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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전 끝까지 응원한 한국 야구팬들 “수치스럽게 만든 경기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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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미디어 박효영 기자] 일본전(10일)이 끝나고 그 다음날(11일) 하루 종일 멘붕 상태였다. 다른 일이 손에 안 잡힐 정도였다. 가족과 지인, SNS, 유튜브 등으로 내내 관련 코멘트를 접하고 도대체 무엇이 문제였는지 고민하느라 몰두해 있었다. 오랫동안 축구와 야구를 좋아했던 팬으로서 이번 WBC를 기다려왔다. 사실 월드컵보다 WBC를 더 손꼽아 기대했다. 작년 한 해 동안 고향 광주에서 기아타이거즈를 응원하며 야구에 몰입했기 때문이다. 그냥 글을 안 쓰고 싶었는데 이내 쓰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일본전에서 패색이 완연해진 7회가 됐음에도 KBS 박찬호 해설위원은 목소리 톤 하나 변하지 않고 여전히 “끝까지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말했다. 중계 화면에는 도쿄돔 관중석의 0.1%에 불과한 한국 응원단이 끝까지 목청껏 응원을 하고 있었다. 박 위원은 한국이 일본한테 4대 13으로 참패를 당한 직후 KBS 스포츠 유튜브 채널 후토크에서 “참혹한 경기 속에 끝까지 응원해주는 한국 응원단에 정말 고마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도쿄에 거주하며 유튜브 채널 ‘JM’을 운영하고 있는 유제민씨는 이날 직관을 갔다. 유씨는 정가 16만원짜리 티켓을 암표로 구입했는데 무려 150만원이나 됐다. 일본인 아내와 함께 도쿄돔에 가기 위해 300만원을 지출한 셈이다. 그는 한국 응원단이 자리 잡은 3루석 구역이 아닌 일본 관중에 둘러쌓인 1루석에서 태극기를 들었고 애국가가 나올 때 소심하게 따라부르다 일본인들의 눈총을 받기도 했다.

 

저희가 비록 게임은 오늘 13대 4로 졌지만 매너에서 이겼다. 쓰레기를 줍도록 하겠다. 내일 일본 신문에서 게임에서 이겼지만 매너에서 졌다. 한국 관중 매너에서 이겨. 그런 기사가 나갈 수 있도록 태극기를 몸에 두르고 열심히 줍겠다.

 

한국 응원단으로 직관을 온 유동건씨는 “경기는 질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한국이 응원은 지면 안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래도 일당백 적은 한국 관중들끼리 열심히 응원했다”고 밝혔고 오두현씨는 “처음에 양의지 선수가 홈런 쳐서 3점을 내고 정말 대한민국이 이길 것 같았는데 일본의 벽은 너무 높았다. 하지만 앞으로도 대한민국 목이 터져라 응원하겠다”고 다짐했다. 경기가 끝나고 한국 선수들이 응원단으로 다가와서 폴더 인사를 할 때도 이들은 “괜찮아! 괜찮아!”를 외치며 되려 선수들을 위로했다.

 

KBS 박용택 해설위원은 “솔직히 팬들에게 더 응원해달라는 말 못 하겠다”며 “쓴소리해주시고 질책해주시되 다만 꼭 관심 갖고 지켜봐달라”고 당부했다.

 

 

쓴소리가 아니라 감정적인 반응과 욕부터 나오는 어이가 없는 경기였다. 어떤 네티즌은 “야구를 하루 이틀 본 것도 아닌데 경기 보면서 수치스럽다고 느낀 것은 이번이 처음인 것 같다”고 표현했다.

 

도쿄돔 현장에서 이틀 연속 직관을 한 스포츠조선 박재호 부장은 “완패다. 후반에 와르르 무너졌고 우리 투수들은 볼질만 계속 하고 이틀 연속 도쿄돔 참사”라며 “일본은 오타니나 눗바라든지 팀의 핵심 자원들이 한국전을 기점으로 살아났다”고 전했다.

