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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고다이 인생⑬-1] 파이브잡 식스잡의 손비야 “나는 불도저 같은 스타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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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미디어 윤동욱 기자] 독고다이 인터뷰 벌써 열세 번째인데 크리스마스 연말 시즌에 맞는 인물이다. 배우이자 정치인, 사업가로 활동하고 있는 손비야씨다. 알만한 사람들은 이미 다 알고 있을텐데 비야씨는 여러 직업들을 영위하고 있음에도 배우의 길을 놓지 않고 있다. 연극, 드라마, 영화 등 배우로서 걸어온 발자취가 있다. 한때 ‘여민정’이란 이름을 사용하기도 했다. 어느 순간 안철수 의원(국민의힘)과 함께 모습을 자주 비치더니 정치인으로 데뷔했고 선거에 출마한 적도 있다. 사업가로서는 중국어 교육업체와 카페를 운영하고 있다.

 

최근 서울 마포구 망원동에서 24시간 무인 카페를 오픈했고, ‘통합예술치료’ 박사과정을 수료했다고 근황을 전했다.

 

지난 11월18일 16시 비야씨가 운영하고 있는 카페에서 직접 만났다. 2시간 넘는 인터뷰 동안 정말 비범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머릿 속을 가득 채웠고 대화가 너무 즐거워서 시간가는줄 몰랐다. 그만큼 삶의 주관이 뚜렷했고 남달랐다. 남들이 흔히 밟는 경로를 선택하지 않고 자신만의 길을 끊임없이 개척하는 비야씨의 인생은 그야말로 독고다이 인터뷰이로서 딱이었다.

 

 

먼저 현재 주로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물었다. 비야씨는 “크게 세 가지로 압축해서 통합예술치료, 카페 운영, 영화 촬영”이라고 답했다.

 

이번에 통합예술치료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그래서 실제 관련 기관에서 통합예술치료사로 일을 하고 있다. 그리고 알고 있다시피 11월7일 카페를 오픈했다. 또 하나는 영화 촬영이다. 모레 강원도로 출발해서 한 일주일 정도 거기서 촬영을 할 예정이다. 배우가 아니라 프로듀서 일을 하러 간다. 연출은 MBC 아나운서 출신의 친한 언니가 한다. 그분이 단편 영화를 몇 개 만들었는데 이번이 마지막 단편 영화라고 한다. 그래서 내가 돕게 되었다. 준비한지는 두 달 정도 되었고 이번에 강원도로 촬영을 가게 되었다.

 

배우가 아니라 영화 촬영 업무까지 하고 있다니! 직업 하나가 새로 추가된 것인가? 이외에도 비야씨는 중국어와 한국어 교육까지 하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인 연예인 지망생들이 있다. 이들은 한국에서 아이돌이나 연예인이 되고 싶어 한국어를 배우려고 하는 사람들이다. 한류 열풍으로 인해 한국어를 배우려는 수요가 정말 많이 늘었다. 그 친구들을 대상으로 한국어 교육을 하고 있다.

 

사실 독고다이 인터뷰이들은 투잡, 쓰리잡을 하는 경우가 정말 많았다. 그런데 비야씨는 파이브잡, 식스잡이다. 그야말로 끝판왕이었다. 그렇다면 수많은 일을 병행하면서 힘든 점이 뭘까?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쉽지 않을 것 같은데 비야씨는 모든 순간이 쉬웠던 적은 없었다고 말했다.

 

사실 모든 순간이 쉽지 않았고 쉽게 가본 적이 없는 것 같다. 하지만 20대부터 여러 가지 일을 도전하고 경험한 게 쌓이면서 일을 해결하는데 좀 더 시간을 단축시켜 주고 있는 것 같다. 지금은 좀 어려운 일도 금방 극복을 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비야씨는 ‘일하는 스타일이 맞지 않을 때’가 힘이 든다고 했는데 신속한 추진력으로 일을 하다 보니 결국 혼자 할 때가 많기 때문이다.

