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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출이 거절되고 직접 ‘공방’을 꾸몄다

[조은비의 비엔나 라이프] 28번째 글입니다.

 

 

[평범한미디어 조은비 디라이트 대표] 페인트 칠하기 전.

 

대표님. 죄송하지만 저희 쪽에서는 대출이 나가지 않습니다.

 

표정 관리가 되지 않았다. 대출 받기 불리한 자영업자들을 위해, 정부에서 보증을 서주는 곳이라고 해서 찾아갔는데 열려 있던 대출 상담실 문으로 나의 사연이 새나갔을까 부끄러웠다. 대출 자격 미달이라는 사실은 누구나 들키기 싫은 이야기일테니까.

 

2000만원? 당연히 받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디라이트 공방을 처음 시작했을 때는 지금보다 적은 매출로도 보증이 나왔다. 그중 절반으로 매장 보증금을 냈고 나머지는 인테리어 비용으로 사용했다. 그리고 1년도 채 되지 않은 시점에 일시 전액 상환을 해냈다. 그래서 갚는 건 자신 있었다. 2000만원의 절반을 다시 보증금에 넣고, 남은 돈으로는 내가 얻은 50년 된 낡은 방앗간에 페인트칠도 하고, 유럽풍 앤틱 빈티지 소품도 모으면 딱이라 생각했다. 그렇게 계획은 완벽히 수포로 돌아갔다. 하긴 심사관이 밝힌 대출 불가 사유는 흠 잡을 데 없었다. 옳았다.

 

1) 내 손에 그토록 쉽게 2000만원이란 돈이 주어진 때는 바야흐로 자영업이 전멸하던 코로나 시국이었음. 정부는 560만 자영업자들이 모두 신용불량자가 되고 가정이 파탄나는 상황을 막아야 했음. 그래서 작정 하고 돈을 풀던 시기.

 

2) 오스트리아에 사는 동안 내 소득은 0원임. 2025년에 다시 사업을 개시한 것도 여름. 즉 2025년 수입도 많지 않음.

 

과거 모범적으로 빚을 갚은 이력은 딱히 쓸모가 없었다. 나중에 이곳에 일하는 친구에게 듣기로는, 매출 5억에 7000만원 대출을 신청한 사람도 고작 2000만원 보증이 나왔다고 했다. 내가 꾸는 꿈과 다르게 현실은 냉정했다.

 

 

 

페인트를 칠하고, 새 공방으로 이사한 날. 그래서 50년간 방앗간이 있던 공간을 번듯하게 고칠 여유가 없었다. 부끄러웠다. 하지만 낡은 모습에 끌린 나였다. 뭐 “이대로 보여주면 어때?”라는 자신감도 있었다. 주변엔 힘든 상황에도 꿋꿋하게 새 출발을 준비하는 날 응원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한 친구는 조명도 없는 공방에서 셀프 페인팅을 하겠다는 날 도와 페인트를 칠해주었다. 다른 친구는 내 집의 절반을 꽉 채우고 있던 이전 공방의 가구와 집기를 지금 공방까지 이사하는 걸 도와주었다. 동생은 광주에서 서울까지 와서 축하 꽃다발을 전해주었다.

 

2000만원 대출을 받았다면, 그래서 쉽게 쉽게 모든 게 흘러갔다면 주변 사람들의 도움과 관심을 받을 일도 없었을 것이다. 돌아갔기에 그들의 사랑을 알 수 있었다. 사랑으로 탄생한 새 공방을 더 머물고 싶은 공간으로 사랑스럽게 가꿔나가야겠다. 계속 걸어갈 것이다. 전진. 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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