 그러면 찍어. (백내장 수술 직후라서 시력이 온전히 회복되지 않은 상태지만) 형상은 보이니까. 그래도 찍어. 그래가지고 2월에 끝을 냈지.
그렇게 2024년 2월 <개소리> 촬영을 마무리했지만 이순재 선생님은 오래 휴식을 취하지 않고 곧바로 연기 활동을 재개했다. 7월에 <고도를 기다리며를 기다리며> 캐스팅이 됐고, 9월에 연극 무대에 올랐다. 그러나 중도 하차를 할 수밖에 없었다. 더 이상은 무리였다. 이런 투혼의 모습에 대해 박 센터장은 “연세가 아니라 그런 태도와 모습으로 봤을 땐 평생 젊은 삶을 살아왔던 것 같다고 받아들였다”고 평했다.
항상 현역 연기자로 평가받고자 했고 그런 삶을 갈망했던 배우의 모습이 바로 젊은 신인의 태도다. 신인의 마음가짐을 70년간 유지했다. 초심을 잃지 않는 초지일관의 자세가 바로 이순재 선생님의 삶 그 자체였다. 연기자로서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계속하셨던 분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특정 영역에 있는 누군가가 아니라 정말 시대를 관통해서 살아오신 어른으로서의 모습을 보여주셨다.
박 센터장이 보기에 이순재 선생님은 배우로서 기본을 지키는 삶을 살았다.
대사를 암기하고 캐릭터를 철저히 분석하는 것이 배우의 기본이고 대사를 외우지 못해서 다른 동료들에게 민폐를 끼치면 관둬야 한다고 매번 말씀하셨다. 연기 경력 70년차의 대배우가 그 기본에 끝까지 충실했고, 초심 그대로 평생을 살았다. 이게 바로 인간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본질적인 가치가 아닐까 싶다. 이순재 선생님이 늘 강조하셨던 게 기본에 충실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존경할 수 있는 어른의 가르침이란 게 복잡하고 어려운 것이 아니라 그저 기본을 지키는 단순한 가치였다.
→이순재 선생님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편에서 계속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