 

나는 불도저 같은 스타일이다. 일을 처리할 때는 빠릿빠릿하게 하는 성격이다.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는 재빨리 다른 방법을 찾기도 한다. 물론 내 방법을 같이 일하는 사람들에게 강요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혼자 해야 하는 일이 많아진다. 그게 좀 힘들다. 하지만 괜찮다. 나는 멘탈이 강한 편이라 그런 것은 금방 극복한다. 이게 나의 장점이다. 그래서 사람들의 멘탈을 치료하는 일에 관심이 많은 것 같다.

 

금방 털고 일어날 수 있는 극복의 원동력이 궁금했다. 비야씨는 독서를 꼽았다.

 

(내 이미지랑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는데) 나는 책을 정말 좋아한다. 왠지 노는 거 좋아할 거 같고 말술일 것 같다는 이미지가 있다. 물론 사람들과 소통하고 어울리는 것도 좋아한다. 하지만 그 시간과 비례해서 혼자만의 시간도 많이 가지려고 한다. 그래서 쉴 때는 정말 아무것도 안 하고 완전히 쉬려고 한다. 쉴 때는 디지털 기기를 아예 하지 않는다.

 

비야씨는 쉴 때 아무 것도 안 한다고 했지만 다른 사람들로부터 연락을 받으면 반드시 바로 답장을 해준다고 강조했다. 그게 예의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평범한미디어에서 인터뷰 요청을 했을 때도 빠르게 답장이 왔다. 

 

 

무엇보다 비야씨는 “자기계발을 할 때 힘들다기 보다는 더 에너지를 얻는 성격”이라고 밝혔다. 확실히 ENFP 스타일인데 성취를 이뤄가는 과정 자체를 즐길 수 있는 능력자라고 할 수 있다.

 

독고다이 고정 질문들 중 인터뷰이들이 가장 고심을 많이 하는 게 바로 내 인생의 전성기다. 비야씨는 “전성기가 아직 안 온 것 같다”고 했다.

 

전성기가 당연히 오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공부하는 것(통합예술치료)도 지금 이제 마무리하는 중이기 때문이다. 임상 시간과 경력이 쌓일수록 빛을 발하는 일이기 때문에 아직 이 일에 있어서만큼 전성기는 오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전성기라는 표현 말고 내가 가장 행복했던 시기가 언제인지 바꿔서 물어봤는데 비야씨는 중국에서 생활할 때가 제일 좋았다고 떠올렸다.

 

좋았던 시기는 해외에 나갔을 때다. 2016년도에 교환학생으로 중국으로 유학을 갔었다. 항상 해외에 나가는 게 꿈이어서 좋았다. 사드 문제가 터지기 전 배우 생활을 할 때 한중 교류가 활발했었던 때가 있다. 그때 중국어의 필요성을 느끼고 공부했다. 중국에서 생활할 때 정말 재미있었다. 좀 더 넓은 세상에 있을 때 나는 자유롭고 만족스러운 감정을 느꼈다.

 

그러나 문제는 2017년 이후로 사드 사태가 터지면서 한중관계가 급속도로 냉각됐고 비야씨가 그때 당시 준비하고 있던 여러 일들이 다 무산됐다. 구체적으로 그때 유학을 갔다와서 중국어 학원을 오픈했는데 사드 사태로 학생들이 많이 줄어 타격을 입었다.

 

비야씨는 “내년부터 전성기가 시작될 것 같다”면서 좋은 분위기가 이어지기를 기원했다.

 

(통합예술치료) 일을 마음껏 펼치고 싶었어도 시간의 제약이 있어 하지 못 했다. 하지만 내년부터 왕성하게 할 생각이다. 나중에는 치료 센터를 개업하고 싶다.

 

 

비야씨에게 고독한 감정을 자주 느끼는지 물어보았다. 비야씨는 그런 감정들을 잘 느끼지 않는다고 단언했다. 오히려 고독해지고 싶을 때가 있다고 표현할 정도였다.

 

사실 그런 감정들을 잘 느끼지 않는다. 얼마든지 내가 마음만 먹으면 사람들과 연락하고 만날 수 있는 환경이다. 오히려 나는 이따금씩 고독해지고 싶다. 너무나도 왕성한 SNS 활동, 많은 사람들과의 연락과 교류, 단체 모임 등 정말 포화 상태라서 한 번씩은 고독해져야 한다.

