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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친코> 선자의 가족이 겪는 파란만장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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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3월부터 평범한미디어에 연재되고 있는 [라이트디퍼의 감상문] 13번째 글입니다. 영화, 드라마, 책 등 컨텐츠를 가리지 않고 라이트디퍼가 작성하는 리뷰를 만나볼 수 있습니다.

 

[평범한미디어 라이트디퍼] 소설 <파친코>는 일제강점기 부산 영도 어촌마을과 일본 오사카를 배경으로 4대에 걸친 일가족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배우 윤여정과 이민호 등 화려한 캐스팅으로 화제가 된 동명의 애플TV 드라마를 떠올릴 수 있지만 사실 원작 소설이 먼저 이민자의 나라인 미국에서 이슈화가 됐다. 미국인들의 큰 사랑을 받았다. 특이한 것은 <파친코>를 집필한 한국계 미국인 이민진 작가가 한국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점은 물론이고, 작품을 한국어로 쓰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민진 작가는 7살에 미국으로 이민을 갔고 대학에서 역사를 전공하며 ‘자이니치’라 불리는 재일 조선인에게 관심을 갖게 됐다고 한다. 그러면서 ‘한국인 디아스포라’ 3부작의 두 번째 이야기 <파친코>를 기획하게 되었다.

 

 

<파친코>에는 수많은 인물들이 등장한는데 김선자가 주인공이다. 주인공 김선자의 아버지 김훈이는 윗입술이 세로로 갈라지고 한쪽발이 뒤틀리는 장애를 가지고 태어났다. 김훈이는 부모를 도와 하숙집을 운영하며 김양진과 혼인을 하게 되고 6명의 자녀를 갖게 됐지만 모두 유산하거나 태어난지 얼마 되지 않아 죽게 된다. 양진은 고난 끝에 선자를 낳았고, 선자는 딸이었지만 훈이의 넘치는 애정과 보살핌을 받으며 자란다. 훈이가 결핵으로 세상을 떠나고 선자는 하숙집에 필요한 물건을 사기 위해 장을 다니며 밝은색 양복에 하얀 가죽구두를 신은 고한수와 마주치게 된다.

 

한수는 자신을 무시하는 선자에게 끊임없이 관심을 보이며 위기의 상황에서 선자를 구해준다. 이후  둘은  깊은 관계가 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선자는 한수의 아이를 갖게 된다. 하지만 한수는 이미 일본에 아내와 아이들이 있어 결혼할 수 없는 몸이었다. 한수가 선자의 임신 소식에 기뻐하며 아이와 가족들을 책임지겠다고 말하지만, 선자는 아버지에게 충분한 사랑을 받고 성장했던 만큼 물질적인 풍요보다는 가족이 주는 정서적 튼튼한 울타리가 더 중요했다. 선자는 혼자 아이를 낳기로 결심하고 한수와 헤어진다.

 

그러던 와중 평양에서 온 백이삭이 선자와 혼인하여 아이의 아버지가 되길 자처한다. 선자와 이삭은 혼인하여 이삭의 형이 있는 오사카로 떠난다. 오사카에서 교회의 부목사가 된 이삭과 선자는 노아를 키우며 둘의 아들 모자수를 낳는다. 이후 이삭은 교회에서 생활하며 허드렛일을 도맡아 담당하던 소년이 신사 참배를 가서 주기도문을 부르짖는 사건에 휘말려 오랜 시간 감옥에 갇히게 된다.

 

<파친코>는 1910년 일제강점기 훈이의 이야기에서 시작된다. 선자의 가족은 역사의 파도에 따라 다양한 사건들을 마주하게 되는데 그 과정이 <파친코>의 핵심 줄기다. 양진의 아버지는 농민이었지만 조선총독부의 토지조사사업으로 인해 땅을 빼앗기고 빈곤층으로 전락하여 어린 딸을 일면식도 없는 장애를 가진 사내에게 시집보내야 했고, 양진이 선자와 하숙집을 운영하는 과정에서 세계 대공황의 여파를 맞게 된다.

 

잘 들어. 이  친구야. 네가 할 수 있는 건 없어. 이 나라는 달라지지  않아.  나같은 조선인들은 여길 떠날 수도 없지. 우리가 어디로 가겠어? 고국으로 돌아간 조선인들도 다를 바 없어. 서울에서는 나같은 사람을 일본 놈이라고 불러. 일본에서는 내가 얼마나 돈을 많이 벌든, 얼마나 좋은 사람이든 더러운 조선인일 뿐이야. 도대체 어떡하라는 거야? 북한으로 돌아간 사람들은 죄다 굶어 죽거나 공포에 떨고 있다고.

 

소설의 전반부가 식민지 조선인으로서의 삶에 집중했다면 중후반부에는 전후 어느 쪽에도 속하지 못하고 평생 이방인으로 살아야했던 재일조선인의 삶이 잘 그려져있다. 선자의 아들 모자수는 일본에서 태어나 자라는 내내 차별과 괴롭힘을 당하며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오히려 음지로 여겨지는 파친코에서 일하게 되면서 가정을 이루고 자신의 삶을 꾸려가게 된다.

 

전후 일본에서는 군수물자용으로 대량 생산되었던 볼베어링을 파친코 구슬로 사용하는 일이 많았고 이는 파칭코업이 성장하는데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다. 시골 농어촌에서도 파친코 없는 지역은 찾을 수 없을 정도였기 때문에, 일본 사회에서 심한 멸시와 차별을 견뎌야 했던 재일 조선인들이 이러한 기피 사업에 뛰어드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조선인들은 충분한 돈이 있어도 깨끗한 집에서 살 수 없었고 죽기 살기로 노력해도 사회가 정해놓은 계층 사다리를 절대 넘어갈 수 없었다.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았지만 승자가 될 수 없었던 선자 가족들의 이야기를 통해 그 시절 재일 교포들의 삶을 간접적으로나마 느껴보기 바란다. 개인적으로 드라마를 보기 전에 소설 먼저 읽어보는 것을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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