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미디어 박효영 기자] 오태양 미래당 대표가 긴 시간 토론회를 지켜보고 질문을 던졌다.
“(정의당이 내세우고 있는) 신노동법에 대해 기본적인 맥락에서 미래당도 동의한다. 다만 노동과 시민의 경계, 노동과 자본의 경계에 있는 그 공간이 커지고 있다. 전통적으로 고용을 통한 노동을 통한 삶의 질을 보장해주는 여러 정책들이 발전해왔지만 노동하지 않을 권리에 대한 젊은 세대들의 요구들이 많다. 꼭 일해야, 일을 통해서 사회적 소득과 임금, 일을 해야 국민과 시민으로서 대접받을 수 있는가?”
미래당, 녹색당, 기본소득당은 ‘기본소득’에 대해 당론으로 찬성하고 있다.
지난 19일 국회 정의당 회의실에서 <“한국사회 10년의 설계도”>란 주제로 정책 토론회가 개최됐다.
정의당은 기본소득에 대한 하나의 당론이 없다. 기본소득에 꽤 비판적인 박원석 전 사무총장, 김창인 전 대변인 등과 같은 당원들이 좀 있고 반대로 기본소득에 우호적인 당원들도 있다.
오 대표는 “(일하지 않을 권리에 대한) 본질적 질문들이 있다”며 “저희가 대선으로 가는 과정에서 각 당의 공감대를 넓히고 차이점은 그대로 가져간다고 할 때 기본소득당, 미래당, 녹색당은 기본소득을 핵심 담론으로 채택해서 여러 정치적 과정을 밟고 있다. 정의당과 함께 정책적 모색을 해야 할텐데 기본소득에 대해 어떤 입장인지?”라고 질문했다.
정의당은 작년 총선 직전 소위 위성정당 사태로 미래당 및 녹색당과 미묘한 갈등을 겪었다가 이내 심상정 전 대표의 주도 하에 두 당과 별도의 연대체를 구성(관련 기사)한 바 있다. 3당 연대체는 총선 이후에도 한국환경회의와 함께 기후위기 대응을 첫 의제로 삼고 연대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기본소득당은 ‘기본소득’을 고리로 미래당 및 녹색당과 연결지점이 많다. 여 대표는 지난 4.7 보궐선거 직전 반기득권정치동맹을 구성해서 미래당, 녹색당, 기본소득당 등과 손을 맞잡은 바 있다. 내년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4당이 정책 연대를 넘어 선거 연대를 하기 위해서는 결국 기본소득에 대한 정의당의 입장 정리가 선행되어야 할 것 같다.
이날 신노동법 관련 발표를 맡은 조성주 정의당 정책위원회 부의장은 오 대표의 질문에 대해 “정의당도 당론으로 기본소득에 대해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고 정책적으로 제안하고 있다”면서도 “노동하지 않을 권리라는 것이 여가와 휴식, 안정 등등. 그 과정은 자기계발이고 스스로 성숙해지는 것이다. 그것을 보장해주는 것과 노동하지 않을 권리가 꼭 일치하는 것은 아니”라고 답변했다.
이어 “여가와 휴식과 자기계발의 권리가 보장돼야 하는 것이지 노동하지 않을 권리가 있는 것은 아니”라고 덧붙였다.
물론 오 대표가 추가적으로 발언을 하지 않았지만 여가와 휴식의 권리와는 별개의 문제인 것으로 판단된다. 오 대표의 문제의식은 크게 2가지로 받아들여졌다. 그것은 아래와 같다.
①일을 하지 않으면 여러 복지정책 또는 사회보장의 대상조차 될 수 없는 문제
②시장에서 임금노동으로 인정받지 못 하는 여러 활동들을 영위하며 사는 사람들에게 임금노동을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멸시와 차별을 가하는 문제
보수정당에서도 기본소득에 주목한 이유는 4차산업혁명이 첨단까지 발전해서 점점 일자리가 사라져가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오 대표의 뉘앙스는 시장에서 인정되지 않는 노동을 하고 있더라도 스스로 가치있는 활동을 하며 살아가는 청년과 시민들이 “일하지 않을 권리”를 누리면서 인간답게 살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여러 지자체들이 시행하고 있는 ‘청년수당’을 받으려면 취업시장에서 구직 관련 노력을 기울였다는 사실을 입증해야 하고 구체적으로 채용 면접을 봐야 한다. 구직을 위한 활동은 매우 좁게 해석된다. 그러나 구직과 관련없이 청년들이 동아리 조직활동을 해본다든가, 독립영화 촬영을 해본다든가 등등 이런 행위들은 청년수당이 염두에 두고 있는 것들이 전혀 아니다. 그래서 오 대표는 무조건성을 특징으로 하고 있는 기본소득 또는 범주형으로 볼 수 있는 청년 기본소득에 주목하고 있다.
