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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맹자니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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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1월부터 평범한미디어에 연재되고 있는 [이내훈의 아웃사이더] 20번째 칼럼입니다. 이내훈씨는 프리랜서 만화가이자 배달 라이더로 활동하고 있으며, 주로 비양당 제3지대 정당에서 정치 경험을 쌓은 민생당 소속 정당인입니다.

 

[평범한미디어 이내훈 칼럼니스트] 대한민국은 광복 이후 혼란의 시기를 거쳐 미국 주도의 유엔에 의해 민주주의 정치 시스템을 도입했고, 국민이 피를 흘려 대통령 직선제를 쟁취했다. 그런데 조선시대 500년이 너무나 길었는지 성리학적 왕정 통치의 후유증을 아직도 앓고 있는 것만 같다. 다들 제왕적 대통령제와 거대 양당의 의회 독식에 대한 거부감은커녕 너무나 당연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조선 성리학의 뿌리를 쫓아가면 중국 춘추전국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최근에는 여러 이유들로 젊은층에서 중국에 대해 반감이 있지만, 역사적으로 우리나라는 중국의 사상을 흡수 및 변용해오면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조선의 왕들은 중국 역사서 자치통감을 교과서 삼아 제왕학을 수련했다. 개항 이전에는 중국이 글로벌 패권국이기도 했다.

 

춘추전국시대 중국에서는 여러 철인들이 전란의 종식을 고민하며 수많은 정치 사상들을 탄생시켰는데 대표적으로는 유가, 묵가, 도가, 법가 등이 있다. 성리학의 모태는 공자가 창시하고 맹자가 구체화한 유가에 있다. 유가의 핵심은 군군신신 부부자자(君君臣臣 父父子子)인데 군주와 신하와 아비와 아들이 각자의 신분과 역할에 충실해야 나라가 바로 서고 풍요로울 수 있다는 뜻이다. 왕은 왕다워야 하고, 신하는 신하다워야 하고, 아버지는 아버지다워야 하고, 자식은 자식다워야 한다는 것이다. 현대적으로 딱딱하게 받아들이면 직업선택의 자유를 침해할 소지가 있지만 각자가 욕심을 부리지 않고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에 큰 가치를 뒀다고 볼 수 있다. 공자가 신분의 이동에 대해 부정적이었던 데 반해 맹자는 달랐다. 공자의 가르침을 적극적으로 해석하고 받아들였던 맹자는 유가 철학을 한 단계 더 발전시켰다. 왕이 제 역할을 하지 못 하면 그 자체로 왕이 아니며, 왕은 백성을 두려워해야 한다고 설파했던 사상가가 바로 맹자다. 왕도 정치의 진수가 담긴 <맹자>에 나온 일화를 살펴보자.

 

맹자가 양혜왕에게 “사람을 죽이는 데 몽둥이로 죽이는 것과 칼로 죽이는 것이 다른 것이 있냐”고 묻자 양혜왕이 “다른 것이 없다”고 답한다. 그러자 맹자가 다시 “칼로 죽이는 것과 정치로 죽이는 것이 다를 것이 있느냐”고 묻자 양혜왕은 “다를 것이 없다”고 답한다. 이에 맹자는 “왕의 주방에는 살찐 고기가 있고 마구간에는 살찐 말이 있는데 백성들은 굶주린 기색이 있고 들에는 굶어 죽은 시체가 있으니 이것은 짐승을 몰아서 사람을 잡아먹게 하는 것과 같다”고 응수한다. 그러면서 “백성의 부모인 왕으로서 정치를 하면서 짐승을 몰아 사람을 잡아먹게 한다면 백성의 부모다움을 어디에 있는 것이냐”며 양혜왕을 몰아붙였다. 양혜왕은 도리어 맹자에게 “탕왕은 걸왕을 내쫒았고 무왕은 주왕을 정벌했다고 하는데 신하가 임금을 시해하는 것이 옳은가?”라고 물었는데, 맹자는 망설임 없이 “남을 해치고 잔인하게 구는 자를 처형했다는 말은 들었어도 군주를 시해했다는 말은 듣지 못 했다”며 논쟁의 화룡점정을 찍었다.

