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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전 드라마 <용의 눈물> 들어본 적 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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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한 하루] 칼럼 시리즈 23번째 기사입니다.

 

 

[평범한미디어 →대담: 윤동욱·박효영 기자 / 기사 작성: 박효영 기자] 조선시대 500년 역사가 시작되기 직전 고려 말 조선 초기의 역사를 ‘여말선초’라고 한다. 이 시기는 기존 질서가 무너지고 새로운 왕조가 기틀을 잡는 혼란스럽기 그지 없는 시대다. 그래서 역사적으로 흥미롭다. 여말선초를 다룬 드라마와 영화가 아주 많은데 단연 최고봉으로 평가 받는 것이 KBS <용의 눈물>이다. 1996년 11월24일부터 1998년 5월31일까지 159부작으로 방영됐는데 역사덕후 윤동욱 기자는 “그나마 최근 고려거란전쟁이 나왔지만 옛날에 비해 사극의 비중이 확 줄었다. 돈이 많이 들고 시청률도 보장되지 않는다”며 “사극의 특성상 PPL을 넣을 수가 없다. 그래서 퓨전 사극이 그나마 나오고 있는데 용의 눈물처럼 명품 사극이라면 게임이 된다”고 말했다.

 

그런 것도 있다. 뭐냐면 사극이라는 건 고증에 신경을 써야 한다. 고증에 신경을 못 쓰면 논란이 생긴다. 그런 위험성도 있다. 역사 고증을 잘 하면서도 창작의 영역이 들어가야 한다. 그러니까 역사의 줄기를 다루는 대하 사극은 거의 만들어지지 않고 있다. (by 윤동욱 기자)

 

 

<용의 눈물>의 주연 배우는 故 김무생 배우(이성계), 유동근 배우(이방원), 최명길 배우(원경왕후) 등이다. 모두 인생 연기를 보여줬다. 30년 전임에도 160억원의 제작비가 투입됐고, 출연진만 7950명, 엑스트라만 5만명에 달했다. 유동근 배우는 사극의 달인 답게 그때는 이방원 역할을 맡았지만 <정도전>에서는 이성계 역할을 맡았다.

 

사극의 왕은 사실 최수종 배우이고 유동근 배우 역시 어마어마하다. 어쨌든 조선시대가 이제 우리가 대한민국 직전의 국가 형태라고 봐도 무방하다. 고종의 대한제국은 약간 갑신정변 같은 느낌이고, 임시정부 역시 제대로 된 통치권을 갖고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 조선이라는 나라가 500년이나 이어졌는데 그 조선의 시초가 무척 흥미로워서 극화가 많이 되는 것 같다. <용의 눈물>은 30년 전 작품임에도 대한민국 전체 블록버스터 사극 역사로 봐도 효시라고 할 수 있다. 그냥 역대급 역사 드라마다. (by 박효영 기자)

 

윤 기자는 “이런 드라마야말로 말 그대로 대하 드라마”라며 한국 사극의 고트라는 점에 동의했다. <용의 눈물>은 고려의 장군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하기 직전의 상황과, 건국 직후의 혼란기를 다뤘는데 윤 기자는 “이성계의 자녀들은 서로 죽고 죽이는 콩가루 집안”이었다면서 “사실 원래 이성계는 이방원을 되게 이뻐했다. 왜냐면 이방원이 군인 집안에서 거의 유일하게 과거 급제를 한 그런 아들이기 때문”이라고 운을 뗐다.

 

이방원은 권력 중심적이고 아버지가 국가를 완성하는 데 적극적으로 협조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정도전은 이제 건국 전략을 짜고 어떤 플랜을 세우고 판을 그리는 인물이라면, 이방원은 (이성계가) 권력을 쥐는 과정에서 피를 묻히는 역할도 마다하지 않았다. 특히 이방원은 차기 구도에 욕심이 지대했기 때문에 자기가 세자를 해야겠으니까 다른 세자 후보들을 다 제거하는 데 진심이었다. 어쨌든 자기가 아버지 도와서 그렇게 조선을 세우고 다 했는데 당연히 차기 왕위를 거머쥐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다른 어린 동생이 세자가 되려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이러니까 이방원 입장에선 개빡이 돈다. (by 윤동욱 기자)