 

아무리 외향적인 사람이어도 가끔은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한 법이다. 사람들을 계속 만나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감정 소모가 크기 때문이다. 그래서 재충전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비야씨는 재충전이 필요하다는 점을 상기했다.

 

비야씨는 그동안 많은 노력을 해왔고 지금도 열심히 달려가고 있다. 비야씨에게 먼훗날 어떻게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바람이나 목표가 있는지 물어봤다. 독고다이 마지막 공통 질문인데 비야씨는 공적 영역에서 좀 더 활약해보고 싶다는 포부를 드러냈다.

 

나는 알맹이가 꽉 찬 사람이 되고 싶다. 학구열을 불태웠던 것도 나에게 부족한 것들을 채우고 싶었던 욕구가 반영된 게 아닌가 싶다. 그러다보니 박사과정까지 수료하게 되었다. 실무적인 것과 공부를 병행하다 보니 깨닫게 된 것 같다. 나는 사회에 필요한 사람이 될 때 행복한 사람이다. 주변인에게 도움을 주고 필요한 것을 연결해줬을 때도 행복감을 느꼈는데 사회로 나아가 알지 못 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때는 그 행복감이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이 능력을 사사로이 쓰는 게 아니라 더 공적인 영역에서 쓰고 싶다. 더 넓게 좋은 영향력을 행사하고 싶다. 그러면 내가 너무 만족감을 느끼고 행복할 것 같다. 굳이 ‘보상’ 이런게 없어도 나 때문에 도움이 되었고 문제가 해결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정말 기분이 좋다.

 

 

이제 개별 질문 시간이다. 비야씨는 다양한 분야에서 여러 일들을 하고 있으면서도 연기자로서의 정체성을 계속 지키고자 하는 의지가 강했던 것 같다. 하지만 이제 비야씨는 아쉽지만 전업 배우를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어쨌든 배우 관련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었고 일단 언제부터 배우가 되고 싶었는지 물었다.

 

(고3 수능 끝나고 집을 나가) 3년 동안 밖에 있다 오니 어머니가 뭘 하고 싶니? 하고 싶은 게 있으면 지원해 주겠다고 말했다. 촬영 현장 엑스트라 알바도 해봤지만 순전히 일당 때문에 한 것이었다. 미용실에서 일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헤어 디자이너를 해볼까? 그런 막연한 생각도 했다. 그러다가 생뚱맞게 어머니에게 연기를 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자 어머니는 3개월간은 네 돈으로 다니고 그 이후로는 자신이 지원해주겠다고 하더라. 금방 그만두고 다른 것을 할까봐 그렇게 이야기한 것이다.

 

그때도 추진력있게 바로 연기학원을 등록했다.

 

한 연기학원에서 상담을 받아보니 하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연극 대본을 읽는 것을 좋아하는데 연기학원이니 당연히 그런 것들을 했다. 이외에도 한국 무용, 성악, 재즈 등 다양한 것들을 배웠다.

 

 

학원비가 없었지만 당장 연기를 배우고 싶었다고 한다. 그래서 어머니를 설득했다. 막상 연기를 배워보니 너무 적성에 맞았고 행복했다.

 

3개월 이후부터 지원해준다고 했지만 당장 돈이 없었다. 그래서 그냥 3개월까지 어머니에게 지원해달라고 했다. 만약 끈기없이 3개월만에 그만둔다면 그 돈을 물어내겠다고 어머니에게 말씀드렸다. 딸이 열심히 하면 어머니에게도 좋은 게 아니겠는가? 이런 설득이 통해서 어머니가 지원을 해주셨다. 사실 무엇보다도 딸이 잘 되길 바라는 마음이 컸던 것 같다. 그래서 열심히 했다. 사실 열심히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 연기를 배우는 게 너무 행복했다. 정말 금전적인게 문제지 그것만 빼면 평생 해도 후회가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발적으로 6개월 이상 다녔다. 게다가 다니는 동안 무지각, 무결석이었다. 나도 내가 좋아하는 일이라면 이렇게 열정적으로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어머니에게 계속 학원비를 내달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각종 선발대회와 지원 프로그램을 찾아보고 닥치는대로 지원했다. 선발대회 같은 경우 입상만 하면 상금도 받고 각종 혜택이 있기 때문에 연기 생활을 지속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정말 기적적으로 한 선발대회에서 10등 안에 들었고 그때부터 업계 사람들을 알게 되어 조금씩 출연 기회를 얻기 시작했다.

