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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을 키운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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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미디어 윤동욱 기자] 지난해 12월8일 울산의 한 사육장에서 반달가슴곰 3마리가 갑자기 탈출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그리고 올해 3월23일에는 얼룩말이 어린이대공원에서 탈출하는 소동이 있었다. 곰 탈출 사고는 안타깝게도 2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얼룩말 탈출 사고는 단순 해프닝으로 마무리됐지만 동물과 인간의 공존에 대한 고민거리를 남겼다. 일단 동물들이 탈출하는 사고가 종종 일어나고 있는 만큼 동물 관리에 대한 주의가 어느 때 보다 필요한 시점이다. 얼룩말이 육식동물이 아니지만 온갖 자극이 많은 서울 도심에서 돌출 행동을 일으켜 예기치 못 한 인명피해가 나지 말란 법이 없다. 서울 나들이를 마치고 생포된 얼룩말 ‘세로’는 엄마와 아빠가 일찍 세상을 떠나서 방황하기 시작했다는 스토리텔링이 있었다. 

 

곰 탈출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다 세로 문제를 곁들여봤는데 사실 곰을 개인적으로 사육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 자체가 생소하다.

 

 

그날(12월8일) 울산울주소방서에 “부모님이 몇 시간째 연락 두절”이라는 신고가 접수된 시각은 21시반쯤이었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구조대원과 경찰관들은 곧이어 끔찍한 장면을 마주했다. 중노년 남녀가 피를 철철 흘리며 쓰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안타깝게도 이미 숨이 끊어져 있었다. 과다출혈로 목숨을 잃었지만 시신의 상처를 보니 맹수가 공격한 흔적이 명백했다. 아니다 다를까 이들은 사육농장을 만들어 반달가슴곰 4마리를 키우고 있었다고 한다. 암컷과 수컷 각각 2마리였는데 고인이 된 농장 부부는 2018년 7월부터 4년이나 키우고 있었다.

 

통제되지 않은 동물이 탈출해서 공격을 하면 성인 남녀를 사망에 이르게 할 정도가 되는 게 바로 곰이었던 것이다.

 

곰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사고 당시 사육장 문이 열려있었는데 안에는 곰 1마리가 있었고 밖에는 3마리가 있었다. 이 곰들은 요청을 받고 출동한 엽사에 의해 23시33분쯤 모두 살처분되었다. 그런데 앞서 말한 것처럼 농장에서 키우던 곰은 모두 4마리였다. 나머지 1마리는 어디 갔을까? 울주군은 마지막 1마리가 달아난 것으로 보고 이날 자정 긴급히 외출 자제를 요청하는 안내문자를 군민들에게 발송했다. 길을 가다 곰과 맞딱뜨리는 동화 같은 상황이 울주군민들에게 일어날 수도 있었다.

 

알고 보니 숨진 부부의 아들이 “일주일 전쯤 농장에 갔을 때 곰이 3마리 뿐이었다. 두달 전 곰 1마리가 병들어 죽었다고 아버지에게 들었다”고 경찰에 진술한 만큼 곰이 민가를 활개치고 다니는 상황은 연출되지 않았다.

 

그런데 얼핏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반달곰은 멸종위기종이다. 그나마 지리산에서 방생한 반달곰들의 개체 수가 늘었지만 여전히 아무나 키울 수 없다는 사실은 자명하다. 게다가 곰은 고양이나 강아지 같은 게 아니다. 귀여운 외모 때문에 오해를 하는데 사자나 호랑이도 함부로 맞설 수 없는 엄연한 맹수다. 베테랑 사육사가 관리해도 어려운 동물이다.

 

 

물론 숨진 부부가 사육사 출신일 수도 있다. 아무리 그래도 곰을 개인농장에서 애완동물처럼 키운다는 게 도무지 이해하기 어렵다. 역시 미등록 사육장이자 불법 사육이었다. 애초에 반달가슴곰을 기르기 위해서는 환경부에 등록을 해야 한다. 당연히 아무나 등록해줄리 만무하다. 곰을 키울 수 있는 시설이나 환경이 갖춰졌는지 철저히 따지고 목적과 사후 관리까지 고려해서 인허가를 내준다. 그래서 동물원, 동물보호소 등 어느정도 규모가 있는 시설에서나 반달곰을 사육할 수 있는 것이지 개인이 곰과 같은 맹수를 기르는 사례는 극히 드물다.

