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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불공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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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6월부터 연재되고 있는 [불편한 하루] 칼럼 시리즈 21번째 기사입니다. 윤동욱 기자가 일상 속 불편하고 까칠한 감정이 들면 글로 풀어냈던 기획이었는데요. 2024년 3월부턴 영상 칼럼으로 전환해보려고 합니다. 윤동욱 기자와 박효영 기자가 주제를 정해서 대화를 나눈 뒤 텍스트 기사와 유튜브 영상으로 전달해드리겠습니다.

 

[평범한미디어 →대담: 윤동욱·박효영 기자 / 기사 작성: 박효영 기자] 지난 6월3일 업로드된 유튜브 채널 <짠한형 신동엽>에 가수 비 정지훈씨가 출연해서 아래와 같이 말했다.

 

저희 어머님과 아버님이 이제 어머님은 일찍 돌아 가셨지만 되게 절실하게 절박하게 사셨던 것 같아요. 때로는 여유가 있었지만 IMF라는 것을 맞이하면서 되게 가난해졌고 어머님이 일찍 돌아가시고. 그러면서 이제 제가 겪었던 이제 1년의 과정들이 초등학교를 아직 가지 못 한 그 7살짜리가 어린이집을, 가방 메고 그 먼길을 걸어갔던 기억이 나거든요. 신촌 노고산동 그 거리에서 길을 이렇게 쭉 걸어가면서 이제 제가 그때 사슴반이었는데 아주 기억이 나는데 (선생님이) 너는 엄마가 언제 오시니? 이랬는데 엄마 안 오셨는데요! 근데 왜 여기 있어? 있으라고 그래서 있었어요. (2시간 동안 있으니) 근데 왜 안가? 가라는 말이 없어서요. 가! 그런데 이게 걸어오면서 눈물을 되게 많이 흘렸던 것 같아요. 되게 울면서 걸어갔던 그 6~7살짜리가 울면서 그 길을 걸어가면서 나는 왜 엄마가 안 데리러 왔지? 다 엄마가....(데리러 오는데) 그러니까 선생님 입장에서 엄마가 데리러 오시겠지. 이제 엄마 입장에서는 당연히 한 번 왔으니까 이제 네가 알아서 왔다갔다해라. 그때는 너무 힘든 그런 상황이었어요. 세상은 불공평해요. (신동엽씨: 태어날 때 완벽하게 불공평하지) 태어날 때부터 부잣집에서 태어나는 사람. 태어날 때부터 너무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는 사람. 인생은 시작부터 불공평하다. 근데 개척해 나가는 건 자기가 할 일이죠. (by 가수 비 정지훈)

 

 

세상은 불공평하다. 자기 능력을 쌓고 노력하면 기회를 제공 받아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어떤 부모 밑에서 태어나느냐에 따라 스타트라인이 천차만별이다. 정지훈씨가 말하는 것이 능력주의 비판론은 아니지만 능력만 있으면 누구나 신분 상승의 꿈을 이룰 수 있다는 명제가 얼마나 허상인지 모르는 사람은 없다. 물론 정지훈씨는 그렇게 가난하고 힘든 환경을 극복해서 성공했다는 자부심과 스토리를 갖고 있다. 개그맨 황영진씨도 SBS <동상이몽>에 출연해 가난이 지독히 싫었다며 “가난하게 태어난 건 죄가 아니지만 가난하게 죽는 건 내 죄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동안 정지훈씨가 방송에 나와 털어놨던 스토리들의 취지(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도 그런 맥락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세상은 불공평하다”라는 문장에 방점이 찍혀 있다.

 

그러니까 가난하게 태어났지만 내가 노력하면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의 사고방식이 흔히 갖고 있는 일반론에 가깝다. 정지훈씨가 피력한 불공평한 세상에 주목해서 사회구조를 바꾸는 작업은 매우 요원하지만, 이러한 능력주의적 처세술은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개개인을 짓누른다.

