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편한 하루] 칼럼 시리즈 24번째 기사입니다.
[평범한미디어 →대담: 윤동욱·박효영 기자 / 기사 작성: 박효영 기자] 대한민국에서 알아주는 명문대 연세대 대학생들이 교내 캠퍼스에서 집회시위를 한 청소 노동자들(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소속)을 고소했다. 윤동욱 기자는 “이들은 헛똑똑이”라고 일침을 가했다. 지난 2024년 여름 이 문제를 다뤘다. ‘불편한 하루’ 대담 특성상 윤 기자가 시의성이 없더라도 할 말은 해야 하는 사이다 이슈가 머릿 속을 떠나지 않으면 꼭 끄집어내서 한 마디라도 해야 한다.
사건 개요는 이런 거다. 2022년 3월부터 5개월간 서울 서대문구 신촌에 있는 연세대 캠퍼스 학생회관 앞에서 대학 청소 노동자들은 집회시위를 열었다. 점심시간을 쪼개서 약 40분 동안 시급 440원 인상, 인력 확충, 샤워실 설치 등을 요구했다. 그런데 연대생 3명은 집회 소음으로 자신들의 수업권이 침해당했다며 수업료는 물론 정신적 손해배상을 해달라고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손해배상액은 640만원 가량이었다. 이들은 경찰에 집시법 위반 혐의로 형사고소를 하기도 했다. 공동체에서 함께 살아가는 최소한의 배려와 방법도 모르는 어이없는 소식이었다. 윤 기자는 “지들 학교의 청결을 유지해주는 청소 노동자들이 저임금에 샤워실도 없이 과로에 시달리든 말든 1시간 정도 소음이 나서 수업에 방해되니 손해배상을 해달라는 것”이라며 “이렇게 지들 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경우가 어딨나”라고 규탄했다.
헛똑똑이라는 말은 좀 정정하고 싶다. 헛똑똑이는 아니고 똑똑한 청년들이 맞다. 수능 잘 보고 내신 관리 잘 해서 연세대까지 갔으니까 똑똑한 건 맞는데 이기적이며 사려와 통찰력이 부족하다고 정정하고 싶다. 그냥 존나 이기적이다. 이렇게 정리할 수 있겠다. 똑똑한 게 올바른 방향으로 안 쓰이고 자기 이익에만 쓰였으니까 헛똑똑이라고 불렀는데 (사실 헛똑똑이는 <거침없이 하이킥>에서 민호가 간단한 집안일도 해결하지 못 해서 박해미로부터 질책을 받을 때와 같은 상황에 어울리는 표현이므로) 자기 이익에 부합하는 차원에서는 똑똑한 것이 맞았다. (by 윤동욱 기자)

소송 결과가 나왔다. 서대문경찰서는 2022년 12월 집시법 위반 관련해서 청소 노동자들에게 검찰 불송치 결정을 내렸다. 즉 혐의가 없다고 봤다. 서울서부지검은 서대문경찰서에 보완 수사를 지휘했지만, 서대문경찰서는 더 들여다봐도 결론을 바꿀 여지가 없다고 보고 무혐의 결정을 유지했다. 2024년 2월6일 서울서부지법(민사36단독 주한길 판사) 역시 연대생 3인에게 원고 패소 선고를 했다. 3인은 법원 결정에 따라 소송 비용을 전액 부담하게 됐다.
박효영 기자: 그런데 연대 동문들이 많이 쪽팔려 하는 것 같더라. |
윤동욱 기자: 그렇다. 연대가 한국 최고의 명문대 중 하나인데 그런 명예에 흠집이 간다는 느낌이 드니까. 그 3명이 어그로를 많이 끌어가지고. |
박효영 기자: 근데 이런 지점을 생각해봐야 한다. 입시위주 학벌사회 대한민국에서 연대나 고대쯤 되는 대학에 입학하는 방법이 타인과 연대하고 공존의 가치를 모색하는 그런 것인가? 그런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사람들이 갈 수 있는 게 아니라 주입식 시험 공부를 잘하고 성적으로 타인을 이길 수 있고 경쟁력을 증명한 사람이 명문대에 간다. 남을 밟고 이겨본 사람들이 간다. 물론 남을 짓밟았다고 표현하면 좀 과하겠지만 남보다 더 경쟁에서 이겨야 올라가는 것이다. 그 친구들이 그렇게 했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 교육체제가 그렇게 설계돼 있다. 요즘 청소년들은 10년 넘게 그런 경쟁 시스템에서 성장했고 체화가 돼 있다. 의대 준비반이나 7세 고시도 그런 맥락이다. 그래서 이상한 ‘공정 담론’ 있지 않은가. 능력주의적인 관점에 따라서 그 어떤 사회적 약자를 위한 배려나 조치를 거부하는 논리. 아니면 사회적 약자들에 대해 시험 못 봤으니 그런 취급을 받는 것이 당연하다는 논리. 구조적 불평등에 대해서는 코딱지 만큼도 관심이 없는 태도. |
윤동욱 기자: 우리나라는 유교 국가였는데 옛날에 선비들 보면 공부만 잘하는 게 아니라 뭔가 항상 바른 소리하고 약자들을 돌봐야 될 것 같고. 그런 게 있었다. 약간 선비 정신이나 그런 게 있는데 근데 요즘 명문대생한테 그런 걸 전혀 기대할 수가 없다. |