 

사실 해당 농장에서는 2021년 5월19일에도 곰 1마리가 탈출했던 적이 있었다고 한다. 다행히 이때는 곰을 포획해 다시 사육장에 넣었다. 결국 소잃고 외양간도 고치지 못 해 사람의 목숨이 희생되는 비극으로 이어졌던 것이다. 곰을 키우는 게 감당이 안 된다면 다른 시설로 보냈어야 했다.

 

곰이 탈출을 시도할 정도면 여기 사는 곰들의 스트레스는 이만저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사육장의 규모, 먹이, 기온과 습도 등등 반달곰이 쾌적하게 살기에는 부적합했던 것이다. 

 

그런데 하고 많은 동물 중에 왜 하필 위험한 곰을 키웠을까? 웅담 채취를 위해서였을까? 아무튼 불법적인 목적에 따라 곰을 키운 것으로 단정할 순 없지만 미등록 사육장에서 많은 비용을 들여서 곰을 키우려는 그 의도를 도무지 가늠할 수가 없다. 당국의 책임도 있다. 낙동강유역환경청은 이미 불법 사육이 이뤄지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했다. 그래서 반달가슴곰을 경기도 용인에 있는 원주인에게 돌려주라고 명령했고 이행 실태를 분기별로 점검했고 나아가 2020년 7월과 2021년 10월 두 차례나 고발까지 했다고 한다. 그러면 뭐 하는가? 사고는 터졌고, 사람이 죽었다.

 

 

부부는 벌금 300만원을 내는 것으로 퉁치고 계속 위험한 곰 사육을 지속했다. 국가가 강제로 몰수할 수는 없었을까? 그렇게 할 수 없었다. 이들이 키우는 곰은 사유재산으로 분류되어 국가가 몰수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딜레마이긴 했다. 그러면 앞으로라도 곰과 같은 특이 동물을 개인이 함부로 사육할 수 없도록 법적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 정말 놀라운 사실은 전국 22곳 농가에서 319마리의 곰이 사육되고 있다는 것이다. 곰은 보호시설도 마땅치 않아 불법 사육이 묵인되고 있는데 동물원에서도 곰을 쉽사리 인수하는 것이 간단치 않은 상황이다. 동물권 보장과 사람의 안전 둘 다 실현할 수 있는 법과 제도가 시급히 마련돼야 할 것 같다.

 

동물자유연대는 이번 사태에 대해 논평을 내고 아래와 같이 강조했다.

 

2021년 결국 불법적인 곰 사육을 부추겼던 용인 농장주가 구속되었다는 소식을 접하고 이제야 그의 범죄를 끝낼 기회가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법원이 그에게 내린 판결은 고작 징역 6개월에 불과했고, 석방된 후 100마리에 가까운 사육곰은 다시 용인 농장주의 소유로 돌아갔다. 문을 걸어잠근 캄캄한 농장 안에서 지금도 무슨 일이 이어지고 있을지 누구도 알 수 없다. ​ 윤석열 정부는 2022년 1월 ‘곰 사육 종식을 위한 협약식’에서 2025년까지 사육곰 산업 종식을 선언하고, 특별법 제정, 보호 시설 건립 등 정부의 역할을 다 할 것을 약속했다. 그러나 협약 후 1년 가까운 시간이 지나도록 곰사육 금지 및 보호에 관한 특별법은 국회에서 계류 중이다. 그 사이 철창 속 사육곰들의 고통은 이어지고, 잠시 세상 밖을 구경한 사육곰은 총에 맞아 사살됐다. ​제 의지와 상관없이 철창 밖으로 나와 사살당한 사육곰들의 가슴 아픈 생에 언제까지 애도만 전해야 하는가. 더 이상 무고한 생명이 고통스러운 삶을 살다 죽임 당하는 모습을 지켜볼 수만은 없다. 윤석열 정부는 용인 농장주 소유 사육곰들의 구조 및 보호 대책을 즉각 마련해야 하며, 국회는 곰 사육 종식을 위해 조속히 특별법을 통과시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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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욱

안녕하세요. 평범한미디어 윤동욱 기자입니다. 권력을 바라보는 냉철함과 사회적 약자들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을 유지하겠습니다. 더불어 일상 속 불편함을 탐구하는 자세도 놓지치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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