 

결국 이방원발 피바람이 불었다. 결국 왕권을 차지했지만 손에 피를 너무 많이 묻혔다. 이렇게 이성계와 이방원을 중심으로 조선 건국과 초기 권력 구도가 형성됐으며, 정도전은 조선의 브레인으로 국가의 기틀을 잡았다. 중간에 2대 국왕 정종의 짧은 즉위 기간이 있었지만, 3대 국왕이 된 태종 이방원이 1400년부터 1418년까지 20여년간 조선의 색채를 채워갔고, 4대 국왕 세종과 7대 국왕 세조를 지나면서 조선의 정체성이 자리잡았다. 윤 기자는 “이방원이 눈이 뒤집혀서 대대적으로 숙청 작업을 할 때 이성계는 골머리를 썩었을 것이고 부자 갈등이 극에 달했다”며 “근데 그 이방원 역시 장남 양녕대군 때문에 고생을 많이 했다”고 말했다.

 

윤동욱 기자: 양녕대군은 술 먹고 놀기 바빴다. 심지어 아버지 이방원이 좋아하는 기생도 건드렸다. 물론 양녕대군이 일부러 당시 충녕대군 그러니까 나중에 세종이 되는 충녕대군을 일부러 밀어주려고 그냥 막 방탕하게 살았다는 설도 있다. 왜냐면 이제 그 세자 자리를 이제 충녕한테 내어줄 명분이 있어야 되니까. 근데 나는 그냥 양녕이 놀고 즐기고 싶었던 것 같다. 다행히도 충녕은 이미 성군이 될 싹을 보였다. 남다르고 총명했다.
박효영 기자: 근데 이제 왕권 욕심을 안 부리고 왕족으로만 살면서 노는 거 좋아하는 인물은 차라리 백성들한테 피해를 덜 준다. 반면 무능한 놈이 왕권 욕심을 갖고 왕위를 차지하면서도 노는 거 좋아하고 여색에 빠져 있으면서 폭군이 되면 그것 만큼 최악이 없다. 중국의 주지육림만 봐도 무능한데 놀고 먹는 것에만 빠져 있는 왕의 패악을 알 수 있다.
윤동욱 기자: 왕이 되면 자기가 정사를 돌봐야 될 거 아닌가. 근데 왕이 돼 갖고 정사를 안 돌보고 맨날 여자 끼고 술 먹고 놀면 나라가 어떻게 되겠는가? 당연히 안 되는 거고 그게 바로 폭거다.

 

어쨌든 <용의 눈물>에서는 위에서 거론한 건국 초기 조선의 혼란, 수많은 쿠데타 시도와 숙청 과정, 이성계 집안의 비극, 이방원과 양녕대군의 갈등 등이 다뤄진다. 세종의 비중은 거의 없다. 드라마는 ‘위화도 회군’부터 시작되는데 마치 <야인시대>가 김두한의 생애를 다루면서 굵직한 역사적 사건들을 조명했듯이 <용의 눈물>도 조선 건국을 기점으로 이방원이 죽을 때까지 30년의 격동기를 다뤘다. 여담인데 <야인시대>의 슈퍼 히어로 청년 김두한역을 맡은 안재모 배우가 <용의 눈물>에서 충녕대군역을 맡았다.

 

<용의 눈물>은 당연히 이성계와 이방원이 핵심 주인공인데 극 전개가 후반부로 갈수록 이방원의 비중이 배로 커진다. 당시 시청자들의 반응도 유동근 배우의 ‘이방원 연기’가 물이 올랐던 때에 열광했다. 결과적으로는 이방원 원툴 드라마로 귀결됐다. 상상해보자. 최수종 배우 이전에 사극의 달인으로 불렸던 유동근 배우가 권력의 화신 이방원을 열연했는데 얼마나 재밌겠는가. 참고로 원작 소설이 있는데 박종화 작가의 <세종대왕>이다. <용의 눈물>을 정주행하기 전에 <세종대왕>부터 완독해보면 더 흥미로울 것 같다.