 

맹자는 왕답지 않은 왕에 대해서는 언제든 교체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바로 고전적 저항권의 의미를 담고 있는 역성혁명론이다.

 

맹자의 사상은 당대에 외면받았다. 왕도정치보다 법가적 패도정치가 주류였던 시대였다. 하지만 이내 통일왕조가 등장하고 관료제가 정착하면서 맹자를 위시한 유가는 정치 권력의 주류 사상으로 부상하게 된다. 급진적이었던 맹자의 유가 사상은 어느 순간 중국 영토에서 주류가 되었고 한반도에 전파될 즈음엔 역작용도 만만치 않았다. 자기 권력욕을 실현하기 위해 기존 권력자를 바꿔치우는 데까지만 맹자의 역성혁명론을 이용하는 것이다. 조선은 유학의 갈래인 성리학을 통치의 근간으로 삼았으며 따라서 우리나라는 불과 100여년 전까지만 해도 성리학을 바탕으로 한 왕도정치 사상으로 다스려지는 나라였다. 아무래도 현대 민주주의 시스템이 도입된 이후에도 군군신신 부부자자가 국민들의 집단적 멘탈리티로 자리잡고 있을 수밖에 없다.

 

원래 인류사에서 정치 권력의 교체기는 수 백년에 걸쳐 이뤄지곤 하는데, 현대 민주주의 국가는 교체 주기가 너무나 빠르게 이뤄진다. 정반대의 성격을 가진 정치 세력들이 너무 짧은 시간 안에 집권하고, 실각하는 사이클을 반복한다. 우리나라도 불과 5~10년만에 정권이 바뀌는 현상이 반복되고 있는데 정치인들의 노력 부족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국민 선택의 한계 지점 또한 존재한다. 매 선거 때마다 시대정신과 비전은 온데간데 없고 “정권 교체”로 점철되는 현상은 좋은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려스럽다. 한국 정치사에서 정권을 얻은 세력과, 의회 다수를 차지한 세력은 정치적으로 생산적인 결과물을 내놓았던 적이 있는가? 통상 집권 세력은 잘할 궁리를 하지 않고 이전 정권 탓을 하며 반사이익을 보려고만 한다. 윤석열 정부 이후의 정부들은 과연 윤석열 정부 지우기에 골몰하지 않고 긍정적인 방향으로 국정 운영을 할 수 있을까? 지금으로선 요원하다. 국민의 선택이 최선이라지만 반드시 그렇진 않을 수도 있다. 정권 심판과 정권 교체 여론에 따라 응징 투표를 하는 것만으로는 한국 사회를 앞으로 끌고 나가기 어렵다.

 

그저 응징 여론에 따른 투표 참여로는 부족하다. 한국 정치가 끝없는 부침의 국면에서 벗어나려면 국민들이 직접 참여해야 한다. 정치인들은 내세우는 말과 달리 개인의 안위를 최우선으로 생각하며 정치 활동을 이어가기 마련이다. 거대 양당이 추천한 정치인들의 도덕성은 갈수록 하향평준화되고 있다. 언론과 유튜브를 통해 취득한 정보들로 투표를 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결국 정치적 혐오팔이에서 벗어나 반발짝이라도 나아가려면 정당으로 직접 들어가서 활동해야 한다. 더 이상 함량 미달의 정치인들이 특수관계 또는 단편적 이슈에 편승해 거대 정당의 추천을 받고 국민을 대의하게 되는 오류를 방치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국민들이 정당 정치에 더 많이 참여하고, 내가 어느 정당 당원이라는 사실을 당당하게 밝히고, 상호 존중하며 이견을 드러내어 토론할 수 있는 공동체적 분위기가 조성됐으면 한다. 무의미한 싸움과 소모적인 정쟁으로 상대 정당을 악마화하게 되는 수동적인 유권자로 남지 말고, 직접 당원이 되어 내부 속사정을 알고 깊게 사고해보는 훈련이 필요하다.

 

이것이 바로 포스트 맹자니즘이다. 정치인들의 선동으로 상대 정당을 악마화하고 갈아치우는 것에 부역하지 말고, 직접 참여해서 정치인들이 정치인다운 모습을 갖출 수 있도록 문화와 기반을 조성해야 한다. 국민들이여 정당 활동을 시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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