 

사회과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은 이렇게 이야기한다. 아무리 노력해봤자 한계가 있다. 그리고 내가 노력해서 잘한다고 그래서 다 성공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가난하게 태어난 사람들은 결국 노력한 만큼 성과를 거두지 못 해 실의에 빠지거나 루저가 되거나 히키코모리로 살 수도 있다. 골방에 처박혀서 힘들게 살아갈 수도 있다. 이준석 의원이 강조하는 것처럼 능력주의적으로 네가 노력하면 되지라고 퉁치는 것은 문제가 있다. 그래서 너의 능력을 테스트하는 것이 공정하면 땡 아니야? 규칙이 공정하면 되잖아? 그게 다가 아니라는 것이다. (by 박효영 기자)

 

토익 시험 자체는 누구나 응시할 수 있고 공정하다. 하지만 토익 점수를 잘 맞기 위해 일타 강사에게 비싼 강의료를 내고 학원에 다닐 수 있는 부유한 청년과, 알바 3~4개 하면서 무료 인강조차 들을 여유와 시간이 없는 가난한 청년의 상황을 동률로 놓을 순 없다. 수시와 입학사정관제의 입시 경쟁에서 누군가는 스위스로 가서 승마 경험을 한 걸 기록해서 심사관에게 제출할 수도 있다. 경험과 학습의 질이 본질적으로 차원이 다르다.

 

과목별로 개인 과외를 받는 청소년과, 부모가 유치원으로 데리러 오지도 못 하는 가정환경에서 성장한 청소년이 과연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냐는 것이다. 물론 가난해도 피나게 노력해서 비처럼 될 수 있고 황영진처럼 성공해가지고 ‘당신도 할 수 있다’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대다수 가난한 사람들이 능력주의의 시스템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by 박효영 기자)

 

곰곰이 듣고 있던 박성준 센터장(다소니자립생활센터)은 “사실 능력주의가 우리한테 필요했었던 시기가 있었다”면서 “전쟁 이후 산업화 시대에는 능력주의적 가치관으로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기반이 아예 없었기 때문이다. 기반이 아예 없다는 건 뭐냐 하면 절대 다수 누구나 거의 다 가난하기 때문에 공평한 기회가 주어졌다라는 얘기다. 그때는 기회가 공평했고 누구나 시작 자체가 제로였기 때문에 비교적 공평했다. 근데 이제 어느정도 우리가 먹고 살만해졌다. 이젠 시작점이 같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니까 같은 노력을 해도 같은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부모세대에서 얘기하는 자수성가 신화 즉 우리는 너희 때보다 못 살았고 우리는 더 힘들었음에도 해냈는데 너는 왜 못해? 이런 말을 지금 20~30대한테 하면 안 통한다. 그분들의 시작점은 제로베이스에 가까웠지만 요즘 청년들의 시작점은 차이가 너무 많이 발생한 상태다. (by 박성준 센터장)

 

윤동욱 기자도 “1970~80년대는 고도성장기라서 일자리의 기회가 지금보다 훨씬 많았다”며 “내가 비록 좀 부족하게 태어났지만 노력 여부에 따라 기회를 잡을 확률이 더 컸다”고 맞장구쳤다. 박 센터장은 “죽기살기 노력까지는 안 해도 되는 것”이라고 정리했다. 그러니까 jtbc 드라마 <청춘시대> 속 윤진명(한예리 배우)처럼 대학 다니면서, 알바를 병행하면서, 취업준비까지 하느라 여유가 없는 치열함에 파묻히지 않아도 됐다. 대학 등록금과 부모님 병원비를 마련해가면서 학업을 이어가는 살인적인 환경에 놓여 있는 인물이 바로 윤진명이다. jtbc 드라마 <사랑의 이해> 속 안수영(문가영 배우)과 정종현(정가람 배우)도 마찬가지다. 문가영은 고졸 출신 비정규직 은행원으로서 누구보다 뛰어난 실적을 올려도 정규직이 되지 못 한다. 정종현은 은행 청원경찰 계약직 신분으로서 경찰공무원 준비를 하고 있지만 “내 인생은 0인줄 알았는데 0이 아니라 마이너스였다”고 토로했다. 이에 비해 누군가는 3루에서 태어나서 조금만 노력해도 많은 걸 누릴 수 있다.