 

일본 대표팀 입장에서 라이벌을 박살내고 주전 선수들 기살려서 8강전 등 더 높은 곳으로 가게 되니까 오늘을 기점으로 일본은 더 나은 쪽으로 나가는 거고 한국은 일본의 불쏘시개 역할을 한 것처럼 느껴진다. 여기 도쿄돔은 지금 일본팬들 흥분의 도가니다. 아주 난리다. 오늘 일본전 속이 많이 상한다. 어제 호주전 끝나고 영상을 찍으면서 내가 울어서 많은 분들이 내게 왜 우느냐. 울지 말라고 했는데 오늘은 울지 않으려 한다. 야구가 오늘이 끝이 아니라 오늘을 기점으로 변화해야 한다. 사실 마음 같아선.. 한국 야구가 기가 찬다. 하지만 2023년 3월9, 3월10일 이곳 도쿄돔을 우리 야구 관계자들과 선수들이 결코 잊지 말아야 한다. 야구팬 하기가 너무 힘들다.

 

실력이 바닥이었다. 이게 핵심이다. KBO 허구연 총재가 취임한 뒤로 1년 가까이 WBC를 준비했고 공을 들였다.

 

한국 야구 1년을 준비한 이번 대회다. 사실 준비만 잘 하면 된다는 것은 원래 가진 선수들의 실력, 역량이 있을 때 그리고 야구 저변이 뒷받침 될 때의 이야기다. 구슬이 있고 그 구슬을 꿰어서 보배를 만드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 구슬이 너무 부족하다. 한국 야구의 기량이 오히려 2000년대 WBC의 영광과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 당시와 비교하면 퇴보됐다는 생각이 든다. 국제 수준과 비교하면 갈 길이 너무 멀다. 이래선 안 된다. 지금 한국 야구는 야구 중흥기를 이끈 선배들이 쌓아올린 열매를 먹고 있는 상태인데 우리 젊은 선수들이 눈높이를 더 올려야 하고 스탠다드를 높여야 하고 더 성장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지금 이거 뭐 우물 안 개구리라는 생각이 그냥 든다. 어느 정도만 해도 국내에서 연봉 수억원 수십억원 받으니까 만족하고 그러면 안 된다. 이미 이번에 확인하지 않았는가. 메이저리그가 아니라 마이너리그 더블A, 트리플A에서 뛰었던 선수들이 주축인 호주가 우리 대표팀에 전혀 뒤지지 않는 기량을 선보인다. 그냥 운이 없어서 우리가 패한 게 아니라 이게 실력이다.

 

 

도대체 투수력이 어땠던 걸까?

 

이강철 감독은 기자회견에서 “초반에 승기를 잡았는데 내가 투수 교체를 늦게 하는 바람에... 투수 운영에 실패한 것 같다”고 고백했다. 호주전과 일본전에 출전한 투수들의 면모가 처참하긴 했다. 총 21점을 내줬다. 구속도 형편없었고, 제구도 떨어졌다. 변화구 위주로 떨공삼(떨어지는 공에 삼진)을 유도하려다가 되려 장타를 허용했고, 이마저도 어려워지니 “볼질”만 난발하며 스트라이크 자체를 못 던지는 극심한 제구 난조에 시달렸다. 이렇게까지 투수력이 참담한 것일까 싶은 정도였는데 이 감독의 투수 운용마저 엉망이었다. 유튜브 채널 ‘스포츠클래식’을 운영하고 있는 김창덕 야구 칼럼니스트는 한신 타이거즈와의 공식 평가전에서 좋은 컨디션을 보여준 박세웅 투수를 “콜드게임 방지용 투수로만 기용했다”는 점을 지적했다.

 

문제는 박세웅이 오늘 단순히 점수차가 벌어진 상황에서 기용되어 잘 했다기 보다는 원래 컨디션이 좋았다. 일본 한신 타이거즈와의 평가전에서 매우 좋은 피칭을 보여주면서 좋은 컨디션을 자랑했기 때문에 야구팬들은 모두 박세웅의 컨디션이 좋고 몸이 올라왔다는 걸 누구나 알 수 있었다.

 

MBC 스포츠 양준혁 해설위원은 은퇴한 뒤로 한국 야구계에 쓴소리를 자제해왔는데 한일전이 끝나고 도무지 참을 수가 없었다고 했다. 이날 한일전 라이브 입중계를 마치고 홀로 팬들과 라이브 방송을 켜서 이 감독에 대한 강도 높은 비판을 쏟아냈다. 기사화도 많이 됐는데 일단 양 위원은 “선수 기용부터 작전 등 다 완전 졌다. 오늘 같은 경기는 내가 본 최악의 경기”라며 “국제 대회에서 대한민국의 경쟁력이 있었다. 물론 질 때도 있었지만 내가 본 경기 중 최악의 졸전”이라고 서두에 밝혔다.