토론회에 참석한 여영국 정의당 대표는 보충적으로 노동의 의미에 대해 피력했다.
여 대표는 “3월 당대표 보궐선거에 출마하면서 국가일자리 보장제와 범주형 기본소득 2가지를 핵심 공약으로 들고 나왔다”며 “공장에서 해고된 분들에게 일자리가 없다는 것은 삶의 절벽에 서는 것이다. 국가가 일자리를 보장하는 것은 전국민에게 의무교육을 제공하는 것과 같다”고 밝혔다.
이어 “산업구조의 변화로 인해 불안정 일자리가 늘어나고 일자리 자체가 줄어들고 그럴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국가가 돈이 안 되는 사회서비스 영역이라든지 기후위기 관련 건설과 관리가 필요한 그런 곳에 일자리를 만들어낼 수 있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득이 보장되지 않으면 범주형 기본소득으로 보장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여 대표는 이재명 경기지사가 대선 공약으로 제시한 연 100만원 기본소득 모델에 대해 “(충분성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기본소득의 의미가 퇴색되고 희화화될 수 있다. 한 범주라도 기본소득을 제대로 보장해서 기본소득이 가능하구나 좀 그런 것들(효능감)을 만들어야 되지 않을까 싶다”면서 “12월19일 정책 당대회를 앞두고 있고 준비하고 있는데 그때 2022년 대선 강령을 채택할 건데 그때 이런 정신이 반영될 것”이라고 전했다.
토론회 전체를 총평하기 위해 손을 든 김찬휘 녹색당 공동대표는 과거 “노동해방”이란 구호가 있었다는 점을 환기하며 진보의 노동운동에 대해 이야기했다.
김 대표는 “노동권을 확대하는 노선이냐. 노동권을 시민권으로 바꾸는 노선이냐. 어릴 때 노동해방 이런 말 많이 했다. 사실 좀 덜 일하고 살 수 있는 삶에 대한 희망, 꿈 이런 걸 말해주는 것”이라며 “어느 순간 진보가 힘이 약해지다 보니 노동자로 인정 좀 해줘. 물론 노동자의 권리도 보장 안 되다 보니 이것도 너무 힘들다. 그럼에도 노동자로만 인정해주면 우리 감사할게. 그 정도로 의제가 머물러 있다는 생각이 있다”고 지적했다.
김 대표는 농민기본소득 운동을 주도했던 인물이었던 만큼 기본소득 자체에 긍정적인 입장이다.
좌장을 맡은 권김현영 여성현실연구소 소장 역시 “(그동안 진보는) 노동자성 인정에 골몰되어왔다”면서 “(모든 형태의 노동을 포괄하게 되면 사용자에게 묻게 될) 고용관계로부터의 책임은 누가 질까? (자칫 정의당의 신노동법이) 그걸 분산 또는 너무 공공화시키는 것은 아닌가? 노동자 권리를 확대되는 것이 아니라 형해화시키는 것 아닌가?”라고 꼬집었다.
조 부의장은 인간이 노동을 영위함으로써 사회적 관계를 맺는 것의 중요성을 설파했다.
조 부의장은 “사실 일이라는 것은 로버트 케네디의 말을 굳이 인용하자면 그것이 너는 꼭 일을 해야 된다는 그런 강조가 아니라 내가 이 사회에서 관계 속에서 의미있는 존재구나 그런 걸 느끼게 해주는 것이 일이 전부는 아니지만 꽤 느끼게 해준다”며 “소위 진보진영에서 그걸 무시했을 때는 월 300만원 드리면 일 안 하셔도 되잖아요? 이런 질문들로 (노동자의) 자긍심을 훼손할 수 있다는 이런 지점에서 말씀드렸다”고 설명했다.
신 대표는 “(정의당은) 경제활동 인구에는 일자리의 방식으로, 경제활동 인구가 아닌 사람들에게는 범주형 기본소득으로 크게 생각하시는 것 같다”며 “조성주 부의장이 말씀했듯이 지금 이 시대에는 일이 내 삶에 어떤 의미이고 어떤 일을 하며 살아갈 것인가라는 고민을 해야 하는데 소득보장 정책으로서의 일자리를 넘어서 노동을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에 대해 정당들간의 논의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미래당의 ‘마을정치와 행복국가론’에 대해서 발표를 맡은 최시은 미래당 정책국장은 코로나 장기 국면에 따른 자영업자의 피해가 극심한 상황에서 신노동법을 어떻게 내세울 수 있을지 의문을 표했다.
