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미디어에 연재되고 있는 [한연화의 뼈때리는 고민상담소] 49번째 사연입니다.
[평범한미디어 한연화] 오랜만에 나랑 비슷한 사람을 만나서 그런지 반갑네. 당신! 평소에도 사람 대하는 것에 문제 있다거나, 사람 대하는 게 너무 서툰 거 아니냐, 혹은 눈치 없는 거 아니냐는 소리 많이 듣지? 그때마다 내가 또 뭘 잘못했나 싶고 말야. 나도 그렇거든. 나도 사람 대하는 게 어려워서 사람 대하는 일 잘 못 해. 사람과 대화하는 것도 어렵고 사람과 눈을 마주치는 것도 어려워. 시선이 고정되지 않으니 더 그렇지. 그게 내 경우에는 아스퍼거 증후군 탓이라는 건 논외로 치고 우선은 커피랑 사케 중에 뭘로 할래? 요즘 커피를 내리기 시작했거든. 아무래도 커피가 무난하고 좋겠지? 그럼 커피 내리는 동안 이야기 좀 시작할게.
카톡 내용을 보고 정리를 해보자면 소개팅녀가 소개팅 당일에 연락을 해서 갑자기 생리를 시작했고 생리통이 심해서 못 나간다는 이야기를 했고, 당신은 그러면 언제 가능하냐고 답장을 보냈어. 그리고 너무 아파서 정신이 없는 소개팅녀는 오늘이 지나봐야 알 수 있을 거 같다고 이야기를 했고, 당신은 정말 그날이 지나고 연락을 했지. 이제 좀 괜찮냐고. 그 말에 그 소개팅녀는 사람이 아프다는데 어떻게 걱정 한 마디 안 할 수가 있냐고. 그런 사람과는 만나기 싫다고 한 거고 말이야. 내가 보기에는 이 일이 두 사람 모두 잘못은 없어. 사람 대하는 게 서툰 사람도, 그 사람 때문에 상처받은 사람도 잘못은 없는 거니까. 어떤 사람들은 당신에게 사람이 아프다는데 걱정이 먼저인 게 당연한 거 아니냐? 생리통이 얼마나 힘든데 그딴 식으로밖에 말을 못 하냐? 그럴테지만 나는 그러고 싶지 않아. 나는 당신을 이해할 수 있으니까.
사람 대하는 게 서툰 사람은 말야. 사람을 대하는 것 자체가 일이야. 진짜 친한 친구나 애인, 때로는 가족을 대하는 것도 일종의 업무나 게임 퀘스트처럼 느껴질 때가 종종 있을 정도니 말 다한 거 아니겠어? 이 사람의 말과 행동, 표정 등에 어떤 의도가 담겨있는지. 지금 내가 어떻게 반응을 해주면 좋은지. 이 모든 것들에 하나하나 따져보고 계산을 해봐야 결과값이 나오고 그 결과값에 맞추어 반응을 하는 게 사람을 대하는 것에 서툰 사람들이거든. 그러니까 정말 사람과의 관계에 대해서는 최소한의 것들만 알고 있을 수밖에 없어. 당일 약속을 취소하는 것은 무례한 일이고 약속을 취소할 때는 반드시 이유를 말해야 하고 다음에 언제 가능한지를 제시하는 것이 좋다 등등. 일종의 메뉴얼이랄까. 그런 거지 뭐.
하지만 이것도 사람을 많이 대하다보면 퀘스트를 깨듯이 하나하나 익히게 돼. 사람이 아파서 약속을 취소할 때는 걱정이 먼저라는 사실 그리고 그 이후에 만나자고 해야 한다 등등. 하지만 당신은 아마 사람을 업무상 필요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그렇게 많이 대해본 적은 없을 거고. 그래서 그저 메뉴얼대로 반응했을 거야. 약속을 당일 취소한 사람은 아무리 아프다고 해도 무례한 행동을 한 것이기 때문에, 다른 스케줄 언제 가능한지를 먼저 제시해줘야 하는데 소개팅 자체를 없던 일로 하자니.... 그러니 당신은 내가 도대체 뭘 잘못한 건가 싶어서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을테고 말이야.
하아. 사람 대하는 거 많이 힘들지? 여기까지 들어도 머리가 막 아프고. 나도 사람 대하는 게 힘들어서 아직까지 사람 대하는 걸 배우는 중이야. 나이가 내일 모레면 서른인데도 사람 대하는 게 서툴고 힘들어서 나도 언제쯤 온전히 사람들과 어울려 살 수 있을지 모르겠어서 막막하고 그렇다? 그래도 굳이 하나 이야기해주자면 상대가 아무리 당일 약속을 취소해도 아프다고 한 이상 걱정부터 해줘야 해. “괜찮으세요?”, “많이 아프세요?”, “약은 드셨어요?”, “병원은 가보셨어요?” 뭐 이렇게. 사람이라는 게 원래 한 마디 말에 마음이 움직이고 하는 법이니 당신이 상대를 걱정하는 한 마디만 해줘도 충분히 먹고 들어가게 되어 있어. 그러고 난 뒤에 아래처럼 덧붙여줘.
그럼 다음에 봐요. 푹 쉬고 몸조리 잘 하고 가능한 날에 연락주세요.
이렇게 마무리하면 아마 미안해서라도 연락이 올 수 있어. 어쨌거나 당일 약속을 취소한 것은 미안한 일이고 무례한 일인데 이 사람은 그것보다 내 몸을 먼저 걱정해주는구나. 싶어지니까 말야. 그러니 다음에도 이런 일이 있으면 그때는 그 사람의 상태를 걱정하는 말을 먼저 해.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은 이게 전부니까 사람을 좀 더 만나며 부딪치도록 하고. 알겠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