 

이건 대놓고 갖다바친 경기였다. 올림픽 금메달을 딴 팀인데 그건 다 어디 가고 너무 어이없이 진다는 것은 소위 말해서 쪽팔려서 어디 가서 말도 못 하겠다.

 

무엇보다 양 위원은 “오늘과 어제 경기를 봤을 때는 이강철 감독이 책임을 져야 한다. 감독의 수라든지 이런 걸 너무 못 했다”며 “그냥 선수들한테 맡겨선 안 되고 때로는 감독이 개입해서 작전을 건다든지 선수 교체를 한다든지 이렇게 해야 하는데 타순만 짜놓고 제대로 돌아가는 게 없다”고 지적했다. 한일전 “내내 악수만 뒀다”고 평가했는데 양 위원은 구체적으로 이미 투수 로테이션으로 누가 나올지 다 정해져서 나온 것 같다면서 투수 기용의 문제점으로 4가지를 꼽았다.

 

①3회말 일본 8·9번 타자 연속 볼넷 직후 선발 김광현 투수의 위기를 빨리 캐치해서 바로 교체하지 못 한 점

②좌타자가 주력인 일본 타자들을 상대로 바로 좌완 불펜을 가동하지 않고 우완투수부터 기용한 점

③호주전에서 3점 홈런 맞고 멘탈이 나간 김원중 투수를 굳이 출전시킨 점

④곽빈·정철원·김윤식·이의리 등 경험 부족 어린 투수들을 5만여명의 관중이 모인 한일전에 무리하게 투입시킨 점

 

김원중은 호주전에서 홈런 한 방 맞았고 멘탈이 무너졌다. 안 써야 한다. 왜 거기서 김원중을 쓰는가? 나오는 순간 큰일 났다 싶었다. 사람 두 번 죽이는 것이다. 감독이 잘못 썼다는 것이다. 윤식이, 철원이, 곽빈 국가대표 처음 됐는데 무너졌다. 6회에 5실점했다. 안 그랬으면 우리가 따라갈 수도 있었다. 이강철 감독이 완전히 패착을 뒀다.

 

 

양 위원은 호주전부터 “잘못된 게 올인을 했어야 했다”고 역설했다. 호주전에서 무조건 이기기 위해 “김광현부터 다 때려박았어야 했다”는 것이다.

 

내가 지금까지 야구 해설 하면서 누구를 까본 적이 없다. 이번에는 이강철 감독 선배지만 이건 얘기를 해야 한다. 감독은 책임지는 자리다. 이런 식으로 게임 운영하는 것은 앞으로 국가대표 감독은 안 해야 한다. 올해 한국 프로야구 어떻게 꾸려나갈지 암담하다. 호주전은 우리가 이기고 있었기 때문에 때려박아서 예를 들어 김광현이 일본전에서 선발이 예정됐다고 해도 빼서라도 갖다박아야 한다. 져버리니까 오늘 일본전에서 더 어렵게 됐고 악순환으로 갔다.

 

SBS 스포츠 대니얼 킴 해설위원도 “일본한테 져도 호주한테만 이겼더라면 지금 이렇게 다운이 안 된다”면서 “호주만 이겼다면 내일 체코와 중국 이기고. A조가 난리났네? 대만이 올라올까? 대만도 분위기 탔네.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을 거였다. 근데 일본한테 지는 것은 뭐라고 안 하는데 호주한테 지고나니까 짜증나네 짜증나”라고 말했다.

 

메이저리그 테이블 세터 에드먼·김하성 선수에 대해서도 말이 많다. 두 경기 동안 둘이 합쳐 딱 1안타였기 때문이다. 에드먼 선수는 타격 면에서 연습 경기 내내 부진했다.

 

양 위원은 “(두 선수가 메이저리거로서 급이 있는 선수인 것은 맞지만 컨디션이 안 좋으면) 빼야 한다. 김혜성과 오지환이 있다. (두 선수) 감 찾으려고 하면 게임 끝난다. 안 좋을 땐 쉬게 해주고 다음에 기회 주면 된다. 안 맞고 있는데 계속. 테이블 세터에서 끊기니까 게임이 안 풀린다”고 꼬집었다.