 

윤동욱 기자: 완전 레전드 드라마다. 사극 매니아들은 <용의 눈물>을 꼭 다시 보기를 한다.
박효영 기자: 안 본 사람들은 유튜브 서머리로 봐도 되고, 웨이브에 전편이 다 있다. 풀로 봐도 된다.
윤동욱 기자: 들어보니 꼭 봐야겠다 싶어서 도전해보려는 사람들은 일단 유튜브 서머리로 보는 걸 추천한다. 159부작 대하 드라마라서 요즘 컨텐츠 소비 패턴에 익숙한 사람들로서는 정주행이 좀 힘들 거다. 그래서 요약본을 먼저 보고 정말 맘을 먹게 되면 그때 정주행 해보길 바란다. 근데 그 당시에는 지금처럼 OTT나 유튜브 이런 게 발달하지도 않았고 90년대 드라마지 않은가. 그러니까 TV가 절대적이었던 때라서 무조건 본방 사수다!

 

세계사는 말할 것도 없고 한국사만 하더라도 기존의 국가가 기울고, 새로 떠오르는 세력이 국가를 건국하고 자리잡아가는 타이밍에 잔학무도한 일들이 벌어지고 혼란스러움이 가득한 경우가 한 둘이 아닐텐데 왜 유독 ‘여말선초’가 사극의 단골 소재로 쓰일 만큼 많은 관심을 받는 걸까? 당연히 재밌고 흥미로우니까 그럴 것이다. 그렇다면 고려 말 조선 초에 벌어진 역사 전개는 뭐 그리 재밌는 걸까? 드라마화가 많이 되는 이유가 있다.

 

좁게 잡으면 10년, 넓게 잡으면 100년 가량 되는 이 기간은 정치적으로 한국사 전체에 가장 많은 영향을 미치는 조선이 스타트 테이프를 잘 끊느냐의 운명이 달린 시기였다. 그러다보니 굉장히 역동적인 사건사고들이 많았으며, 동시에 굵직한 구조와 흐름은 도도하게 흘러갔고, 권문세족과 신진사대부의 통치 철학과 비전 경쟁도 치열했다. 문관과 무관 두 영역에서 치열한 세력 다툼이 있었으며, 살벌한 숙청과 방어의 과정도 굴러갔다. 과장 좀 보태면 2500년 전 제자백가의 사상가들이 활동했던 춘추전국시대 못지 않았다. 시대적으로도 중세 말에서 근대로 가는 타이밍이라 기록이 매우 풍부하고 지나칠 정도로 디테일하다. 그래서 드라마적 상상력이 개입될 요소가 많다. 한국판 춘추전국시대이니 만큼 드라마로 다루기 딱 좋다. 제작비가 너무 많이 들어가는 대규모 전쟁 장면이 없으면서도 ‘열전 못지 않은 냉전’의 치열함이 그 어느 때보다 역대급이기 때문에 역덕 작가들이 푹 빠졌을 것이다.

 

 