 

모든 일이 연기와 배우가 되는 것에 포커스가 맞춰졌다. 나는 연기를 비교적 늦게 시작했다. 1년만에 입시 준비를 해서 (대학교 방송연예 관련 학과에) 들어갔는데 내가 정말 늦게 입학한 편이었다. 다른 친구들은 고등학교를 갓 졸업하고 바로 왔지만 나는 그렇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서바이벌에 강한 사람이다. 승부욕이 세기 때문에 누구랑 붙으면 오히려 더 잘 하는 스타일이다. 학교부터 성실하게 무지각, 무결석으로 다녔다. 대학원에 다닐 때까지 나만의 원칙은 지켜졌다. 이렇게 성실하게 임하다 보니 교수들도 나를 좋게 봐주었고 뭘 해도 될 거라는 덕담도 많이 들었다. 그러다 보니 자존감이 상승하고 더 열심히 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비야씨는 ‘재능의 벽’에 부딪쳤다고 했다.

 

얼마나 까마득하겠는가? 연기 잘 하는 사람도 너무 많고 노래 잘 하는 사람도 너무 많다. 내가 보기에도 좀 나 자신이 애매했다. 그래서 최대한 우직하게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눈에 쌍심지를 켜고 (나를 어필하기 위해 움직이다보니) 엔터업계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이와 더불어 기자 아카데미, 요가 등 많은 분야를 공부한 것 같다. 왜냐면 아까도 말했다시피 배우는 다 잘 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아마 주변 사람들은 나를 보고 뭐 이렇게 이것저것 많이 하지? 의아해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계속 나 자신에게 타당성을 부여했다.

 

2010년 우연치 않게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할 기회를 맞게 됐다.

 

25살에 <러브 스위치>라는 프로그램에 갑자기 출연하게 되었다. 연극을 하던 도중 이 프로그램을 하게 되었는데 나름 인기를 끌어 6개월이나 하게 되었다. 이때부터 사람들이 나를 재미있게 봐주고 나서 연극도 하게 되고 드라마도 하게 되었다. 이렇게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앞서 말했다시피 그러면서 관련 엔터업계 사람들도 많이 만났다. 정말 이거는 정해진 순서가 없다. 자신이 하기 나름이다. 자신의 노력, 기회, 인연 모든 게 맞아야 한다. 이상한 사람도 만난 적 있었지만 그 과정이 정말 재미있었다.

 

 

카페 창업에 통합예술치료까지 그러면 이제 배우로서의 활동은 줄어들 수밖에 없는 것이 아닐까? 비야씨는 아쉽지만 전업으론 하지 못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영화는 이제 단편 영화의 프로듀서로도 참여하지만, 연기자는 전업으로 하지는 못 할 것 같다. 그러나 문을 아예 닫지는 않을 것이다. 캐스팅 제의가 들어온다면 참여할 의사는 있다.

 

그동안의 배우 생활은 만족스러웠는지에 대해 물어봤는데 비야씨는 연기가 즐거운 것과는 별개로 배우 생활 자체는 커리어적으로 만족스럽지 못 하다고 답했다. 중국 진출이 어려워지면서 스텝이 꼬였다는 것이다.

 

나는 중국에서 활동하기로 했던 게 좌절되면서 다른 일을 하게 된 케이스다. 갑자기 중국어 교육쪽으로 가게 되고 석사도 교육 쪽으로 가게 되면서 이쪽 분야와는 점점 멀어져갔다. 처음 연기과를 들어가고 연기하고 졸업하고 하는 일련의 과정들이 배우가 되기 위해서였다. 심지어 중국어를 배웠던 것도 누구에게 가르치려고 배운 게 아니라 더 큰 중국이라는 무대에서 연기자로 활동해보고 싶었다.