박효영 기자: 당연하다. 그 친구들이 사회적 책임이나 사회적 가치에 대한 의식이 있느냐? 어쩌다 그런 인식을 가질 수도 있겠지만 그 여부는 명문대랑 아무 상관이 없다. 그러니까 명문대가 아닌 지방대라도 아니면 고졸 출신이 오히려 더 정의로울 수 있고 공동체를 생각하는 사람일 수도 있다. 명문대일수록 오히려 더 이기심이 더 부추겨진 사람이 될 가능성이 높은 것이 요즘 시대다. 어쨌든 이러한 경쟁과 능력주의 문제 및 공정 담론을 사회학자 오찬호 작가가 이미 2012년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라는 책을 통해 정리를 해놨다. 경쟁에 따른 이기심이 본격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한지 매우 오래됐다. |
윤 기자가 초반에 말했던 헛똑똑이 문제와 명문대 명예 흠집 부분은 어찌보면 맞지 않는 논리라고 할 수 있다. 치열한 입시 경쟁에서 성과를 내서 연세대에 갔기 때문에 누리는 것이 인지상정이고 일정 정도의 우월감을 드러내는 것은 어찌보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한국 사회의 현실이 그렇다. 윤 기자도 “1980~90년대만 하더라도 막 대학생들이 독재 정권 하에서 운동권으로 활동했는데 그때는 지성인이라면 불의에 맞서싸울줄 알고 약자를 보호하고 이런 삶이 좋은 삶으로 여겨졌다”며 “그래서 대학생에 관하여 그런 환상이 있는 것 같았는데 형 말 듣고 보니 이제는 그런 것도 완전히 없어진 듯 하다”고 호응했다.
박효영 기자: 그러니까 1980년대에 대학에 간 우리 선배 세대들은 가난하든 상류층이었든 어쨌든 엘리트 계층이잖아. 그런 사람들의 지적 유희의 느낌도 있다. 요즘에는 뭐 대진연 같은 극소수 NL 조직이나 학생회 활동 외에는 사회적 가치를 향유하며 그걸 자랑스럽게 여기는 대학 활동은 매우 드물다. 그래서 명문대일수록 더욱더 이기적이거나 보상 심리가 강할 가능성이 높다. 대한민국 교육 체제상 그렇다. 무슨 스웨덴 기후위기 운동가 그레타 툰베리와 같은 인물이 명문대에 가는 게 아니다. |
윤동욱 기자: 나도 명문대생의 헛똑똑이로 본 게 그런 사회 엘리트 계층에 대한 노블리스 오블리제 차원으로 전제를 했던 것 같다. |
박효영 기자: 그 말 자체가 웃긴 게 그러니까 노블리스 오블리제. 노블리스든 서민이든 누구나 다 평등하고 헌법적으로 보장된 최소한의 그런 복지를 누리고 인간다운 삶을 누리고 행복추구권을 누릴 수 있는 게 필요한데. 그 말은 노블리스가 있다는 거잖아. 노블리스가 있고 누구는 비천한 사람이 있다는 거잖아. 근데 그거 자체가 그냥 불평등을 인정하는 것 아닌가. 노블리스가 있다는 것 자체가 내가 잘 나가는 명문가 집안이니까 도덕적으로 기부할게. 노블리스 오블리제라는 말 자체가 이미 불평등한 거야. 전근대적인 인식일 수도 있다. 근데 현실적으로 존재하긴 한다. 이재용의 아들이랑 우리가 동등하다고 생각하지 않듯이.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격차는 발생한다. 그래서 그런 성과의 격차, 부의 격차에 따른 차별적인 인식을 우리가 어디까지 용인해야 하느냐의 문제다. |
윤동욱 기자: 듣고 보니 그런데 사실 헌법에서 보장하는 노동 3권에 따라 청소 노동자들이 열악한 처우 개선을 위해 목소리를 낼 수 있다. 근데 연대생 3인과 일부 대학생들은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직장 얻으면 될 거 아니야? 이런 마인드를 갖고 있는 것 같다. 딱 그 논리다. 좀 심하게 적나라하게 말해보면 당신들이 좋은 대학 못 갔으니 하찮은 데서 청소 노동이나 하고 있는 거고. 열악한 처우에 있는 건데 그걸 못 받아들이고 왜 집회시위를 해서 우리 공부를 방해하냐? 할려면 시끄럽지 않게 해라. 뭐 이건데 집회시위로 요구를 하는데 조용히 하는 게 말이 되나? 어쨌든 감히 명문대생이 수업 듣고 공부하는데 미천한 노동자들이 감히 시끄럽게 해서 방해해? 이런 건방진 선민의식 같은 게 분명 깔려 있을 것이다. |
물론 소음 문제는 중대한 문제다. 아파트 층간 소음으로 살인까지 발생하기도 한다. 그러나 대학교는 명백히 공공재적 성격을 갖고 있다. 아무리 사립대라고 해도 전체 운영비의 절반 가량 국가로부터 엄청난 공적 지원을 받는다. 그런 만큼 연세대 내부에서 발생하는 노동권 침해 문제에 대해 공적으로 관심을 갖고 고민해볼 필요도 있다. 청소 노동자들의 처우 개선을 위해 함께 목소리를 내주는 연대생들도 있다.
