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1월부터 평범한미디어에 연재되고 있는 [이내훈의 아웃사이더] 18번째 칼럼입니다. 이내훈씨는 프리랜서 만화가이자 배달 라이더로 활동하고 있으며, 주로 비양당 제3지대 정당에서 정치 경험을 쌓은 민생당 소속 정당인입니다.
[평범한미디어 이내훈 칼럼니스트] 1972년 워터게이트 호텔 최하층에 침입 흔적이 있다는 사실을 경비원이 알게 됐다. 경비원은 경찰에 신고했고 그렇게 닉슨 행정부의 불법 도청 사실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닉슨 대통령은 탄핵 위기에 몰렸고 미국 역대 대통령 중 유일무이한 중도 사퇴 불명예를 안게 됐다. 워터게이트 사건이 알려지고 여론이 움직인 데는 워싱턴포스트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
닉슨 행정부는 워터게이트 사건을 덮기 위해 꼼꼼하게 노력했는데 CIA를 움직이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러나 워싱턴포스트는 워터게이트 사건을 대대적으로 보도했고 그 중심에는 신참기자 칼 번스타인과 밥 우드워드가 있었다. 1972년 대선이 닉슨의 압도적인 승리로 끝났음에도 칼 번스타인과 밥 우드워드는 워터게이트 취재를 계속했고, 담당 판사 존 시리카, 특별검사 아치볼드 콕스도 맡은 바 임무에 충실했다. 닉슨은 사건을 덮기 위해 콕스 검사 해임을 법무장관 리처드슨에 지시했으나, 리처드슨은 거부하고 사퇴했다. 이어 권한대행인 법무차관 윌리엄 러켈스하우스도 사퇴를 감행했다. 결국 후임인 로버트 보크가 콕스 특검을 해체했으나 워싱턴포스트가 이를 두고 “토요일 밤의 대학살”로 보도하면서 탄핵 찬성 여론이 반대를 앞서게 되면서 닉슨은 권좌에서 내려올 수밖에 없었다.
대한민국에도 비슷한 사건이 있었다. 일명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뒤에 숨어 국정을 농단했던 비선 실세 최순실씨의 존재가 드러나는 데는 언론의 역할이 컸다. 2016년 당시 JTBC를 중심으로 최순실과 K스포츠 재단 등 국정 전반에 대해 박 전 대통령이 아닌 최순실이라는 인물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대대적으로 보도되자 전국민적인 분노가 일었다. 박 전 대통령은 닉슨처럼 탄핵 이전에 사퇴하지 않아서 결국 탄핵을 당하고 말았다. 소위 국정농단 정국에서도 언론의 역할은 결정적이었다.
언론 예찬론을 펼치려는 것이 아니다. 한국의 언론 지형은 8년 전과 많이 달라졌다. 역사적으로 한국 언론은 그 시작이 이익 창출과 권력 옹호가 목적이었다. 권위주의 정치체제가 민주주의 체제로 변화했고 그 사이 언론 지형도 많이 변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노무현 전 대통령과 달리 검찰이 권력에 순응하는 전통적인 입장을 견지하길 원했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을 임명해준 대통령의 최측근 인사에 대해 성역 없는 수사를 강행했기 때문에 탄압 받을 운명에 처했다. 언론은 문 전 대통령과 윤 전 총장의 대립 관계를 대대적으로 보도했는데 무려 6개월 넘게 이어졌다. 그 당시 더불어민주당과 추미애 전 법무부장관 그리고 언론이 윤 전 총장을 대권 주자로 키워준 셈인데 윤 전 총장이 과연 차기 대통령으로서 국정 전반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있는지 여부는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국민의힘은 마침 마땅한 대선 후보가 없었고 윤 전 총장은 세력이 필요했다. 대통령을 뽑은 것은 국민이었지만, 양자택일의 밥상에 준비 안 된 인물을 옹립한 것은 정치권과 언론이었다. 정치권은 원래 나라의 미래와 국민의 삶에는 관심이 없고 오직 자기 생존만 모색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언론이라도 정치권의 행태를 견제했어야 했다. 윤 전 총장이 대통령직을 차지하게 됐을 때 발생하게 될 총체적인 문제점을 낱낱이 보도했어야 했다.
조국혁신당도 마찬가지다. 조국혁신당의 높은 지지율은 여러 요인들이 있겠지만 윤석열 대통령 및 한동훈 비대위원장(국민의힘 총괄선대위원장)과의 대립 구도를 언론이 집중적으로 조명했던 배경이 상당한 영향으로 작용했음이 분명하다. 특히 민주당에 우호적인 언론들은 조국 전 법무부장관이 정치적 탄압을 받았음에도 다시 일어난 영웅 서사처럼 묘사했다. 물론 정치적 탄압이 없었다곤 할 수 없다. 그런데 원칙에 대한 이야기는 네거티브로 치부되었다. 사람들이 아무리 듣고 싶은 말만 골라서 듣는다 한들 그 과정에는 언론의 영향이 작지 않다.
언론이 이윤을 추구하지 말라고 할 수는 없다. 이것은 신문의 시작이 본래 인쇄업자가 상품에 끼워 팔던 전단지에서 출발한 사실로 미루어 볼 때도 그렇다. 현대 민주주의에서 언론은 이미 정치의 주요 주체다. 정치는 언론의 힘을 빌리지 않고서는 일을 할 수 없다. 때문에 언론은 이전보다 더욱더 무거운 사회적 책임을 요구받아야 한다. 한국 언론들은 크든 작든 모두 대기업 또는 정치세력과 관계를 맺고 있다. 그래서 거의 예외 없이 가까운 세력에 불리한 방향으로는 결코 보도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러한 양상이 심화되고, 사실관계에 대한 해석 책임이 결여되면 정치 훌리건 현상이 가속화될 수밖에 없다. 권한에는 책임이 뒤따른다. 언론이 위상과 역할에 맞는 역할과 책임을 진지하게 수행하고 있는지 고민해야 할 때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 국민들은 또 다시 이상한 정치 세력을 만나 더욱더 먼 길을 돌아갈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