 

1960년대 대학생과 1990년대 대학생은 다르다. 무슨 얘기냐면 대학을 나오면 대기업에서 모셔가던 시절과, 대학을 나와도 입사 전쟁을 해서 뚫어야 되는 시대는 다르다. 고등학교만 제대로 나와서 성적이 좋으면 은행에서 뽑았다. 근데 지금은 대학원을 나와도 은행에 떨어진다. 그거보다 더 못 한 데도 떨어진다. 그러니까 이게 학력이 인플레이션 되면서 내가 들어갈 수 있는 바늘구멍이 점점 더 좁아지는 것이다. (by 박성준 센터장)

 

 

지난 2020년 6월 인천국제공항공사에서 비정규직 2143명이 자사 정규직으로 직고용 전환이 결정되면서 소위 인국공 사태가 불거졌다. 좋은 대학 나오고 치열하게 스펙 쌓아서 거머쥐어야 할 공사 정규직 타이틀을 고작 비정규직 직원들에게 안겨준다고? 능력주의 이슈에 불을 지폈다. 공정한 경쟁에 집착하는 요즘 청년들의 마음에 뿔이 났다. 당시 정의당을 비롯 진보진영에서는 능력주의 코인에 올라타 있는 정치인 이준석을 강하게 질타하는 등 비판론을 피력하는 데 여념이 없었다.

 

인국공 사태가 능력주의 얘기를 정면으로 다루는 것인데 짚고 넘어가야 될 게 있다. 그러니까 진보적인 사람들이 능력주의를 비판하는 데 올인했는데, 지금 20~30대 플레이어에 있는 사람들 취업을 해야 되는 사람들 입장에서 보면 그냥 입사 시험이나 채용 시험 자체가 백으로 들어올 수도 있고 그 자체가 공정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보는 것이다. 마이클 샌델처럼 출생과 배경에 따라 한계가 있다는 쪽으로 능력주의를 비판하는 건 3단계고, 청년들은 학창시절 내내 경쟁을 내면화해서 취업 문제에 굉장히 예민하다. 취업 경쟁이 최소한 공정해야 한다는 것이 1~2단계다. 그러니까 2단계도 아직 클리어가 안 됐는데 무슨 3단계 얘기를 하고 있냐는 것으로 비춰질 수 있다. 가정환경에 따라서 애초에 스타트라인 자체가 공정하지 않을 수 있다는 거는 3단계 진보적인 사람들만 관심이 있고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일단 나는 취업을 해야 되는데 당장. 대학도 별로 안 좋은 데 나와가지고 기간제로 취업한 사람이 정규직 전환되면 나는 억울하다 이거다. (by 박효영 기자)

 

인국공 사태에 대해 박 센터장은 “상대적인 것”이라며 “이게 페미하고도 연결되고 공정 사태하고도 연결되고 왜 20대가 보수화되느냐 하고도 연결이 되는 건데 나는 어른들이 얘기하는 그 찢어지게 가난했던 그 시절을 기억하지 못 한다”고 운을 뗐다.

 

요즘 청년들은 기회를 충분히 받아본 적이 없다. 근데 기회를 받은 것처럼 얘기를 하니까 화가 나는 것이다. 사실 이게 압축적 경제성장의 폐해다. 그 안에서 세대 갈등도 강해지고 동서 지역 갈등, 남녀 갈등도 심화되는 것 같다. (by 박성준 센터장)

 

이번 불편한 하루에서는 능력주의의 한계로 지적되는 지점을 정지훈씨의 고백에서 찾아보는 것을 시작으로, 진보적인 사람들이 무턱대고 능력주의를 비판하는 것까지 꼬집어봤다. 적어도 “청년들을 몰상식한 사람처럼 규정하는 것”에 대해 한 마디를 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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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효영

평범한미디어를 설립한 박효영 기자입니다. 유명한 사람들과 권력자들만 뉴스에 나오는 기성 언론의 질서를 거부하고 평범한 사람들의 눈높이에서 사안을 바라보고 취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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