이에 조 부의장은 “자영업자들은 대한민국에서 최장시간 노동을 하고 있는 시민이다. 자영업자는 한국에서 가장 많은 산재가 일어나는 집단이다. 다만 산재로 포함되지 않는다. 몸이 그냥 안 좋아지셔서 알바를 쓰거나 쉬거나 그러신다”며 “(자영업자들의 고통이) 제도적으로 보장되지 않으니까. 이것만으로 호명할 수 없지만 당신들의 최장 노동시간을 줄여줄 수 있을 때 아플 때 그걸 산재로 인정해주는 문제로 이렇게 호명해가는 과정을 통해 설득되지 않을까 싶다”고 대응했다.
사실 작년 총선 직전 당시 민중당 홍보영상으로 등장한 이정희 전 통합진보당 대표가 ‘전국민 고용보험’이란 화두를 꺼냈고 이는 기본소득과 맞물리면서 진보진영 내에서 치열한 토론을 불러왔다. 그 이후 내가만드는복지국가와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양재진 연세대 교수와 김윤영 빈곤사회연대 활동가 등이 기본소득에 비판적이면서 전국민 고용보험의 손을 들어주면서 관련 논쟁이 더더욱 가속화됐다. 심 전 대표가 정의당 대선 후보로 공식 확정되면서 내세운 신노동법은 김종철 전 대표가 정리한 ‘전국민 고용소득 보험’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근로기준법상의 노동자가 아니더라도 취업된 모든 사람과 자영업자에게까지도 기존의 고용보험 체계를 확대개편해서 소득 형태로 실업급여를 지급해줄 수 있다는 것이다.
조 부의장이 이날 발표한 ‘노동계급에서 노동시민으로 신노동법의 필요성과 진보정치의 과제’라는 발제문의 내용 역시 기존 노동법으로는 포괄할 수 없는 새로운 노동 형태가 많이 발생하고 있으니 신노동법으로 대체해서 훨신 폭넓게 이들을 끌어안아야 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2중 노동시장 구조가 3중 노동시장으로 이미 재편돼 있는 것 아닌가 싶다. 세번째 노동시장에 있는 분들은 프리랜서, 특수고용노동자, 플랫폼 노동자 또는 자영업자라는 이름으로 존재하는 분들이다. 이들은 코로나 관련 각종 지원책에서 대부분 소외돼있다. (중략) 노동권의 개념을 시민기본권의 개념으로 다르게 또는 확대해서 이해해야 한다. 사실 적절한 표현이 아니다. 이미 노동권이 다른 국가에서는 시민권과 기본권으로 처음부터 출발했기 때문이다. (중략) 신노동법 즉 전국민 노동법을 제안하고 있다. 근로기준법상 노동자의 지위를 쟁취하는 것이 노동계급의 일원이 되는 방식이 지금까지의 주된 방식이었다. 그래서 우리 투쟁의 주요 구호는 진짜 사장 나와라는 것이었다. 사장이 있어야 내가 노동자라는 걸 증명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사장이 있든 없든 내가 하는 고용의 형태, 계약의 형태가 무엇이든 그 사람은 노동하는 시민이다. 그렇다면 최소한 보장되어야 할 노동의 권리와 각종 시민으로서의 기본권들이 보장되어야 한다.”
오 대표가 제기한 “일하지 않을 권리”는 결국 기본소득을 놓고 진보진영 내에서 벌어지는 해묵은 담론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이날 4당 당대표들은 토론회가 끝난 뒤 오찬 자리를 갖고 토론회에서 논의된 정책적 쟁점들과 관련해서 향후 어떻게 연대해갈지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고 한다.
김 대표는 토론회에서 “오늘 토론회 보니까 기본소득당은 기본소득만 하는 것 같고, 녹색당은 에너지만 하는 것 같고, 미래당은 마을행복을 추구하는 것 같고, 정의당은 옛날 많은 시민들이 생각했던 노동권 의제로 회귀한 것 같다”면서 “오늘 토론회의 핵심은 4개를 잘 결합해서 앞으로의 한국 10년 계획을 잘 세워라. 서로 콜라보? 이런 기획이 아닐까 싶다”고 표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