관련해서 나임윤경 교수(연세대 문화인류학과)는 청소 노동자를 고소한 대학생들의 문제를 직접적으로 다루는 강의 <사회 문제와 공정>을 개설했다. 강의에서 학생들의 실제 의견을 바탕으로 <공정 감각>이라는 책도 출간했다.
호텔에 투숙했는데 옆방이 시끄럽다고 가정해보면 우리는 어디에 불만을 토로하지요? 직접 노크를 하고 ‘좀 조용히 해주세요’라고 하나요? 아니죠. 호텔 매니저에게 전화하죠. 호텔 숙박료에는 고객의 쾌적하고 안락한 시간을 보장해주는 비용도 포함이 된 거니까. 학생들의 수업권, 매우 중요하죠. 근데 만약 그 중요한 수업권이 침해됐다면 그 요구사항은 누구에게 전달되어야 할까요? 학교 총장이나 해당 관련 부서 쪽에 전달해야 하는 게 맞지 않을까요? 자기의 권리를 누구에게, 어떻게 행사해야 하는지 모르기 때문에 나온 행동이라고 보는 거죠.
요즘은 과외 아르바이트도 시급으로 준다고 해요. 일한 시간에 대해서만 보상하겠다는 일견 합리적인 계산에서 나온 행위죠. 근데 월급과 시급은 뭐가 다를까요? 월급 안에는 과외 시간에 늦으면 택시를 탈 수도 있는 교통비, 수업을 미리 준비하는 시간에 사 먹을 수 있는 간식비, 아이들과 간혹 이런저런 고민 상담에 따른 비용도 넓은 의미에서 포함된 개념입니다. 노동자로 치면 복지에 가까운 건데 이게 효율적이지 않다고 본 거죠. 시급을 주는 사람 입장에선 공부 말고 딴짓을 왜 해? 과외 자리는 없고 할 사람 많다. 싫으면 안 하면 될 거 아니냐라고 반문해요. 기업과 정부에만 경쟁과 효율을 극대화하는 신자유주의가 있는 게 아니죠. 이젠 민간이나 개인 차원에도 그 신념이 넓게 펴진 겁니다. 우리 사회가 구조적으로 이 정도까지 온 거예요. 대학생들마저 점점 이 구조를 못 보는 구조맹(構造盲)이 되고 있어 안타깝습니다. 일부 학생들은 청소 노동자에게 이렇게 말해요. 그렇게 월급이 적으면 데모할 게 아니라 다른 일 하면 되지 않나? 누가 청소 일하라고 등 떠밀었나? (by 나임윤경 교수)

그냥 캠퍼스를 지나가다가 아 뭐야! 시끄럽네. 그러고 지나가는 것은 일반적으로 그럴 수 있다. 차라리 양반이다. 그런데 굳이 저 노동자들 족쳐야겠다는 의지를 품고 고소하고 손해배상 소송까지 걸어서 악의를 내비칠 필요가 있을까 싶다.
전국에 있는 국민들이 이 소식을 기사로 접했을 때 요즘 대학생들 말세네 말세야. 이런 반응을 보일지. 아니면 시끄럽게 하면 안 되지. 이렇게 반응할지 궁금하긴 한데 체감상 전자쪽이었던 것 같다. 적어도 대학생들이 구조적으로 안타까운 시스템을 겪어온 만큼 안쓰럽긴 하지만 그래도 이타적이고 사회 공동체를 고민하는 최소한의 양심이 있길 바라는 마음이 있다. 사회적인 요구를 하는 사람들에게 시끄럽다면서 족치려고 고소하는 데까지는 나아가지 말았으면 좋겠다. 집회시위나 노동자들의 파업으로 인한 시민들의 불편 문제는 항상 토론거리가 될 수 있고 양태나 정도에 따라 정당성 시비가 일기 마련이다. 하지만 우리한테 좀 피해주니까 바로 고소! 이렇게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by 윤동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