무엇보다 절대악이나 절대선으로만 묘사될 인물이 거의 없고 이방원처럼 대부분의 인물들이 공과 과를 선명하게 갖고 있을 만큼 입체적이다. 윤 기자는 “일단 여말선초기에 수많은 정치 세력들이 나오는데 중년 남성들이 이런 정치 세력 싸움에 과몰입하기 마련”이라며 “이런 정치 싸움을 보는 게 너무 재밌는 거야. 권력 다툼이라는 거 너무 재밌고 또 여말선초는 대규모 전쟁보다는 결국 권력 다툼이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박효영 기자: <서울의 봄> 같은 일들이 막 일어나는 거야.
윤동욱 기자: 이거는 굉장히 재밌는 건데 그러니까 전쟁 신 같은 것도 많이 없으니까 드라마 하기 좋다. 전쟁 신을 다루면은 사실 제작비가 너무 많이 든다. 예를 들면 <고려거란전쟁>이나 6.25 전쟁을 다룬 드라마나 영화들을 보면 제작비가 무지 많이 들어갔다. 물론 전쟁을 잘 풀어내기만 하면 고비용 고효과를 볼 수 있지만 실패하면 막대한 손해가 뒤따른다. 하지만 소재 자체에 재미가 보장됐으면서도 상대적으로 저비용으로 갈 수 있는 여말선초는 사극화하기 딱이다. 물론 위화도 회군도 그렇고 아예 전쟁신이 안 나오는 건 아니라서 전쟁 디테일을 가져가고 싶은 욕구도 어느정도는 충족시킬 수 있다.
박효영 기자: 기울어가는 고려를 붙들고 있는 인물들과, 조선을 세우려고 마지막 설득을 하는 인물들이 대비되어 재미가 생기기도 하는 것 같다.
윤동욱 기자: 여말선초 때는 정몽주 같이 고려를 존치하고 싶은 세력, 이성계처럼 나라를 엎으려는 세력이 구도를 형성한다. 단심가와 하여가. 여기서 뭔가 시청자들로 하여금 감정이입을 하게 한다. 고려를 무너뜨려야 되는 이성계쪽이 맞는 것 같아 보이면서도, 정몽주처럼 끝까지 충심을 지키는 것이 멋있어서 그걸 비교하는 맛이 있다.
박효영 기자: 인물들도 참 흥미롭다.
윤동욱 기자: 정도전과 이방원이 여말선초에서 뽑을 수 있는 탑2 인물이다. 이성계보다도 이 둘을 고르고 싶다. 이방원은 정치적으로 잔혹하고 정적들을 다 숙청하고 제거해 버리지만 다만 이제 이방원은 딱 자기가 필요한 숙청만 한다. 무작위로 칼을 휘두르는 게 아니라 정적만 제거한다. 일단 왕권을 차지하고 강화하기 위한 목적인데 사실 이방원은 안정적으로 국가 통치를 잘한 편이다. 자기한테 위협이 안 되는 그런 관리들이나 백성들한테도 되게 또 자유로운 편이었다. 명과 암이 너무 대비되는 매력도가 있는 것이다. 정도전도 이방원에게 숙청을 당하는데 한때는 손을 잡고 조선을 건국했다가 결국 그렇게 됐다.

 

관련해서 정수진 대중문화 칼럼니스트는 2019년에 작성한 <용의 눈물>에 대한 칼럼을 통해 “감히 단언컨대 내 기준이지만 <용의 눈물>을 넘어서는 대하사극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며 “언젠가 <용의 눈물>을 넘어서는 사극이 나오면 얼마나 짜릿할까?”라고 극찬했다. 정수진 칼럼니스트의 묘사만 읽어봐도 <용의 눈물>이 얼마나 대단한 드라마인지 알 수 있다. 

 

<용의 눈물>은 임금을 뜻하는 용(龍)의 자리에 오른 사람들, 그 용들을 보필하는 시대의 영웅들을 그리면서 임금의 자리가 얼마나 무겁고 혹독한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정치 서사극. 고려의 몰락과 조선의 건국 시기인 여말선초를 배경으로 하여 권력을 탐하고 좇다 결국 권력의 허망함까지 맛보게 한다.

 

개인적으로 <용의 눈물>의 하이라이트는 이성계와 이방원 부자의 대립과 극적인 화해라고 보지만, 연장된 이후의 이야기들도 사뭇 흥미진진하다. 남편 이방원을 적극 도와 그를 왕으로 만드는 데 일조했던 여장부 원경왕후(최명길 배우) 집안의 몰락, 아버지가 벌이는 피비린내 나는 정쟁에 환멸을 느낀 맏아들 양녕대군(이민우 배우)이 엇나가며 끝내 폐세자가 되는 과정, 권력을 쥐었으나 이내 권력에서 내쳐지는 이방원의 측근들, 조선조 최고의 성군 세종이 되는 충녕대군(안재모 배우)의 등극 등등. 故 김무생, 故 김흥기, 유동근, 최명길, 김영란과 같은 후덜덜한 배우진에 이민우, 안재모, 정태우, 이재은, 안연홍, 송윤아, 하지원 같은 젊은 배우들의 리즈 시절을 엿보는 호화로움도 <용의 눈물>을 보는 즐거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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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효영

평범한미디어를 설립한 박효영 기자입니다. 유명한 사람들과 권력자들만 뉴스에 나오는 기성 언론의 질서를 거부하고 평범한 사람들의 눈높이에서 사안을 바라보고 취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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