 

돌이켜보면 2006년 초대 WBC에서도 당시 메이저리그 출신 최희섭 선수(현 기아타이거즈 타격코치)가 네임밸류에 비해 부진했을 때, 김인식 감독은 그를 선발 라인업에서 제외시켰다가 결정적일 때 대타로 써서 홈런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적어도 에드먼·김하성 선수를 계속 기용하더라도 타순을 변경해줬더라면 어땠을지 아쉬운 대목이 있다. 박 부장은 에드먼·김하성 선수에 대해 아래와 같이 평했다.

 

메이저리그 테이블 세터 에드먼·김하성 선수가 타선에서 전혀 역할을 해주지 못 했다. 일본의 테이블 세터는 달랐다. 눗바 선수 잘 했고 팀 분위기 바꾸고 적시타에 호수비까지 펼치더라. 호주전에서 패한 뒤 에드먼 선수는 본인에게 너무 화가 난 나머지 덕아웃에서 엄청 속상해했다고 한다. 방망이 쾅쾅 치고. 너무 무기력했고 팀이 패배한 부분에 대한 속상함을 표출했다. 주위에서 말을 걸지도 못 할 정도였는데 눗바 선수의 맹활약과 대비가 되는 모습이었다.

 

 

SBS 정우영 캐스터는 박세웅 투수의 호투로 한일전 콜드게임 패배를 면한 것에 대해 “이게 과연 다행일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더 큰 충격요법이 필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황망한 실력으로 8강행 경우의 수를 노린다? 의미없는 일이다. 박 부장은 “한국의 8강행 가능성? 이건 뭐 수치상일 뿐 아무 의미가 없다. 8강 갈 확률은 100분의 1도 안 된다”고 일축했다.

 

더 이상 정신력이나 투지 등이 부족했다는 식으로 눙칠 일이 아니다. 그냥 못 했고 실력이 형편없는 게 문제다. 그러면 뭘 해야 할까. 킴 위원은 “결국 공부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들 ‘우물 안 개구리’라고 말하는데 여기에 해답이 있다. 세계 야구의 중심인 일본과 미국 야구 트렌드에 민감해야 하고 새로운 방식과 모델이 있다면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공부해야 한다.

 

우리보다 앞서 있는 일본은 더 멀리 앞서 갔고, 우리보다 뒤에 있는 호주와 대만 등등은 거의 다 따라잡았다. 우리는 가만히 있었다. 가만히 있으면 추월당한다. (한국의 학원 야구에서 알루미늄 배트를 사용하지 않고 나무 배트를 사용해서 이를 상대하는 투수들의 성장이 더딘 문제가 있다는 지적에 대해) 그럼 체코는 뭐고 호주는 뭐고 중국은 뭔가? 알루미늄 배트 문제가 아니다. 결국 공부를 해야 한다. 일본은 최신식 스마트폰이고 우리는 17년 전 DMB 플립폰 같은 거다. (한국 야구는 유독) 자기가 알고 보고 체험한 것만으로 야구를 하는 것 같다. 특히 프로선수들이 그렇다. 근데 일본은 다르다. 한국 프로 투수코치들 10년 전, 20년 전과 지금 이야기 들어보면 비슷하다. (세계 야구는 계속) 많이 바뀌고 있는데 속도가 더디고 느리다.

 

킴 위원은 세계 최고의 야구선수들도 끊임없이 공부하고 노력한다는 점을 환기했다.

 

커쇼도 그렇고 다르빗슈도 그렇고 이 선수들 훈련 방식을 다 바꿨다. 다르빗슈가 30대 후반에도 또 장기 계약을 했다. 커쇼도 바뀌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 세상 최고의 투수로 평가 받는 커쇼조차도 공부를 하고, 새로운 훈련 방식을 받아들이고, 연구를 하고, 고민을 한다. 근데 우리는 맨날 하체 운동을 해야 하고, 투구 밸런스가 어쨌다 저쨌다. 그러고 있다. 더 큰 야구를 만들기 위해서는 현장에서 선수들도 그렇고 다 머리를 맞대고 공부하고 밖에 뭐가 있고 우리가 모르는 게 뭐가 있는지 알아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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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효영

평범한미디어를 설립한 박효영 기자입니다. 유명한 사람들과 권력자들만 뉴스에 나오는 기성 언론의 질서를 거부하고 평범한 사람들의 눈높이에서 사안을 바라보고 취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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