 

그때부터 비야씨 인생에 변곡점이 시작되었다. 안 되면 다른 돌파구를 찾아나서야 한다.

 

현실에서 장벽에 부딪히면서 타협점을 찾아갔다. 중국에서 영화 연출로 석사를 가고 싶었던 꿈도 포기해야 했다. 그래서 일단 중국어 교육을 하고 있다가 상황이 좋아지면 다시 진출을 모색해보려 했다. 그러나 조금 상황이 좋아지려는 찰나 코로나가 터졌다. 그전까진 중국에서 활동하는 것에 미련을 가지고 있었지만 코로나로 그것마저 여의치 않게 되었다. 그때 동덕여대에서 통합예술치료에 대해 공부를 했다.

 

 

 그 시점에 우연히 부동산 중개 일을 한 적이 있는데 의외로 돈을 꽤 벌었다.

 

공인중개사 자격증을 따지 않아도 중개보조원으로 일을 할 수 있다. 불법은 아니다. 반짝 반년을 일했는데 꽤 많이 벌었다. 정말 능력만큼 버는 정직한 직업이었다. 이 일은 월급이 없다. 무조건 성과를 내야 돈을 버는 일이다. 그동안 해온 경험들이 바탕이 되었던 것 같다. 내가 쇼부를 잘 친다고 했는데 여기서도 그 능력이 여지없이 발휘되었다. 그래서 3개월에 무려 50건이나 계약을 성사시켰다.

 

3개월에 50건이라니 영업 능력이 탁월한 것 같다. 어떻게 보면 비야씨야말로 영업과 판매를 가장 잘 할 수 있는 성향을 갖고 있다. 성실하고 부저린하기 때문이다. 비야씨는 새벽에 전화가 와도 받았다고 한다.

 

고객을 놓치기 싫었다. 그래서 언제 어느 때에 전화가 와도 무조건 받았다. 어떻게 보면 퇴근 개념이 없었던 것 같다.

 

 

이상한 사람을 만났다고 했다. 아니 나쁜 사람이었다. 사기를 당한 것이다. 사기는 항상 절실한 사람을 타겟으로 한다. 사기꾼은 영화감독을 사칭했다.

 

정말 창피한데 결과적으로는 그 사람에게 돈을 뜯겼다. 그 사람이 왜 여기서 부동산을 하고 있어요? 당신 같은 사람은 배우를 해야지라고 감언이설을 하는데 정말 그 말재간이 보통이 아니었다. 무슨 연예 진행비가 필요하다면서 돈을 요구했다. 자신이 나중에 연출 진행비를 받게 되니 그때 돌려주겠다고 말했다. 그때 당시에는 더 잃을 것도 없다고 생각해서 처음에 3000만원을 빌려줬다. 다 해서 한 5000만원 정도 뜯겼다. 나 뿐만이 아니라 당한 사람들이 꽤 있었다. 결과적으로 그 사람은 법정 구속되었다. 그러나 알다시피 그 돈은 결국 잃게 되었다.

 

이렇게 큰일을 당하고 비야씨는 조금 현타가 왔던 것 같다. “내가 무슨 배우냐”라는 생각이 들어 다시 복학해서 통합예술치료 공부에 전념했다. 꼭 이게 아니더라도 비야씨는 “지금은 공부를 해야 할 때”라고 느꼈다고 말했다. 그러다가 우연히 2021년 하반기에 당시 안철수 후보의 선대위원장을 맡았고 그 과정에서 ‘통합예술치료’ 쪽으로 가야겠다는 생각이 확고해졌다. 비야씨의 정치 도전기는 2편에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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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욱

안녕하세요. 평범한미디어 윤동욱 기자입니다. 권력을 바라보는 냉철함과 사회적 약자들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을 유지하겠습니다. 더불어 일상 속 불편함을 탐구하는 자세도 놓지치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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